이광철씨, 94년 구국전위 사건 ‘간첩’ 발표는 공권력의 인권침해-손배소송 승소
[편집자주] 확실한 증거도 없이 수사기관이 ‘간첩’ 혐의사실을 공표하고 언론이 이를 기정 사실처럼 보도해 심각한 인권침해를 유발해온 관행에 제동을 거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지법 민사합의42부는 지난 20일 94년 ‘구국전위’ 사건으로 간첩혐의로 기소됐다 무죄로 풀려난 이광철(현재 전주 시민행동21 공동대표) 씨가 “증거도 없이 기소 전에 간첩이라고 발표한 것은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한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이씨 가족에게 8백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다.
우리나라 형법 126조는 공판청구 전에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피의사실 공표죄’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수사기관과 정보기관은 수사결과를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언론이 이를 여과없이 보도함으로써 인권침해의 관행을 계속해왔다.
80년대 초반부터 전북지역을 기반으로 민주화운동에 힘써온 이씨는 94년 당시 이 사건으로 2년 가까이 수배생활에 시달렸고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기까지 다시 10개월간 억울한 감옥생활을 해야했다.
이씨는 판결직후 언론과 수사기관이 자신에게 뒤집어씌운 ‘간첩’누명으로 고통받은 지난날과 이번 판결에 대한 자신의 소견을 발표했다. 이씨의 성명을 여기에 싣는다.
잘못된 수사관행에 대해 경종을 울린 사법부의 판단을 환영한다.
오늘 서울지법 민사합의 42부(재판장 조수현 부장판사)는 옛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가 지난 94년 이른바 ‘구국전위’사건을 수사하면서 기소 이전에 언론에 일방적으로 피의사실을 공표하여 본인을 간첩으로 몰아간 인권침해행위에 대해서 본인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건에 대해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수사발표
이는 유죄 확정 이전에 수사기관의 판단만이 담긴 이른바 ‘수사결과’를 일방적으로 발표하여 여론호도를 시도하고 재판이전에 관련자를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등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를 초법적으로 자행해온 수사관행에 일대 경종을 울린 것으로 환영한다.
본인이 결국 무죄판결을 받아내긴 했지만 국가 공권력의 필요에 의해 ‘간첩’으로 낙인찍힌 후 받아온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피해는 그 어떤 보상으로도 회복될 수 없는 ‘사형선고’와 같은 것이었다.
특히 오랜 분단과 냉전을 겪어온 우리 사회에서 ‘간첩’이라는 낙인은 본인뿐만 아니라 그 가족, 주변의 모든 인간관계를 말살하는 ‘악령’과도 같은 것으로 사실 당시 수
사기관이 노린 것은 본인에 대한 유죄판결 이전에 민주화 운동가 이광철을 우리 사회에서 ‘죽은 목숨’으로 만들고자 시도한 전형적인 공안조작에 다름 아니었다.
오늘 재판부가 내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은 수사기관의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는 일보 전진한 것이었지만 손해배상액수를 8백만원으로 한정한 것은 간첩으로 낙인찍힌 사람이 겪은 고통에 대한 보상과 인권회복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공안기관은 물론 일반 수사기관에서도 유죄 확정 이전에 언론에 피의사실을 공표하여 피의자의 인권을 유린하는 관행이 근절되기를 희망한다.
아울러 언론에서도 수사기관의 발표를 여과없이 보도하여 피의자의 정당한 방어권을 훼손하고 무고한 혐의를 뒤집어쓴 희생자일 수도 있는 피의자에게 평생 지울수 없는 상처를 주는 인권침해에 대해 보다 신중한 태도를 가져주기를 바란다.
2001. 7. 20
구국전위 사건 피해자 이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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