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정부는 쌀증산정책은 지양하고 품질위주의 생산정책으로 전환, 약정수매제를 폐기하고 시가매입 시가방출식의 공공비축제 도입, 미작경영안정제 소득안정직불제 등 다양한 직불제 도입 검토등을 골자로 하는 쌀산업발전 종합대책안(이하 종합대책안)을 발표했다. 누적된 쌀 재고량으로 인해 쌀값폭락이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 발표를 접한 농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 하다. 정부의 이번 안은 사실상 쌀 정책 포기, ‘농가 말살 정책’과 다름없다는 성토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 15일 전국농민회총연맹(의장 전광훈)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을 비롯한 전국 6개 지역에서 연인원 3만 5천명 규모의 전국동시다발 농민대회를 열고 정부에 “쌀 생산비 보장, 수입쌀 반대 등 쌀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 수립’을 촉구하고 나섰다.
쌀산업발전 종합대책(안) = 쌀농사 포기 강요안
농민들은 정부의 종합대책안을 “쌀 농사 포기를 유도하는 농업 포기 정책’이라고 입모아 말한다. 종합대책안 수립의 중요한 근거로 제시되고 있는 쌀 자급률 초과와 이에 따른 재고량의 누적은 명분에 불과하며 제시된 각종 정책은 WTO 쌀 재협상 이후 쌀 시장을 전면적으로 개방하기 위한 수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소규모 쌀농가의 쌀농사 포기를 유도함으로써 현재의 공급과잉 구조를 단계적으로 해소하고 그 결과 쌀시장 개방과 함께 진행될 급격한 쌀값폭락, 그로 인한 농촌사회의 파괴와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음모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말한다.
정부가 쌀증산정책 포기의 핵심 근거로 제시한 제고량의 누적에 대해 농민회 측은 ‘93년에 이미 쌀재고는 1400만석에 달했으나, 단 2년의 흉작으로 200만석 이하로 떨어진 바 있다. 마치 엄청난 재고물량이 쌓이고 있는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고 있지만 올해 말 재고량은 1천만석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반박한다. 특히 쌀 재고량의 상당 부분을 수입쌀이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정부의 쌀증산정책 포기가 머지 않은 미래에 쌀의 완전한 수입의존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는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또 약정수매제 폐기와 시가매입 시가방출식의 공공비축제 도입 역시 농민들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다. 현재의 수매제도 또한 적정 생산가를 보장하지 못해왔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하물며 수확기에 집중되는 쌀공급으로 인해 급락한 생산지 가격으로 쌀을 매입, 비축하는 방식으로 쌀수급이 이루어진다면 농가소득의 급격한 하락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쌀은 넘쳐나지만 논은 더 만들어야 한다?
더욱 가관인 것은 쌀정책과 관련한 정부의 놀라운 이중적 행태이다. 온갖 매스컴을 통해 쌀재고량이 심하게 누적돼 더 이상 쌀증산정책을 유지할 수 없다는 대대적인 여론몰이를 해대고 다른 편에서는 ‘새만금 간척사업’과 같은 대단위 농지확대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러한 정부의 모순적 행태도 그러나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최근 발표한 종합대책안의 구상과 맞물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기적으로 중소농민을 농업에서 퇴출시키고 소수 기업형 농업형태만을 육성하겠다는 정부의 구상이 한쪽에서는 농민의 목을 졸라 자연 탈락하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단위 농지개간사업을 벌이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새만금 간척지를 농지로 소유할 수 있기 위해서는 새만금 간척호수의 수질개선을 위한 엄격한 규제를 따르면서도(비료사용 억제, 가축 사육 억제 등) 적정 수준의 이윤을 보장할 수 있을 만큼 경쟁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한·칠레 자유무역 협정 체결시도,대책 없는 쌀시장개방 즉각 중단되야
미국 본토에 가해진 충격적인 테러의 여파로 다소 늦춰지긴 했지만 조만간 김대중 정부는 중남미 순방을 통해 답보상태에 빠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의 돌파구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농업강국인 칠레와 자유무역협정이 이뤄진다면 가속화할 농산물 개방에 따른 농촌 경제의 파탄이라는 예고된 수순을 밟아나갈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본보기로 각국의 농산물 시장 개방 압력이 더욱 거세질 것이며, 2004년 WTO와의 쌀 재협상에도 영향을 미쳐 시장을 완전 개방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결국 이는 농촌경제의 완전한 파탄, 농민 생존권의 완전한 말살로 이어져 실업자, 빈민을 양산하고 대다수 국민의 삶의 질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 뻔하다.
450만 농민들의 목숨을 담보로 진행되고 있는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 농업정책, 농민말살 정책은 즉각 폐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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