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KBS 노동조합의 ’58년 개띠’

올린이:자유혼(하종강) 99.07.24 11:07:41 조회: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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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을 한 달쯤 앞두고 산정호수에서 열렸던 KBS노동조합의 대의원 수련회 때부터 ‘방송사 파업’은 이미 기정사실이었다. 강의나 토론 내용이 모두 한 달 후에 벌어질 이번 파업을 어떻게 하면 승리로 이끌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맞추어졌고, 그 이후 전국의 KBS 방송사별로 노조 대의원들의 수련회가 이어졌다.

세 번째로 열린 직군별 수련회에서 나는 ‘또 다시 앞으로’라는 노래의 가사를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동가 ‘또 다시 앞으로’의 가사 중에 보면 ‘역사에 발 맞추어 하나 둘 셋’이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어째서 역사에 발 맞추는 것일까요? 노동자들이 한 푼 더 받겠다고 하는 임금인상 투쟁이 어째서 역사에 발 맞추는 것일까요? 노동자들이 하루 더 쉬겠다고 하는 투쟁이 어째서 역사에 발 맞추는 것일까요? 민주방송 쟁취를 위한 노동자들의 파업이 어째서 역사에 발 맞추는 것일까요? 그것부터 생각해 봅시다.”

이를테면 서울지하철 노조의 파업이 어째서 사회 전체를 건강하게 만들고 역사를 옳게 발전시키는 것인지 생각해 보자는 화두를 나는 그렇게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저녁식사 시간에 술이 한 잔 씩 돌았는데 KBS 노조의 ’58년 개띠’여성 간부가 갑자기 나를 불러세웠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화장기라고는 전혀 없는 얼굴과 단발머리가 ‘보통이 아니다’라는 느낌을 주던 여성 동지였다.

“아까 강의하실 때 들으니까 ‘또 다시 앞으로’라는 노동가의 가사를인용하시던데 말이지요. 그 노래를 여기서 한 번 불러 보시기 바랍니다. 당연히 그 노래를 부를 줄도 아시겠지요?”

나는 농담으로 어물쩍 위기를 넘기려고 했다.

“사실, 나는 그 가사밖에 모르거든…”

여성 동지는 더욱 기세가 등등해졌다.

“그 노래를 부를 줄도 모르면서 강의할 때 그렇게 말했다면 당신은노동조합에 와서 강의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 자, 빨리 앞으로 나와서 불러 보라니까요.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꼼짝없이 그 노래를 부르는 수밖에 없었다.

며칠 후, 아랫녘에 있는 어느 지방 KBS 노조 지부의 수련회에참석해 강의를 하면서 같은 대목에 이르렀을 때, 나는 며칠 전 그 ’58년 개띠’ 여성 동지가 갑자기 나를 불러일으켜 세우는 바람에 꼼짝없이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었던 일에 대해서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겁이 나서 노래 가사 인용도 함부로 못하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강의 도중의 휴식 시간에 그 ’58년 개띠’ 여성 동지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말했다.

“내가 정말로 하 소장님한테 ‘당신’이라고 그랬어요? 나는 그런 표현 잘 안 쓰는데…”

옆에 있던 부산 출신의 부위원장이 특유의 매력적인 남저음으로 말을 받았다.

“니가 그랬다. 분명히 ‘당신’이라고 그랬다. 나도 들었다.”

“이상하다. 내가 가끔 수 틀리면 남자 조합원들을 이단 옆차기로 날려버리기는 해도 ‘당신’이라고 함부로 부르지는 않는데…”

나중에 들으니 그 여성 간부가 내지른 이단 옆차기에 나가떨어진 남자 조합원들이 꽤 여럿이나 된다는 것이었다.

6월 30일에도 어느 지방 KBS 노조의 수련회가 있었다. 그 다음날인 7월 1일부터는 ‘남녀차별금지법’이 시행된다던 날이었다. 남자들이 여성 동지들에게 농담을 할 때마다 “이런 농담도 오늘이 마지막이야. 내일부터 말 한 번 잘못했다가는 형사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구.”라고 푸념들을 했다. 내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그 법은 남성들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부위원장이 웃으면서 또다시 특유의 매력적인 남저음으로 말을 이었다.

“아이쿠, 그렇게 되면 우리 최 실장은 아파트를 팔아도 그 벌금을 다 못 낼 거야. 큰일 났구만 큰일 났어.”

바로 그 ’58년 개띠’ 여성 동지를 이르는 말이었다.

드디어 방송사 노동조합이 파업을 시작했고, 나는 KBS의 민주광장에서 강연을 하는 영광을 가졌다. 노조 사무실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는데 그 ’58년 개띠’ 여성 동지가 방금 세수를 마친 듯 젖은 머리로 허겁지겁 들어서다가 나를 보고 인사를 한다.

“하 소장님 오셨군요. 3일 동안 잠 한 숨도 못 잤어요. 종합청사 앞에 집회 나갔다가 이제 겨우 샤워하고 오는 길이에요.”

“3일 동안 잠 한 숨 못 잤다는 사람이 그래도 얼굴은 쌩쌩하네.”

내 말에 그 여성 동지가 내 팔뚝을 자기 양손으로 잡아 쥐며 답했다.

“그럼요. 파업 한 번 제대로 해 보는 게 우리 조합원들 평생 소원이었잖아요.”

내 바로 앞 시간에는 가수 장사익 씨가 와서 공연을 했다. 장사익씨는 예의 그 어눌한 말씨로 공연 전에 몇마디 했다.

“지는요. 방송국에 계신 분들이 파업을 한다고 해서요. 여기 도착할 때까지도 여러분들이 월급 더 올려달라고 파업하는 줄로만 알았구먼요. 근데 여기 와서 보니까 그게 아니네요. 방송법 쟁취라는 그런 훌륭한 목적을 갖고 파업을 하고 계셨구먼요.”

노래 중간 중간에도 몇 마디씩 말을 곁들이는데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그 진솔한 말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내 옆에 서 있던 어느 간부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역시 ‘경험이 보약이다’라는 말이 맞아요. 그렇지요?”

장사익 씨의 공연이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에 그 ’58년 개띠’ 여성 동지가 마이크를 잡았다. 주머니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어 조합원들에게 흔들어 보이더니 외친다.

“동지 여러분, 장사익 선생님께서 말이지요. 저희가 사례비를 드렸는데도 ‘이렇게 고생하는 사람들한테 어떻게 돈을 받느냐’면서 한사코 받지 않으셨습니다. 교통비밖에 안된다고 했는데도 ‘저녁에 막걸리라도 한 잔 씩 하시라’면서 굳이 돌려주고 가셨습니다. 부산에 공연 내려가 있다가 급히 올라오신 것인데도 말이지요. 동지 여러분, 장사익 선생님의 이러한 격려에 보답하는 의미에서라도 힘차게 싸워 승리합시다!”

그 바로 다음이 내 강연 순서였으니 강연 끝내고 강사료는커녕 교통비라도 몇 푼 받아챙겼다가는 완전히 역적 소리를 들을 판이다.

“돈 안 주는 방법도 가지가지야.”

나는 옆에 있던 노조 간부에게 말하면서 웃었다.

노동자들은 대개 일이 터진 후에야 나를 찾아온다. 해고되거나 구속되거나 파업이 목전에 있거나…

현장에서 피땀 흘리면서 일하거나 조직 활동을 하는 노동자들은 나처럼 책상머리에 붙어앉아 노동상담이나 한답시고 뺀질거리며 앉아 있는 사람을 처음에는 잘 신뢰하지 않기 마련이다. 그 노동자들에게 “하종강은 정말 믿을 만한 사람이요. 어서 빨리 속을 다 털어놓으시요.”라고 수백번 말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느긋하게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걸 배우는 데에도 꽤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몇 년 전, 구로공단의 어느 전자회사에서 불법 파업을 한 후집단적으로 해고된 나이 어린 여성 노동자들이 찾아왔다. 어찌나 어려 보였던지 해고무효확인소송을 하던 첫날 판사의 첫질문이 이랬단다.

“자네들은 몇살이나 되었는고?”

판사는 아마 ‘내가 이런 어린애들을 상대로 입씨름이나 하려고 판사가 되었나’ 하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 여성 노동자들을 몇 번 만나 이야기를 들었는데도 나는 불법파업을 한 이유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아무리 뜯어 봐도 불법 파업을 결행하고 스물 한 명씩이나 해고될 만큼 중대한 현안 문제가 그때 그 사업장에 없었던 것이다.

‘서로 신뢰하게 되면 저절로 알게 되겠거니…’ 싶어서 기다렸는데, 꽤 여러 번 만나도록 그 나이 어린 노동자들은 좀처럼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았다. 이건 좀 너무한다 싶어서 어느날 기다리다 못한 내가 다그쳤다.

“그날 총회에서 왜 파업을 결의하게 되었어요? 솔직히 좀 말해봐요. 왜 불법 파업을 하면 해고될 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 그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냐구요?”

한 여성 노동자가 참 딱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그때 KBS에 공권력이 투입됐었잖아요. 그때 그 새끼들이 KBS파업 현장에 공권력을 투입했었잖아요. 그거 모르셔요? 하 선생님은 왜 우리가 우리 회사 문제만 갖고 파업했을 거라고 생각하셔요?”

아, 나는 항상 부끄러움을 통해서 배운다.

90년 4월 KBS 노조가 파업을 벌였을 때 ‘KBS 파업 현장에공권력이 투입된다면 우리도 동조 파업에 돌입하겠노라’고 천명했던 노동조합들이 여럿 있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켰던 것이다. KBS의 노동자들은 그때 불법 파업을 하고 해고된 구로공단 전자회사의 나이 어린 여성 노동자들에게 영원히 빚을 진 것이다. 그 빚을 이번에 ‘방송악법 저지 및 개혁적 방송법 쟁취’라는 ‘불법 파업’으로 갚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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