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우리 사회에 유령처럼 배회하기 시작한 박정희 살리기 운동에 대통령이 공식적인 지지를 표명하여 국민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올해 초 대구광역시를 방문한 자리에서 박정희 전대통령 복권을 공식적으로 주장하고 국가적인 차원의 지원을 약속해왔는데, 최근엔 아예 박정희 기념관 건립위원회 명예회장을 맡았다.

김대중 대통령이 박정희 기념관 건립위원회의 명예회장을 맡은 것은 대통령이기 이전에 한 개인으로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국가적인 차원의 지원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과거 박정희 전대통령의 권위적 통치방식과 비슷한 면이 있다. 국민의 세금을 사용하거나 공무원들이 행정 지원을 하는 것은 한 사람의 자유 의사로 결정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아무리 과거사와의 화해를 바탕으로 영호남 화합을 이루겠다 하여도, 그것이 아무리 사심 없는 진심이라 하여도 그것은 개인의 의지이며 개인의 뜻일 뿐이다. 그러나 지금 김대중 대통령이 박정희 전대통령과의 화합을 주장하고 그것을 국가적인 사업으로 가져가려 한다면, 국민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국민의 동의가 필요 없다면, 그것은 대통령의 뜻이 아니라 개인 김대중의 뜻일 뿐이다. 그러므로 국가적인 차원의 지원을 하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재고되어야 한다.

과거 청산 없이 이어진 우리의 근대사는 친일 인사의 호령과 일제 잔재 문화 속에 신음하고 있으며, 그에 이어진 군사독재 문화의 폐해는 20세기를 마감하는 지금까지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우리 사회의 문화적 다양성과 창조성을 억눌러 온 주범이 바로 그들이다. 어느 신문에서는 박정희 전대통령을 ‘근대화 혁명가’가 치켜세우고 있지만, 그는 우리의 근대와 민주주의를 결정적으로 훼손한 독재자에 불과하다. 이런 마당에 한 국가의 수반이 과거사 전체를 부정하면서 독재자의 영웅화에 나서는 것은 그 사회 전체의 역사관과 문화에 심각한 폐해를 끼치는 일이다. 물론 이 역시 필자의 생각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또 다시 그 소름끼치는 비민주와 획일성의 문화적 패러다임으로 회귀할 여유도 이유도 없다. 그 일에 대통령이 나서는 자체가 이미 그런 패러다임의 초입에 들어 선 것인지는 몰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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