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가슴에 동지의 원혼을 묻는다. 』

– 결코 그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으리

현재 시각 오전 9시 45분

저는 지금 전태일 동지를 만나려 갑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나의 죽음을 헛되이 말라!”…….

청계천 평화시장 한복판에서 타오른 동지의 불꽃은

지금도 훨훨 타오르는 노동해방의 활화산이 되어

해방의 열기로 이 더러운 자본의 세상을 태워버릴 것입니다.

오늘은 전태일 동지를 우리들 가슴에 묻고 오렵니다.

동지의 불꽃이 우리들 가슴에 노동해방 세상으로 훨훨 타오르도록….

이른 아침 전날의 숙취로 쓰린 속을 달래며 동대문운동장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언젠가 읽었던 전태일 평전의 내용을 떠올리고 있다. 대학생 친구 하나가 필요했던, 시다에게 풀빵을 사주고 집에까지 걸어가던 전태일 동지의 모습이 가득 차 떠오른다. 동지를 만난다는 생각에 들떠 잠을 설치며 서두른 탓인지 약속 장소에 너무 일찍 도착해 버려 아직 30분이나 넘게 남아있어, 이른 아침부터 생계를 위해 동대문운동장 한 편에 자리를 펴고 늙은 몸을 놀리는 아주머니들의 포장마차 한 곳에 들어가 뜨끈한 우동 한 그릇으로 배를 채우고, 전에는 청계피복노조였던, 민주노총 섬유화학연맹산하 서울지역의류제조업노동조합의 깃발이 휘날리는 곳으로 향했다. 때묻은, 그래서 그간의 가열찬 투쟁을 말해주는 듯한 깃발을 들고 계신 분에게 문의하여 버스에 승차해 보니 전해투 위원장님께서는 벌써 차에 타 계셨다. 아직 유가협이나, 여타의 사람들은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다.

어느새 내가 탄 차에도 사람들이 가득찼고, 9시 20분쯤 되어서 버스가 한 대 더 왔다. 두 대의 버스가 가득 찬 채로 버스는 드디어 마석 모란공원에서 영원히 잠들지 않는 노동해방의 투사 전태일 동지를 향해 달렸다.

11시가 넘어서 모란공원에 도착한 우리들은 바쁜 걸음으로 묘역을 찾았다. 벌써부터전해투의 투쟁으로 얼룩진 차량이 도착해 있었고, 뿐만 아니라 전태일 동지의 묘지 앞에는 동지의 삶과 투쟁을 기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도착해 있었다. 민주노총의 단병호 위원장님, 이갑용 전위원장님,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 노수희 전국연합 공동의장님, 전국빈민연합, 전국철거민연합의 전농3동 주민, 전해투, 유가협 어머님들,등 여러 단체에서 또는 개인으로 전태일 동지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자리에 참가했다. 버스가 조금 늦게 도착하여 늦어진 관계로 곧바로 추도식이 진행되었다. 사회는서울지역 의류제조업노동조합 위원장님이 보셨다.

– 기분 탓일까? 서울지역 의류제조업노동조합 위원장님의 모습이 전태일 동지를 닮 은것 같았다.

120여명이 엄숙하게 전태일 동지가 누운 자리를 둘러싸고 전태일 추모가를 부르며 시작되어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님의 추도사로 이어졌다. 모두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마음속으로 전태일 동지를 떠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이 40이 되어서 전태일 동지를 알게되었다는 단위원장님의 추도사는 전태일 동지가 자신의 몸을 불태우며 외쳤던 “나의 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유언을 이어 ’29년이라는 시간동안의 많은 변화와 그간 투쟁의 성과를 이어 대우의 구조조정, 전력산업 매각에 대한 투쟁, 등 당면 하반기 투쟁 뿐 아니라 국가보안법철폐투쟁, 정치세력화 등의 중장기적인 민주노조운동의 발전을 이룩해야 한다’는 추도의 발언이 투쟁의 결의를 다지는 발언으로, 전태일 동지 앞에서 다시 한번 투쟁의 의지를 불태우고자 하는 것 같았다.

이어서 민주화학섬유연맹과 민주노동당(준)의 권영길 상임대표가 추도사를 하였고, 70년 전태일 동지와 함께 했던 친구분께서 ‘오늘 추도식에서 친구된 입장으로, 주인된 입장으로의 발언을 하신다’며. ‘전태일 동지의 원혼이 우리 곁에서 투쟁의 불꽃을태우고 있기에 지금의 우리 운동의 성과가 있었으며, 민주노총의 정신적 지주임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이 주체로 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따끔한 한마디도 하시면서, ‘전태일은 이미 청계피복의 전태일이 아니다’라며 모두들 가슴에 전태일 원혼을 심어 주었다. 하지만 29주기를 맞는 지금에도 자본의 탄압은 그치지 않고 있다. 서울지역의류제조업노동조합 조합원의 추도사에서 ‘지금도 봉제노동자의 작업환경은 갈수록 열악해지고, [시다임금직불제]가 무효화되고 있다’면서 ‘전태일 선배님의 뜻을 기리며, 한점 부끄럼 없는 실천하는 노동자, 투쟁하는 노동자, 깨어있는 노동자가 되겠다’는 투쟁의 다짐을 하였다.

추도사를 들으며 스스로를 반성해 본다. 동지는 자신의 몸을 불사르며 노동해방의 횃불을 밝혔는데 아직도 이 세상의 노동자·민중은 억압받고 착취당하고 있다. 나는여태 것 무엇을 했는가? 내 삶을 되돌아본다.

동지의 어머님이신 이소선 어머님의 말씀이 있었다. 어느새 많이도 늙으신 것 같다93년 노동자 대회에서 어머님께서 날카로운 목소리로 세상을 따끔하게 혼내시는 모습이 아직도 귀에 들리는 듯한데 오늘의 어머님은 그저 추도식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며, ’70년 청계모임 전태일 동지의 친구분들이 30년동안 전태일을 대신하여 행한 효도에, 그 효도하는 정신이 있었기에 끊질긴 투쟁을 했다’며, 정말 고맙다고 하신다. 그리고 전태일 동지의 대학생 친구하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얘기하며, ‘노동자끼리 하는 투쟁은 힘이 없다’며, 민중연대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구구절절 가슴을 찌르는 이야기들이다. 언제부터인가 말로만 연대를 얘기하며 투쟁하지 않는 연대, 실천하지 않는 연대만이 무성했었다. 나 자신 또한 말로만 연대를 외치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본다. 한라중공업 노동조합 동지들이 외롭게 투쟁하고 있었을 때우리는 무엇을 했던가? 지금도 어디선가 외롭게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70년 전태일 동지가 외롭게 투쟁하던 모습을 떠올린다. 이한열 열사 어머님께서는 ‘이제 천만노동자의 상이 전태일이라면 슬플 때 절망할 때 힘을 주시던, 지금의 유가협이 있도록 투쟁하셨던 이소선 어머님이야 말로 진정한 어머니의 상이다’라며 이소선 어머님의 투쟁을 말씀하셨다. 가슴이 져려옴을 느낀다. 도데체 누가 저 늙으신 어머님들이 여의도에 천막을 치고 1년이 넘도록 투쟁을 하도록 하고 있단 말인가, 도데체 누가 우리의 어머님, 아버님들의 자식을 앗아갔단 말인가? 한줌도 안되는 자본가들과 그들의 정권이 우리의 어머님들을 아버님들을 투사로 만들고 있는 이 세상에 분노한다.

‘전태일 동지가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선언했다면 우리는 다가오는 2000년 세상을 바꿀 것을 선언하며, 세상을 바꾸는 투쟁을 결의’하며, 추도식은 마무리되었다.

추도식이 끝난 뒤에도 모두들 한 동안 전태일 동지의 묘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동지의 사진이 우리를 쳐다보며 ‘나의 죽음을 헛되이 말라!’고 외치고 있는 듯 했다.

추도식을 마치고 우리는 주최측에서 마련한 도시락을 가지고 모란공원 전태일 동지의 묘역주변에 둘러앉아 점심식사를 하였다. 식사를 하면서도 서로 전태일 동지의 옛날 얘기들을 나누었다. 전태일 동지의 동생이 지나갈 때면 모두들 동지의 모습과 똑같다고 한다며 지금 동지가 살아있다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인지 동지의 동생을보며 확인하고, 조카들의 모습 속에서 동지의 젊은 시절 모습을 그려보는 듯 하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모란공원 열사묘역을 돌았다. 87년 6월의 역사와 함께 우리들기억속에 남아있는 박종철 열사, 90년 유서대필 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던 김기설 열사, 아직도 청순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되는 김귀정 열사,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문사들, 빈민열사, 학생열사 채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열사들의 묘역이 있다. 여기 잠든 열사들 말고도 또 얼마나 많은 열사들이 있는가? 열사의 묘역을 참배하며 열사 앞에서 구호를 외칠 때마다. 새로운 다짐들을 가슴에 새긴다. 살아남은 자의 몫을 해야 한다고….

얼마전 열사들의 사진과 자료를 담은 5센티는 됨직한 두꺼운 책을 본적이 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 했던가‥‥ 그토록 많은 동지들의 목숨을 앗아가고지금도 어느 곳에서 죽어가고 있는 동지들‥‥ 이 더러운 자본과 권력의 세상을 증오한다. 이제 살아남은 자의 몫으로 투쟁할 것을 그리고 더이상 우리들의 후손에게는 죽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물려주겠다고 다짐한다.

이토록 많은 열사들의 원혼을 내 작은 가슴에 담아본다.

그 불꽃으로 내 온몸과 마음에 깃든, 자본에 길들여진 썩어빠진 관념을 불사른다.

다시한번 노동해방을 외쳐본다.

전 노동계급의 연대투쟁 자본과 정권 박살내자!!!

자본과 정권 박살내고 노동해방 쟁취하자!!!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