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독재와 훼손된 자유민주주의

(참세상은) 어려운 매체지만 쉬운 얘기를 하겠다. ‘독재’라는 어휘를 동원해 정권을 비판하는 건 멀리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경우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다. ‘민주 대 독재’ 구도 속에 모든 이슈를 욱여넣어 쟁점을 단순화하는 것의 폐해를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구체적 사안에 관해 대안을 논하지 않으면 모든 논쟁은 단순화된 찬반 구도의 블랙홀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이 ‘단순화된 찬반 구도’가 정치 문법으로 표출되면 양당 구도가 되는 거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의 경우엔 독재’ 얘기를 하는 게 불가피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이지만, 권력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선 보수정치 내부에서도 독재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수적 논자로 잘 알려진 윤평중 한신대 명예교수의 평가가 대표적 사례다. 윤평중 교수는 22대 총선 당일인 지난 4월 10일 조선일보 기고문에서 윤석열 정권의 리더십을 “비민주주의적 자유주의’와 권위주의적 통치”라고 평가했다. 윤평중 교수는 2월 윤석열-한동훈 갈등 당시 월간중앙에 기고한 글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의 비민주주의적 자유주의(non-democratic liberalism)엔 민주와 공화의 근본 가치에 대한 감수성이 없다”고 했다.

출처: YTN 화면 갈무리

윤평중 교수가 제기하는 비민주주의적 자유주의’는 흔히 쓰이는 개념이 아닌 듯하다. 이보다는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라는 말이 더 익숙하게 들린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이리저리 조합한 이러한 개념들은 야스차 뭉크 등이 <위험한 민주주의>와 같은 책을 통해 주장한 개념이다. 냉전을 거치며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합인 자유민주주의가 공산권 국가의 권위주의적 통치 붕괴 이후 최종적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이지만,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하면서 새로운 위기가 찾아오고 있다는 게 이들 주장의 큰 줄기다. 이 도식에서 핵심은 포퓰리즘 비판이다. ‘민주주의’의 외피를 두른 채 대중 동원의 방식으로 사실상의 전도된 권위주의를 구현하는 현상이 도처에서 목격되고 있다는 거다. 이걸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로 설명하면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된다는 얘긴데,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주의가 훼손되면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 민주주의가 훼손되면 권위주의적 독재가 된다는 도식이다.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 비판은 미국의 트럼프 정권과 같은 21세기형 극우 포퓰리즘을 겨냥하고 있지만, 한국에선 주로 보수 세력에 의해 민주당 정권을 비판하는 개념으로 활용되어 왔다. 지난 정권의 검찰개혁에 대한 평가가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권 시기 민주당의 주요 인사들은 제도의 내적 완결성을 추구하기보다는 검찰 권력에 대한 이른바 ‘민주적 통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에 무게를 실었다. 법치주의의 기준으로 본다면 오히려 군사력이나 공권력의 행사 및 활용에 대하여 제한적으로 제기되어야 할 이 논리가 여러 제도적 무리수를 정당화하는 데 오용되면서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었다. 이런 대목을 비판하기 위해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 비판의 논리를 활용하는 것은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보수 세력의 문제는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 비판을 반공주의로 스리슬쩍 대체했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정계 입문 이전부터 “(문재인 정권이)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려고 했다”고 반복 주장한 게 그렇다. 민주당과 그 지지 세력 및 일부 시민사회에서 유행한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라는 표현으로 대신하자는 식의 담론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는 한국 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식의 표현 자체가 반공주의의 맥락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로 권력에 의해 활용돼 왔으므로 이러한 역사를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민주주의라는 단어 자체에 자유민주주의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모두 함축돼 있으므로 따로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을 만들어 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보수 세력은 이를 비틀어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제거해 권위주의 및 전체주의를 추종하려 한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다양한 기회를 통해 내놨다. 윤석열 대통령의 주변 인사들이 ‘자유민주주의’의 대립 항으로 (그들이 반헌법 이념으로 보는) 민중민주주의’를 상정한다든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민주주의’를 표방한다”든지 했던 게 대표적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러한 개념의 혼란 자체가 아니라 배경에 깔린 의도이다. 이런 주장이 횡행한 것은 상대를 ‘공산당’으로 몰고 그것에 대한 ‘반대’를 표방하는 것으로 자기 편의 정치적 결집을 모색하려 했기 때문인데, 이것이야말로 반공주의 통치의 핵심이다. 그런 점에서 보수 정치의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 비판은, 자신들이 집권한 이후의 행보를 이 당시에 이미 예고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윤석열 정권은 당시의 우려를 거의 그대로 답습하는 행보를 보여 왔다. 초기에는 ‘자유’를 앞세우면서 이를 지지하는 보수적 유권자층의 여론을 동력으로 삼아 정당성 없는 일을 정당화하려는 전형적인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폐단을 되풀이하려나 싶었다.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강경 대응과 ‘건폭몰이’가 대표적 사례다. 여기서 정치적 성공을 크게 거두고 이를 총선 직전까지 밀어붙였다면 아마 그런 평가를 피할 수 없게 됐을 거고, 보수적 논자들은 침묵의 동조를 했을 거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으로 대표되는 불필요한 이념 논쟁을 촉발하고 여당 장악을 위해 전통적인 지지층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인사들까지 적으로 돌리는 무리수를 연이어 던지면서 보수층 내에서도 대통령의 자유민주주의적 통치 소양에 대한 의심을 표현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 정점을 찍은 것은 배우자 감싸기로 일관한 태도였다. 명품백 수수 의혹이 제기되고 이에 대한 명확한 대응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보수층의 불만은 극에 달하게 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공정과 상식’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는 것이다.

출처: 서울의 소리 화면 갈무리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중 하나는 법치주의다. 어느 한 개인의 자유를 타인 혹은 집단의 자유로부터 보장하기 위해서는 법의 개입이 필요하다. 자유의 보장이 실질적으로 되게 하기 위해서는 이를 강자에 유리하게 하지 않게 해야 하고, 그러자면 법은 공정하고 공평하게 작동돼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와 법치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자신의 배우자를 향한 태도는 법치를 훼손하는 지경이다. 단지 감싸는 것을 넘어 국정 개입 의혹까지 불거지는 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한 소환조사에 겸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수사 역시 마무리하겠다는 검찰을, 인사를 통해 사실상 무력화시키면서 윤석열식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마지막 기대는 완전히 무너졌다. 놀라운 점은 배우자 수사 방식을 놓고 대립한 서울중앙지검장을 교체하고 수사팀 보강을 지시한 검찰총장의 수족을 잘라 전국에 흩뿌리는 인사를 단행하면서 그걸 정당화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는 사람 입장에선 “어차피 다 알면서 뭘….”이란 메시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의 태도는 해병대원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에서도 드러난다. 대통령실은 거부권 행사의 불가피성을 뒷받침하기 위한 여러 근거를 댔는데 기본적인 사실관계부터 맞지 않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가령 특검은 수사기관의 수사가 미진할 경우에 한해 여야가 합의한 경우에만 가능하며 이게 아닌 경우엔 거부권 행사를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직무 유기라는 대통령실의 주장은 역대 특검법 통과의 사례를 보면 전혀 사실이 아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우리 사법 시스템 어디에도 고발인이 자기 사건을 수사할 검사를 고르도록 하는 모델은 없다”고 한 것은 억지다. “대통령이 자기도 수사받을 수 있는 특검을 추천도 하고 선택도 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특검 추천권에 대한 야당의 주장을 반격하기 위한 논리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공수처 수사를 못 믿겠다며 특검 도입을 주장하는 것은 자신이 만든 공수처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자기모순이자 자기부정”이라고 한 것은 유치하기까지 하다. 기획재정부는 보수 정권에서 만들었는데, 문재인 정권 시절 기재부가 주장한 여러 정책을 보수정당이 반대한 것도 자기모순이고 자기부정인가?

대통령실과 여당은 어찌 됐든 수사기관의 수사를 지켜보는 게 먼저라고 말하지만, 거기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수사기관의 수사에 전적으로 협력하고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게 먼저라는 거다. 그런데 대통령은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직접 공수처 수사를 흔드는 발언을 했다. 이종섭 전 호주 대사에 대한 출국금지를 두고 “저도 오랜 기간 수사 업무를 해왔지만 좀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한 거다. 대통령은 출국금지를 걸었으면 소환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고 소환하지 않으면서 두 번 출국금지를 연장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취지로 주장했는데, 원론적으로 맞는 얘기지만 수사 일선에서 잘 지켜지는 일인지는 의문이다.

대통령의 당시 기자회견은 지난 3월 14일의 언론 보도를 떠올리게 했다. 당시 YTN이 대통령실 관계자의 발언을 보도했는데, 여기에 “지난해 12월 이종섭 대사를 내정하고 주재국 동의를 받는 '아그레망' 등 임명 절차가 시작됐다”, “비슷한 시점, 이 대사가 고발된 이후 3개월 동안 한 차례도 소환요청을 안 했던 공수처가 이 대사를 출국금지하고, 올해 1, 2월에도 두 차례 이를 연장했다”, “소환도 없이 출금하는 건 명백한 인권침해이자 불법적인 수사권 남용이라는 게 용산 인식”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대통령의 기자회견 발언과 사실상 똑같은 논리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건 YTN 보도에 대통령실의 더욱 극단적 논리가 드러난다는 거다. “대통령실은 나아가, 출국금지는 수사 기밀이라 정부 당국자도 전혀 알 수 없는 내용인데, 친야 성향 일부 언론은 이를 먼저 확인해 보도하고, 야당은 이를 받아 정부가 이 대사를 호주로 도주, 도피시킨 것으로 여론몰이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대통령실은 정부 당국자도 알지 못한 출국금지 사실이나 이 대사의 통화 내역 등 수사 기밀이 야당과 일부 언론에 실시간으로 흘러갔다는 건데, '공언 유착' 아니냐고 반문했습니다” 등의 대목이 그렇다. 이런 맥락을 고려한다면 대통령의 기자회견 발언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공수처의 이종섭 전 대사를 향한 수사는 사실상 오염됐다는 취지 아닌가?

이러한 정황은 검찰 인사와 거부권 행사가 대통령의 비민주적 리더십의 맥락에서 이뤄졌다는 의심을 갖게 한다. 글의 서두에서 다룬 도식에 의하여 민주주의를 명분으로 ‘적법절차’를 우회하는 게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이고 권력이 임의로 편의적으로 훼손하는 게 ‘독재’라고 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권력 행사 방식은 명백히 후자에 기울어진 상태라는 진단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이런 도식을 꼭 따를 이유는 없다. 근대를 가능케 한 이데올로기의 큰 축은 자유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3가지로 보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중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좌파 입장에서 양보할 수 없는 가치다. 좌파가 볼 때에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의 정당화를 위해서만 동원되는 체제가 문제일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시각에서 오늘날 필요한 것은 이들 관계를 현대적 맥락에서 재정의, 재발명하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는 새로운 대안적 체제로 대체될 수도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양자 간의 관계만을 놓고 오늘날의 정치 체제를 도식화한 ‘자유민주주의’ 담론은 자본주의라는 정치와 경제의 연결고리를 외면한다는 점에서 한계 혹은 명확한 의도가 내재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이야기를 해야 할 입장인 좌파 일각에서 ‘포퓰리스트보다 자유민주주의자가 낫다’는 식의 논리에 따라 윤석열 후보와 정권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일이 일어난 것은 흥미로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조금 논리를 건너뛰어 말하자면 이 진기한 사건은 ‘비토크라시(Vetocracy)’의 일환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째서 그렇게 됐는지는 조금 더 쉬운 얘기로 다음에 할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한다.

덧붙이는 말

김민하는 정치·사회 평론가, 칼럼니스트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에서 일하며 한국의 진보정치가 현실적 대안으로 자리 잡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했으나 무엇이 잘못됐는지 기대만큼 잘되지 않았다. 지은 책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 『냉소 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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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잘 읽었습니다
    중간중간 소제목이 들어가면 읽는데 도움이 될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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