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략된' 마르크스

슐로모 아비네리의 『칼 마르크스』 리뷰

슐로모 아비네리의 『칼 마르크스: 철학과 혁명』은 마르크스 철학의 일부에 대한 훌륭한 입문서지만, 한편 마르크스의 작업과 생애에 관한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매우 단편적인 책이다. 

출처: Unsplash, Hennie Stander

마르크스의 유대성

아비네리의 책은 예일대학교 출판부에서 출간한 유대인의 삶에 관한 시리즈의 일부다. 따라서 이 책은 마르크스와 함께, 유대인의 삶 및 관습과 관련된 주제를 가능한 한 많이 다루어야 한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유대인 출신인 것은 그의 삶이나 작품에서 거의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주제로 마르크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다. 아비네리가 "마르크스를 '유대인 사상가'로 볼 수 없으며, 유대인 문제에 대한 그의 지식은 미미했다", "마르크스는 [유대인 종교 관습에 대해] 완전히 무지했으며, 직접 경험하거나 독립적으로 연구한 적이 없다"라고 썼듯이, 마르크스는 유대인 종교 관습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마르크스와 유대인 정체성에 관한 책을 쓸 수 없는 이유는 그 책이 그저 몇 페이지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실제로 아비네리가 쓴 것처럼, 마르크스의 젊은 시절 에세이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를 다루는 것이다. 에세이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부분은, 종교와 관계없이 유대인의 해방을 매우 자유롭게 요구하며, 시민 해방의 조건으로서 개종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한다(다른 청년 헤겔파 모세 헤스가 선호했던 견해에 반하여 작성된). 이 에세이의 두 번째 부분은 유대인, 더 넓게는 '유대인성'(유대교)과 자본주의 사이의 연관성을 논의하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반유대주의로 간주되기도 한다. 아비네리는 마르크스의 에세이가 1965년까지 히브리어로 출판되지 않았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반유대주의적 해석을 정당하게 거부한다.

청년 헤겔파

두 번째 중요한 주제는 오늘날 "젊은 마르크스"라고 불리는 것이다. 아비네리는 1968년에 출간된 그의 저서 『칼 마르크스의 사회적, 정치적 사상』을 바탕으로 견해를 펼친다. 이 챕터는 헤겔을 초월한 마르크스와, 파리와 브뤼셀에서 보낸 마르스크 사상의 형성기에 관한 장으로, 1968년 아비네리가 설명한 견해가 요약되어 있다: 유물론에 대한 마르크스의 재정의, 포이어바흐의 영향, (엥겔스와 함께) 공산당 선언의 출판, 청년 헤겔파 서클 내의 논쟁. 이 장에서 아비네리는 『1844년의 경제학·철학 수고』, 『독일 이데올로기』, 『신성 가족』 등과 같이 쓰인 지 60년 또는 100년 후에 출판된 텍스트들을 검토한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아비네리는 최고 수준의 소개와 토론을 제공한다.

경제학자로서 마르스크 

많은 사람들이 정치경제학 비판과 연관 지어 생각하는 성숙한 마르크스에 대한 논의는 분명히 부족하다. 사실 마르크스의 저술과 배경에 대해 무지한 사람은 아비네리의 책을 읽고 마르크스의 저술이 1848년 또는 1850년경에 중단되었다고 믿을 수 있다. 그 후 20년이 가장 흥미롭게 논의된다. 『자본』 2권과 3권(총 1,0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단 반 문장으로 다뤄진 것은 놀랍다. 『자본』 1권에 대해서는 상품과 상품 물신주의의 정의와 관련된 처음 두 장까지만 다룬다. 노동 예비군, 노동의 탈숙련화, 창조적 파괴, 이윤율 저하 경향, 임금 철칙(에 대한 거부), 생산 방식의 정의, 과소 소비주의, 세 부문의 균형 성장, 역사적 범주로서의 최저 임금...과 같은 중요한 마르크스주의 용어의 정의조차 헛된 검색이 될 수 있다. 아비네리는 경제학자로서 마르크스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작업에서 그 부분이 모두 생략된 것 같다.

'건전한' 자유주의자로서 마르크스

『칼 마르크스의 사회와 정치 사상』에서 아비네리는 마르크스를 자유주의자 또는 기껏해야 사민주의적 서유럽 사상가로서 제시하려고 노력한다. 여기에서도 동일한 접근 방식을 따르지만 훨씬 더 조잡한 형태로 마르크스의 다른 "조각"을 임의로 제외하거나 포함시킨다. 아비네리는 정치적 마르크스에 대한 "혁명적" 해석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동일한 실수를 저지른다. 그는 영국, 미국, 네덜란드와 같은 정치 선진국에서 사회주의로의 평화적 이행 가능성에 대해 마르크스가 한 몇 가지(말 그대로 몇 가지) 관찰을 일반화하여 그것이 사회주의로의 이행에 대한 마르크스의 일반적인 접근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아비네리는 마르크스가 열등한 사회경제적 구조에 대한 폭력적 진압을 찬성했던 미국 남북전쟁, 마르크스가 지지했던 아일랜드와 폴란드 반란, 마르크스가  『프랑스 내전』에서 거의 모든 정책을 인정했던 파리 코뮌, 고타 강령 비판 등, 마르크스의 많은 작업을 경시하거나 단순히 무시해야만 했다. 아비네리는 이 글들 대부분을 언급하지 않거나, 파리 코뮌의 경우 마르크스가 코뮌이 진행 중일 때 쓴 사적인 메모에서 코뮌의 '전제군주제'에 대해 비판적이었지만 나중에 코뮌이 잔인하게 진압된 이후에는 코뮌이 한 모든 일에 찬성하는 반대 입장을 취했다고 주장한다. 출판된 책보다는 편지도 아닌 단순한 메모에 불과한 미공개 발언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이상한 해석이다. 마찬가지로 아비네리는 『고타 강령 비판』과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전환을 위해 무력 사용을 허용하거나 심지어 요구하는 마르크스의 모든 발언을 거의 전적으로 무시한다.

이 '자유주의' 마르크스는 레닌과 레닌주의가 마르크스를 위조했다고 주장하는 데 사용된다. 이 주장은 마르크스의 저술과 그 내부 논리를 고려할 때 옹호하기 어렵다. 또한 아비네리는 볼셰비키 혁명이 없었다면 마르크스는 잊힌 사상가, 독일 사회민주주의의 여러 이론가 중 한 명에 불과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의 저서 대부분(아비네리가 책의 첫 부분에서 논의하는 모든 것을 포함)은 출판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명성은 저개발 사회에서 사회주의로의 전환을 폭력적인 방식으로 지지하는 이러한 유형의 해석에 의존했다.

마르크스 저술의 이 부분(1867년 이후)은 거의 무시되고 있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세계화라는 문제와 서유럽의 경험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사회가 서로를 깔끔하게 계승한다는 단선적인 계획이 나머지 세계에서도 유효한지 여부에 대한 문제에 처음으로 직면한 시기가 그의 생애 마지막 시기라는 점에서 이는 안타까운 일이다. 아비네리는 마르크스와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과의 관계를 통해 이 문제를 매우 간략하게, 거의 무시하듯 간략하게 논의했지만 그 이상은 다루지 않았다. 이 시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케빈 앤더슨(Kevin B. Anderson)의 『마르크스의 주변부 연구』 또는 마르셀로 무스토(Marcelo Musto)의 『칼 마르크스의 말년』을 참조하기 바란다.

지속적인 영향력

결론에서 아비네리는 마르크스가 거의 모든 사회과학에 미친 막대한 영향력과, 그를 플라톤과 비교하면서, 그의 정치적 계획의 관련성이 줄어들고 있음을 대조한다. 한 가지 단서를 단다면, 두 관찰 모두 옳다. 그 단서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주장한 10가지 경제 정책에 대한 아비네리의 매우 흥미로운 분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정책들 간의 연관성에 대한 아비네리의 정교한 해석을 읽다 보면, 이러한 정책을 가장 근접하게 실행하고 있는 국가가 바로 중국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비네리는 선언문의 10개 정책은 국가의 중요성이 점진적으로 증가한다는 의미이지 사유 재산권의 즉각적인 폐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그러한 해석이 옳다면, 그리고 중국이 이러한 원칙을 가장 근접하게 적용했고, 지난 50년간 중국의 발전이 같은 기간 동안 어떤 국가보다 가장 성공적인 발전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마르크스 사상의 실질적인 중요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아비네리 자신의 추론이 그의 결론을 약화시키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출처] Marx Truncated

[번역] 참세상 번역팀

덧붙이는 말

브랑코 밀라노비치(Branko Milanovic)는 경제학자로 불평등과 경제정의 문제를 연구한다. 룩셈부르크 소득연구센터(LIS)의 선임 학자이며 뉴욕시립대학교(CUNY) 대학원의 객원석좌교수다. 세계은행(World Bank) 연구소 수석 경제학자로 활동한 바 있으며, 메릴랜드대학과 존스홉킨스대학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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