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노동 사회’에서의 노동

공식 경제 내 유급 고용(일명 '직장')은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해 있다. 비극적인 실직으로 인한 빈곤, 불안정, 고립된 삶부터 고된 노동에서 해방된 삶까지 다양한 전망이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예측은 인공지능(AI), 딥러닝(deep learning),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비보조 로봇 프로세스(unassisted robotic processes)를 기반으로 하는 최신 자동화의 물결이 사회 재생산에서 인간 노동의 비중을 근본적으로 줄이고 있다는 증거가 늘어나는 데서 비롯되었다. 제조업에서 컴퓨터 통합 생산 시스템(computer-integrated manufacturing systems)이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세대의 스마트 기계가 곧 창출하는 일자리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 의료 종사자, 모기지(mortgage) 중개인, 전문 운전기사, 법률 보조원, 회계사, 군인 등 많은 직종의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다가오는 최소 노동의 미래가 디스토피아적인 악몽이 될지, 아니면 충분한 자유 시간과 사회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는 행복한 '그 이후'가 될지는 전환을 관리할 올바른 제도와 정책을 수립하는 데 달려 있다.

이러한 ‘탈노동 사회’에 대한 비판적 조사는 거의 전적으로 업무 외적인 측면(예: 자유 시간, 여가 등)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남아 있을 일, 누가 그 일을 할 것인지, 어떻게 조직할 것인지에 대한 지속적인 고려는 거의 없다. 내 생각에 이는 ‘탈노동’ 프로젝트에서 반드시 해야 할 질문이다. 초자동화 사회에서도 어느 정도의 유급 인간 노동은 여전히 필요할 것이다. 인공지능과 인간 지능 사이의 지속적인 차이를 고려할 때, 최첨단 AI 로봇 시스템이 인간의 모든 역할을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로봇이 할 수 없는 일이 많으며, 적어도 일부 업무(예: 간병 등)는 사람이 수행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또한, 자유롭고 만족스러운 노동은 아마도 우리가 계속 원할 것이다. 하지만 이 잔여 노동, 특히 공식적인 조정이 필요한 노동은 어떻게 조직되어야 할까? 다음에서는 유급 고용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들면서 도움이 될 제도적 공식, 즉 내가 '탈노동 조직(Post-Work Organization, PWO)'이라고 부르는 것을 소개하겠다. 이 명칭은 유급 고용 이후의 사회를 위한 '노동' 조직이라는 점에서 역설적일 수 있지만, 그만큼 중요한 맥락적 배경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대량 실업의 네 가지 잠재적 선행 조건에서 PWO의 설계 특징을 추론할 수 있다. 이러한 조직은 가능한 한 많은 남은 업무를 자동화하고(기술적 전제), 개별 일자리에서 소득을 분리하고 노동자를 자발적인 파트타임으로 참여시키며(경제적 전제), 사회적으로 유용한 일자리의 공평한 분배를 지원하고(사회학적 전제), 직장 민주주의와 자치를 활용한다(정치적 전제). 이러한 PWO의 구성 요소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각 선례를 더 자세히 살펴보겠다.

현재 존재하는 네 가지 힘

첫째, 기술적 전제

일상적인 수작업은 오랫동안 기계화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러나 1세대 컴퓨터화가 일상적인 정신적 업무를 대체하기 시작한 이후,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은 자동화가 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숙련된 직업을 포함해 비일상적인 수작업과 비일상적인 정신적 업무도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는 일자리 전체뿐만 아니라 일자리의 일부에도 영향을 미치며 역할의 수행적 구성과 그에 따른 소득을 재구성하고 있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실업이 이러한 추세의 필연적인 귀결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보상' 또는 '증강' 원칙을 인용한다. 보상 원칙에 따르면 기술 실업은 결국 경제의 새로운 일자리에 의해 보상된다는 것이다. 비용 절감은 투자 증가와 성장을 촉진해 추가 일자리를 창출하며, 종종 더 높은 기술 프리미엄을 동반한다. 생산 비용 감소와 효율성 향상은 가격 하락으로 이어져 소비자 수요와 더 많은 노동력을 창출하게 된다. 게임 산업처럼 새로운 제품과 산업이 뒤따를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숙련도가 향상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증강 원칙'은 항공 조종사나 플라이 바이 와이어(fly-by-wire, 조종사가 기계적인 연결 없이 전자 신호를 통해 비행기를 제어하는 방식) 같은 첨단 기술 역량이 새로운 일자리와 기존 일자리를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실업에 대한 두려움은 비합리적이며, 직원들은 결국 AI 인프라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하는 '오퍼레이터 4.0'(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작업 환경과 역할이 변화한 인간 작업자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재교육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기술 낙관주의적 접근 방식은 비판을 받아왔다. 에릭 브린욜프슨(Eric Brynjolfsson)과 앤드류 맥아피(Andrew McAfee, 2014)에 따르면, 무어의 법칙(Moore's Law)에 따라 AI가 인간의 인지 및 수동 활동을 더욱 저렴하게 대체하는 능력이 기하급수적으로 가속화되면서 '제2의 기계 시대'는 많은 직업을 파괴할 것이라고 한다. 브린욜프슨과 맥아피는 '보상 원칙'으로도 이러한 영향을 완화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자동화의 주요 발전은 특히 가격 비탄력적인 상품 및 서비스와 관련된 직종에서 이러한 현상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예를 들어, 기계화를 통해 인공 조명의 단가를 낮춰도 소비 수준이 정체되면 수요가 증가하지 않는다.

유급 고용이 사라진다면 인류는 어떻게 될까? 일부는 자본주의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더욱 극단적으로 악화되는 ‘헝거 게임’ 같은 시나리오를 상상한다. 피터 프레이즈(Peter Frase)에 따르면, 실업자들은 “노동력을 착취당하기보다는 인구가 수용소에 갇혀 있는 수감자와 더 비슷해 보일 것이다.” 일종의 자동화된 봉건주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분석가들은 해방의 기회가 있다고 제안한다. 만약 노동 없는 미래가 온다면 자유 시간의 확대, 사회 정치적 자유 및 공동체의 복지 증진을 위한 바람직하고 진보적인 발전으로 전환될 수 있을까?

둘째, 경제적 전제

기술과 맞물려 있는 것은 노동력 수요 감소에 대한 경제 전망이다. 이 선행 연구는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기술이 경제 활동과 제도를 어떻게 재편할 수 있는지에 관한 것으로, 여기서 한계 비용 분석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경제 평론가 폴 메이슨(Paul Mason)은 수천 년 동안 노동을 생존과 연결된 필수 요소로 만들어온 고질적인 ‘경제 문제’가 대부분 해결되었다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의 주장에 동의한다. OECD 국가들의 번영은 희소성 이후의 사회(모든 사람이 필요한 것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나타낸다. 이는 인터넷 시대에 상품과 서비스가 생산되는 방식에도 적용되며, 그중 상당수는 한계 비용과 추가 노동 없이 자동으로 생산된다는 것이다. 메이슨에 따르면, 현대 자본주의의 완고한 제도만이 우리가 이 희소성 이후의 사회를 완전히 실현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이 글의 두 번째 하위 주제는 노동 수요의 감소에 관한 것으로, 이는 경제에서의 노동 참여율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이 문제는 곧 다시 다루겠다. 20세기 동안 1인당 평균 노동 시간은 꾸준히 감소했다(적어도 1980년대 중반까지는). 그러나 아론 베나나브(Aaron Benanav)가 최근 입증한 것처럼 자동화는 그 배경에 일부분만 영향을 미쳤다. 1970년대 자본주의의 대규모 변화도 중요한 동인이었다. 서구 경제에서 제조업 생산량 증가율이 감소함에 따라 육체 노동은 신흥 서비스 부문으로 대체되고 국제화가 이루어졌다. 이른바 '신경제'는 제조업에 비해 생산성 엔진이 취약하여 이전보다 훨씬 적은 수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그쳤다. 이른바 디지털 혁명에도 불구하고 고도 성장의 황금기는 끝났다. 로버트 솔로(Robert Solow)의 유명한 말처럼, 생산성 통계를 제외한 모든 곳에서 컴퓨터 시대를 볼 수 있다.

디지털 서비스 경제가 새로운 일자리를 충분히 창출하지 못하는 것은 국민소득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떨어지고 노동자의 협상력이 약화된 것(즉, 탈노조화)과도 관련이 있다. 여기에 우수한 업무 시스템(기술 포함)의 놀라운 효율성 향상과 코로나19의 장기적인 여진이 고용률에 미치는 영향을 더하면, 가용 일자리와 일할 준비가 된 인구 간의 불일치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베나나브의 주장만큼 높지 않은 현재의 실업률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선, 정부의 실업률 통계는 질병 등으로 인해 일을 할 수 없거나 훈련 중이거나 구직 활동을 포기한 사람들을 누락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이들을 포함하면 공식 실업률은 보통 두 배가 된다. 또한, 우리는 오늘날 선진국 경제의 고질적인 불완전 고용도 고려해야 한다. 노동시장 모델링에 따르면 보수가 좋은 일자리는 소수의 고강도 노동자에게 집중되어 만성적인 과로로 이어지고 있다. 나머지 일자리는 특히 시간제 및 온디맨드 고용 시스템이 특징인 대중에게 고르게 분산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노동 참여율이 1960년대 후반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OECD 발표가 잘못된 이유이다.

경제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원인은 알바나 아즈마노바(Albena Azmanova, 2020)가 현대 자본주의의 두 가지 모순으로 설명한 정치경제의 특징 때문이다. 세계 경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국가들은 공공 서비스나 비경제적 지원을 줄이고,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일에 더 의존하게 되었다. 이는 여가 시간과 자동화로 인해 일의 가치가 낮아지는 것과 동시에,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돈벌이로 연결되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아즈마노바는 이를 '잉여 고용 가능성'이라고 부른다. 현대 자본주의의 이러한 반대 현상은 '일자리 의존성'이라는 두 번째 문제를 동반하며, 이는 일자리는 줄어드는데 생계는 일에 더욱 의존하게 되는 긴장을 초래한다.

셋째, 사회학적 전제

이러한 기술 및 경제 트렌드를 더욱 강화하는 것은 사회적 변화다. 이는 노동 시장에서 불필요한 일자리가 늘어나고, 정규직 일자리가 생존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것이라는 인식이 퍼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경제적으로 모든 사람이 일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에서는 일자리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다. 이는 마치 옛날에 생존을 위해 수렵과 채집이 필수적이었던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생계가 아니라 사회적 정당성과 현금 의존도가 우리가 여전히 일을 많이 하는 주된 이유이다. 유급 고용을 통해 얻는 정당성은 노동 행위에 성과적 측면을 불어넣었다. 생산적인 존재와 생산적으로 보이는 것이 오늘날 고용 부문에서 두 가지 논리로 분리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스웨덴의 조직 이론가 롤란드 파울센(Roland Paulsen)은 이를 '공허한 노동'이라고 부른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정규직 직원들은 일하는 척 컴퓨터 앞에 앉아 있지만 실제로는 거의 일을 하지 않고 근무 시간을 채우기 위해 애쓰고 있다. 과잉 고용(고용된 사람이 너무 많음)과 과소 고용(앞서 언급한 대로 일자리가 너무 적음)은 현대 노동 시장에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Graeber)는 산업화 이후의 경제는 사회경제적 가치가 거의 또는 전혀 없는 직업으로 가득 차 있다고 주장한다. 헛된 직업은 "고용 조건의 일부로서 직원조차도 그 존재를 정당화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무의미하거나 불필요하거나 악의적인 유료 고용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은 이것이 사실이 아닌 척해야 할 의무를 느낀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로비스트, 금융 분석가, 텔레마케터, 도어맨, 대학 간부 등이 포함된다. 최근의 설문조사는 이러한 주장에 신빙성을 더한다. 예를 들어, 미국 전문가 12,0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50%가 자신의 직업에 의미나 사회적 중요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노동자의 37%는 자신의 직업이 무의미하다고 느꼈다고 답했다. 무의미한 일자리는 '일의 이데올로기'의 부산물이며, 그레이버는 실물 경제 측면에서 노동 수요가 감소하면 이는 매우 비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레이버의 주장은 과장된 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사회적 가치에 대한 질문은 중요한 문제이다.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많은 일자리가 최저임금 노동자들(예: 간병인, 간호사, 청소부 등)에게 몰리기 때문에, 중요한 일자리의 상당수가 경제적 가치를 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대신 가사, 육아, 노인 돌봄, 지역 사회 봉사 등 비공식 경제에 속해 있다. 유급 노동과 무급 노동 사이의 이러한 긴장은 오랫동안 공식 고용의 틀을 만들어 왔으며 근본적인 성별 편견을 반영한다. 고전 경제학자 아서 피구(Arthur Pigou)는 자신의 아내를 예로 들어, 가정부를 고용했을 때는 공식 고용 통계에 긍정적으로 반영되지만, 결혼해서 아내가 같은 일을 하게 되면 그 수치가 갑자기 감소하는 현상을 지적했다. 이는 많은 여성의 노동이 이런 식으로 '보이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관찰은 (고용 없는 사회에서도 여전히 필요한) 노동과 헛된 일을 구분하기 때문에 PWO를 개념화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요소이다.

넷째, 정치적 전제

신자유주의는 정치와 경제를 표면적으로 분리하는 전략을 완성했고, 그 과정에서 유급 노동을 크게 사유화했다. 이로 인해 고용은 이제 개별 고용주와 직원 간의 개인적인 문제가 되어 공적 대화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상당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자동화에 대한 두려움, 불안정한 일자리의 확산, 글로벌 금융 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의 지속적 영향(팬데믹 이후 발생한 '대규모 퇴사' 포함)으로 인해 유급 고용이 다시 정치화되고 있다. 즉, 노동이 불가피한 것인지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성차별, 기후변화, 인종차별 등과 같은 주제와 함께 공적인 정치 담론으로 들어왔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일의 신화를 단번에 무너뜨렸다. 적어도 부유한 국가에서는 위기 기간 동안 많은 일자리가 중단되었고, 이로 인해 대규모 정부 부양책과 보조금 제도가 마련되었다. 유급 고용 제도는 생물학적 필요성에 전혀 뿌리를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것은 특정한 권력 관계를 반영하는 규율 의식이었다. 경제적 희소성 역시 언제든 중단될 수 있는 조작된 조건이었다.

이러한 재정치화는 두 가지 우려를 가진다. 첫 번째는 유급 노동이 여전히 현대 사회를 긍정적인 방식으로 통합하고 있는지 여부이다. 실제로 오늘날의 노동은 결속을 촉진하기보다는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사회적 이탈을 조장할 가능성이 높다. 노동 사회학자 앙드레 고르(Andre Gorz, 1989)가 적절하게 표현한 것처럼 "일의 사회는 쓸모없을 뿐 아니라 일이 더 이상 사회 통합의 기반이 될 수 없다."

두 번째 관심사는 유급 고용이 개인과 사회의 복지에 도움이 되는지에 관한 것이다. 실업에 대한 연구는 전통적으로 유급 근로가 신체적, 정신적 건강 혜택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을 정당화해 왔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효과를 가져오는 것은 일 그 자체가 아니라 일에 수반되는 사회적 미덕의 신호라고 한다. 예를 들어, 클레멘스 헤츠코(Clemens Hetschko), 안드레아스 크나베(Andreas Knabe), 로니 쉡(Ronnie Schöb, 2014)은 실직자의 우울증 발병률이 더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는 은퇴 연령에 도달할 때까지만 해당되었다. 그 이후에는 발병률이 급격히 감소했다. 연구진은 실업자에서 연금 수급자로 재분류되면서 실업자라는 낙인이 사라졌기 때문에 이러한 갑작스러운 변화가 일어났다고 결론지었다.

이 입장에 대한 비판자들은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제로 일을 좋아하고, 일하지 않으면 생활이 궁핍해질 것이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늘어나는 증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2023년 갤럽(Gallup)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직원의 23%만이 업무에 몰입하고 있으며 60%는 '조용히 그만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업무는 종종 불안(Arne Kalleberg, 2018)과 장기적인 스트레스(Sarah Jaffe, 2021)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불안정하고 비정규직적인 업무는 정신 건강 장애의 증가와 관련이 있으며(Yves Caroli and Mathilde Godard, 2014), 사무직은 고혈압, 비만, 심장병의 주요 원인이다(Ulf Ekelund et al, 2016).

유급 고용의 재정치화는 현대 직장 안팎에서 노동자들의 요구를 재구성하고 있다. 하루 8시간 노동를 위한 싸움에서 승리한 20세기 노동조합 운동은 주로 일자리와 임금을 지키는 '일할 권리' 정치에 의해 주도되었다. 노동 시간을 줄이려는 노력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이제 흐름이 바뀌고 있다. 희소성 이후의 사회에서 새로운 '반노동' 운동이 나타나고 있다. Reddit의 'r/antiwork' 포럼(사람들이 일과 관련된 불만, 노동에 대한 회의적 관점, 그리고 노동에 대한 반대 의견을 나누는 온라인 커뮤니티로 노동 시간 단축, 일과 삶의 균형, 그리고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논의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포럼의 슬로건은 '부자들만이 아닌 모두를 위한 실업'이며 수백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직장은 당신의 삶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틱톡(TikTok)의 '조용히 그만두기' 밈도 비슷한 인기를 끌고 있다. 이 밈은 중국의 대규모 '#탕핑' 캠페인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이후 중국 정부에 의해 억제되었다. 어쨌든 유급 고용이 정치적으로 정당성을 잃어가면서, 기존의 '일할 권리' 이슈는 새로운 노동 거부 운동에 가려지고 있다.

'탈노동 조직'의 개념화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주당 노동 시간을 줄이자는 주장이 점점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에는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 상원의원이 미국 의회에서 주당 노동 시간을 32시간(급여 삭감 없이)으로 줄이자는 제안을 했다. 의회도 여러 성공적인 실험을 바탕으로 이 아이디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일과 삶의 균형이 더 좋아지더라도, 유급 고용이 여전히 중심에 있기 때문에 노동 시간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탈노동 사회는 유급 고용을 크게 줄이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남은 일자리를 공평하게 나누고 조직화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나는 이러한 맥락에서 '탈노동 조직'(Post-Work Organization, PWO)이라는 개념이 유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논의한 실직의 사례를 통해 그 구체적인 제도적 특징을 이해할 수 있다.

PWO의 기본 전제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조직은 남은 업무를 가능한 한 많이 자동화하고(기술적 전제), 소득과 역할을 분리해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파트타임을 선택하고(경제적 전제), 사회적으로 유용한 업무의 공평한 분배를 지원하고(사회학적 전제), 직장 민주주의와 자치를 활용해야 한다(정치적 전제). 각 기능을 차례로 살펴보겠다.

PWO의 기술적 특징

PWO는 딥러닝, 머신러닝, 로봇 자동화, 정밀 시간 알고리즘 등 노동력을 줄일 수 있는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많은 수작업 및 인지적 비표준 작업은 '제2의 물결' 디지털 기술로 수행할 수 있으며, 컴퓨터 과학의 성배인 '일반 지능 작업'(general intelligence tasks)을 포함하는 '제3의 물결'은 그보다 더 많은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폴 메이슨의 말처럼, "자동화 경제로의 빠른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을 줄이는 방향으로 기술을 활용한다면 [...] 노동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고, 기본 재화와 공공 서비스는 무료이며, 경제 관리는 주로 자본과 노동이 아닌 에너지와 자원의 문제가 될 것이다." 해방 가능성은 상당할 것이다.

자동화의 해방적 잠재력을 활용하기 위해 PWO는 세 가지 방법으로 첨단 디지털화를 인간 노동을 최소화하는 과정으로 만든다. 첫 번째는 관찰 노동이다. 이 업무는 디지털 제품군 기술을 감독하고 모니터링한다. 이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교육, 전문 지식 및 기술이 필요하며, 노동자들은 기술을 감독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두 번째는 증강 노동이다. 여기에는 데이터 입력, 코딩 및 합성 계산 설계와 관련하여 기계와 작업하는 것이 수반된다. 사회적 노동이 세 번째이다. 일부 PWO는 동료, 사용자, 고객 등과의 인간적인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이러한 사회적 노동은 산업과 부문에 따라 완전 증강 또는 반증강이 될 수 있다.

PWO의 경제적 특징

신고전파 노동 시장 모델은 일자리와 노동 공급 사이의 균형을 전제로 하며, 자연적 실업과 비자연적 실업을 허용 가능한 한도 내에서 고려한다. 따라서 소득은 희소성 조건에서 기술 수요의 파생물이다. 그러나 극단적인 실업 상황에서는 노동(또는 노력)과 보상(또는 소득)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 UBI)이 혁신적인 해결책으로 논의되고 있지만, 소득과 노동의 분리는 이미 신자유주의 노동 시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CEO 보수가 급증하는 현상은 더 많은 노력이나 책임을 반영한다고 볼 수 없다. 또한 저소득층을 위한 소득 보조금과 세금 감면도 성과와 보상의 명목상 1대1 관계를 왜곡한다.

지금까지 노동과 소득의 분리는 주로 특권층에게 유리하게 작용해 왔다. 하지만 PWO는 이러한 흐름을 바꿀 것이다. 노동자는 고정된 업무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 개선을 위한 공동 작업에 의미 있는 참여를 하고, 그에 대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두 가지 큰 변화가 필요하다. 첫째, 비시장 중심의 보상 시스템이 조직의 인센티브 구조에 통합될 것이다. PWO는 여전히 기술과 책임을 명확히 나누어 분업이 이루어지지만, 보상 비율은 UBI 이상의 책임을 반영하되 불공정하지 않게 설정될 것이다. 둘째, 노동이 더 이상 경제적 필요에 의해 강제되지 않으므로, PWO에 참여하는 것은 자발적일 것이다. 셋째, 업무는 더 이상 개인에게 얽매이지 않고 비개인화될 것이다. 공식적인 고용은 이제 삶의 전부가 아니라, 삶의 일부분이 되어, 고용 이후의 사회를 유지하는 역할만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참여하도록 하는 동기이다.

PWO의 사회학적 특징

사회학적 연구에 따르면, 불필요한 일의 인식이 높아지면서 과잉 고용과 무의미한 일자리가 늘어났다. 그러나 PWO는 일을 상징적인 목적으로 보지 않고, 탈노동 사회를 지원하는 실용적인 수단으로만 취급하는 공간을 대표할 것이다. 이는 인간의 관심이 정말 필요한 업무와 역할을 재평가하는 기회를 제공하며, 의미 있는 일을 구분하는 것이 주요 목표가 된다. 이 아이디어는 영국의 사회주의 운동가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에게서 시작되었다. 그는 깊이 분업화된 일과 추상적인 화폐 경제에 갇혀 있는 생산적인 임금 노동이 사실은 비생산적이고 낭비적이라고 주장했다. 모리스는 산업화로 인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조차 무시된다고 보았다. 반면, 사회적으로 유용한 일은 에너지를 덜 소모하므로 더 효율적이다. 우리는 이제 무의미한 노동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정말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이 프로젝트에는 노동의 탈상품화가 필요하다. 신고전주의 경제 이론에 기반한 노동 시장은 일을 단지 교환 가치와 금전적 가격이 붙은 '미미한 유용성'으로 정의하며, 이를 부정적인 개념으로 본다. 사용 가치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가 사회적 효용이나 정의보다 수요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시장에서 덜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실제로는 여러 문제가 고착화되었다. 페미니스트의 비판에서 알 수 있듯이, 유급 고용이 중요한 무급 노동을 희생시키면서 특권을 누리고 있다. 또한, 간호, 교육, 청소, 사회복지 등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유급 노동은 사모펀드 매니저, 기업 변호사, 무기 제조업체와 같은 쓸모없거나 해롭다고 여겨지는 직업에 비해 훨씬 낮은 보상을 받고 있다. 과잉 생산된 헛된 일자리와 더 많은 일을 찾으려는 긱 워커(gig worker)의 과소 생산이 공존하고 있으며, 만성적인 과로가 세대 간 실업과 함께 증가하고 있다.

PWO는 사회 전반에 걸쳐 노동을 평등하게 분배해 대다수의 업무 부담을 줄여주는 다른 할당 메커니즘을 필요로 한다. (보수가 많든 적든) 헛된 일자리는 재정적으로 평가절하될 것이다. 고용은 효과적으로 탈취되고 자발적으로 할당될 수 있다. 이는 완전 고용을 지향하는 사회에서는 달성하기 어렵지만, 탈노동 시나리오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추가적인 설계 기능들이 결과적으로 PWO의 특징이 될 것이다. 우선, 노동 시간이 최소화되기 때문에 파트타임 노동과 직업적 미니멀리즘이 다시 등장하며, 개인이 일과 '삶'을 분리하도록 장려하는 PWO의 중요한 특징이 될 것이다. 고용은 더 이상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지 않게 된다. 마지막으로, 롤란드 파울센(Roland Paulsen)이 말하는 과잉 생산의 증상인 '빈 노동'(empty labor)은 PWO에서 사라지고, '풀 노동'(full labor), 즉 자발적으로 수행되는 짧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노동으로 대체될 것이다.

PWO의 정치적 특징

PWO의 정치적 함의는 인력을 조정하는 내부 거버넌스 구조에서 비롯된다. 여기서 핵심은 자유다. 현재 유급 고용 제도는 자유롭지 않다는 점에서 노동의 역사적 맥락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노동 시간을 시장 가격에 팔며, 원치 않는 일을 해야만 한다. 이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에서 말하는 '개인의 자유'와는 거리가 멀다. 대부분의 조직은 고용된 노동자에 대해 막강한 권한을 가진 '사적 정부'처럼 기능하며, 직원들은 동의하거나 퇴사할 수밖에 없다.

PWO는 이러한 기존 방식을 탈피할 것이다. 이제 노동이 자발적이고 시간제이며 강압적이지 않게 운영되기 때문에, 일을 인간적으로 만드는 대안적 거버넌스 모델이 필요하다. 리처드 울프(Richard Wolff, 2012)는 이를 자발적으로 선택되고 자기 주도적이며, 개인적·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노동으로 정의하며, 외부의 위협이나 처벌 없이 이루어지는 노동이라고 설명한다.

이와 관련된 두 가지 PWO의 추가 설계 특징이 있다. 첫째, 하향식 관리 구조는 비상근, 탈상품화, 자발적 환경에서는 적합하지 않다. 대신, 참여적 자치(예: 어셈블리나 협의회를 통한 공동 결정)가 PWO에 더 적합하며, 이는 다양한 전문성과 경험, 책임을 반영한다. 비록 전체적인 시간 투입은 최소화되더라도, 산업 민주주의는 개인에게 인센티브를 주고 더 큰 목적 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어떤 형태의 관리 장치는 필요할 것이다. 진정한 참여를 위해, 나는 아들러(Adler)와 보리스(Borys, 1996)가 제안한 '관료제 활성화' 개념이 적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개인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조직의 학습을 촉진하는 행정 명령을 통해 PWO의 비강압적인 분위기와 잘 맞는다.

결론: PWO와 자본주의의 정치 경제학

이제 서로 얽혀 있는 두 가지 큰 '만약'에 대해 알아보겠다. 첫째, 현재와 같이 일의 이데올로기가 확고하게 유지되고 유급 고용 제도가 계속 헤게모니를 유지한다면 어떻게 될까? 완전 고용이라는 사회경제적 이상이 그 유용성을 다했다는 분명한 지표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긴장감 때문에 탈노동에 대한 사고는 종종 설명(있는 것)과 처방(있어야 할 것) 사이에서 진동한다. 우리가 규범적인 프로젝트를 다루고 있는지, 아니면 전개되는 추세에 대한 냉정한 분석을 다루고 있는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두 번째 가정은 유급 고용이 급격히 위축된다고 가정해 보자. PWO는 분명히 반자본주의적 조직이다. 비록 부분적일지라도 이를 실제로 실현하려면 자본주의의 광범위한 정치 경제가 크게 변화해야만 가능할 것이다. 여기에는 정부, 다국적 기업, 금융 시장,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현대인의 삶과 노동에 대한 우리 자신의 태도가 크게 재조정되는 것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탈노동 속 바람직한 미래, 즉 PWO의 활용이 필요하다면 다른 방식의 국정 운영이 필요할 것이다. 현대 통화 이론은 그럴듯한 대안을 제시하며 국가가 탈노동 시나리오로 재정적으로 방향을 전환할 수 있다.

앞으로 몇 년 동안 훨씬 적은 노동력이 필요하지만, 기업은 여전히 유급 고용에 대한 공격적인 의지를 고수하고 있다. 기업의 힘은 금융 시장, 부의 네트워크, 재산법, 국제 차익거래(노동 시장 관련)에 의해 강화되고 있다. 따라서 서구 경제에서 수십 년에 걸친 민영화를 뒤집고 진보적인 탈기업화 시나리오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탈기업화 과정이 필수적이다. 대기업을 움직이는 '사람보다 이윤이 우선'이라는 합리성과는 달리, PWO는 일 이외의 영역에서 계단식 성장을 장려하는 커뮤니티 기업처럼 기능할 것이다.

노동 시장은 국가와 기업 부문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이미 신고전주의 경제 모델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른바 자유 노동 시장은 실제로는 '자유롭지도' '규제되지도' 않으며, 국가 기관, 기업, 국제 거버넌스 기관에 의해 철저히 관리되고 있다. 이러한 시장이 불안정성, 불평등, 그리고 국민 소득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의 하락을 어떻게 촉진해 왔는지를 감안할 때, 노동 시장의 개혁은 매우 중요하다. 다행히도, 탈노동 사회에서는 이러한 과제가 덜 어려울 것이다. 완전 고용을 지향하는 국가 사회주의와는 달리, 노동 조정 메커니즘은 고용 이후의 맥락에서 지금과 같은 방대한 기계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고립된 임금 노동자 간의 무자비한 경쟁을 전제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접근 방식과 달리 노동자를 계획, 훈련하고 일자리에 매칭하는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과 같이 보다 인간 친화적인 노동 할당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또 다른 변수는 공개적인 노동자의 이의 제기이다. 우리는 모두 일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불평하고 불만을 토로한다. 하지만 일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진정으로 탈노동 사회에 대한 열망이 있을까? 탈노동 사회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내가 제안한 많은 것을 실행하는 데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탈노동 사회는 착취 노동에 의존하지 않는 대안적인 소비 패턴을 요구할 것이다. 생태학 및 '포스트 성장' 연구에서도 주장하는 바와 같이 전체적으로 소비를 줄여야 할 것이다. 전 세계적인 소비 패턴이 요구될 것이며,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PWO의 구체적인 실현 가능성을 논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큰 가정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유급 고용으로부터 크게 해방된 삶을 계획하지 않는 한, 많은 사람들이 일할 권리와 일로부터의 자유를 모두 박탈당한 불안정성, 빈곤, 엄청난 불평등에 시달리는 사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현존하는 경향에서 파생된 탈노동 조직에 대한 간략한 스케치는 우리가 다가올 무서운 디스토피아로 몽유병에 걸리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는 유토피아적 제안이다.

[출처] Labour in a Post-Work Society: How Should It Be Organized?

[번역] 이꽃맘

덧붙이는 말

피터 플레밍(Peter Fleming)은 여러 권의 책을 저술한 작가이다. <노동의 신화>(2015, 플루토 북스), <슈가 대디 자본주의(Sugar Daddy Capitalism): 새로운 경제의 어두운 면>(2019, 폴리티 북스) 및 <다크 아카데미아(Dark Academia): 대학은 어떻게 죽는가>(2021, 플루토 북스) 등이 있다. 그의 새 책 <자본주의와 허무>는 2025년에 블룸즈버리(Bloomsbury)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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