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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조기는 왜 드는 거죠?” 미국 사람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기이한 행보다.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의 모습이 그렇다. 빨간 모자를 눌러쓴 이들은 “Stop the steal(도둑질을 멈춰라)”이라는 문구의 손피켓을 든다. 그들의 세계관에선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결단으로 읽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리짜이밍”이라고 부르며 제1야당의 배후에는 중국이 있다고 여긴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정권교체는 ‘공산당에 나라를 빼앗기는 일’이 된다. 1월 20일이 되기만을 기다리는 이유다. 트럼프가 대통령직에 오르면 윤석열을 구원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2025년 초, 한남동은 무법지대였다. 특정인에 대해 욕설을 퍼부을 수 있는지가 같은 편인지 아닌지를 나누는 기준이었다. 그 과정에서 폭력이 발생하고 분신 시도까지 벌어졌다. ‘내란의 우두머리’ 윤석열이 민주적 사법 시스템을 무력화시키며 벌어진 일들이다. 그는 체포되는 그 순간까지 ‘부정선거’, ‘주권 침탈’을 주장했다. 그렇게 한국 사회는 다시 가짜뉴스 전쟁터가 되고 말았다. 극우 유튜버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여야 정치권의 모습이 얼마나 다른지 의문이 드는 요즘이다.
가짜뉴스 단속? 가짜뉴스 양성소!
국민의힘 ‘진짜뉴스 발굴단’은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윤석열 탄핵을 늦추기 위해 우향우 행보를 보이는 자당의 모습 그대로 “이재명 대표가 논란과 갈등의 중심”, “(한덕수 총리를 탄핵한 야당이) 내란”이라고 말한다. 윤석열이 저지른 내란의 책임을 야당에 떠넘기기에 여념이 없다.
최근 국힘은 민주노총에 의해 고발당했다. 지난 4일, 한남동 관저 앞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폭력을 행사해 경찰이 의식불명에 빠졌다는 허위 정보를 유포했기 때문이다. 국힘은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관련 글이 올라오자 <민주노총 공권력 유린에 ‘뒷짐’…경찰 폭행 사건은 ‘쉬쉬’> 보도자료를 통해 사건을 확대재생산 하는 데 앞장섰다. 언론에 의해 거짓말로 드러나면서 홈페이지에서 해당 보도자료는 삭제됐다. 하지만 국힘 차원의 사과는 없었다. 공세도 멈추지 않았다. 국힘은 “해당 경찰이 깨어났더라도 뇌진탕의 후유증이 우려된다”며 구속수사를 촉구했다. 그 시각, 경찰은 연행된 민주노총 조합원이 폭행을 행사했다는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국힘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이미 ‘살인미수’ 범죄자가 돼 있었다.
국힘 ‘진짜뉴스 발굴단’은 극우 집회 참가자들과 코드를 맞추기 위해 반중 정서를 부추기고 있다. 이재명 대표가 외신기자단과 가진 비공개 간담회는 타깃이 됐다. 이들은 <이 시국에 중국 정보수집기관 ‘신화통신’ 포함 비밀회동? 이재명 대표 제정신인가?> 보도자료를 통해 “중국 신화통신은 중국 관영매체로 사실상 첩보기관”이며 “중국 특파원들은 중국 공산당과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한 “만남을 주선한 인물이 동아일보 모 부국장”이라며 그를 ‘정치 브로커’라고 몰아세웠다. 동아일보가 내란과 국힘에 대해 비판적인 논조로 보도하자 그에 대한 분풀이에 가깝다.
실제 이날 간담회에는 뉴욕타임스와 BBC 등 주요 외신 17곳 소속 기자들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국힘 지도부도 참여했던 행사였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신화통신’만을 콕 집어 음모론을 내비친 것이다. 외신기자들이 “취재를 위축시키는 행위”라고 이례적으로 반발한 까닭이다.
이 같은 사실 관계가 명확해졌지만, 국힘은 꿈쩍하지 않았다. 오히려 두 차례의 입장을 더 발표해 “정언중 삼각 커넥션”이라느니 “민주당과 친중 세력의 유착 의혹이 짙다”고 주장했다. 국힘 ‘진짜뉴스 발굴단’에 대해 ‘가짜뉴스 발굴단’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민주파출소? 언제까지 처벌만!
더불어민주당의 행보도 아쉽긴 마찬가지다. 더불어민주당은 12·3 내란 이후 허위 조작 정보 제보 플랫폼 ‘민주파출소’를 띄웠다. 그리고 그 후속으로 극우 성향의 유튜브 채널 <신의한수>(신혜식)를 비롯해 <신남성연대>(배인규), <공병호TV>(공병호), <그라운드씨>(김성원), <김채환의 시사이다>(김채환), <김상진tv>(김상진) 운영진을 내란선전죄 혐의로 고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전용기 의원(국민소통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카카오톡을 통해 내란 선전과 관련된 가짜뉴스를 퍼 나르는 것은 충분히 내란 선전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며 “단순히 퍼 나르는 일반인도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국힘에서는 이를 ‘카톡 검열’이라고 받았다. 한국 사회에서 ‘카톡 검열’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2014년 박근혜 정부 시절, 여론 통제를 위해 수사기관을 동원해 무차별적으로 감행했던 카카오톡 검열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의 행보에 ‘카톡 검열’이라는 프레임은 적절하지 않다. 하지만 공당으로서 맞는 처신인가를 생각하면 물음표가 붙는다.
민주당 내에서는 내란과 관련한 허위 정보 유포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도였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이 국회의 역할인가. 국회는 입법기관이다. 극우 유튜브 중심으로 내란 선동이 이뤄지고 있다면 그것이 가능한 구조를 살피고 법·제도적으로 이를 견인할 방안을 찾는 게 본연의 책무다.
민주파출소 운영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12·3 내란과 윤석열의 선동으로 한국 사회는 어느 때보다 양극단으로 갈라져 있다. 정치인은 이런 때일수록 사회 통합을 위한 행보를 보여야 한다. 하지만 민주파출소는 그 반대의 행보다. 특히, 부정선거를 믿는 일반 시민들까지 악마화하는 점은 문제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사회 통합’의 메시지를 내는 사람이 눈에 띄지 않는다. ‘카톡 검열’ 논란이 제기되자, 이재명 대표 입에서 나오는 첫 마디는 “카톡이 성역이냐”는 말이었다. ‘의심하는 것까지 차단하는 것은 문제’라는 기자들의 정당한 질문에 양문석 의원은 “수준을 높여라”며 엄한 데에 화풀이 중이다. 전용기 의원 또한 “의원직을 내려놓는 한이 있더라도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말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정치의 사법화를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나. 답답한 노릇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소속 의원들이 받은 제보를 검증 없이 유포해 논란을 빚는 일도 잦다. 김어준 씨를 민의의 전당에 세운 게 누구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이미 제3의 장소에 도피해 있다”는 안규백 의원의 발언도 도마 위에 올랐다. 오마이뉴스와 동아일보에서 관저에 머무르고 있는 윤석열의 사진을 공개하며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윤석열 도피설’로 온종일 시끄러웠다.
가짜뉴스 입에 올릴 자격 있나
정치권의 이런 모습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국힘은 과거 자당에 “편향적”이라는 이유로 팩트체크 관련 사업을 망가뜨린 전력이 있다. 시민들의 미디어리터러시 능력을 높여 허위 정보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운영됐던 팩트체크넷은 문을 닫았다. 네이버가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를 통해 운영됐던 ‘SNU팩트체크’ 서비스 또한 종료됐다. 국힘 스스로 허위 정보를 문제 삼을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그러면서 하는 일이라는 건 ‘진짜뉴스 발굴단’이라니. 더불어민주당의 행보 또한 문재인 정부 시절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무리하게 추진했던 과거를 떠올리게 하긴 마찬가지다. 민주파출소 운영의 기본 인식이 그때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에게 ‘가짜뉴스’란 무엇인가. 무엇이 가짜뉴스이고 또 누가 만들고 있나. 헌정질서가 무너진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 복원에 앞장서야 할 정치집단이 본인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허위 정보를 유포하는 데 앞장서거나 가짜뉴스를 동원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렇다면, 정치권에 말해야 한다. 이제 ‘가짜뉴스 프레임’을 놓아 달라!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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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택은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