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를 위한 미국 파시즘 삽화 가이드⟫
수 코(Sue Coe) & 스티븐 F. 아이젠먼(Stephen F. Eisenman) 지음
OR 북스, 2025년. 200쪽
전설적인 예술가이자 판화가인 수 코의 어둡지만 아름다운 그림과 삽화를 담은 새로운 작품집의 제목은 거의 희극적으로 도발적이며, 숨김없는 직접적인 문장 구조로 우리가 처한 현실을 정확히 보여준다. 젊은이를 위한 미국 파시즘 삽화 가이드는 겉보기에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가이드"지만, 정작 어른들이 파시즘을 가르치는 일은커녕 저항하는 역할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시대에 등장했다. 이 책의 교육적 솔직함, 온화한 보충 학습, 그리고 우아한 선동에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이 책에는 오랫동안 수 코와 협업해 온 스티븐 F. 아이젠만의 서문과 해설 에세이가 실려 있다. 그는 노스웨스턴 대학교 미술사 명예교수이고 <카운터펀치>(CounterPunch)의 미술 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로서, 어둡지만 정직한 시선을 견지하며 강력한 변증법적 논리를 펼친다.
아이젠만의 분석은 내가 최근 읽은 파시즘과 반파시즘 관련 서적들 가운데 가장 명확하고, 관대하며, 진솔하다. 그는 자유주의자부터 아나키스트, 그리고 이른바 보수주의자까지 다양한 시각을 가진 논평가들—제프 샤를렛, 페데리코 핀첼슈타인, 티모시 스나이더, 제이슨 스탠리, 마크 브레이, 마리아 레사, 파리스 마르크스, 엘리 미스탈, 조안 브라운, 헤더 콕스 리처드슨, 빌 크리스톨, 마샤 게센—의 연구와 비교해도 탁월하다. 물론 이들 모두 파시즘에 반대하지만, 최근까지도 역사학자, 정치학자, 평론가들 중에서 코와 아이젠만만큼 기꺼이 파시즘의 코를 한 방 먹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 학문적 분야—혹은 지뢰밭—의 많은 전문가들은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에 "파시즘"이라는 단어를 적용하는 문제에 대해 우물쭈물하며 머뭇거렸다. 저명한 지식인들은 그 용어를 사용해야 할지, 사용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경고하거나 고민했다. 공정하게 보자면, 그들의 주저함, 혹은 역사적 뉘앙스를 고려하려는 태도는 10년 전에는 합리적이고 시민적인 제스처(혹은 특권의 어리석은 행사)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마치 헛간 문이 열린 사이에 빠져나간 것이 말인지 소인지 논쟁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프린스턴 대학의 사회학자 킴 레인 셰펠레(Kim Lane Scheppele)는 파시즘이 "이념"을 의미하는 반면, "권위주의"는 "실천"을 의미하므로, 공화당-트럼피즘 프로그램이나 트럼프 자신을 묘사하는 데는 후자가 더 적절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만약 독자가 이 논쟁을 따라왔다면, 이미 점잖은 표현, 옅은 차처럼 희미한 동의어, 완곡어법, 또는 임시 대체어 목록을 만들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독재자(autocrat), 강한 지도자(strongman), 선동가(demagogue), 민족주의자(nationalist), 극우 민족주의자(ultranationalist), 백인 기독교 민족주의자(white Christian nationalist), 극우파(far-rightist), 권위주의자(authoritarian)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헛간에서 나온 말이든 소든, 이름이 무엇이든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이제 스티븐 F. 아이젠만이 등장한다. 그는 이전에도 수 코와 함께 작은 책들을 출간해온 협력자로서, 이번에는 사고 실험을 제안한다—혹은, 젊은 독자들을 위한 책이므로 시민 교육 숙제를 내준다. 반파시스트(그리고 이른바 "조기 반파시스트"(premature anti-fascist, 2차 세계대전 이전, 혹은 미국이 공식적으로 나치 독일과 전쟁을 벌이기 전부터 파시즘에 반대했던 사람들을 가리키는 표현))로서 이 글을 읽는 나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질문을 만난다.
"이 책을 읽기 전에, 가족이나 친구들과 민주주의가 당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야기해보는 것이 좋다. 파시즘은 민주주의의 죽음을 의미하지만, 첫 번째 개념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두 번째 개념을 이해할 수 없다."
민주주의의 상실이 이제 파시즘을 정의하는 한 요소가 되었다는 이 단순한 두 문장은, 최근 들어 많은 이들의 필독 목록에 오른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1946년 에세이 <정치와 영어>(Politics and the English Language)의 한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당신이 파시즘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어떻게 파시즘과 싸울 수 있는가? 이런 터무니없는 논리에 빠질 필요는 없지만, 현재의 정치적 혼란이 언어의 부패와 연결되어 있으며, 언어를 바로잡는 것이 어느 정도 개선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은 인식해야 한다."
아이젠만은 시각 예술가인 코를 소개하면서 이 질문을 변형하여 던진다. "당신이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모른다면, 어떻게 민주주의를 위해 싸울 수 있는가?“
아이젠만의 에세이에는 더 많은 논점들이 있지만, 이 책은 40년간의 삽화 경력을 바탕으로 탄생한 그림책이다. 수 코는 브뤼겔(Bruegel), 고야(Goya), 오노레 도미에(Honoré Daumier), 독일 표현주의(German Expressionism), 케테 콜비츠(Käthe Kollwitz), 존 하트필드(John Heartfield) 같은 전통을 포용하고 이를 발전시키는 천재적인 예술가다. 이러한 전통을 알고 있다면 그의 그림과 리노컷 작품이 지닌 탁월한 논리와 강렬한 시적 표현을 더욱 깊이 감상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안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겠지만.
책 표지를 장식한 그림은 "무리 속에서"(The In Crowd)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젊은 미국인의 사회적 미시 세계에서 ‘원형적 파시즘’(protofascism)을 묘사한다. 전경에는 과장된 풍자의 기법으로 묘사된 학교 운동장의 불량배들이 공모하듯 모여 ‘우리나라의 숭배 대상’인 권총을 바라보고 있다. 반면, 다른 한 무리는—아마도 "아웃" 그룹일—이 위협을 인지하며 폭력을 예감하고 있다.
그 배경에 있는 아이들은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그들은 취약한 존재들로, 희생당하고 있으며, 배타적인 폭력적 무리에 의해 소외되고 있다. 휠체어를 탄 아이, 안경을 쓰고 평화의 비둘기 그림이 있는 티셔츠를 입은 아이, ‘역사’라는 제목의 책을 든 아이가 보인다. 또한, "아웃" 그룹은 민족적으로도 "다른" 존재로 표시되어 있다. 한 아이는 야물카(yarmulke, 유대인 전통 모자)를 쓰고 있으며, 또 다른 아이는 아시아계 외모를 하고 있다.
이 작은 갈색 셔츠 무리는 학교 건물이나 동네 블록 근처에서 무기를 경외하는 듯 서 있다. 장면은 단순하면서도 예술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단순함과 예술성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어쩌면 심지어 파시스트조차 이 그림을 보고 무언가를 깨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젊은 독자는 이를 쉽게 이해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이 지금의 민주주의 모습이다.
이후의 페이지에서는 "파시스트를 만드는 과정"이라는 제목의 이중화(diptych, 두 개의 대칭적 작품)가 등장한다. 한쪽에는 "자본(Capital)"이 "파시즘(Fascism)"이라는 죽음의 아버지(death-daddy) 형상을 떠받치고 있으며, 그 옆에는 "사기(Fraud)", "폭력(Violence)", "공포(Terror)"라고 적힌 인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젊은이를 위한 미국 파시즘 삽화 가이드⟫는 거의 100개의 이미지가 담긴 수 코의 그림책이지만, 스티븐 F. 아이젠만의 에세이 또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는 "이 책을 사용하는 방법", "예술을 위한 예술 vs. 정치적 예술", "정치적 사상가로서의 예술가" 등의 글을 통해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안내한다. "정치적 예술 vs. '표현적' 예술—그리고 예술의 종말"에서 아이젠만은 자신의 사고 실험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코의] 예술은 착취당하고 학대받는 이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국가가 승인한 폭력을 규탄하는데, 그 폭력은 미군이 자행하든 극우 정치인들이 조장한 개인이 자행하든 마찬가지다. 그의 예술은 자연의 물리적 존재를 찬미하고, 이를 파괴하는 기업을 공격한다. 다양한 인간 문화, 젠더, 성 정체성을 포용하며, 인간과 동물이 함께 토지와 자원을 공유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러한 상호성, 풍요, 지속 가능성을 바탕으로 한 체제를 우리는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예술은, 파시즘이 승리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그 전망이 흐려지거나 파괴될 것이다."
코의 냉철하고 아름다운 작품 속에서 민주주의를 묘사한 장면을 찾으려 한다면, 굳이 아이젠만의 설명이 없어도 마치 포토 네거티브(photonegative, 반전된 사진)처럼 어두운 진단서 혹은 현재 상태 보고서를 접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코는 단순히 절망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저항과 연대, 증언, 집단적 반대, 상호부조를 민주주의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의 일부로 통합한다.
그의 그림 속에는 "아이들을 보호하라, 총이 아니라(Protect Children Not Guns)"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든 시위대가 있다. "파시즘과 싸우라(Fight Fascism)"라는 깃발 아래에서 맞잡은 흑인과 백인의 손이 있다. "공감(Empathy)"이라는 제목의 사라져가는 모래시계 주위에 함께 모여 있는 아이들과 동물들이 있다. "민주주의(Democracy)"라는 이름이 붙은 여성 형상이 "희망(hope)"의 새를 날려 보내는 모습도 있다.
이 책에 담긴 이미지들은 스스로 충분한 의미를 전달하지만, 아이젠만의 에세이는 우리가 단순히 그것들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들을 시민적 소양, 자기 성찰, 역사적 분석의 실천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그의 글은 우리가 이 파시즘의 순간 속에서—그리고 어쩌면 그 너머에서—자신과 민주주의를 바라볼 수 있는 방식을 제시한다.
나는 수 코의 작품에서 큰 기쁨과 용기를 발견한다. 이는 미술 비평가 존 버거(John Berger)가 그의 1972년 기념비적 저서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에서 남긴 다음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보는 것은 말보다 먼저 온다. [...] 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세상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규정한다. 우리는 그 세계를 말로 설명하지만, 말이 그 세계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없앨 수는 없다. 우리가 보는 것과 우리가 아는 것의 관계는 결코 고정되지 않는다.“
아이젠만은 수 코의 그림을 분석하며, 포토 네거티브 공간(photonegative space)—즉, 우리가 알고 있거나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반대로 조명하는 방식—의 힘에 주목한다. 아이젠만과 코, 그리고 오웰과 버거 모두는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결함이야말로 파시즘이 침투하는 균열임을 직시하라고 촉구한다.
코의 작품 속 어둠을 바라보는 것은, 그것과 정반대되는 것을 명확히 상상하고, 그것을 위해 싸울 수 있도록 만든다. 그의 강렬한 그림 속에는 빛이 거의 없다. 그러나 조명(illumination)은 충분하다.
[출처 ]This Is What Democracy Looks Like!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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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톤코비치(Andrew Tonkovich)는 <Santa Monica Review>의 편집장이며, <Citric Acid: An Online Orange County Literary Arts Quarterly of Imagination and Reimagination>의 창립 편집자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