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주] 국내 첫 여성 의제 정치 파업이었던 2024 3‧8 여성파업에 이어 오는 3월에 열릴 2025 3‧8 여성파업까지, 한국에도 가부장적 자본주의 철폐를 외치며 실제 현장 파업으로 세상을 멈춰 세운 여성/성소수자 노동자들이 있다. 그리고 이 노동자들의 곁에는 2030 학생과 청년들도 있었다. 말벌, 응원봉, 퇴진 광장을 통해 비로소 여러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지만 사실 계엄 전부터 투쟁의 광장에 서 있던 2030 청년학생 여성과 성소수자들. 총 네 편의 해당 기고 기사들에서는 2025 3‧8 여성파업 학생참가단의 2030 여성과 성소수자들이 어째서 내 삶을 변혁할 진정한 ‘광장’으로 여성파업을 택했는지 말하고, 제안한다.
[연재 순서]
1. 광장의 여성과 성소수자가 모두 해방될 세계, 여성파업으로 찾자
2. 광장 이전에 ‘길을 여는’ 여성 노동자들이 있었다
3. 2030 청년학생의 ‘다음 광장’은 어째서 여성파업인가
4. 윤석열이 끝나도 성차별은 끝나지 않으니까, 여성파업으로 모이자
현 광장의 투쟁과 광장 이전 투쟁에는 공통점이 있다
12월 3일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발령한 이후, 현재까지 광장에서는 윤석열의 내란 행위를 규탄하는 집회가 진행되고 있다. 12월 3일부터 지금까지, 퇴진 광장은 다양한 계층과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시작되었고 또 진행되어왔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다양한 집단 사이에서의 주요 주역이 2030 청년 여성과 성소수자라는 것이다. 이는 현재의 광장이 윤석열 탄핵과 구속을 넘어 성 차별적이며 가부장적 한국 자본주의 사회의 변혁을 요구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변혁의 요구는 ‘광장’ 이전에도 존재하였다. 그 주체는 바로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퇴진 광장이 열리기 전 저마다 공장 위에서, 거리 위에서 싸우던 여성 노동자들은 광장의 개문(開門)과 함께 자연스레 너른 광장으로 흘러 들어왔다. 여성 노동자들이 거리 위 투쟁에서 요구해 온 것은 지금 ‘말벌 동지’나 ‘응원봉 연대’로 불리우는 2030 청년 여성과 성소수자들의 요구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성 노동자들이 내건 요구들은 언제나 자신에게 가해지는 구조적 억압과 가부장적 자본주의에서 일어나는 착취에 저항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째서 거리로 나오게 되었을까? 어째서 말의 끝과 앞에 ‘투쟁’이라고 외쳐야만 하게 되었을까? 오늘날 2030 청년 여성‧성소수자의 모습 속에서 조금씩 움트기 시작한 투사의 본성을 여성 노동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광장의 2030 청년 여성과 성소수자가 더 잘 싸우려면. 지금 더 잘 싸우기 위해 과거의 투쟁들을 비추어 보려면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특히 현재 정세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의 박정혜, 소현숙 여성 노동자와 A 학교 부당해임사안 지혜복 여성 노동자의 투쟁에 대해 좀 더 말해보고자 한다.
출처 : 비주류사진관
광장 ‘이전’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박정혜, 소현숙 동지와 지혜복 동지를 통해
박정혜, 소현숙 동지의 투쟁은 2022년 10월 4일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 화재 사건에서 시작되었다. 22년 10월 4일 밤, 갑작스러운 화재로 공장이 불탄 이후 공장의 노동자들은 하룻밤 사이에 일터를 잃었다. 누군가에게는 몇십 년을 일했던 말 그대로의 평생직장, 누군가에게는 두 번의 희망퇴직을 겪고도 회사의 부름 한 번에 다시 달려와 일할 만큼 사랑했던 직장이었다. 같은 물량에, 같은 작업에, 심지어 유니폼까지 똑같이 입는 쌍둥이 공장인 한국니토옵티칼을 두고도 회사는 ‘법인이 다르다’며 고용승계를 할 수 없다는 답답한 이야기만 했다. 법인이 다르다는 건 핑계였고, 고용 승계라는 선례를 남길까 봐 두려운 게 본심이었다. 노동자들은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옵티칼하이테크지회의 노동자들은 일터로 돌아가기 위해 일본의 니토텐코 원청, 그리고 한국의 옵티칼하이테크와 맞서 싸웠다. 단지 언젠가 회사가 약속했던 것처럼, 희망퇴직 이후 회사의 요청으로 다시 일하러 온 노동자들에게 ‘이제 회사가 어렵다고 나가라는 일은 없을 거다’고 신신당부했던 것처럼 일터로 돌아가게 해달라는 것뿐인데도 싸움은 길어야 했고, 끈질겨야 했고, 때로 고통스러워야 했다. 그래도 옵티칼하이테크지회의 노동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옵티칼하이테크지회의 박정혜, 소현숙 두 여성 노동자는 끝내 승리하기 위해 2024년 1월 8일 고공에 올랐다. 기사가 작성되고 있는 2025년 2월 12일을 기준으로는 무려 401일, 1년하고도 한참 넘는 시간 동안 두 여성 노동자는 춥고 더운 공장 위 천막을 굳건히 지켰다. 작년 2월 3일 있었던 2024 여성파업 2차 오픈마이크에서 박정혜 동지는 “여성파업은 성차별과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는 멈춤이라고 들었다”며 “저에게 여성파업은 간악한 일본자본 닛토덴코에 맞서 싸우는 저의 투쟁과도 맞닿아 있다. 여성들이 남성과 동등한 존재로 여겨지지 않는 것도 (저에게는) 마찬가지다. 자본은 노동자를 자신들과 동등한 존재로 보지 않고, 노동자가 일해서 번 이윤으로 6조 넘게 벌고도 노동자의 노동과 고용승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어 같은 발언에서 여성 노동자에 대한 생산라인 참여 제한, 호봉 제한 등 옵티칼하이테크 공장에서 벌어졌던 여러 성차별을 전하기도 했다.
지혜복 동지의 투쟁은 A 학교에서 남학생들이 여학생을 대상으로 2년간(2023년 5월 기준) 성폭력을 가한 사건에서 시작됐다. A 학교의 사회 교과 교사였던 지혜복 동지는 해당 피해 사실을 알게 된 후 학교 측에 진상 조사와 올바른 대처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가 발생하였고 학교 측은 사실상 이를 묵인하였다. 지혜복 동지는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 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상급단체는 학교에 입장 표명, 성교육 연수 등의 5개 사안을 권고하였다. 하지만 학교는 이 권고 사안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심지어 ‘명랑운동회’를 개최하여 남학생과 여학생들의 사이를 좋게 한다는 궤변을 늘어놓기까지 했다. 그렇게 사건이 흐지부지 끝나려 함과 거의 동시에 갑자기 학교는 지혜복 동지의 전보 결정을 내렸다. 학교 측은 사건과 관련이 없는 전보 결정이라 하였으나, 사회과 교사인 지혜복 동지를 역사과 교사가 부족한 학교에 보내겠다는 둥 학교가 내놓은 전보의 근거들은 죄다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피해 학생, 학부모 등등 A학교 사안을 둘러싼 모두가 보복성 전보라 판단했다. 지혜복 동지는 이에 맞서 1인시위를 2024년 1월부터 1인시위를 진행해 왔다. 지혜복 동지는 엄연한 공익제보자였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지혜복 동지가 전보된 학교로 출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임했다.
장장 일 년 동안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견디며 서울특별시 교육청 앞을 지켜온 지혜복 동지는 이제 반성폭력, 구조적 성평등 건설을 원하는 2030 청년 여성들의 영웅이 되었다. 그런 지혜복 동지 역시 2025 3.8 여성파업 조직위원회의 일원이다. 지난 2월 8일 프레시안 기고문을 통해 “학교는 성차별, 성폭력을 지속·재생산하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주입 및 재생산 통로다. A학교 성폭력 사안 해결과정은 이를 여실히 드러냈다. 학생, 교사의 인권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교사노동자로서 저의 생존권과 노동권이 박탈당했다”고 말했다. 또 “사회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결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성폭력의 상황은 계속 재생산될 수밖에 없다. 윤석열이 수감된 후에도 여성들은 매일 같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떨어져 죽고 칼에 찔려 목숨을 잃고 있다. 그래서 성폭력을 구조적으로 근절하기 위해서는 여성 노동자를 비롯한 노동자들이 나서서 여성폭력을 용인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바꿔야만 한다”고 잇기도 했다. 여전히 A학교 안에 존재하는 피해자 여학생들을 위해,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에 의해 희생되고 있는 여성과 성소수자들을 위해 지혜복 동지는 “노동자가 단결해 가부장제와 결탁한 자본주의 체제에 책임을” 묻자고 외쳤다.
왜 ‘여성 노동자’의 투쟁이 중요한가?
광장 이전 여러 여성 노동자의 투쟁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로 인해 구조적 성차별과 자본주의 착취 메커니즘 두 가지에 동시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는 여성과 노동자가 서로 다른 정체성으로서 외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히려 여성 - 노동자야말로 이 두 가지 억압의 중심에 있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를 변혁할 진정한 주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광장에는 자본주의적 착취와 여성 차별적 사회를 변혁하자는 요구가 조금씩 스며 나오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중요한 것은 체제에 대항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이 적극 조직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구조적 성차별 철폐의 꿈을 현실로 만들 3‧8여성 파업을 함께 준비하자. 여성 노동자들의 손으로 세상을 바꾸는 3‧8 여성 파업은 광장 ‘이전’의 여성 노동자들과 함께, 2030 청년학생들이 광장 ‘이후’ 어떤 세계를 살아나갈지 결정하는 첫 싸움이 될 것이다. 2030 여성과 청년학생, 성소수자가 나서 여성파업에 함께하자.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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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연현은 성공회대학교 노학연대모임 '가시'에서 활동하고 있다. <2025 3‧8 여성파업 학생참가단>은 단국대학교 비정규노동자와 함께하는 학생모임 새벽, 학생사회주의자연대, 행동하는인하인권연대, 성공회대학교 노학연대모임 가시, 비정규직없는서울대만들기공동행동, 행동하는 이화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