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살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운이 좋게도 지금까지 24년이라는 시간을 서로 사랑하고 돌보며 함께 살아오고 있습니다"
"법적으로 배우자나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서로의 보호자나 가족임을 증명해야 하는 자리에서는 번번이 좌절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간다면 앞으로 다가오게 될 죽음의 순간에서도 우리는 서로의 장례조차 치를 수 없게 됩니다."
14일 오전 헌법재판소 앞, ‘혼인평등 헌법소원’ 기자회견이 열렸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가 공동주최한 이날 기자회견은 서울북부지방법원의 동성결혼 불인정 위헌법률신판제청신청 기각에 따른 헌법소원심판 제기를 알리는 자리였다.
지난해 10월, 11쌍의 동성부부는 전국 6개 법원에 혼인평등소송을 제기했다. 11건의 혼인신고불수리처분에 불복신청을 제기하는 동시에, 합리적인 사유 없이 동성혼을 배제하는 현행 민법이 기본권 침해 및 위헌이라는 취지로 11건의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것이다.
이후 올해 1월, 서울북부지방법원(재판부 박형순 법원장)은 해당 법원에 제기된 청구인 4인(천정남과 류경상 부부, 김은재와 최수현 부부)의 두 사건에 대해 각하 및 기각 결정을 내렸다. 청구인단은 “재판부가 불복신청 후 3개월 남짓한 시점에 기일 진행도 없이 사건을 각하함으로 인해, 자신의 삶을 걸고 절박하게 관계의 인정을 구한 당사자들이 법 앞에 말할 기회조차 박탈당했다”고 유감을 표했다.
청구인단은 “5개 법원에서 계속 중인 9쌍의 동성 부부 사건에 대해 실질적인 심리와 정의로운 판단을 요구”하며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 현행 민법의 위헌성을 확인하는 헌법소원을 청구한다고 밝혔다.
"헌법이 요구한다, 혼인평등". 참세상
기자회견에는 헌법소원 청구인 당사자들이 참여하여 “동성부부와 성소수자의 평등권과 혼인의 자유”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우리 헌법의 가치를 실현하는 판단을 내릴 것”을 촉구했다.
천정남 헌법소원 청구인은 “성정체성이 남들과 다르다는 걸 깨달은 이후 나의 20대는 불행”했으나 “31살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운이 좋게도 지금까지 24년이라는 시간을 서로 사랑하고 돌보며 함께 살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천정남 씨는 ”살아오면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주어진 의무를 충실히 수행해 왔으며 나아가 공동체의 화합과 발전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며 “하지만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누구나 당연하게 누길 수 있는 권리인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법적으로 배우자나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서로의 보호자나 가족임을 증명해야 하는 자리에서는 번번이 좌절하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앞으로 다가오게 될 죽음의 순간에서도 우리는 서로의 장례조차 치를 수 없게 된다”고 호소했다.
천 청구인은 “진정한 민주주의는 어느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차별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엄연히 존재하지만,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성소수자 부부들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간곡히 바란다”고 마음을 전했다.
조숙현 혼인평등소송 대리인단장은 ”이 소송은 성소수자의 혼인권을 보장받기 위한 것이지만, 과거 동성동본금혼제, 호주제, 부성승계강제주의 등과 같이 우리 가족법에 남아 있는 차별적인 제도를 개선하고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짚었다.
또한 “현재 동성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국가는 39개국에 이르고 이중 아시아 국가도 대만, 네팔에 이어 최근 태국까지 3개국에 이를 정도로 동성혼 법제화는 국제적으로 보편화되는 추세”라 강조하며, “동성혼 불인정은 인권의 문제뿐 아니라 한국의 국제적 위상, 경제적 경쟁력, 글로벌 인재 유치 능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회적, 경제적 이슈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동성결혼 불인정은 위헌이다". 참세상
이날 현장에는 혼인평등을 지지하는 각계의 연대도 이어졌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엽합 상임대표는 “누구와 사랑을 나누고 가족을 꾸려 자신의 삶을 영위해나갈지 결정하는 것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 시민 개인들의 몫이고 그를 보장하고 지원할 책임은 국가에 있다”고 짚었다. 이어서 “이것은 여성운동이 호주제 폐지 운동을 통해서 이루고자 했던, 그리고 마침내 얻어낸 헌법적 가치와 다르지 않다”면서 “합리적인 사유 없이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법과 제도를 통해 혼인과 가족생활에서의 개인의 존엄과 평등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동성부부들의 기본권 쟁취를 위한 싸움에 연대한다”고 이야기했다.
윤복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은 ”극우세력이 준동하고 소수자에 대한 전방위적인 차별이 만연한 요즘”이라며 “이럴 때일수록 헌법재판소는 인권과 민주주의의 후퇴를 바로잡을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윤복남 회장은 “오늘 제기하는 동성혼 불인정 헌법소원이 그 한 걸음이 될 것으로, 헌재는 충실한 심리를 통해 우리 헌법의 평등 원칙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려주시기 바란다. 민변도 우리나라에 혼인평등이 도래할 그날을 기다리며 끝까지 연대하겠다” 밝혔다.
장박가람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캠페인본부장도 “동성 부부의 혼인평등권을 보장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인권과 민주주의 발전에 있어 중대한 시험대”라며 “성소수자 인권과 혼인 평등권이 ‘사회적 합의의 대상’으로 치주되어 온 현실에서, 입법부와 행정부가 인권 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결과로 수많은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헌법 앞에서 권리를 다투게 된 현실을 사법부가 무겁게 빨아들이기 바란다”고 말했다.
장박가람 본부장은 또한 “헌재가 공정하고 인권 원칙에 기반한 결정을 내릴 것을 촉구하며”, “계속해서 전 세계와 한국에서의 성소수자 권리 증진을 위해, 특히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과 혼인평등의 실현을 위해 함께 싸우겠다”고 힘 주어 말했다.
청구인단은 기자회견 후 혼인평등 헌법소원심판 청구서를,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을 촉구하는 성소수자 시민들의 의견서와 함께 헌법재판소에 직접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