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삶이 두려워 선택하는 오늘의 죽음은, 사람과 생명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국가가 만들어낸 비극이자 재난이다."
서울 송파구 반지하 방에서 살아가던 세 모녀가 세상을 떠난 지 11년이 흘렀다. 세 모녀는 유서와 함께, 월세・공과금 70만 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유서에는 "죄송합니다. 마지막 월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25일 국회 앞, 세 모녀의 삶과 죽음을 기억하는 이들이 모여들었다. 쪽방촌 주민, 장애인, 전세사기 피해자 등 사회적 안전망 바깥에서 생존의 위기를 맨몸으로 마주하는 시민들은 "가난은 죄송할 일이 아니다. 가난한 이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함께 외쳤다. 이들은 송파 세 모녀의 죽음 이후에도 빈곤과 차별로 인한 죽음들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부양의무자 기준 등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개선을 촉구했다.
송파 세 모녀 11주기 추모제에서 헌화하는 시민들. 참세상
25일 오후 국회 앞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농성장에서 '송파 세 모녀 11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조계종사회노동위원회, 장애인과가난한이들의3대적폐폐지공동행동,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주최한 이날 추모제에는 많은 시민들이 함께 자리했다.
참여 시민들은 "한국은 전체 인구 중 약 15%, 노인 인구 중 약 40%가 빈곤을 경험하고, 소득 상위 10%와 하위 10%의 격차가 2억 원에 달하는 빈곤과 불평등이 심각한 나라"로, "가난한 이들, 장애가 있는 이들과 그 가족들이 내일의 삶이 두려워 선택하는 오늘의 죽음은 사람과 생명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국가가 만들어낸 비극이자 재난"이라고 짚었다. 이들은 "송파 세 모녀의 죽음에는 다양한 사회정책이 부재하거나 작동하지 않았음이 드러난다. 빈곤은 노동권, 주거권, 건강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누구나 갑작스럽게 또는 천천히 닥칠 수 있는 위험"으로, "빈곤층의 죽음을 멈추기 위해선 복지정책과 함께 노동과 주거, 사회서비스와 의료와 같은 사회정책의 전반적인 변화가 동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희주 홈리스야학 학생회장 발언 영상. 참세상
은희주 홈리스야학 학생회장은 이날 추모제 발언에서 "송파 세 모녀의 죽음은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가난한 이들에게 얼마나 가혹한지를 드러내는 사건"이었다면서, "그들이 떠난 지 11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은 제도라는 장벽 앞에서 외면당한 채 버티다 결국 생을 포기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은희주 학생회장 본인도 "가족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아버지의 소득이 500원 초과한다는 이유로 수급을 받을 수 없었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가구 분리뿐이었다"고 밝혔다.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고시원으로 이사가면서 간신히 부양의무자 기준을 통과했으나, 수급자가 됐다고 해서 삶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었다"고도 전했다.
그는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보편적 권리가 되어야 한다. 가난을 증명해야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어야 한다"면서 "송파 세 모녀의 삶과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는 계속해서 싸워야 한다. 다시는 누구도 같은 이유로 생을 포기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함께 연대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차재설 동자동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교육홍보 이사는 "쪽방촌에서 현실적인 기초 생계비 인상만큼보다 중요한 것은 주거 문제 해결"이나, "2021년 2월 정부에서 발표한 동자동 공공주택 사업 계획은 4년이 지나도록 민간 개발을 해야 한다는 토지 건물주들의 반대로 전혀 진전이 없다"고 규탄했다. 차재설 이사는 "4년 동안 111명의 주민이 돌아가셨다"면서 "우리가 한 명이라도 더 살아 있을 때 하루라도 집 같은 집에서 살 수 있도록 조속히 동자동 공공주택 사업을 추진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빈곤을 만드는 세상을 끝내자". 참세상
안상미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해결을 위한 전국 피해자 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도 발언에 나섰다. 그는 "전세 사기 피해는 누구나 다 당할 수 있는 거였고 피해자들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여러 가지 말도 되지 않는 논리로 피해자들을 갈라치기 하고 시민들이 피해자들을 이상하게 생각하도록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 정부를 보면서 참 어이가 없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안상미 위원장은 "정부가 행하는 복지가 무엇인가. 가진 자들의 세금을 깎아주는 일에는 더할 나위 없이 앞장을 서는 반면, 피해자들에게는 돈이 없다 근거가 없다, 당신들이 당한 사기를 어떻게 국가가 책임지냐는 식의 논리로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고도 비판하면서 "복지라는 문제가 흔히 생각하는 '소수자'들에게 국한되지 않더라. 시민이 없는 정부는 없다. 이 나라의 시민이, 어려운 사람이 일부라고 생각하지 말라"고도 덧붙였다.
최영은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서울지부 회원은 "한국 사회는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과 장애인들을 자꾸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아파도 병원비가 부담스러워 병원에 못 가는 현실을 정부는 과연 알고 있는가" 규탄했다. "그런데 작년에, 의료급여 수급권자들이 병원을 자주 이용해 의료 대란이 일어나고 있다는 헛소리를 선전하며 의료 급여 받는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서 탓하면서, 의료급여를 정액제에서 정률제로 바꾸려고 했다"고 비판했다.
최영은 회원은 "의료 대란을 일으키는 것은 윤석열 내란 범죄자 아닌가. 가난한 사람들과 장애인들은 아파도 병원비가 비싸 병원 가기 꺼려한다.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하려면 의료급여 수급권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송파 세 모녀처럼 가난한 사람들이 극단적으로 죽음으로 내몰지 않게 국가가 직접 책임을 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추모제 참여자들은 "의료급여 정률제 개악을 시도하는 등 각종 부자 감세의 책임을 복지 축소로 빈곤층에게 떠넘긴" 윤석열 정부와 여당에게, 그리고 그들과 함께 '종부세 금투세와 같은 부자 감세를 추진하고 상속세 개악에 나서고 있는" 민주당에게도 빈곤과 불평등에 대한 책임이 있다면서 보편적 권리로서 기초생활보장제도를 개선하고 "이윤이 아니라 사람과 생명을 우선하는 사회로의 변화"가 절실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