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자주] 2024년 11월 1일, 세르비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노비사드에서 5,500만 유로를 들여 새롭게 리모델링한 철도역의 지붕이 붕괴되어 15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망 사건은 2000년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된 이후, 세르비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학생 주도 반정부 시위를 촉발시켰다. 11월 말 학생들의 시위를 시작으로 12월 22일 베오그라드의 슬라비야 광장에 10만 명 이상이 모이는 시위를 벌였다. 새해에도 이어진 시위는 1월 28일 밀로스 부세비치 총리와 밀란 두리치 노비사드 시장의 사임에도 전국적인 총파업 궐기 등의 상황을 맞이했다.
2014년 총리, 2017년 대통령에 취임한 알렉산드르 부치치 집권 이후, 세르비아는 권위주의적 통치와 광범위한 부패가 증가했다. 세르비아 사람들은 역사 지붕 붕괴 사고가 정부의 부패로 인해 발생했다고 믿고 있다. 무너진 역사는 중국 주도 컨소시엄이 세르비아와 관계 강화 일환으로 개보수한 것이다. 시위대의 요구는 다음과 같다. 세르비아 철도 인프라, 세르비아 국가, 중국 철도 국제 유한회사, 중국 통신 건설 회사가 수행한 노비사드 기차역 개보수와 관련된 모든 내부 문서를 공개하는 것. 다른 요구 사항은 캐노피 붕괴 이후 시위를 벌여온 체포 및 구금된 학생과 젊은 시위대에 대한 모든 혐의 기각, 학생과 교수 공격에 대한 형사 고발 및 책임자 기소, 세르비아의 공립 고등 교육 기관에 대한 예산 배정을 20% 늘려 재료비를 충당할 것 등이다.
2025년 3월 현재, 세르비아의 전국적인 시위는 계속되고 있으며 대통령과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참고 자료] The conversation, Jacobin, BRAVE NEW EUROPE
"너희 손에 피가 묻었다." 세르비아에서 학생 시위는 2024년 11월부터 계속되고 있다. 사진: 다르코 보이노비치(Darko Vojinovic) / 알라미(Alamy). 출처: the conversation
현재 세르비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위기는, 그 규모나 참여 인원의 결연한 태도를 고려할 때, 세르비아 정치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 중 하나다. 그러나 통치 관점에서 보면, 이는 19세기 초반 세르비아가 독립 공국과 왕국으로 다시 등장한 이후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 문제의 연장선일 뿐이다. 세르비아는 아르헨티나,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V. S. 나이폴(V. S. Naipaul)이 표현한 바 있는 ‘순환적 역사’를 가진 나라다. 즉, 다른 인물들이 등장할 뿐 같은 사건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의미다. (러시아의 순환적 역사에 대해서는 이전 글에서 다뤘다.) 실제로 1825년과 1925년의 세르비아는 오늘날과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통치되었다. 즉, 권위주의적인 지도자가 준(準)민주적 또는 자문 기구를 활용해 부패를 정치적 지지 기반 확보 수단으로 삼는 후견주의적(clientelistic) 체제를 운영해 왔다. 여기에는 두 가지 핵심 요소가 있다. 바로 권위주의적 통치와 광범위한 부패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번 학생 주도의 시위는 대규모 부패와 부실한 공공사업으로 인해 지난해 11월 15명이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사법적 책임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전적으로 정당하다. 그리고 사실, 이 운동이 대학생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시위가 대중적으로 확산하면서 도시 부르주아 계층뿐만 아니라 일부 농민과 노동조합까지 참여하게 되자 문제가 발생했다.
이 운동은 초반부터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즉, 어떤 정치 단체나 정당과도 연계하지 않고 기존 대표제 시스템 바깥에서 활동해야 한다는 전략을 택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부치치(알렉산다르 부치치, Aleksandar Vučić) 정권을 싫어하긴 해도, 그는 여전히 모든 선거에서 과반 또는 최다 득표를 기록하고 있다.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부치치는 61%의 득표율로 가장 가까운 경쟁자를 18%포인트 차이로 따돌렸고, 2023년 총선에서도 그의 정당이 48%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반면, 야당은 이념적 차이와 끊임없는 내부 갈등으로 분열되어 있다. 즉, 부치치 정권에 대한 강한 반감이 존재하지만, 기존 야당들 역시 신뢰받지 못하고 있어 정치적으로 표출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과거 집권 경험이 있는 야당들 역시 후견주의적 시스템을 운영하며 부패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점도 중요한 요인이다. 결국, 다당제 시스템이 붕괴했고, 전체 유권자의 최소 40%가 자신을 대변할 정치 세력을 갖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실제로 최근 두 차례 선거에서 투표율은 60%를 밑돌았다.
Students in Serbia are leading a massive protest movement against corruption.
— European Greens (@europeangreens) March 18, 2025
Europe should not remain silent on Vučić's violence and repression
We fully support the peaceful protests and their demands. pic.twitter.com/V9XsgUHTbO
"2025년 3월 15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알렉산다르 부치치 대통령과 밀로스 부세비치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며 30만 명의 시위대가 모였다. 이 시위에서 세르비아 군경이 평화 시위대를 향해 군용 '음향대포'를 발사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운동은 ‘반(反)정치’ 전략을 택했다. 즉, 정당의 깃발과 상징 사용을 금지하고, EU 깃발(세르비아에서 인기가 낮음) 등의 외국 국기 사용도 금지했다. 또한 공식적인 조직 체계를 만들지 않았다. 이들은 3개월째 교육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있으며, 학생들은 대학을 점거하고, 고등학생들은 전국을 돌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위의 다음 단계에 대한 결정은 학생들의 ‘총회(plenum)’와 직접 투표로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실제 투표 방식이나 결과가 만장일치인지에 대한 정보는 없다. 이들은 공식 명칭조차 없이 익명의 성명서를 발표하는 방식으로 소통하며, 마치 ‘올림포스 신전’에서 내려온 듯한 권위적 어조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운동을 지지하는 지식인들은 정당에 얽매이지 않는 ‘직접 민주주의’ 개념을 제안했으며,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과 야니스 바루파키스(Yanis Varoufakis) 같은 철학자와 평론가들은 이러한 반정치적 성격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정치의 틀 밖에서 움직이는 전략이 운동의 성공 요인이었을지언정, 이것이 실제 정치 영역으로 번역될 경우 근본적으로 불안정한 요소가 된다. 조직적인 지도부조차 없는 현재의 모호한 대중 운동은 정부나 부치치 대통령과 직접 협상할 도구가 전혀 없다. 또한 이 운동은 지나치게 비밀주의적이어서 폴란드의 '솔리다르노시치(Solidarność, 연대노조)'보다 크메르루주(Khmer Rouge, 캄보디아 극단주의 공산주의 세력)를 연상시킨다. 솔리다르노시치는 즉각 지도부를 구성하고 정부와 협상에 나섰다.
운동이 정치 조직으로 변모하지 않기로 한 결정은 축복이자 저주다.
축복인 이유는 이렇게 해야만 운동이 지속될 수 있다. 저주인 이유는 명확한 정치적 언어로 요구 사항을 정리할 수 없으며, 정치 체제를 개혁하거나 변화시킬 수도 없다.
만약 운동이 정치 세력으로 변화하려면, 현재의 비가시적인 조직 형태를 벗어나 계층적 구조를 갖춘 조직으로 변해야 하며, 공식적인 지도부를 세워야 한다. 그러나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단 한 명의 지도자도 등장하지 않았다. 또한 운동이 정치권으로 들어서면, 내부에 극우 민족주의자부터 녹색당, 사회민주주의자, 친유럽 자유주의자까지 광범위한 이념적 스펙트럼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며, 결국 이질적인 연합체는 붕괴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 운동은 계속해서 끝이 없는 ‘반정치’ 전략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는 것은 불가능하며, 부치치 정권은 더욱 억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 결국 공개적인 독재 체제로 전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정확히 1929년과 같은 과정이다. 당시 알렉산다르 1세 국왕은 모든 정치 활동을 금지하고 개인 독재를 선언했다.
이처럼 대중적이지만 비정치적인 운동은 궁극적으로 두 가지 결과 중 하나를 초래한다.
독재 혹은 혼란.
그러나 혼란 상태가 지속될 수는 없기에, 결국 독재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이 운동이 사회적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1968년 학생운동이 사회적 가치관을 변화시킨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단기적으로 보자면, 이 운동의 정치적 결과는 그들이 애초에 원했던 것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출처] The break-down of the representative system and the road to dictatorship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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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랑코 밀라노비치(Branko Milanovic)는 경제학자로 불평등과 경제정의 문제를 연구한다. 룩셈부르크 소득연구센터(LIS)의 선임 학자이며 뉴욕시립대학교(CUNY) 대학원의 객원석좌교수다. 세계은행(World Bank) 연구소 수석 경제학자로 활동한 바 있으며, 메릴랜드대학과 존스홉킨스대학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