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제도들, 특히 대학은 전통적으로 독재자의 명령 앞에서 싸우지 않고 무릎 꿇는다. 지금의 대학들도 예외가 아니다.
폭력적 승인(Stomp of Approval - by Mr. Fish)
나는 컬럼비아대학교의 임시 총장 카트리나 암스트롱이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에 굴복했을 때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는 얼굴 마스크나 얼굴 가리개 착용을 금지하고, 학내 건물에서의 시위를 금지하며, “필요할 경우 캠퍼스에서 사람을 퇴거시키거나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뉴욕 경찰 36명으로 구성된 내부 보안 인력을 창설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에 따라 중동·남아시아 및 아프리카학과(Middle East, South Asian and African Studies)와 팔레스타인연구센터(Center for Palestine Studies)를 “검토”할 새로운 수석 부총장을 임명하면서 학과의 자율성도 포기했다.
하버드, 프린스턴, 컬럼비아, 예일 같은 엘리트 대학들은 본래 금권주의(plutocracy)를 재생산하고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들 대학은 지적인 최전선을 이끄는 곳도 아니고, 반체제 인사나 급진주의자들에게 우호적인 공간도 아니었다. 이들은 도덕성과 지성이라는 외피를 뒤집어쓰고 있지만 정치적, 경제적 권력에 비굴하게 복종한다. 그것이 이 대학들의 본질이다. 우리가 권위주의 체제로 돌진하고 있어도, 이들의 태도는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
암스트롱은 우리 대학의 대다수 총장처럼 자신을 헛되이 굴욕스럽게 만든다. 나는 그가 기꺼이 자신의 사무실 벽에 트럼프 대통령의 대형 초상화를 걸 자리를 마련할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모르는 사실이자,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사실은 어떤 회유도 권위주의자에게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암스트롱과 자유주의 엘리트들은 새로운 권력자에게 맞추기 위해 비굴하게 굴복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에 포진한 광대 같은 졸개들이 이들을 차례로 대체하거나 지배할 것이다.
미국 교육부는 현재 60개의 대학에 연방 민권법을 따르지 않으면 제재를 가하겠다고 경고했다. 이 법은 인종이나 출신국을 기반으로 한 차별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며, 유대인 혐오도 여기에 포함된다. 컬럼비아대학교는 4억 달러에 달하는 연방 보조금을 박탈당했고, 지금은 이 자금을 되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시도가 성공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한다. 대학을 공격하는 세력은 대학을 세뇌 기관으로 만들려 한다. 그들이 벌이는 유대인 혐오 반대 캠페인은 단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냉소적인 도구일 뿐이다.
이 경고는 지난 2월 3일 200명의 교수진이 서명한 공개서한 이후에 나왔다. 이 서한은 컬럼비아가 “유대인 학생들을 보호할 수단”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그들의 요구에는 현대 아랍 정치와 지적사를 가르치는 조셉 마사드 교수의 해임, 그에 대한 제6편(Title VI) 조사 개시, 이스라엘 비판을 유대인 혐오로 간주하는 국제 홀로코스트 기억 연맹(IHRA)의 유대인 혐오 정의 채택, 친이스라엘 성향의 종신직 교수 채용 등이 포함되어 있다.
나는 하버드를 졸업했고 컬럼비아와 프린스턴에서 강의했다. 이런 특권적 교육 기관들은 늘 시대의 범죄에 공모해 왔다. 이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의 학살,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노예화, 20세기 초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조직의 파괴, 1920~30년대 적색공포 시대 학계와 다른 기관들에 대한 숙청, 매카시즘 하의 마녀사냥 등에 대해 주변 사회가 변하기 전까지는 입을 다물었다. 이들은 1960년대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던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으며, 지금도 그와 똑같이 행동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나온 인사들 대부분은 이러한 엘리트 대학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도 이 대학에 진학할 것이다. 하버드를 졸업한 엘리스 스테파닉 하원의원은 MIT, 하버드,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총장들을 의회 청문회에서 굴욕적으로 만들었다. 제이디 밴스 부통령은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했고, 트럼프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를 나왔다. 피터 헥세스 국방장관은 프린스턴과 하버드 케네디스쿨 출신이다. 보건복지부 장관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는 하버드를 졸업했고, 그는 반유대주의 혐의로 대학 보조금을 재검토하라고 명령했다.
컬럼비아 로스쿨에서 25년간 강의해 온 캐서린 프랭크 교수는 최근 컬럼비아 학생들의 가자 학살 반대 시위 지지 발언과, 이스라엘로부터의 자산 철회 요구, 그리고 독성 화학 물질로 인해 학생들이 병원에 실려 간 사건에 대한 비판으로 인해 교수직을 잃었다.
프랭크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컬럼비아가 이렇게 손쉬운 표적이 된 이유 중 하나는 — 하버드, 예일, 다른 엘리트 대학도 마찬가지겠지만 — 이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교육에 종사하거나 교육적 사명에 헌신하는 인물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학이 민주주의 안에서 수행하는 특별한 역할을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없다.”
“대신 이사들은 헤지펀드 매니저, 벤처 자본가, 기업 변호사들이다. 우리 학교의 경우엔 무기 제조업자들도 포함된다. 이들은 대학의 기금만 보호하는 게 자신들의 책임이라고 여긴다. 나는 종종 컬럼비아를 뉴욕시에서 가장 큰 주거 부동산 소유자로 설명하고, 수업은 부업이라고 말하곤 한다. 이 학교는 시간이 지나며 비영리 지위를 가진 기업이 되어버렸다. 압력이 가해졌을 때, 이사회 안에서는 ‘잠깐, 우리가 저항의 전선이 되어야 하지 않나’ 혹은 최소한 ‘우리는 학문적 사명을 수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거실에서 미누쉬 샤픽 전 총장이 하원 위원회에서 증언하는 모습을 보면서 분노했다. 내 이름이 언급된 것도 그랬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가 컬럼비아라는 대학, 교수들, 학생들, 우리 프로젝트, 세계 최고 대학 중 하나였던 역사를 단 한 마디도 옹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괴물 앞에 무릎을 꿇었고,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괴물 앞에서 굴복하면, 괴물은 더 강해진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 대학은 아직도 트럼프 행정부가 제시한 조건을 두고 협상하고 있다. 이 학교는 앞으로도 결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살아남는다 해도 말이다.”
미국 전역의 대학들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고, 학문의 진실성을 내팽개쳤다. 이들은 학살에 항의하는 교수, 직원, 학생들을 폭력적으로 억압하고, 체포하고, 정학시키고, 퇴학시켰다. 이들은 경찰을 캠퍼스로 불러들였고, 컬럼비아의 경우에는 세 차례나 경찰을 동원해 학생들을 체포했고, 종종 그들에게 불법 침입 혐의를 적용했다. 이들은 권위주의적인 상전들의 지침을 따라 학생들을 내부 감시 대상으로 만들었다. 컬럼비아 대학교는 학생들을 탄압하는 데 앞장섰고, 2023년 11월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학살이 시작된 지 한 달 뒤, ‘팔레스타인 정의를 위한 학생회(Students for Justice in Palestine)’와 ‘유대인을 위한 평화의 목소리(Jewish Voice for Peace)’를 금지시켰다. 이 두 단체는 시위와 점거 캠페인이 시작되기도 전에 휴전을 요구했었다.
컬럼비아는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했고, 캠퍼스를 폐쇄하며 캠퍼스 곳곳에 보안 검색대를 설치했다. 이러한 탄압은 국제공공정책대학원(School of International and Public Affairs) 대학원생 마흐무드 칼릴(Mahmoud Khalil)의 납치로 이어졌다. 그는 합법적인 영주권자이며, 어떤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 행정당국은 이미 칼릴과 다른 학생들, 그중 상당수가 유대인인 이들까지도 가자에서의 대량 학살에 항의했다는 이유로 악마화하고 범죄자로 낙인찍었다.
칼릴이 연방 이민세관단속국(ICE) 소속 사복 요원들에게 끌려가는 영상은 그의 아내가 3월 8일에 촬영했다. 그 요원들은 신분을 밝히지 않았고, 이 영상은 내가 과거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독재 시절 산티아고 거리에서 목격했던 비밀경찰의 납치를 떠올리게 했다.
권위주의 국가에서 법은 권력자들의 범죄를 보호하는 도구로 작동한다. 이 법은 적법절차와 기본적 자유, 시민권을 박탈한다. 법은 억압의 수단이다. 합법적 영주권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은 시민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아주 작은 한 걸음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 앞에 닥쳐오고 있다.
당국은 칼릴을 1952년 제정된 이민 및 국적법(Immigration Nationality Act), 즉 매캐런-월터법(McCarran-Walter Act)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고 주장했다. 이 법은 국무장관에게 외국인의 존재나 활동이 “심각한 외교적 부작용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그를 추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이 법은 과거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 콜롬비아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영국 작가 도리스 레싱의 미국 입국을 거부하는 데 쓰였다. 이 법은 또한 시인 겸 수필가 마거릿 랜들, 민권운동가이자 언론인이었던 클라우디아 존스를 추방하는 데도 사용됐다. 이 법을 만든 매캐런 상원의원은 스페인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인물이었고, 맹렬한 반유대주의자였다. 그는 이 법을 반체제 인사와 공산주의자뿐 아니라 유대인을 겨냥해 만들었다. 이 법이 제정되었을 당시, 미국 정부는 동유럽 출신 유대인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입국을 금지했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소련에 동조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프랭크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이 법들이 유대인을 보호하거나 이스라엘과의 외교 정책을 수호한다는 명목 아래 사용된다는 점에서, 이 법들이 본질적으로 반유대적인 법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지금 행정부의 냉소적 본질이다. 이들은 그 법의 역사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이들은 권력을 얻기 위해, 그 법이 아무리 혐오스럽든 상관하지 않는다.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계 미국인을 수용소에 가뒀던 법까지도 기꺼이 다시 사용할 것이다.”
하버드 신학대학원에서 내 스승이었던 제임스 루터 애덤스는 1935년과 1936년 독일에 머물렀고, 그곳에서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추방당했다. 그는 반나치 지하 교회 운동인 고백교회(Confessing Church)에서 디트리히 본회퍼 같은 반체제 성직자들과 함께 활동했다. 그는 당대 세계 최고로 평가받던 독일 대학들이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비겁하게 파시즘에 굴복하며 스스로 파괴되었는지를 직접 목격했다.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폴 틸리히는 애덤스의 절친한 친구였다. 그는 나치가 집권한 지 불과 10주 만에 교수직에서 해고당했고,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그의 저서 『사회주의적 결정』(The Socialist Decision)은 즉시 금서로 지정됐다. 루터교 목사이자 철학자였던 틸리히는 사회학자 칼 만하임, 『이성의 황혼』(Eclipse of Reason)을 통해 권위주의의 부상을 분석한 철학자 막스 호르크하이머와 함께 “제국의 적”으로 낙인찍혔고, 추방당하거나 망명을 선택해야 했다. 1933년 제정된 “공무원 조직 정비법”은 모든 유대인 교수들을 해임했다. 당시 대부분의 학자들은 두려움에 몸을 숨겼고,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경우처럼 나치당에 입당하기도 했다. 하이데거는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총장직을 맡게 되었다.
애덤스는 미국의 기독교 우파 안에서 독일의 친나치 기독교 교회와 유사한 점을 발견했고, 미국 기독교 우파를 처음으로 “기독교 파시스트(Christian fascists)”라 부른 사람이었다. 그는 권위주의가 미국을 지배할 경우, 대학과 학자들이 지위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쉽게 스스로를 타락시킬 것인지를 경고했다. 그 상황에서 목소리를 내고 권력에 저항할 사람은 거의 없다고 그는 보았다.
그는 이렇게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만약 나치가 미국을 장악한다면, 하버드 교수진의 60%는 기꺼이 나치 경례로 강의를 시작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바로 그것이다. 자유주의 제도들, 즉 대학, 상업 언론, 민주당 등은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 이들은 무기력하게 주저앉고, 스스로의 원칙과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을 위선적으로 배반하며, 기꺼이 권력 체제의 변호자로 전락한다. 트럼프가 백악관에 복귀하기 전부터 이미 시작된, 가장 용기 있고 유능한 지식인, 작가, 예술가, 언론인에 대한 숙청과 침묵 강요는 지금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저항은 이제 우리에게 남아 있다.
우리는 국가의 적이다.
[출처] Surrendering to Authoritarianism - The Chris Hedges Report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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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헤지스(Chris Hedges)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널리스트로, 15년 동안 뉴욕타임스의 해외 특파원으로 근무하며 중동 지국장과 발칸 지국장을 역임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