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무역의 판도가 변하고 있다. 그것도 자유무역주의자들이 바라던 방향은 아니다. 수십 년 동안 경제적 개방성이 평화와 안정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지배적인 사고방식이었다. 무역은 권위주의 정권을 더 평화적인 행위자로 바꿀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런 사고방식을 산산이 무너뜨렸다. 국가들이 함께 합의한 무역 규칙에 대한 약속을 기반으로 한 다자주의가 끝났다고 애도하기보다는, 시장 효율성보다 경제 안보가, 비용 최소화보다 회복력이 더 중요해진 세계에 맞춰 필요한 조정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출처 : Unsplash, Ian Taylor
1995년 설립 이래 보호무역주의를 억제해 온 세계무역기구(WTO)는 더 이상 한때처럼 세계 무역의 중심축이 아니다. 다자간 무역 협상은 정체 상태에 빠졌고, WTO의 분쟁 해결 시스템은 마비되었다. 과거에는 법 기반 무역질서의 옹호자였던 미국도 이제는 법적 틀보다 권력 역학이 우위에 있는 세계에서 전략적 이점을 찾고 있다. 농업 및 수산 보조금 문제를 두고 수년간 협상이 이어졌지만 거의 성과가 없었고, 각국의 이해관계가 갈수록 엇갈리는 상황에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1990년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을 떠올려보자. 이 협상은 세계무역기구 설립으로 이어졌으며, 당시 123개국이 상품, 서비스, 지식재산 분야의 무역 자유화에 공통된 입장을 찾았던 보기 드문 순간이었다. 그 성공의 비결은 의제가 폭넓었고, 각국이 윈-윈을 기대할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오늘날의 협상은 의제가 협소해져 타협이 훨씬 어려워졌다.
자유무역협정(FTA)의 체결도 점점 드물어지고 있다. 2020년 이후 매년 체결되는 평균 무역협정 수는 그 전 10년간 평균의 절반 이하 수준이다. 한편, 보호무역 조치는 급증하고 있다. 2023년의 보호무역 조치 수는 2015년의 약 다섯 배에 달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공세와 무관하게, 각국 정부는 핵심 공급망을 확보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의해 무역 장벽을 세우고, 자국 산업을 우선하는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이 흐름은 분명하다. 무역 자유화는 이제 대부분의 국가들에게 최우선 과제가 아니다. 그 대신 안보 이슈가 무역 정책을 재구성하고 있으며, 이는 18세기 철학자 애덤 스미스의 주장을 떠올리게 한다. ⟪국부론⟫에서 스미스는 국방은 부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방은 부유함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Defence is of much more importance than opulence).”) 이 말은 지금처럼 지정학적 갈등이 심화된 세계에서 특히 적실성이 있다. 이제 무역은 전략적 고려 앞에 양보되고 있다.
유엔은 평화를 유지한다는 사명을 가졌지만, 갈등을 막는 데 어려움을 겪어왔다. 국제법이 침략을 억제할 수 없다면, 그 역할을 경제 정책이 대신해야 한다.
안보 중심의 무역
EU의 경우, 이는 특히 중국을 상대로 한 무역 정책 수단을 사용할 때, 의존성 분석을 기반으로 전략적 자원과 제품을 식별하는 방식으로 구체화된다. EU는 '탄소중립 산업법(Net-Zero Industry Act)'에 따라 녹색 기술에 대한 자급 기준을 설정하고 있지만, 수입을 국산품으로 대체하는 것이 의존도를 낮추는 해법이라는 판단은 잘못된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수입 집중도를 낮추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유럽 내 생산이 아니라 공급국 다변화다.
안보 중심의 무역은 취약한 다자주의에서 벗어나, 더 선별적이고 지역적인 동맹 체제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이른바 ‘무역 클럽’은 경제적 이해관계와 공동의 안보 우선순위를 일치시키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EU가 남미의 메르코수르(Mercosur)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움직임은 이 접근법의 좋은 예다. 이들 국가는 패권적이지 않고, 개방형 무역에 의존하는 국가들이다. 이처럼 특정 국가들과의 무역을 확대하는 것이 트럼프의 관세 공세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대응일 수 있으며, 보복 관세 전쟁이라는 '패자 없는 전쟁'을 피하는 길이기도 하다. 예측 불가능한 미국으로부터의 자율성 확보라는 목표는, 새로운 양자 관계를 설계하는 데도 유효한 틀을 제공한다.
또 다른 예로는, 이미 정책 입안자들 사이에서 논의돼 온 ‘기후 클럽’ 개념이 있다. 기후 클럽은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공동 전략에 합의하고,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며, 탄소가격제도 없이 경쟁하는 국가들로부터 자국 경제를 보호하는 나라들로 구성된다.
문제는 ‘정당한’ 안보 주장과 ‘정당하지 않은’ 안보 주장을 구분하는 것이다. 후자는 국가들이 무역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안보 카드를 남용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는 상황을 가리킨다. WTO 분쟁 해결 패널은 국가 안보 판단의 ‘자기판단적’ 성격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 결과 이러한 주장들을 법적 심사의 대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러한 ‘법의 지배(rule of law)’ 접근은 오히려 미국 내에서 WTO 체제에 대한 반감을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이 같은 남용을 막기 위해, EU는 산업 과잉 생산 문제나 기술 유출 방지 같은 공통 관심사에 있어 미국과의 정책 조율을 추진해야 한다. 공동의 접근법은 국가주의적 일방주의를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WTO의 새로운 초점
일각에서는 다자주의에서 벗어난 이 흐름이 빈곤국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강대국의 변덕에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지역 무역 동맹은 소규모 국가들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대륙 자유무역지대(AfCFTA)는 아프리카 국가들에 개별적으로는 갖기 어려운 집단적 협상력을 부여한다. 22개국이 서명하며 출범한 이 협정은 현재 48개국이 가입한 대규모 블록으로 성장했고, 아프리카 대륙의 글로벌 무역 내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다.
다자주의를 버린다고 해서 WTO 자체를 배제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대신, WTO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국가들 간의 소규모 ‘복수국간(plurilateral)’ 협정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이러한 ‘의지가 있는 국가들의 연합’ 접근법은 이미 전자상거래나 투자 촉진 같은 분야에서 실효성을 입증했다. WTO는 여전히 합의를 쌓아나가는 장으로 기능할 수 있지만, 그 미래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대규모 무역 협정이 아니라 유연한 파트너십을 촉진하는 데에 달려 있다. 이처럼 분열된 세계에서는 작지만 실질적인 협정들이 더 큰 진전을 이끌 수 있다. 화석연료 보조금이나 환경 지속가능한 플라스틱 무역 같은 분야에서 초기 단계이지만 유망한 복수국간 논의들이 이미 진행 중이다.
글로벌 자유무역의 황금기는 끝났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곧 재앙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각국이 안보 과제를 다루는 가운데, 무역 정책 역시 새로운 우선순위를 반영하며 진화해야 한다. 전략적 동맹, 다변화된 공급망, 목표가 명확한 무역협정들이 앞으로의 세계 상업 질서를 형성할 것이다. 다자주의의 쇠퇴를 한탄하기보다는, 우리는 이 전환을 더 불안정한 세계에 대응하기 위한 필연적 조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회복력과 안보를 우선시하는 무역 정책을 설계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경제 안정성과 국가 이익 모두를 지킬 수 있다.
[출처] A ‘golden age’ of global free trade is over. Smaller alliances can meet the moment
[번역] 이꽃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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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민 슈타인바흐(Armin Steinbach)는 HEC 파리 경영대학원의 법경제학 교수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