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로 모인 노동자들
2024년 4월 30일, 노동절을 하루 앞둔 날이자 제21대 국회 임기 말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근로관계 승계 의무화' 입법을 위해 모였었다. 평택 아파트 경비원, 군산 미군기지 캐셔, 전주 리싸이클링타운 노동자, 부산 태종대 매표원 등 지역과 직업도 각각인 이들이 모인 이유는 하나였다. "일터에서 이유 없이 쫓겨나지 않기 위해"
2025년 3월 24일도 마찬가지였다. 지역과 직업은 물론 나이와 살아온 배경, 심지어 국적도 다르지만, 이들을 하나로 묶는 공통점에 의해 국회, 청와대재단, 경남, 부산, 강원, 춘천의 노동자들이 모인 것이다. 부당해고와 중간착취를 막기 위해.
우리 노동법은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와 중간착취를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누구에게는 당연한 권리가 당연하지 않다. 오히려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 했다고, 불법 행위를 제보했다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노조를 만들었다고, 주기적으로 고용 불안에 떠는 문제를 지적했다고, 지방자치단체에 약속을 지켜달라 요구했다고 불이익을 받았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만든 것이 소위 '간접고용'(기업이 노동자와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용역업체 등 제3자에게 고용된 노동자를 이용하는 고용 형태)이라는 제도이다.
2025년 3월 24일 국회토론회 사진
‘중간착취’가 합법화 된 나라
근로기준법 제9조(중간착취의 배제)는 "누구든지 법률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영리로 다른 사람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서 이익을 취득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중간착취의 지옥도'라는 기사가 나오고, 노동 인구의 17.4%(2019년 기준)가 간접고용 노동자로서 용역업체에게 '합법적'으로 착취당하는 현실에서 근로기준법 제9조는 스스로 부끄러울 것이다.
사례를 찾기 위해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지난 3월 24일에 국회 소통관에서 국회토론회가 열렸지만 국회에서도 간접고용과 무늬만 프리랜서 위장을 통한 사용자책임 회피가 행해지고 있다. 바로 국회 소통관 수어통역사 이야기다.
수어통역사 문제가 더 심각한 것은, ‘국회사무처-위탁용역업체-수어통역사’의 간접고용 구조에 더 나아가 수어통역사들이 무늬만 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어통역사는 기자회견이 가능한 시간인 09시부터 18시까지 국회 기자회견장 내에서 대기하고 있으며, 한 달 기준으로 스케쥴표를 만들어 순환 근무를 해야 한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운영되는 청와대재단도 마찬가지이다.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고용을 승계’하도록 되어 있고, 해당 지침이 적용되는 청와대재단의 과업지시서에도 해당 내용이 명시되어 있으나 청와대권역 현자에선는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낸 노동자가 고용승계에서 배제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유인촌 장관은 "체불 금액이 얼마 되지 않고, 지급되었다고 들었다"라며 미처 청와대재단이 인지하지 못한 용역업체의 임금체불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리고 청와대를 전문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청와대재단은 업무를 모두 쪼개어 용역을 주고 있다. 당연히 용역업체가 중간에 들어오면 노동자의 임금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연차휴가미사용수당을 주장한 노동자를 고용승계에서 배제한 것을 이유로 근로기준법 제40조(취업 방해의 금지)로 기소된 군산 미군기지 사례까지 더하면, 어떤 탐지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필자에게만 이렇게 다양한 문제들이 제보된다. 간접고용 문제가 보다 만연하고,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국회 소통관 수어통역 용역업체에게 20%에 가까운 관리비를 지불하고 있음
그냥 해고된 것만으로는 신문에 나오지도 않는다
6명 중 1명이 간접고용 노동자라니.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은 단체로 싸워라도 보고, 법률적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부당해고를 다퉈보겠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용역업체에게 착취당한 임금은 생활상 어려움을 야기하고, 생활고는 부당함에 맞서 권리를 찾기보다 다른 일자리 구인으로 사람을 내몬다. 중간착취의 부당함이 부당함에 대응하지 못하게 만드는 역설이다.
간접고용 구조에서 계약만료로 위장된 해고가 만연하다 보니 해고만으로는 신문에 잘 나오지도 않는다. 여러 명이 해고되거나, 기자회견을 하거나, 처절하고 외롭게 싸워야만 나올 수 있다. 경남 창원컨벤션센터 간접고용 노동자 故 김호동 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었던 건 지역 대책위원회가 꾸려져 지속적으로 투쟁을 주도했고, 유가족이 천막 농성을 했으며, 서울로 올라와 용역업체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도 하고, 국회의원도 만나는 등 다방면으로 활동을 한 결과였다.
창원컨벤션센터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 관련 시민대책위원회 투쟁 사진(경남)
그렇게 故김호동 님 대책위원회의 투쟁으로 창원컨벤션센터의 ‘3개월 쪼개기 계약’ 관행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줄어들면 언제 또 다시 부활할지 모른다. 보호지침이 없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용역계약기간 중 고용유지’하도록 되어 있고, 심지어 계약을 담당하는 주무관도 이런 사정을 알고 있었지만 3개월짜리 초단기 계약을 업체에게 부탁할 뿐, 보호지침을 준수해달라 하지 않는다. 보호지침의 실효성을 없애고, 그저 선언으로만 남기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 ‘해피 뉴이어’를 돌려주자
“2024년의 마지막 날, 아버지는 집에서 따뜻하게 시간을 보내야 할 연말에 고용불안으로 힘겨워하셨다.”, “저희 아버지와 같은 죽음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이 최소한 공공기관에서는 효력을 가질 수 있도록 법제화를 시킬 필요가 있다.”
3월 24일 토론회에서 故 김호동 님(경남 창원컨벤션센터 간접고용 노동자) 자녀분의 현장 증언문 중 일부이다. 지금의 선언적인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으로는 노동자를 보호할 수 없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나 추가적인 입법이 필요하다는, 평범한 사람도 다 아는 사실을 국회의원들만 모른다. 아니 억지로 모르는 척하는 것이다. 국회의원도 임기가 끝나갈 때는 다시 공천을 받기 위해 무진장 애쓰고, 허리 숙이고, 심지어 무릎까지 꿇고 호소하지 않는가? 그 애닳는 마음이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는 1년, 아니 6개월, 어쩌면 3개월마다 반복된다는 것을 이제는 좀 진심으로 느꼈으면 한다.
'해피 뉴이어'는 새로 시작하는 한 해 좋은 일이 많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인사말이라고 한다. 그런데 매년, 아니 6개월, 심지어 3개월 단위로 해고의 위험에 처하는 노동자들에게 새로 시작하는 한 해가 반가울까? 연말까지 마음을 졸이다, 고용이 연장되어도 겨우 안도할 뿐이지 진심으로 즐거울 리 없다.
결국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 고용보장은 다른 사람과 같은 한 해를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기본권이다. 현장소장의 말을 잘 듣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 같은 게 아니라.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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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성은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소속 공인노무사다. 노동자성 위장, 상시근로자 수 축소 등 근로기준법 적용을 회피하는 문제에 관심이 많다. '할말 잇 수다'를 기획해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며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