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의 제1야당은 오랜 시간 동안 중도적이며 급진성과는 거리가 먼 정당이었다. 그러나 이스탄불 시장 에크렘 이마모을루(Ekrem İmamoğlu)의 구금 이후, 이 정당은 튀르키예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대중운동의 압박 속에서 보다 행동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2025년 3월 29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체포된 에크렘 이마모을루 시장을 지지하는 대규모 시위 집회에서 시민들이 깃발을 흔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출처: 부라크 카라(Burak Kara) / 게티이미지(Getty Images)
"3월 19일 이전" 공화인민당(CHP)의 메마른 중도주의
튀르키예공화국의 초석을 이루며 반공주의와 튀르키예 민족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던 공화인민당(CHP)은 1960년대 중반, 학생·쿠르드인·농민과 노동자 등 대중운동의 부상 속에서 중도좌파로 방향을 튼 바 있다. 1970년대 말 혁명적 열기와 이에 맞선 파시스트 동원 속에서, 당은 보다 좌파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1980년의 군사 쿠데타는 공화국 창시자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ürk)의 원칙을 우파적으로 재해석했고, 좌파를 철저히 탄압했으며, 신자유주의 전환을 강제로 밀어붙였다.
쿠데타 이후, CHP는 금지되었고, 그 후신인 사회민주인민당(SHP)은 유럽의 사민당들과 마찬가지로 점점 신자유주의화되며 다시 중도좌파로 돌아섰다. 그러나 이 당은 1990년대 초반까지 쿠르드인과 연대했고, 이들의 지지를 얻으며 쿠르드 출신 인사를 국회의원으로 배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쿠르디스탄 지역에서의 전쟁이 격화되자 군과 관료 기득권층의 반발이 거세졌고, 당은 이를 감당하지 못했다. 이 기득권층은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당이 좌경화되는 과정에서도 조직과 이념의 핵심에 남아 있었다. 결국 SHP는 붕괴했고, 반동적 지도부 아래 원래의 이름인 CHP로 재출범했다. 1992년 이후, CHP는 더욱 우경화되어 쿠르드인들의 지지를 대부분 상실했다.
이후 당내에서는 케말리스트와 보수·민족주의 성향의 파벌 간에 내분이 끊이지 않았다. 최근 몇 년간, 이스탄불 시장으로 당선되었고 쿠르드인에 대한 포용적인 태도, 대중적 인기를 보유한 에크렘 이마모을루를 중심으로 한 보수적 파벌이 도덕적 우위를 점한 듯 보였지만, 이들 역시 거리의 정치에는 소극적이었고 제도 내 정치에만 머물렀다는 점에서 큰 차이는 없었다.
CHP는 오랫동안 정의개발당(AKP)의 무능과 권위주의를 방치하며, 언젠가는 국민들이 AKP에 등을 돌리고 ‘옛 체제’를 선택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소극적 전략은 번번이 실패했다. 최근 몇 년간, 당은 여기에 미약한 ‘긍정 전략’을 더했는데, 그것이 바로 지방행정의 효율성 강화였다. 2019년 지방선거 승리를 계기로 복지서비스를 확대하며 계층을 막론한 지지를 얻었지만, 이는 한때 AKP가 잘하던 신자유주의적 복지정책의 반복일 뿐이었다. CHP는 1980년 쿠데타 이후 튀르키예가 빠져든 파괴적 거시경제의 틀을 바꿀 의지도 없었다. 오히려 2000년대 초 AKP가 중도우파 이미지로 성장했던 그 시절처럼, CHP는 단지 피해를 줄이려는 역할에 만족했다.
3월29일 이스탄불 공원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
What will happen in Turkey next?
— S.L. Kanthan (@Kanthan2030) March 31, 2025
Massive number of people are protesting against Erdogan, who is behaving like EU officials -- i.e., he arrested a popular opposition leader (Mayor of Istanbul). pic.twitter.com/DTrmmGGYoh
학생들이 침묵을 깼다
그러나 이 모든 전략은 3월 19일 이마모을루의 체포와 함께 무너졌다. CHP는 처음엔 침묵을 지켰다. 거리로 나선 것은 학생들이었다. 특히 이스탄불대학교 학생들은 같은 날 경찰 차벽을 돌파하고 시청으로 행진했고, 이는 최근 수년간 가장 대규모의 저항 물결로 이어졌다.
왜 학생들은 이렇게 분노했을까? 경제는 붕괴 직전이고, 미래는 불투명하다. 대학은 잠시나마 이 험난한 사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피난처였지만, 에르도안 정권은 이마저 망가뜨렸다. AKP는 오랜 기간에 걸쳐 대학을 우파적 엘리트 양성의 장으로 만들고자 했고, 자유주의자 및 좌파 교수들을 해고하며, 정부가 임명한 총장(카윰, kayyum)들이 대학을 장악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정권은 학문을 통한 문화적 패권 장악에 실패했고, 결국 동의 대신 강제력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대학의 정치화와 통제 강화는 결국 학생들의 분노를 자극했다. 이들은 CHP의 조용한 전략을 무시하고 거리로 나섰고, 3월 19일부터 26일까지 매일 약 백만 명의 사람들이 전국 도시에서 시위를 벌였다. CHP는 처음엔 시위를 단기간에 끝내려 했지만, 대중의 압박에 밀려 토요일 집회를 추가로 개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당 지도부는 여전히 시위의 확산을 억제하려 하고 있다.
학생들은 시위와 당을 급진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고립되어 있다. 좌파 정당 일부를 제외하곤, 조직된 정치세력이 가시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부재는 쿠르드 정치운동이다. 수많은 쿠르드 개인들이 시위에 참여하고 있지만, 조직적으로는 침묵하고 있다. CHP의 집회에서 일부 지도자가 쿠르드 깃발을 ‘누더기’라 칭하며 뉴로즈(Newroz)를 폄하한 일도 있었고, 일부 시위에서 인종차별적 구호가 등장한 점도 쿠르드 측을 위축시켰다. 무엇보다 튀르키예 정부와 쿠르드 정치세력 간의 협상이 진행 중이라는 점도 조직적 참여를 막고 있다. 그러나 최근 쿠르드계 좌파 정당인 평등민주당(DEM)이 토요일 집회 참여를 선언하면서 국면이 달라질 가능성도 생겼다.
알레비(Alevi) 지역 역시 2013년의 게지(Gezi) 시위 때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다. 알레비 마을과 빈민지역은 역사적으로 튀르키예·쿠르드 좌파의 거점이었지만, 과거 시위 때 이 지역들에서는 경찰의 폭력이 특히 극심했다. 최근 시리아 HTS(하야트 타흐리르 알샴) 지역에서의 종파적 대학살도 알레비 공동체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따라서 조직된 알레비 세력의 침묵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노동조합 지도자들 가운데 일부는 총파업을 요구하고 있지만, 대중적 요구로 확산되진 못하고 있다. 대형 노총들은 신자유주의와 에르도안 정권의 탄압 아래 힘을 잃었고, 국민적 신뢰도 낮다. 오히려 최근 노조 가입률의 소폭 증가가 오히려 지도부를 더욱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하향식 변화는 어렵고,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유일한 해법이다.
에르도안의 오판과 여전히 남은 카드들
그렇다면 에르도안은 왜 이런 대중적 저항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그는 최근 시리아에서의 군사적 성공과 쿠르드와의 협상 진전에 힘입어 자신만만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의 재당선 이후, 세계 질서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뀌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기대만큼 빠르게 움직이지 않았고, 시리아와 쿠르디스탄 지역에서의 협상도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심각한 생계비 위기 속에서 에르도안의 인기는 급격히 하락하고 있었고, 그는 선거 없이 정권을 유지하려는 일종의 ‘쿠데타’를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당장은 역풍을 맞았지만, 에르도안은 여전히 여러 장점을 쥐고 있다. 트럼프, 유럽연합(난민 문제를 피하려 함), 국제 자본 및 국내 보수 재계는 침묵으로 그를 사실상 지지하고 있다. 특히 메흐메트 심셰크(Mehmet Şimşek) 재무장관의 긴축정책이 국민을 가난하게 만들었지만, 외국 자본과 기업들은 그 덕분에 만족하고 있다.
전망: 대중 저항이 바꿀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야당은 기존의 우호 세력들(재계, EU, 미국, 국제 시장)로부터 큰 도움을 받기 어렵다. 결국 돌파구는 좌파로의 전환과 보다 대립적인 노선뿐이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굳어진 중도주의에 갇혀 있는 CHP는 대중의 분노를 통제하려 들 뿐, 이를 조직적 분노로 전환하려 하지 않는다. 이를 바꾸려면 더 강한 대중적 압력이 필요하다.
지금 저항의 두뇌와 동력은 대학 캠퍼스와 CHP 집회에 있다. 이스탄불공대, 이스탄불대, 그리고 튀르키예 전역의 여러 대학들이 수업을 보이콧하고 시위를 조직하고 있다. 중동기술대학교(ODTÜ)는 1960년대 이후 반제국주의·민주주의·사회주의 운동의 거점이었고, 이번 보이콧 물결의 시작점이 되었다. 그러나 이 저항이 대학과 CHP 공간에만 머문다면, 에르도안 정권이 자주 사용하는 ‘엘리트 vs 민중’ 프레임에 갇힐 우려도 있다.
지금의 저항은 분명히 민중운동이다. 빈민, 노동자, 중산층 모두가 거리로 나와 선거제도를 방어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계급으로서’ 결집하진 못했다. 몇몇 학생·노동 지도자들이 총파업을 요구하고 있고, 시위 참여자들은 이 운동의 한계와 가능성에 대해 토론을 시작했다. 학생들이 길을 열었지만, CHP는 여전히 광범위한 연대를 위한 공간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몇 주 동안 다른 민중 세력들이 이 균형을 바꿀 수 있을지 여부가 향후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출처] The Unlikely Resistance in Turkey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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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한 투갈(Cihan Tuğal)은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사회학 교수이다. 저서로는 『수동적 혁명(Passive Revolution)』과 『튀르키예 모델의 몰락(The Fall of the Turkish Model)』이 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