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 파면되고 드디어 "방을 뺐다". 어둡고 시린 겨울 광장을 지킨 이들은 "끝이 아닌 시작"을 가늠한다. 광장 안과 밖, 선을 넘고 연결하며 투쟁하는 이들의 곁을 밝힌 '말벌 시민'들은 오늘도 고공에 오른 노동자들과 함께, 평등을 외치는 시민들과 함께 '연대'하고 '투쟁'하는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꿀벌'을 지키려 분주히 내달리는 '말벌 아저씨'처럼, 투쟁하는 이들의 곁으로 달려와 '동지'가 된 세 명의 '말벌 동지'와 함께, 12·3 비상계엄 후 광장의 시간을 돌아봤다. 사회대개혁을 위한 과제와 조기 대선 국면에 대한 고민들도 함께 나누었다.
송예은 씨는 늘 투쟁하는 이들의 삶에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직접 현장에 참여해본 경험은 없었다. 비상계엄은 비겁한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어린 시절의 다짐을 환기했다. 예은 씨는 그것이 다만 옳은 일이라는 마음에서 비상계엄 다음날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집회를 시작으로, 다니던 대학도 휴학을 하고 매일같이 투쟁의 현장 곳곳을 누볐다.
강명지 씨는 청소년 때부터 다양한 사회의제에 관심을 갖고 사회적인 실천을 해왔다. 학부 시절에는 경제적인 문제로 사회운동에 거의 참여하지 못했지만 비상계엄의 밤, 자신이 사랑하는 문학이 말하는 것들을 실천하기 위해 여의도를 향했고, 대학원 논문 최종 발표와 졸업도 미루어 두고 분투하는 이들과 함께했다.
김삿갓(가명) 씨는 박근혜 퇴진 시위에 참여했었지만 다른 사회운동이나 활동가로서의 경험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12월 3일 밤 서울에서 먼 지역에 있던 삿갓 씨는 국회 앞을 지킨 시민들에 대한 걱정과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함께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인천으로 거처를 옮겨 새로운 직장 면접에 합격하자마자 광장을 향했고, 내내 그곳을 지키며 한 겨울을 보냈다.
파면의 순간, 철탑 오른 노동자 곁 지키며 노래를
헌법재판소의 만장일치 파면 선고의 순간을 이들은 어디에서 어떤 마음으로 지켜봤을까.
예은 씨는 지난 4일 파면 선고의 순간 서울 한화오션 본사 앞 고공농성장에 있었다. 교통감시카메라 철탑 위에는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이 올라 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목소리로 만장일치 파면 선고가 나오는 순간, 예은 씨와 동지들의 시선은 하늘을 향했다. "파면이 선고되면 바로 인터냇셔널가를 부르고, 혹 기각이나 각하가 된다면 총파업가를 바로 부르기로 했어요.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그 주문이 나오자마자 모두 하늘을 쳐다봤어요. 철탑 위에 있는 김형수 동지와 함께 모두 인터내셔널가를 불렀죠."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조끼를 입은 송예은 씨. 사진촬영 박세영
강명지 씨는 선고일, 현대자동차 하청기업인 이수기업 해고 노동자들이 현대자동차의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선전전을 진행한 일산 킨텍스 모터쇼 현장에 있었다. 선전전에 들어가기 직전, 생중계를 통해 파면 결정을 들은 명지 씨는 "이거 한마디를 들으려고 지난 4개월 동안 용을 썼구나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명지 씨는 또한 "선고문에서 제일 인상적이었던 것은 비상계엄이 빨리 해제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안 된다는 주장에 대해 시민들의 저항으로 빠르게 해제할 수 있었던 것이기에 그 죄를 판단하는 데는 영향이 없다라고 한 부분이었어요. 헌법재판소가 공식적인 문서로 시민들의 저항에 대해서 언급을 해줬다는 게 저한테는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라고도 이야기했다.
김삿갓 씨는 울면서 선고를 지켜봤다. 광장의 시간들 모두가 스쳐 지나갔다. "돌이켜보니 12월 3일부터 4월 4일까지 총 15번의 주말과 평일을 광장에서 보냈더라고요. 그동안 거리에서 찬바람 맞으면서 노래하고 노숙하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어요. 그 모든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습니다. 그 기저에 있던 감정에는 후련함과 더불어 이제 큰 산을 하나 넘었다는 안도감이 가장 컸어요. 한편으로는 이제 다들 서로를 모른 척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도 조금 있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만나면 여전히 좋은 동지일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스스로 다독이는 마음도 함께 들었습니다."
시민의 힘으로 만든 광장의 승리, "끝이 아닌 시작"
이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은 광장이 만들어낸 승리라고 평가했다. 다만 끝이 아닌 하나의 시작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예은 씨는 파면 선고가 "크게 보면 승리라기보다는 어떤 시작을 한 것 같아요. 물론 파면 자체는 하나의 승리이고요. 그게 가능했던 것은 저는 시민들의 힘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광장이 과거 박근혜 탄핵 국면과 비교했을 때 그래도 좀 더 발전적으로 개방된 공간이 되었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명지 씨는 "헌재 선고의 보충 의견에서도 보이듯이 기각하려는움직임이 없었던 게 아니었고 헌법재판소 자체도 되게 지지부진하게 일을 끌었다고 생각해요. 그랬을 때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나와서 민의라는 것을 보이고 헌재를 압박하려 애썼기 때문에 만장일치 파면이라는 결과가 나온 거라고 봐요. 파면 만으로 완전하다거나 완벽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해냈다라는 느낌으로 하나의 중요한 시작이 될 수 있는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다투고 연결되며 이어온 시간들..."광장에 계속 남겨지는 이들도"
시작이 될 '하나의 승리'를 만들어 온 광장에서는 수 많은 '낯선 존재'들이 서로 다투고 연결되어왔다. '말벌 시민'들은 광장의 긴 겨울을 돌아보면서 그 '연결'과 '균열'들을 함께 짚고 고민하고 있었다.
예은 씨에게 광장은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이었고, 제가 모르고 있었던 아픔들을 알게 된" 현장이었다. 예은 씨는 "그래서 좋기도 한데 사실 고통스럽기도 했죠. 사실 모르고 있으면 속 편하게 살 수 있긴 하잖아요. 저는 다른 사람들의 투쟁이나 이런 걸 더 알고 싶었는데, 알고 나니까 계속해서 마음이 불편한 건 있죠. 그렇기 때문에 또 계속해서 투쟁을 함께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지금 세 곳에서나 고공농성을 하고 있잖아요. 구미 옵티칼 공장에는 박정혜·소현숙 동지가 있고, 세종호텔이 있는 명동에 고진수 동지가 있고, 여기 을지로 청계천 옆에는 김형수 동지가 있고요. 김형수 동지가 고공에 오르고 첫 일주일은 사실 밥을 먹는 것도 불편했고 화장실에 가고 씻고 신호등에 이제 신호가 얼마 안 남아서 뛰어가는 것도 마음이 불편했어요. 그 모든 걸 지금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못하고 있으니까요. 그런 마음들이 고통스럽다는 표현으로 나오는 것 같아요."
예은 씨는 또한 "광장에 정말 좋은 일도 많았고 그 공간이 물리적으로도 굉장히 괜찮은 공간이었다고도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모두를 담지는 못했다는 고민도 있어요. 비상행동(당시 퇴진 집회를 주최한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집회에서도 한번은 일본인 시민이 발언을 했을 때 굉장한 비난이 있었고, 저도 그 광장에서 반도체 특별법을 폐기하라고 외쳤을 때나, 민주당이라는 거대 정당에서 주장하는 흐름과 다른 요구들을 말했을 때, "꺼져라"는 소리를 듣거나 "나라 팔아먹을 새끼들"이라는 소리를 듣는 일도 있었어요. 한 시민이 자신이 성 노동자임을 밝히고 발언했을 때도 응원을 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욕하는 사람들도 있었잖아요. 그런 순간들을 겪으면서, 어쩌면 광장에 남겨지는 사람들이 계속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무지개조선소에 함께 만든 '연대투쟁호'에 오른 강명지 씨. 사진촬영 홍필한
명지 씨는 광장의 경험을 통해서 "나는 배운 대로 살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문학을 공부하고 있고, 문학이 말하는 가치들을 진심으로 믿고 컸고, 문학뿐만이 아니라 이야기를 좋아해서 이야기가 하는 말들을 다 믿고 컸는데, 그 모든 이야기와 그 모든 시와 그 모든 소설과 그 모든 만화들까지도 나에게 가르친 대로 살았다, 최소한 지난 4개월 동안은 그랬다"는 마음이라 전했다.
또한 광장을 돌아보며 "연결될 일이 거의 없었던 사람들끼리 연결됐다는 게 하나의 유의미한 지점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걸 어떤 방식으로 기억하고 의미화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도 좀 계속 필요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말벌'이라는 호칭이나 '광장에 뛰쳐나온 2030, 여성으로 보이는 이들 혹은 성소수자들에 대해서 담론 권력을 지닌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가 저는 조금 조심스럽더라고요.
다른 매체와 인터뷰를 했을 때 "20·30대 여자애들이 나온 걸 보고 아, 이건 탄핵되겠다고 생각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광장의 시민들을 굉장히 정치적인 부분에 관심이 없는 순수한 사람들로 계속해서 여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었요. 이걸 어떤 방식으로 해석할 것인가, 어떻게 기억하고,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앞으로도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을 지금은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아름답기만 했던 것도, 힘들기만 했던 것도 당연히 아닐 텐데, 이 안에서 어떤 균열이 있었고 그 균열을 어떻게 해결하려고 했고, 그런 것들에 요새는 더 관심이 많이 가요"라고 이야기했다.
삿갓 씨는 "길고 지난한 시간을 통과하며 수없이 깨어지고 부딪힌 인식은 결코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지만 파손되고 마모된 자리에 새로운 보강재를 덧붙일 수는 있잖아요. 저는 이번 광장의 경험을 통해서 이전보다 발전된 민주주의 정신이 우리 모두의 의식에 뿌리 내리게 될 것이라 조금은 낙관적으로 전망해요. 각자의 일상 속에 '서로 모른 척 하지 않기' 정신이 아주 작게나마 자리 잡았을 것이라고 믿고요. 우리는 험난한 여정을 함께 한 동지니까요"라고 마음을 전했다.
파면 이후 광장, 차별금지법 제정·노조법 2·3조 개정과 내란 세력 청산을
윤석열 파면 이후 우리의 광장은 무엇을 함께 고민하고 구현해야 할까. 사회대개혁의 구체적 내용과 우선 과제는 무엇일까. 이들은 광장 안과 밖에서 함께 분투했던 존재들을 마음에 떠올리며 차별금지법 제정과 노조법 개정의 필요성을 짚었다. 내란 세력의 완전한 청산도 힘 주어 말하는 한편, 여야가 저마다의 이해로 추진하고 있는 반도체특별법 폐기도 이야기되었다.
예은씨는 "법적으로는 저는 정말로 차별금지법 제정과 노조법 2·3조 개정, 그리고 반도체 특별법의 완전한 폐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법들은 제가 광장에서 만난 사람들과 관련이 있기도 하고요, 특히 차별금지법은 사실 누구나 포함되는 내용이잖아요. 사람은 어느 누구라도 차별받으면 안되니까요"라고 말했다.
명지 씨는 "저는 내란 세력 청산과 차별금지법으로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떤 분기점을 넘었을 뿐이고 이걸 끝까지 밀어붙여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요새 자주 하게 되는 얘기가 '전두환 가고 노태우 왔던 걸 까먹으면 안 된다'라는 얘기예요. 그리고 광장에 무수히 있어서 결코 지워질 수 없었던 소수자들, 성소수자라든지 여성이라든지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절대로 지워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그래서 차별금지법 제정과 노조법 2·3조 개정을 계속해서 중요하게 여기고 있어요"라고 이야기했다.
삿갓 씨는 "할 일이야 너무 많지만 당장 눈앞에 있는 것을 딱 하나만 꼽아보자면 내란 세력의 완전 청산, 즉 국민의힘 해체라고 생각해요. 정확히는 그들을 필두로 한 민정당 계보의 모든 정치인에게서 정치적 공론장에서의 발언권을 박탈해야한다고 봐요. 내란을 옹호하고 동조한 것도 모자라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을 배출한 집단이고, 광주와 제주 등 수많은 지역에서 발생한 국가폭력의 가해자들을 떠받들어 온 자들이죠. 지금이라도 이들에게 응당한 처벌을 내림으로써 향후 대선이랄지 개헌과 같은 국가의 중대사에 말을 얹을 수 없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라고 전했다.
"닫힌 광장에 그 누구도 외롭게 남겨지지 않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광장에 그 누구도 외롭게 남겨두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예은 씨의 말이다.
그는 "사실 광장의 제1의 과제는 윤석열 파면이었잖아요. 사회대개혁을 함께 말하긴 했지만 윤석열이 파면이 되면서 우리가 물리적으로 광장이라고 말하던 공간이 닫혀가는 것은 사실이에요.
그런데 이 광장이 닫히고 나서도 그 공간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정말 많잖아요. 그 사람들을 외롭게 남겨두지 않고 우리가 광장에서 서로 동지라고 부르고 같이 울고 웃었던 것처럼 그 사람들도 모두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혹은 그 광장이 특별한 공간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일상처럼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 되게끔 만드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아요"라고 강조했다.
명지 씨는 파면 이후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들에 대한 고민도 전했다. 그는 "나의 일상이라는 게 얼마나 폭력적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외면하지 말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는 불매를 한 지가 좀 됐는데, 사람들이 매일같이 쓰는 쿠팡을 예로 들면 너무나 많은 노동 착취와 죽음 위에 있고, 지난 123일간 퇴진 국면 와중에도 거제에서는 또 한 명의 노동자가 돌아가셨어요. 그런 것뿐만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일상이라고 부르는 게 얼마나 많은 폭력과 차별과 보이지 않는 노동을 담지하고 있는 것인지를 계속해서 함께 알아가야 한다라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말했다.
조기 대선, "하청 노동자의 말을 직접 들으러오는 대통령을"
한편 파면 이후 정치권은 조기 대선의 시침과 분침을 바쁘게 쫓고 있다. '말벌 시민'들은 대선에 대해 어떤 고민을 갖고 있는지도 물었다.
예은 씨는 "이번 대선이 치러질 때는 정말로 이전하고 다른 것을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노동운동 현장에서 가장 많이 했던 말들 중 하나가 "일터에 윤석열을 없애자"였어요. 그것이 정말 실현되었으면 좋겠고요.
제가 한 '오픈 마이크'에서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었어요. "언젠가는 대통령이 하청 노동자의 말을 직접 들으러 왔으면 좋겠다"고요. 지금 보면은 다 투쟁 당사자들이 서울로 올라오고 국회를 찾아가고 고공으로 올라가야만 정치권이 말을 들어줄까 말까 하잖아요. 이제 다들 직접 좀 오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가장 좋은 건 고공농성에 올라간 동지들이 대선 전에 원하는 것을 이루고 내려오는 거겠지만 내려오더라도 문제들은 계속있을 것이고, 고공농성을 하지 않았지만 지금 문제가 심각한 사업장도 정말 많으니까요. 이번에 나오는 대선 후보들이 그런 현장을 정말 직접 보고 들으러 왔으면 좋겠어요. 보고를 받지 말고요"라고 이야기했다.
"국민의 힘 후보 내면 안돼", "이재명은 글쎄"... "소신투표 비난하는 행태" 우려도
명지 씨는 "국민의힘은 후보를 내면 안된다고 생각하고요. 대선 국면에서 표를 모으기 위해서 어떤 전략을 택할지가 조금 많이 걱정이 되어요. 진보 정당보다도 민주당에 대한 고민인데, 계속해서 소수자들, 약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투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잖아요. 보수를 잡겠다라는 식으로 오히려 보수화되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저는 그 과정에서 굉장한 모욕감을 느끼기도 해요. 그러면서 소신껏 투표를 하는 사람들에게 "너 때문에 국민의힘이 당선되는 것"이라고 비난하는 행태들이 다시 벌어질까 봐 걱정되는 게 좀 있어요"라고 고민을 전했다.
예은 씨는 "지난 선거 때 소신 투표를 하지 못하고 윤석열을 막기 위해서 한 표를 던졌다"면서 그런데 이번 조기 대선에서는 아직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가 없고 대선 공약이 나와봐야 결정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명지 씨도 "지난 대선에는 이재명 후보를 지지"했으나 "이번에는 아직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예은 씨는 "이재명 전 당대표가 양대 노총을 만난 적이 있잖아요. 당시 민주노총에 오셨을 때 투쟁 사업장에 있는 동지들이 다 피켓을 들고 있었던 적이 있어요. 한 번이라도 좀 봐달라고요. 만약 거기서 보셨던 것들에 대한 답변이 충분히 담긴 공약들이라면 지지를 할 수도 있겠죠.
근데 지금에 와서 정말 잘 모르겠어요. 이 말을 하면은 조금 분란을 살 수도 있지만 문재인 때라고 해서, 노무현, 김대중 때라고 해서 노동자나 성소수자나 사회적 약자들이 안 죽었던 건 아니잖아요. 그때 놓친 것에 대한 정치권의 반성도 분명히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어쩔 수 없었다라는 말로 넘어가기에는 너무 죽은 사람이 많기 때문에"라고 이야기했다.
"투쟁 현장 함께한 이들, 단일후보 낸다면 지지할 것"
노동당·정의당을 비롯해 노동계와 사회운동 일각에서 추진하고 있는 '사회대전환 대선공동대응' 흐름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예은 씨는 "잘된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정치적인 부분은 제가 완전히 다 잘알지 못하지만, 어쨌거나 노동 현장, 투쟁 현장에서 자주 봤던 사람들이, 그래도 우리 목소리를 들었던 사람들이 정치권에 참여하고, 후보로서 나온다는 것에 대해서는 막 반발하고 싶거나 그런 마음은 안 드는 것 같아요"라 말하고 만약 그들이 단일후보를 선출한다면 "저는 지지할 것 같아요"라고도 덧붙였다.
명지 씨도 "만약 민주당을 포함하지 않은 진보 단일 후보가 나온다면 저는 지지할 의향이 있어요. 물론 공약이나 이런 것들을 보고 결정해야 하겠지만 제가 기억하기에 남태령에서도 광화문에서도 혹은 퇴진 광장이 아닌 이런저런 노동 투쟁 현장에서도 가장 먼저 와주고 정치인으로서 연대해 주었던 분들은 노녹정(노동당, 녹색당, 정의당)과 진보당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요"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또한 "저는 이번 탄핵 국면에서 가장 유의미한 지점은 특정 정치인으로 대표되거나 특정 어떤 유력한 사람으로 대표되는 게 아니고, 어떻게 보면 가장 평범하고 혹은 평범하지도 못하고 자신을 대표하는 사람이 없다고 느꼈던 사람들이 광장에 뛰쳐나와서 자기 얘기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환원될 수 없어서 중요했던 말들이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이나 그런 소수의 공으로 돌려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고 강조했다.
'말벌 시민'에서 '조합원'으로...다시 '연대'하는 노동자·시민으로
민주노총 과제는..."광장 시민 '조직화' 고민하고 "현장 조합원들 목소리 더 많이 들어야"
분투하는 수많은 현장들, 사회대개혁의 숱한 의제들, 조기대선의 물결들 사이에서 이제 '말벌 시민'들의 시간은 무엇을 향해, 어떻게 흘러갈까. 이제 '말벌 시민'이라는 호명을 넘어서 누군가는 노동조합의 조합원으로서, 활동가로서의 삶을 새롭게 고민하고, 누군가는 다시 광장 안과 밖의 연대하는 시민으로서 서로의 곁을 지켜낼 길을 찾고 있었다.
예은 씨는 "조합원으로서 활동을 계속할 것 같아요. 이제 다 너무 아는 사람들의 얘기가 됐고 제 이야기가 되어 버렸단 말이에요. 제가 사실 서울시 교육청에서 연행됐던 사람 중 한 명이거든요.
지혜복 선생님이 진짜 복직하고 정근식이 사과하는 걸 봐야겠고, 전장연과 함께 지하철역에서 매일 끌려나갔던 기억이 있다 보니 전장연 동지들의 승리를 정말 보고 싶어졌고, 조선하청 노동자의 일은 이제 제가 속한 지회의 일이고 당연히 승리하고 거제로 돌아가는 것도 봐야 되고, 그런 식으로 이제 부산 서면시장이나 울산 이수 기업과 서진이엔지라든가 세종호텔도 그렇고 구미 옵티칼 등 모두 그냥 이제 제 일이 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퇴진 운동 과정에서 조선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에 적극 연대했고, 지난 2월 19일에는 51일 파업에 대한 형사재판 1심 선고 이후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에 '정식'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예은씨는 "요즘에는 이제 학교를 졸업하고 정리가 되면, 정말 거제로 가볼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라고 전했다.
명지 씨는 "연대는 당연히 계속해서 이어갈 것 같아요. 그런데 '말벌'이라는 호명에 대해서도 이제는 조금 더 고민을 해보게될 것 같아요. 어떤 점에서는 기존에 제가 표명해 왔던 정체성이라거나 그런 것들하고 잘 조화가 되는지에 대한 고민도 좀 있고, 저는 일단 대학원생 노조에 조합원으로 가입을 하게 되어서 이 조합 안에서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움직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밝혔다.
명지 씨는 "내가 개인으로 남아 있으면 연대가 지속 가능하지가 않을 것 같다"는 고민을 하면서 "활동을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조직에 속해 있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라고 느꼈고 그런 과정에서 이제 대학원생 노조에 가입을 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이제 조합원이 된 예은 씨와 명지 씨에게는 민주노총의 이후 과제에 대한 고민도 물었다.
예은 씨는 "사실 저는 그냥 일개 평 조합원이긴 하잖아요. 간부도 아니고 뭐 그렇다고 해서 굉장히 직접적인 투쟁 당사자인것도 아니고, 다만 이제 저처럼 조합에 가입한 사람들이 많잖아요.
민주노총에는 누구나지회도 존재하는데, 이렇게 광장에서 마주한 다양한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지를 고민해야 될 때인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노조에서도 굉장히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말벌 시민'들을 과연 조직화하는 것이 맞는가라는 질문도 조금 던질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말벌 시민'이 조직화되지 않은 개인이기 때문에 가능한 지점들이 훨씬 많았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그런데 또 이 말벌 시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어떤 공간, 광장이라고 했던 공간을 다시 민주노조가 제시하고 만들어 나가는 고민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라고 말했다.
명지 씨는 "현장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더 많이 들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사실 양경수 위원장의 어떤 태도라고 해야 할까요. 현장 조합원들이 피켓팅을 하고 있는데 민주당 지도부와 대화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게 저에게는 그렇게 긍정적으로 보이지는 않았거든요. 민주노총이 지도부가 어떻게 하면 현장의 목소리를 더 잘 듣고, 어떻게 하면 현장의 목소리를 더 잘 반영할 수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좀 많이 들어요"라고 이야기했다.
안국역 철야농성 집회에서 발언하는 김삿갓 씨. 비상행동 유튜브 영상 화면 갈무리
삿갓 씨는 앞으로도 "비상행동이나 전장연 등 시민사회단체들을 수시로 팔로우하면서 지켜보다가 내 도움이나마 필요한 순간이 오면 현장에 참여할 계획"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또한 안국역에서 철야 농성을 하는 현장에서 지혜복 선생님을 만났던 기억을 환기하면서 선생님과 "학창시절 피해 경험을 이야기하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는데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따뜻하게 안아주셨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렇게 서로가 하나로 연결되는 경험을 하니 더 이상은 물러설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생님이 학교로 돌아가시는 광경만은 꼭 지켜봐야겠다고, 그 투쟁의 여정에 조금이나마 함께해야겠다는 결심이 섰어요. 이번 일을 계기로 서로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느끼는 것이 사회대개혁을 위한 투쟁에서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깨달았어요. 그래서 나가려고요. 동지들이 싸우고 억압받고 탄압당하는 현장에"라고 덧붙였다.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예은 씨는 "지금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세 곳의 투쟁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기나긴 겨울, 광장을 넓히고 밝히며 윤석열을 파면시킨 이들의 연대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윤석열과 함께, 우리의 일과 삶 곳곳에 존재하는 "윤석열들" 모두를 파면시키려는 노동자·시민의 분투는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