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이 또 죽었다"..."새 대통령 처음 들어갈 곳은 태안화력발전소여야"

태안화력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김충현 씨 '끼임' 사고로 목숨 잃어

6월 2일, 한국서부발전(주)이 운영하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김충현 씨가 목숨을 잃었다. 지난 2018년 12월,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 고 김용균 씨가 컨베이어벨트 끼임 사고로 숨을 거둔 바로 그곳에서 또다시 비극이 반복된 것이다. 

고 김충현 노동자는 2일 오후 2시 30분경 태안화력발전소 내 9·10호기 종합정비동 1층 건물에서 정비 부품 등을 손보는 작업을 하다 기계에 말려들어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2인 1조 작업 원칙에도 불구하고 사고 당시 고 김충현 노동자는 홀로 일하고 있었다. 비상정지 장치나 발판 브레이크가 있었지만 이를 멈춰줄 이는 고인의 곁에 없었다. "끼이익", 고인의 죽음을 알린 것은 사람의 소리가 아닌 외로운 기계음이었다. 

고인은 한전KPS가 한국서부발전으로부터 위탁받은 정비 업무를 재하청받은 소규모 하청업체 한국파워오엔앰 소속이었다.

고인의 동료들과 유족들, 노동계·시민사회는 "이윤만을 앞세워, 하청 비정규직의 비정규직으로 노동자들을 쪼개고 찢어놓는" 위험의 외주화를 반복하고, "발전소 폐쇄를 명분으로 인력 충원을 중단"한 원청의 책임을 묻고 있다. 

그러나 한전KPS는 2일 "발전 설비와 관련 없는 공작기계에서 사고 발생"했고 "파급 피해와 영향이 없다"는 사고 보고 자료를 공유하고, 고인이 "임의로 작업"을 하다 사고가 발생했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유족과 동료들, 노동계 등은 즉각 사건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와 구조적 대안 마련을 위해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대선 본투표일이자 사고 다음 날인 6월 3일, 한국서부발전본사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 공공운수노조 제공

“서부발전, 또 한 사람의 아들을 죽였다”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이자, 김용균재단의 대표인 김미숙 씨도 사고 소식을 듣고 급히 태안으로 내려왔다. 김미숙 씨는 아들의 영정사진을 품에 끌어안고 절규하는 고 김충현 씨의 어머니 곁을 함께 지켰다. 

김미숙 씨는 "7년 전 아들 빈소 옆에 오늘 다시 차려진 빈소에 유족의 기막힌 울음소리에 저를 보는 것 같아 다시 한번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면서 "서부발전, 아들을 죽인 것도 모자라 또 아까운 생명을 잡아먹었는가"라며 분노했다. 

김미숙 대표는 "사고가 발생할 때 시급히 기계를 멈출 동료가 필요한데 2인 1조는 왜 아직도 지켜지지 않는가? 서부발전은 발전소 폐쇄가 아직 되기도 전에 미리 인원 감축으로 일 양을 가중해 놓고 도대체 사망사고는 어떻게 막겠다는 것인가? 그리고 언제까지 사고를 덮기 위해 노동자 개인의 책임이라 거짓말부터 할 것인가?"라며 반복되는 죽음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미루는 서부발전을 질타했다.

그는 "중대재해처벌법이 강화되어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몬 기업들이 제대로 처벌되었다면, 이런 비극들이 반복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면서 대선 후보를 비롯한 정치권에 "중대재해처벌법을 강화하여 일하는 사람들 모두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 현장을 만들 것을 촉구했다. 

“버튼 하나만 눌러줬어도…”

이날 현장에는 고 김충현 씨와 함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을 하는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 동료들도 함께했다. 

김영훈 공공운수노조 한전KPS비정규직지회장은 "김충현 동지는 선반에 대해서는 사업소 내에서 따라올 사람이 없을 정도로 숙련된 기술자였다"면서 "작디작은 사업장 안에서 고되게 일하다 아프게 돌아가신 고인의 죽음이, 억울한 죽음으로 남지 않도록 함께 싸워 나갈 것"이라 밝혔다. 김 지회장은 "현장에 2인 1조 원칙이 지켜졌다면, 사고 당시 고인이 기계에 말려들어 갈 때 누군가 옆에서 버튼 하나만 눌러줬다면 고인은 살 수 있었다"면서 "발전소 폐쇄를 명분으로 인력 충원을 하지 않았고, 2차 하청 노동자들의 계약조건은 굉장히 열악한 환경이었다"며 "유가족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철저한 진상규명과 회사의 사죄와 책임자 처벌뿐"이라 강조했다. 

“2018년과 똑같은 방식의 책임 회피”

대선 후보 중 유일하게 현장을 찾은 민주노동당 권영국 대표는 “고 김충현 노동자의 명복을 빈다”며,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 자격으로 발언에 나섰다. 그는 “서부발전의 사고 경위 발표를 보고 놀랐다”며 “2018년 김용균 사고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작업 오더가 없던 임의 작업 중 사고가 났다’는 식의 원청의 책임을 회피하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권 대표는 “기계 작업실은 원래 공무부 또는 공무실로 직영 운영됐던 곳이고, 기계 문제를 상시로 수리하는 공간이기에 원청의 직접 지시 아래 움직이는 곳”이라며 “이를 외주화해 운영한 것이 적법한지도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기계가 노후화되어 위험 작업 상황에서 자동 멈춤이 가능했는지 여부, 혼자 작업하게 된 경위, 발전소 폐쇄에 따른 인력 충원이 실제로 이뤄졌는지 여부, 관리감독 체계 부재 등도 철저히 조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대표는 "김용균의 희생으로 우리는 원청의 책임을 묻기 위해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었다"면서 두 법에 따라 "원청이 경영 책임자로서 또는 안전 보건 관리 총괄 책임자로서 의무를 다했는지 면밀히 조사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부발전에서 김용균이 또 죽었다". 공공운수노조 제공

“6년 전과 다르지 않다…근본적인 변화 필요”

민주노총 유희종 세종충남본부장은 “6년 전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으로 온 국민이 충격에 빠졌는데, 그 비극이 오늘 또다시 반복되었다”며 “이는 구조적 무책임이 낳은 필연적 참사”라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 정권이 선언했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는 공허한 메아리로 남았고, 비정규직들은 더 위험한 환경에 놓였다”며 “원청은 책임을 회피하고, 하청 노동자들은 죽음의 현장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이라도 중대재해처벌법을 강화하고,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즉각 이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공공운수노조 엄길용 위원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제대로 집행됐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크다”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야말로 고인을 위한 최소한의 위로”라고 말했다. 그는 “서부발전과 하청업체는 이미 책임 회피에 골몰하고 있다”며 “공공운수노조가 앞장서 이 투쟁을 끝까지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고 김충현 노동자의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는 이날 기자회견문을 통해 "태안화력발전소는 발전소 정비업무를 한전KPS에 위탁했고, 한전KPS는 발전소로부터 위탁받은 업무를 다시 소규모 하청업체에 위탁했다"며 "돈에 눈이 먼 사장들은 공공기관이 던져준 먹이를 뜯어먹기 위해 달려들어 4명, 10명짜리 하청업체들이 난립했다. 노동자들은 하청의 하청, 비정규직의 비정규직으로 쪼개지고 찢어졌다"고 비판했다. 

또한 "원청인 태안화력발전소는 발전소가 폐쇄되니 필요한 인력이라도 충원하지 말라고 지시했다"며 "원청이 던져준 이윤이 줄어들자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안전이 가장 먼저 위협받았고, 위험은 아래로 아래로 흘렀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고인이 돌아가신 6월 2일은 우리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되겠다는 사람이 마이크에 대고 자신의 이름을 온 세상에 외쳤던 마지막 날"이라며 "그들이 얻은 이름과 권력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고 환기하고,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더라도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세상이 반복된다면, 노동자의 요구와 주장이 반복된다면, 바뀐 것은 대통령의 이름과 얼굴일 뿐"으로 "새로운 대통령이 처음으로 들어갈 곳은 용산도 청와대도 아닌 이곳 태안화력발전소"라고 짚었다. 

대책위원회의 요구안은 다음과 같다. 

하나.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 유족과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 구성

- 원·하청(한국서부발전,한전KPS,한국파워오엔엠)의 사과와 유족 배·보상

- 동료 노동자 트라우마 치료와 휴업급여 등 생계 대책 마련

둘.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화

- 한전KPS 하청노동자 직접고용 정규직화

- 김용균 특조위 발전 비정규직 정규직화 권고 이행

- 노동안전을 위한 연료·환경설비 운전 및 경상정비 분야 노동자 직접고용 정규직화

셋. 현장 인력 확충 및 안전 대책

- 위험업무 2인 1조

- 발전소 폐쇄를 핑계로 채우지 않고 있는 인력 충원

- 관리 감독 사각지대 해소

넷. 발전소 폐쇄 관련 대책 마련

- 발전소 전체 노동부 특별근로감독 실시

- 발전소 폐쇄 관련 모든 노동자 총고용 보장

- 공공재생에너지 확대

한편, 대책위원회는 4일과 5일 저녁 7시, 태안버스터미널 앞에서 추모 문화제를 개최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한 노동자·시민의 마음을 모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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