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1일, 제네르-이쉬(Genel-İş) 노조 소속 DISK 조합원들이 인간다운 임금을 요구하며 이즈미르 시에서 2만 3천 명 규모로 파업하고 행진했다. 사진: Umar Karatepe, DİSK. 출처: Labor Notes
튀르키예에서는 정부에 맞서 노동자 조직화를 시도한 노동 지도자들이 체포되고 있다. 이 정부는 노동을 자신의 의지에 굴복시키려 한다.
한 사람, 즉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ğan) 대통령에게 권력을 집중시키기로 국민이 투표한 이후 튀르키예 노동자들이 겪은 일은, 다른 나라 노동자들에게 경고등처럼 깜빡이고 있다.
“민주주의가 축소되면 노동자들은 고통받는다. 한 사람이 모든 권력을 쥐면 더 그렇다.”
튀르키예 진보노동조합총연맹(DISK)의 위원장 아르주 체르케조울루(Arzu Çerkezoğlu)는 이렇게 말했다.
“의회는 무용지물이 되었고, 권력 분립도 사라졌다. 대통령은 제정되는 법과 사법 체계를 모두 통제할 수 있다. 사법부는 정치의 도구가 되었다.”
“우리 노동법은 제 기능을 하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노동자들이 국민소득에서 가져가는 몫은 줄었다.”
현재 연간 물가상승률은 38%이며, 이는 2021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주거 및 공공요금에 대한 연간 인플레이션은 74%에 달한다.
DISK는 공공 및 민간 부문의 블루칼라 노동자들을 대표한다. 자매 연맹인 KESK는 공공부문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을 대표한다. DISK의 32만 7천 명 조합원 가운데 다수는 지방자치단체나 공장에 근무한다.
2017년, DISK는 헌법 개정 국민투표에서 대통령에게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안건에 반대표를 던지도록 조합원들을 교육했다. 에르도안은 2014년부터 대통령직을 맡고 있었고, 그 이전에는 2003년부터 총리를 지냈다.
“우리는 작업장에서 교육했다.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보여주고,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예측했다.”
체르케조울루는 이렇게 설명했다.
하지만 튀르키예의 노조 조직률은 10~12%에 불과하고, 일부 노조 지도자들은 에르도안 지지자다. 국민투표는 51.4% 찬성으로 통과되었고, 에르도안은 2019년부터 막강한 새 권한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노조 지도자들, 잦은 체포에 시달려
현재 노조 지도자들의 체포는 흔한 일이 되었다. DISK 부위원장 한 명은 최근 “테러 활동” 혐의로 구금되었다. 유럽에서 노동조합 탄압이 튀르키예보다 심한 나라는 독재가 공식화된 벨라루스밖에 없다.
“이러한 체포는 사회 전체에 침묵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체르케조울루는 이렇게 말했다. 그 메시지는 끊임없고 전방위적으로 퍼지고 있다. 유명 영화배우 두 명은 2013년에 발언한 내용을 이유로 최근 정부에 의해 고소당했다.
전통적으로 DISK는 노동절마다 대규모 시위를 주도해 왔다. 올해도 정부는 이스탄불의 유명한 탁심 광장에서의 노동절 집회를 금지했는데, 이는 1979년 이후 거의 매년 반복되는 조치다. 그래서 노조들과 청년들은 다른 장소에 모였고, 인원은 약 5만에서 10만 명 사이였다. 이들이 외친 슬로건은 “우리는 빵과 정의, 자유를 되찾을 것이다”였다.
올해 대선에서 이스탄불 시장 에크렘 이마모을루(Ekrem Imamoğlu)가 자신을 이길 수도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 에르도안은 3월에 그를 체포했고, 테러, 부패, 학력 위조 혐의를 적용했다. 그로부터 10주가 지났지만, 이마모을루는 여전히 재판 전 구금 상태로 수감되어 있다.
실리브리(Silivri)는 춥다
체포 이후, 오쥬르 첼릭(Özgür Çelik)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무엇보다 먼저 거리로 나선 조직된 집단이 바로 노동조합이었다.”
첼릭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이자 에크렘 이마모을루(Imamoğlu)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운 공화인민당(CHP)의 이스탄불 지부장이었다.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들과 노조 대표들이, 선출된 시장의 체포에 항의하기 위해 [역시 체포된] 시슬리(Şişli) 자치구청 앞에 먼저 서 있었다. 그들은 용기와 결의로 앞장섰다.”
“곧이어 튀르키예 전역에서 — 특히 DISK 소속 노조들 — 대규모로 사람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무려 일주일 동안 매일 이스탄불의 사라찬에(Saraçhane)에 모였다. 매일, 각 노조는 조합원들과 함께 와서, 이 반민주적 시도를 물리치기 위한 싸움에 어깨를 나란히 했다.”
“3월 19일 이후, 우리는 매주 주말마다 튀르키예의 다른 도시에서, 매주 주중마다 이스탄불의 다른 지역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노동조합들은 여전히 깃발과 현수막, 조합원들과 함께 나타나 우리 운동에 강력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있다.”
튀르키예가 나아가는 방향에 대해 쌓여온 분노 때문에, 체포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에서는 다른 반정부 요구들도 함께 터져 나왔다.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자, 에르도안은 지지율을 잃기 시작했다.
나는 이마모을루가 구금되어 있는 악명 높은 실리브리 교도소를 직접 보았다. 실리브리는 이스탄불 외곽 지역이다. 노조원들 사이엔 오래된 농담이 있다. 누군가 정치적인 발언을 시작하다가 멈추고는 “있잖아, 실리브리는 춥거든…”이라고 말한다. 그 주에 민주주의 지지 집회가 실리브리에서 열렸고, 연설자들은 군중에게 “이제 실리브리는 그렇게 춥지 않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노조 금지
DISK의 역사도 1980년 군부 쿠데타로 끊겼다. 군부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DISK와 그 산하 노조들은 금지되었다. 집행위원회 전원이 테러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건 계급 의식에 기반한 개입이었다.”
체르케조울루는 이렇게 말했다.
“주요 목표는 노동자 계층과 노동권이었다. 노동자들은 10년 동안 대부분의 노조 권리를 잃었다. 노조의 자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감옥에 가지 않은 지도자들은 유럽으로 망명해 독재정권을 비판하는 선전 활동을 벌였고, 수감된 노동자들과 그 가족을 위해 기금을 모았다. 일부 튀르키예 노동자들은 기업 친화적인 ‘노란’ 노조에 강제로 가입해야 했다.
1992년이 되어서야 진짜 노조들이 다시 허용되었다. 그러나 돌아온 많은 지도자들은 일자리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정부는 조직할 권리를 보호하는 대신 사용자 편에 서서 경찰을 동원해 조합원들에게 압박을 가했다.”
첼릭은 이렇게 말했다.
“이런 일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도 차탈자(Çatalca)에 있는 폴로네즈(Polonez)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해고됐고, 항의하려 하자 경찰에게 둘러싸였다.”
CHP와 DISK는 노조 조직화에 대한 장벽을 철폐하고, 작업장 안전을 보호하며, 세금 부담을 노동계층에서 부유층으로 전환하자고 촉구했다.
민주주의와 노조 투쟁
“튀르키예는 다양한 생각을 갖기 어려운 나라다.”
체르케조울루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익숙하다. 우리는 1967년에 창립된 이후 항상 정부를 비판해 왔고, 항상 표적이 되어왔다.”
DISK 이스탄불 지부장 아살레틴 아르슬라노을루(Asalettin Arslanoğlu)는 자신이 지금까지 일곱 번 체포되었고, 총 1년 반을 감옥에서 보냈다고 말했다.
DISK의 지도자들은, 사회 전체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과 조합원 권리를 위한 투쟁을 동시에 이어가야 하며, 이 두 가지 싸움은 똑같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5월 31일, 이즈미르에서는 2만 3천 명의 지방자치단체 노동자들과 그 가족 — 운전기사, 정원사, 청소노동자 등 — 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하고 행진했다.
체르케조울루는 체포가 두렵지 않은가?
“아니.”
그는 이렇게 답했다.
“체포되는 것도 투쟁의 일부다. 매일 아침 나는 ‘오늘은 누가 체포될까?’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일에 익숙해지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출처] Turkish Workers: You Don’t Want a Strongman - Truthdig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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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슬로터(Jane Slaughter)는 『노동노트』(Labor Notes)의 전 편집장이며, 『성공적인 조직가의 비결』(Secrets of a Successful Organizer)의 공동 저자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