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는 이제 어떤 이성적인 사람도 "글로벌 비즈니스가 이전과 같이 계속될 수 있다"는 환상을 더는 유지할 수 없게 만들었다. 트럼프의 충격적인 행동, 결정, 발언들에 분노하더라도 우리는 이 현실을 환영해야 한다.
세계 경제는 균형을 되찾거나, 아니면 2008년 금융 위기를 산책처럼 느끼게 할 만큼의 충격적인 붕괴를 겪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진지하게 던져야 할 유일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누가, 무엇을 통해, 글로벌 다수(개도국)를 해치고 글로벌 소수(서구 경제권) 전역에 파시즘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불균형을 되돌릴 수 있을까?
우리는 누가 무기력한지 알고 있다. 유럽연합이다. 유럽연합이 세계 재균형 과정에 스스로를 배제한 이유는 공동 통화(유로)의 원래 설계에 있고, 이후 유로 위기의 혼란 속에서도 재정 및 투자 의사결정을 연방화할 기회를 단호히 거부한 데 있다. 그 결과 유럽연합은 지금 구조적인 장기 침체와 정치적 분열 속에 진입했다.
우리는 또한 누가 의지가 없는지도 알고 있다. 미국이다.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는 무역과 자본 흐름의 재균형에 대해 미사여구를 늘어놓지만, 그가 속한 트럼프 행정부는 한편으로는 달러 가치를 낮추고, 다른 한편으로는 더 많은 자본을 미국으로 유치하려는 모순된 목표에만 관심을 쏟는다. 이 모순은 미국이 감당할 수 없는 강력한 강제력 없이는 풀 수 없는 문제다.
그렇다면 누가 남았을까? 답은 중국이다. 2009년 4월 런던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당시, 중국 대표단은 1944년 브레튼우즈 회의를 재검토하고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제안했던 국제청산연합(ICU) 구상을 부활시키자는 아이디어를 환영했다. 하지만 1944년 미국이 케인스의 제안을 거부했듯, 2009년에도 미국은 중국의 제안을 외면했다. 그 이후 16년의 슬픈 역사는 우리 눈앞에 펼쳐졌다. 불균형은 커졌고, 이제는 통제 불가능한 수준에 도달했다.
유럽연합은 할 수 없고, 미국은 하려 하지 않는 상황에서, 중국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 대답은 이렇다. 미국과 유럽연합이 빠진 상태에서 새로운 브레튼우즈 체제를 BRICS+ 국가들과 함께 시작하고, 이 시스템의 이점이 분명해지면 점차 다른 국가들을 참여시키는 것이다. 오해하지 않도록 말해두자. 내가 말하는 것은 1950~60년대에 작동했던 기존 브레튼우즈 체제를 중국이 부활시켜 새로운 패권국이 되라는 뜻이 아니다. 내가 제안하는 것은 중국이 BRICS+ 파트너들과 긴밀히 협력하여 다자주의적이고 비패권적인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라는 것이다. 이는 케인스가 1944년에 제안했으나 루스벨트 대통령 팀이 미국의 패권 확립을 위해 거부했던 바로 그 체제를 되살리는 방식이다.
이 새로운 브레튼우즈 체제가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 설명하기 전에, 특히 서구에서 나올 법한 반론들을 먼저 짚고 넘어가겠다. 많은 이들이 중국이 자본 통제를 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 무역 시스템의 중심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브레튼우즈 체제 자체가, 그리고 케인스의 ICU 제안도 모두 자본 통제를 기반으로 했다는 사실을 잊었는가? 또 다른 반론은 대규모 국제 무역 및 통화 시스템의 중심 국가가 되려면 무역적자를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들은 원래 브레튼우즈 체제가 미국의 무역흑자를 유지하기 위한 체제였다는 점을 잊었는가? 분명히 이런 반론들은 진지한 경제 분석이 아니라 반론자들의 편견을 반영할 뿐이다.
이제 이 새로운 브레튼우즈 체제가 어떻게 비패권적이고 상호 이익에 기반한 진정한 다자 시스템으로 작동할 수 있을지를 설명하겠다. 시장 주도형 무역 체제가 필연적으로 불균형을 확대하는 경향을 보이는 현실에서, 케인스는 "조정 과정이 채무국에는 강제적이고, 채권국에는 자발적인" 시스템을 "채무국과 채권국 양측에 대칭적으로 조정 부담이 부과되는" 시스템으로 대체하자고 제안했다. 내가 제시하는 시스템은 그 방향을 따른다.
참여 국가는 자국의 통화와 중앙은행을 유지한다. 국가 간의 모든 무역과 자본 흐름은 공통의 디지털 회계 단위로 표시한다. 이를 ‘코스모스(kosmos)’라고 부르자. 각국 중앙은행은 공통 기관(예: 신개발은행)에 코스모스로 표시된 준비 계정을 보유한다. 이 기관은 투명한 디지털 분산 원장과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코스모스를 발행한다. 알고리즘은 세계 무역량에 따라 코스모스 공급량을 사전에 합의된 방식으로 조정하며, 경기 둔화 시에는 자동적인 경기대응 요소를 포함해 공급을 늘릴 수 있게 설계한다.
외환시장은 현재처럼 운영되고, 코스모스와 각국 통화 간의 환율은 IMF의 특별인출권(SDR)처럼 달러, 유로, 엔화 등과의 비율에 따라 변동한다. 다른 점은 참여국 간의 모든 결제는 각국 중앙은행의 코스모스 계정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이다.
여기까지는 시스템 내에서 무역수지 불균형이 누적되는 경향을 완화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새로운 제도는 두 가지 핵심 개입을 가능하게 해주며, 이 개입은 단지 불균형을 억제할 뿐 아니라 상호 발전의 막대한 잠재력도 열어준다. 나는 이 두 가지 개입을 ‘징수금(Levy)’과 ‘부과금(Charge)’이라고 부른다. 다음 글에서 이들이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하겠다.
징수금(Levy)
각국의 경상수지 적자나 흑자 규모에 비례하여, 해당 중앙은행의 코스모스 계정에서 매년 공제하는 무역불균형 징수금이다. 이 금액은 코스모스를 발행하는 다자기구에 설치된 공통개발기금(Common Development Fund, CDF)에 납부된다.
부과금(Charge)
민간 금융기관이 자본 유출 급증 시 동일한 공통기금(CDF)에 납부하는 '급등 요금(surge fee)'이다. 이는 우버(Uber) 같은 기업이 교통 혼잡 시 요금을 올리는 방식과 유사하다.
징수금의 목적은 흑자국 정부가 자국 내 소비와 투자를 늘리도록 유도하고, 동시에 적자국의 국제적 소비 능력을 체계적으로 줄이기 위함이다. 외환시장은 이를 고려해 경상수지 불균형에 더 빠르게 반응하며 환율을 조정하고, 오늘날 만성적 무역 불균형을 떠받치고 있는 자본 흐름 상당 부분을 상쇄하게 된다. 한편 부과금은 투기성 자본의 무리한 유입 또는 유출을 자동으로 억제하지만, 관료에게 재량권을 부여하거나 경직된 자본통제를 시행할 필요는 없게 만든다.
이러한 새로운 브레튼우즈 체제 하에서, 공통기금인 CDF를 통해 참여국들은 별도의 납입 자본 없이도 즉시 새로운 글로벌 국부펀드(Global Sovereign Wealth Fund)를 확보하게 된다. 이는 기존 신개발은행(New Development Bank)의 기금 외에 추가되는 자금이며,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한다. 하나는 세계 무역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구적 차원의 ‘정의로운 녹색 전환(Just Green Transition)’을 위한 신규 재원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런 체제가 실현 가능할까? 물론이다. 중국은 고도로 정교한 디지털 결제 시스템 분야에서 특히 높은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세계 나머지 지역은 이제 불균형과 착취를 낳는 시스템이 아니라, 안정성과 상호 이익을 창출하는 무역 체제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우리는 또한 국제 청산 시스템에 대한 제도적 경험도 축적해 왔다. 지금 세계에 부족한 것은 이 모든 요소를 하나로 결합할 수 있는 정치적 프로세스다.
만약 도널드 트럼프가 세계 경제의 균형을 맞추겠다며 시행한 충격요법이, 오히려 중국이 그 도전에 응하도록 자극하고, BRICS뿐 아니라 전 세계 여러 국가와 협력해 1944년 케인스가 구상했던 다자주의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만든다면, 그것은 얼마나 아이러니하면서도 통쾌한 일이겠는가? 그 시스템은 당시 미국이 세계 지배를 위해 거부했던 것이고, 그로부터 미국은 80년 가까이 세계를 지배해 왔다.
[출처] A Chinese New Bretton Woods? - Quancha op-ed - Yanis Varoufakis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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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니스 바루파키스(Yanis Varoufakis)는 경제학자이자 그리스의 전 재무장관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