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계급 기반 사회는 불평등한가?
출처: Marija Zaric, Unsplash
지난번에 나는 서브스택에서 호모플루티아(homoploutia)라는 개념을 다뤘다. 간단히 말해, 글 전체를 다시 읽고 싶지 않은 사람을 위해 요약하면,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부유층 중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부유하다는 실증적 관찰에서 출발한다. 이들은 가장 많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가장 부유한 자본가이기도 하다. 나는 이를 측정하기 위해 전 세계 20여 개국에서 세후 소득 상위 10%, 노동소득(임금) 상위 10%, 자본소득(지대, 배당, 이자) 상위 10%를 살펴봤다. 그 결과 미국의 세후 소득 상위 10% 중 거의 3분의 1이 ‘호모플루틱(homoploutic)’이었다. 즉, 이들은 최고의 임금을 받는 동시에 가장 부유한 자본가였다. 이 집단은 미국 인구의 약 3%에 해당하는 엘리트다. 내가 『홀로 선 자본주의』(Capitalism, Alone)와 곧 출간될 『위대한 글로벌 전환』(The Great Global Transformation)에서 논의했듯이, 이 엘리트는 흔히 말하는 전문직 중산층이나 전문경영계급(PMC)과 전혀 닮지 않았다. 이들은 자기 자신 안에서 자본과 노동을 결합했기 때문에, 이념적으로 강력하게 친자본주의적이며 사유재산 옹호 성향을 보인다. 그래서 자본의 권리, 자본소득과 부에 대한 낮은 세금, 그리고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적극적으로 방어한다. 신자본주의 엘리트의 이런 신자유주의적 성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자본소득과 노동소득 사이의 모순이 부유층뿐 아니라 전체 소득 분포 전반에서 해소된다면 어떻게 될까? 모든 사람이 자본과 노동에서 동일한 비율로 소득을 얻는다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부유층이 노동에서 100달러, 자본에서 50달러를 받고, 중산층이 노동에서 40달러, 자본에서 20달러를 받으며, 가난한 사람이 노동에서 2달러, 자본에서 1달러를 받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여기서 알 수 있는 점은 소득 자체는 불평등하지만, 그 구성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의 노동 대 자본 소득 비율이 2 대 1로 같다. 구성적 평등이 주는 명확한 함의는, 인공지능 확산으로 자본소득 비중이 높아지더라도 전반적인 불평등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본소득의 중요성이 두 배로 커진다면 모든 사람의 소득이 같은 비율로 증가하고, 소득 비율은 그대로 유지된다. 예컨대 소득 분포가 (150, 60, 3)에서 (200, 80, 4)로 바뀌더라도, 상위 두 사람의 소득 비율은 여전히 2.5 대 1, 상위와 최하위는 50 대 1, 두 번째와 세 번째는 20 대 1로 변하지 않는다.
내가 호모플루티아를 정의하던 시기, 마르코 라날디(Marco Ranaldi)는 파리경제학교에서 박사 논문을 쓰며 바로 이 문제를 연구했다. 구성적 불평등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내 예시에서 보듯, 구성적 불평등은 소득 불평등과 다르다. 구성적 평등이 완전히 이루어져도 소득 불평등은 여전히 매우 클 수 있다. 이를 분석하기 위해 라날디는 지니 계수를 참고해 전혀 새로운 방법론을 개발했다. 지니 계수가 모든 사람의 소득이 같아지는 것을 목표 함수로 삼는 것과 달리, 라날디는 모든 사람의 소득 구성 비율이 같아지는 것을 목표로 두고, 그로부터의 편차를 합산해 불평등을 계산했다. 그는 이를 ‘소득요인구성지수(IFC, income factor composition index)’라 정의했다. IFC 값은 모든 사람이 동일한 소득 구조를 가진 경우 0이 되고, 반대로 상위 x%의 사람들이 자본소득만 가지고(자본소득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 나머지 1-x%의 사람들이 노동소득만 가지는 경우 1이 된다.
라날디의 접근법은 두 가지 실증 지표—소득 불평등 수준(예: 지니계수)과 계급 기반 사회를 대변하는 구성적 불평등 정도—를 함께 분석하며 서로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를 연구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을 만들었다. 이렇게 우리는 사회학적·정치적 요소(계급 사회)와 경제적 요소(불평등 정도)를 결합했다. 마르코 라날디와 나는 룩셈부르크 소득연구(Luxembourg Income Study)의 미시 데이터를 이용해 다음과 같은 그래프를 만들었다.
그래프 설명: 그래프의 세로축에는 확장된 시장소득(임금, 이자, 배당, 지대, 자영업 소득, 연금 포함)의 지니계수를, 가로축에는 구성적 불평등 지수를 표시했다. 자료는 룩셈부르크 소득연구(LIS)의 미시 데이터를 바탕으로, 2020년 전후 시기를 기준으로 계산했다.
그래프의 오른쪽 위(NE)에서 왼쪽 아래(SW)로 직선을 그어 보면, 예상대로 구성적 불평등이 낮아질수록 소득 불평등이 줄어드는 경향이 나타난다. 오른쪽 위 모서리에 있는 라틴아메리카를 보자.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소득 불평등이 높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구성적 불평등도 매우 높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즉, 부유층은 대부분 자본에서 소득을 얻고, 중산층과 빈곤층은 노동에서 소득을 얻는다. 전형적인 계급 기반 사회다. 고전적 자본주의에서 두 불평등이 함께 움직이는 것이 “정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직선을 따라 내려오면, 소득 불평등 수준이 중간(지니계수 약 3,540)이고 구성적 불평등도 중간인 부유한 국가들이 다수 나타난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들 국가 중 상당수에는 호모플루틱 엘리트가 존재하며, 이들이 구성적 불평등 지수를 낮추는 경향이 있다. 마지막으로, 왼쪽 아래 모서리에는 소득 불평등(지니계수 약 3,035)과 구성적 불평등이 모두 낮은 국가들이 있다. 대만과 슬로바키아가 그 대표적 사례다. 반면, 중국은 구성적 불평등은 낮지만 소득 불평등은 상대적으로 높은 국가로 눈에 띈다. 중국이 계급 기반이 아니면서도 높은 불평등을 가진 미래형 사회의 전조일 수 있을까?
여기까지는 좋다. 그러나 두 가지 중요한 점이 있다. 먼저 오른쪽 아래 모서리에 있는 특이 현상을 보자. 이곳에는 주로 북유럽 국가(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덴마크)가 위치하는데, 이들은 소득 불평등은 낮지만, 구성적 불평등이 높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주로 사적 연금에서 나오는 소득 때문이다. 사적 연금은 (당연히) 자본소득으로 분류된다. 그래서 연금 기금을 인출하는 많은 고령층은 소득 대부분을 소유에서 얻고, 근로연령층은 대부분의 소득을 노동에서 얻는다. 이렇게 되면 구성적 불평등이 높아진다. (물론 현재의 근로자들은 미국의 401(k)처럼 사적 연금 기금에 저축해 미래 연금을 준비할 수 있지만, 아직 거기서 자본소득을 받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해서 겉보기에 특이한 현상이 나타난다. 북유럽과 라틴아메리카 모두 구성적 불평등이 높지만, 전자는 소득 불평등이 낮고 후자는 높다.
다음으로 왼쪽 위 모서리를 보자. 그곳에는 아무 나라도 없다. 라날디는 다른 논문에서 이를 중요한 “비결과(non-result)”라고 부른다. 이론적으로는 구성적으로 평등한 국가가 높은 소득 불평등을 가질 수 있다. 내 단순한 예시에서 지니계수는 46이었는데, 상위 인물의 노동소득을 100만 달러, 자본소득을 50만 달러로, 두 번째 인물의 노동소득을 10만 달러, 자본소득을 5만 달러로, 세 번째 인물의 노동소득을 2달러, 자본소득을 1달러로 설정하면 된다. 이렇게 해도 라날디의 IFC 지수는 0이지만, 지니계수는 무려 61로 치솟는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구성적 불평등이 낮으면 소득 불평등도 낮은 경향이 있다. 이 점은 우리의 논문이 그렇듯, 중국과 대만의 대비 사례처럼 다양한 현대 자본주의 유형에 대해 생산적인 논의를 열어준다. 이렇게 하면 지금까지 지루하게 이어져 온 ‘자본주의의 다양성’ 논쟁—예를 들어 노르웨이와 미국의 육아휴직 제도 비교—에서 벗어나, 지난 30년간 인도네시아, 브라질, 나이지리아, 케냐, 러시아, 태국 등에서 등장한 다양한 형태의 자본주의를 정치·경제 요소를 아우르는 실증 기반의 분류와 분석으로 전환할 수 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마르코 라날디는 최근 두 편의 논문—하나는 『정치경제 리뷰』(Review of Political Economy) 2025년 5월호, 또 하나는 PIAS 워킹페이퍼—에서 구성적 불평등(즉, 자본 대 노동)을 중심에 둔 분석적·인지적 틀의 가이드라인을 만들고자 한다. 그는 구성적 평등이 훨씬 높아진 사회가 계급 갈등, 기본소득, 인공지능 확산, 기후변화, 나아가 생산양식의 철학에 어떤 의미가 있을 수 있는지 묻는다. 이런 주제에 관심이 있다면 그의 논문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솔직히,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 글에서는 현대 자본주의와 이를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분석 방법에 대한 3부작을 마무리하며… 빠져 있었던 생산 요소, 즉 자본에 대해 다룰 것이다. 나는 자산 소유에서 나오는 소득이 전반적인 소득 불평등에 미치는 중요성과 분포를 살펴볼 것이다. 이 요인은 쿠즈네츠 이후 시기에는 많은 경제학자가 다루기를 꺼렸는데, 자본의 불평등 기여를 이야기하면 ‘사회주의적’이라는 인상을 줄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피케티의 베스트셀러가 등장하면서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다시 주목받았다. 우리는 그 길을 더 멀리 나아가야 한다.
[출처] New Capitalism II: Compositional vs income inequality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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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랑코 밀라노비치(Branko Milanovic)는 경제학자로 불평등과 경제정의 문제를 연구한다. 룩셈부르크 소득연구센터(LIS)의 선임 학자이며 뉴욕시립대학교(CUNY) 대학원의 객원석좌교수다. 세계은행(World Bank) 연구소 수석 경제학자로 활동한 바 있으며, 메릴랜드대학과 존스홉킨스대학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