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유엔 마약·범죄국(UNODC) 국장이었던 피노 알라키(Pino Arlacchi)는 30년에 걸친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베네수엘라 마약국가(narco-state)’라는 허구적 서사를 해체한다.
알라키(Arlacchi)는 트럼프 행정부의 주요 관심사가 베네수엘라의 막대한 석유 매장지에 접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미라플로레스 궁, Miraflores Palace)
내가 유엔 마약범죄사무소 소장으로 일하던 시절, 나는 콜롬비아, 볼리비아, 페루, 브라질을 자주 방문했지만, 베네수엘라에는 한 번도 갈 필요가 없었다. 단순히 그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남미 국가들 가운데에서도 마약 밀매와의 싸움에서 가장 우수한 협력 실적을 보여주었고, 이와 견줄 만한 국가는 쿠바뿐이었다. 그렇기에 도널드 트럼프가 주장한 ‘마약국가 베네수엘라’라는 서사는 지정학적 동기를 가진 중상모략처럼 들린다.
2025년 세계 마약 보고서(World Drug Report)는 트럼프 행정부가 퍼뜨린 서사와 정반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보고서는 ‘카르텔 데 로스 솔레스(Cartel de los Soles)’를 중심으로 조작된 지정학적 거짓말을 하나하나 무너뜨린다. 이 조직은 네스호의 괴물만큼이나 신화 같은 존재이지만,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 중 하나를 가진 나라에 대해 제재, 봉쇄, 군사 개입 위협을 정당화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됐다.
베네수엘라: 세계 마약 거래에서 주변부에 있는 국가
2025년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ODC) 보고서는 명확하며, 수사적 언어로 베네수엘라를 악마화해온 이들을 부끄럽게 만들어야 한다. 보고서는 베네수엘라를 단 한 줄 언급하면서, 콜롬비아산 마약 중 소량이 미국과 유럽으로 향하는 경로로 베네수엘라를 통과한다고 설명한다. 유엔에 따르면, 베네수엘라는 코카잎과 대마초 및 유사 작물의 재배, 그리고 국제 범죄 카르텔의 존재로부터 자유로운 영토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했다.
이 보고서는 지난 30년 동안의 연례 보고서들이 밝혀온 사실을 단지 다시 확인했을 뿐이다. 그 보고서들에서는 베네수엘라의 마약 밀매에 대해 다루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그런 밀매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콜롬비아산 마약 중 단 5%만이 베네수엘라를 경유한다. 맥락을 위해 2018년의 수치를 보자면, 베네수엘라를 통과한 코카인 양은 210톤이었고, 같은 해 콜롬비아는 최대 2,370톤을 생산 또는 거래했으며, 과테말라는 1,400톤을 생산 또는 거래했다. 이는 베네수엘라의 10배, 7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그렇다. 과테말라는 볼리바르식 ‘마약국가’라고 주장되는 베네수엘라보다 7배 더 중요한 마약 통로다. 하지만 아무도 이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과테말라는 도널드 트럼프가 관심을 갖는 유일한 마약, 즉 석유에서 전 세계 총량의 단 0.01%만을 차지할 뿐이기 때문이다.
신화적인 “태양의 카르텔(Cartel de los Soles)” — 헐리우드식 허구
“카르텔 데 로스 솔레스(Cartel de los Soles)”는 트럼프의 상상 속에서 탄생한 창작물이다. 그는 이 조직을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이끄는 것으로 주장한다. 하지만, 이 조직은 세계 최고의 마약 단속 기관은 물론, 유럽을 포함한 그 어떤 범죄 단속 기관의 보고서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각주 하나조차 없다. 이 무언의 침묵은 최소한 비판적 사고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주목해야 한다. 도대체 어떻게 5천만 달러 현상금이 걸릴 만큼 강력한 조직 범죄 집단이, 마약 퇴치에 관여하는 모든 기관으로부터 완전히 무시될 수 있는가?
달리 말하면, 넷플릭스에 나올 법한 초대형 카르텔로 포장된 이 조직은 실제로는 소규모 지역 네트워크들의 집합에 불과하다. 이는 미국을 포함한 어떤 나라에서나 존재하는 일상적인 범죄 수준이며, 매년 약 10만 명이 베네수엘라와 아무 관련 없는 미국의 거대 제약사(Big Pharma)가 생산한 오피오이드 과다 복용으로 사망하는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에콰도르: 모두가 외면하는 진짜 허브
워싱턴이 베네수엘라의 위협을 과장하는 사이, 실제 마약 밀매의 중심지는 거의 방해받지 않은 채 번성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에콰도르에서는 과야킬(Guayaquil)에서 출발해 앤트워프(Antwerp)에 도착하는 바나나 컨테이너의 57%에 코카인이 실려 있다. 유럽 당국은 에콰도르 항구에서 출항한 스페인 선박에서 코카인 13톤을 압수했다. 이 항구들은 에콰도르 정부 관료들의 비호를 받는 기업들이 통제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과야킬 항만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를 작성했으며, “콜롬비아, 멕시코, 알바니아 마피아 조직들이 에콰도르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라고 기록했다. 에콰도르의 인구 10만 명당 살인율은 2020년 7.8명에서 2023년 45.7명으로 급증했다. 그런데도 에콰도르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왜일까? 어쩌면 에콰도르가 전 세계 석유 생산의 단 0.5%만을 차지하고, 미국의 중남미 장악에 반기를 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진짜 마약 경로: 지리 vs. 선전
내가 유엔 마약범죄사무소에서 일하면서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지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약 경로는 생산지에 가까운 위치, 운송 용이성, 현지 당국의 부패, 그리고 기존 범죄 네트워크의 존재 여부에 따라 명확한 논리에 따라 형성된다. 베네수엘라는 이 기준들 대부분을 충족하지 못한다.
콜롬비아는 전 세계 코카인의 70% 이상을 생산한다. 페루와 볼리비아는 나머지 대부분을 담당한다. 미국과 유럽 시장으로 향하는 가장 논리적인 경로는 다음과 같다: 태평양을 통해 아시아로 가는 길, 동카리브해를 통해 유럽으로 가는 길, 중미를 육로로 통과해 미국으로 가는 길. 지리적으로 베네수엘라는 이 세 주요 경로 모두에서 불리하다. 베네수엘라는 남대서양과 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범죄 조직의 물류 관점에서 보면, 베네수엘라는 국제 마약 거래라는 거대한 극장의 변두리 역할에 머물고 있다.
쿠바: 불편한 모범 사례
지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정치는 그것을 왜곡할 수 있다. 오늘날까지도 쿠바는 카리브해에서 마약 퇴치 협력의 황금 기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쿠바는 플로리다 해안에서 멀지 않은 섬이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미국을 향한 마약 밀매의 완벽한 거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미 마약단속국(DEA)과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이 쿠바 공산당의 엄격한 마약 퇴치 정책에 감탄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차베스주의 노선을 따르는 정권에서 베네수엘라는 마약과의 싸움에서 피델 카스트로가 시작한 쿠바 모델을 일관되게 따라왔다. 이 모델은 국제 협력, 영토 통제, 범죄 활동에 대한 단속을 포함한다. 베네수엘라와 쿠바 모두, 코카 재배지나 조직범죄가 통제하는 광대한 지역을 가져본 적이 없다.
유럽연합은 베네수엘라의 석유에 특별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 않지만, 자국 도시들을 위협하는 마약 밀매와의 싸움에는 관심이 있다. EU는 2025년 유럽 마약 보고서(European Drug Report)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지정학적 환상에 근거하지 않고, 실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으며, 국제 마약 밀매의 경로로서 베네수엘라를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정직한 분석과 거짓되고 모욕적인 서사의 차이다. 유럽은 시민들을 마약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가 필요하며, 따라서 정확한 보고서를 작성한다. 반면, 미국은 석유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정보처럼 포장된 선전물을 만들어낸다.
유럽 보고서에 따르면, 코카인은 EU 27개국에서 두 번째로 많이 사용되는 마약이며, 공급 출처는 명확히 밝혀져 있다. 생산은 콜롬비아, 유통은 중미와 서아프리카 여러 경로를 통해 이루어진다. 베네수엘라와 쿠바는 이 그림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베네수엘라는 진실의 모든 원칙에 어긋나게 체계적으로 악마화되고 있다. 전 FBI 국장 제임스 코미(James Comey)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미국의 베네수엘라 정책 이면에 존재하는 공식적으로 말해지지 않은 동기를 폭로했다. 트럼프는 그에게 “마두로 정부는 우리가 사야 할 석유산 위에 앉아 있다”고 말했다. 이건 마약도, 범죄도, 국가 안보도 아니다. 미국이 돈을 주고 사기 싫어하는 석유 문제다.
국제사회의 현상금이 걸려야 할 인물은 도널드 트럼프다. 그는 “주권 국가의 석유 자원을 탈취하기 위해 계획적 중상모략을 펼친 죄”를 저질렀다.
[츨처] The Great Hoax Against Venezuela: Oil Geopolitics Disguised as ‘War on Drugs’ - Venezuelanalysis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
피노 알라키(Pino Arlacchi)는 전 유엔 빈 사무소 부사무총장이자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ODC) 집행국장이었다.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