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정상회의 빌미로, 이주노동자 ‘인간사냥’ 나서겠단 법무부”

법무부가 오는 31일 경북 경주시에서 열리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앞두고,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정부합동단속에 나선다고 밝혔다. 노동계와 이주인권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는 한국 사회를 함께 지탱하고 있는 구성원인 “이주노동자는 단속의 대상이 아닌 권리 보장의 대상이어야 한다”면서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정부의 “폭력적 단속·추방”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법무부가 9월 30일 발표한 미등록 이주민 정부합동단속 계획 관련 보도자료

법무부는 지난 9월 30일 보도자료를 통해 9월 29일부터 12월 5일까지 68일간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정부합동단속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정부합동단속 기간에는 ‘APEC 2025 KOREA’의 성공적인 개최를 지원하기 위해 경주 지역을 중심으로 집중단속을 실시하는 한편, 인근 외국인 밀집 지역 등에 대한 순찰활동도 강화하여 외국인 체류 질서 확립에도 만전을 기할 것”이라는 계획이다.

법무부는 이번 단속을 통해 “불법체류뿐만 아니라 국민 일자리 침해, 국민 안전 위협, 미풍양속 저해, 불법체류 환경을 조장하는 각종 출입국 알선 사범에 대해서도 집중 단속하여 범칙금 부과, 강제퇴거 및 입국 금지 등 엄중 조치”하겠다는 입장이다.

“국가가 할 일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권리 보장이지 탄압 아냐”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경주지부와 민주노총 경북지역본부 경주지부, 경주이주노동자센터는 1일 성명을 발표하고 “이주노동자는 단속의 대상이 아닌 권리 보장의 대상이어야 한다”면서 “APEC은 핑계에 불과한 이주노동자 합동단속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법무부의 보도자료가 “마치 모든 이주노동자가 국민을 위협하고, 강력 범죄를 숱하게 저지르고 있다는 것처럼 서술돼 있다”면서 “이주노동자는 범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과 다른 편견을 정부가 확대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이미 지역 제조업, 건설업 현장에서는 수많은 이주노동자가 현장에서 땀 흘리며 일하고, 또 살아가고 있다”고 환기했다.

법무부가 보도자료에서 이번 합동단속의 “중점단속 분야는 건설업, 배달·택배업 등 국민 일자리 침해 업종, 마약·대포차 등 국민 안전 위협 외국인 범죄, 마사지·성매매 등 미풍양속 저해 사범, 불법 입국·취업 알선 브로커 등 체류 질서 문란 출입국 사범”이라고 기재하면서, 이주노동자가 시민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각종 범죄를 저지른다는 사회적 편견을 확산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노동계와 이주인권단체는 또한 지역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다수의 “이주노동자는 무권리 상태에 처해 있다”면서 “이런 여건에서 국가가 할 일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권리 보장이지 인권 탄압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지난달 16일 울산 북구 모듈화 산업단지 내 자동차 부품업체 공장에서 벌어진 이주노동자에 대한 폭력적 단속으로 40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에게 수갑을 채워 체포한 일도 환기하면서, “이런 폭력 단속을 APEC이 예정된 경주를 ‘타깃’으로 다시 벌이겠다는 당국의 계획은 무모”하며, “제도를 빌미로 ‘사람’을 사냥하는 일은 사라져야 한다”고 규탄했다.

올해 4월 15일,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반인권적이고 폭력적인 정부 합동단속”을 규탄하는 이주인권단체 기자회견 현장. 참세상 

“국제회의 성공은 폭력적 단속 아닌 이주민 존중·환대 정책으로”

같은 날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도 성명을 발표하고 “APEC을 빙자한 미등록 이주민 합동단속 방침을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미등록 이주민은 결코 단속추방으로 가벼이 치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 땅의 노동과 삶을 함께 일구어 온 우리 사회의 소중한 구성원”이라고 짚고, “단속과 추방을 앞세운 정부의 태도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는 또한 “진정으로 국제회의의 성공을 바란다면, 폭력적 단속이 아니라 국내 체류 이주민을 존중하고 환대하는 정책적 전환이 필요”하다면서 “미국 조지아주에서 한국인이 단속 피해자가 되었을 때 온 국민이 함께 분노한 것처럼, 한국 사회 역시 더 이상 이주민에 대한 폭력과 차별을 모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오늘날 산업현장 인력난의 본질은 산업구조조정 실패와 이주노동자를 노동력으로만 보고, 함께 살아야 할 이웃으로서의 존재를 배제하려는 당국의 잘못된 정책에서 비롯된 것임이 명백하다”면서 정부에 “모든 이주민을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존중하며 제도적 합법화와 권리 보장을 위한 대화에 나서라”, “인권 침해와 인종 차별을 확산시키는 단속·추방 논리를 근본적으로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단속 과정에서 골절상을 입은 여성 이주노동자. 대구경북이주연대회의 제공 사진 

숱하게 죽고 다쳐도 ‘성과’ 자랑하는 법무부

정부의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단속·추방 과정에서 이주노동자의 목숨을 잃고 크게 다치는 비극은 거듭되고 있다. 올해 1월에는 인천의 한 공장에서 출입국 단속을 피해 목재 야적장에 몸을 숨겼던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2월에는 경기도 화성 소재의 한 제조업체에서 출입국 단속 과정 중 카자흐스탄 출신 여성 노동자가 3층에서 추락해 8일간 의식 불명에 빠질 정도로 심각한 골절상을 입은 일이 있었다. 같은 날 경북 경산에서는 제조업체에서 일하던 미등록 이주노동자 7명이 단속을 피하다 척추와 다리를 크게 다쳤다. 3월에는 경기 파주 지역 제조업체 단속 과정에서 난민 신청자인 에티오피아 출신 이주노동자 대형 기계장치 안에 몸을 숨겼다가 오른쪽 발목이 절단되기도 했다.

참사와 비극이 거듭됨에도 법무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추방을 강행하면서 그 ‘실적’을 자랑하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올해 8월 12일부터 9월 12일 한 달간 실시한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집중단속으로 4천617명이 강제퇴거됐다. 법무부는 단속을 통해 “2023년 43만 명이던 미등록 이주만 규모가 올해 9월 현재 36만 명으로 약 7만 명 감소했다”면서 이를 ‘성과’로 내세웠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 지적한 이재명과 김영훈의 공언, ‘인사치레’ 머무나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창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이주정책 원탁토론회에 참석해 “모든 노동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고 모든 노동자는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 “이재명 정부의 노동철학”이고, “국적과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라며 “이재명 정부는 외국인노동자가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잘 살피겠다”고 이야기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8월 12일 국무회의에서 “이주노동자, 외국인,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부당한 차별이나 인권 침해가 재발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철저히 취해 달라”고 관계부처에 주문하면서 “최근 우리 사회 일각에서 특히 외국인들에 대한 혐오, 차별, 폭력이 잇따르고 있다”, “이런 모습들을 다른 나라에서 봤을 때 과연 대한민국이 어떻게 보일지 생각해 봤으면 한다”, “다양성과 포용성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모범국가라는 대한민국 위상에 결코 걸맞지 않는 모습”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영훈 노동부 장관의 이같은 공언은,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확산하고 폭력적인 단속·추방을 강행하는 정부 부처의 행태를 저지할 의지도 힘도 실제 담보하지 못하는 ‘인사치레’에 머무는 것일까. 시민사회의 의문과 분노는 거세게 자라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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