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금값이 트로이온스(troy oz, 31.1035g)당 4000달러(약 560만 원)를 돌파했다. 이는 달러 기준으로 역사상 최고가다(명목가격 기준). 하지만 이 기록도 곧 깨질 것으로 보인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연말까지 금값이 온스당 4900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른 주요 통화로 환산한 금값 역시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이번 금값 급등은 무엇이 원인일까? 그리고 그 의미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금이 자본주의 경제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경제는 화폐 경제다. 자본가들은 시장에서 이윤을 얻기 위해 노동자를 고용해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한다. 하지만 상품과 서비스는 ‘물물교환’ 방식으로 교환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여러 상품 중 일부가 보편적으로 교환수단이자 거래의 계산단위, 가치 저장수단으로 받아들여지며 화폐 역할을 하게 되었다.
결국 금은 그 ‘보편적 상품’, 즉 ‘화폐 상품’의 지위를 차지했다. 금은 썩지 않고, 쉽게 동전이나 금괴로 만들어 거래하거나 저장할 수 있으며, 어디서나 받아들여진다는 점에서 이상적인 재화였다.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금과 은은 본래 돈이 아니지만, 돈은 본질적으로 금과 은이다”라는 명제의 진실은 바로 이러한 금속의 물리적 특성이 화폐 기능에 가장 적합하다는 데서 드러난다.
금은 자본주의 생산체제가 주요 경제를 지배하기 전부터 이미 주요한 화폐 상품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확장되면서, 금은 통화 및 교환 체계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금은 신뢰받는 가치 척도가 되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생산을 비약적으로 확장하면서, 거래량을 감당하기엔 금이나 금화의 양이 부족해졌다. 이에 따라, 은행이나 정부가 발행하는 동전·지폐(그리고 지금은 주로 은행예금 형태)의 ‘명목화폐(fiat currency)’가 등장했다. 이런 화폐는 금처럼 한계가 없기 때문에, 재화와 서비스 생산의 증가에 맞춰 공급을 조정할 수 있었다.
정부는 이제 화폐의 ‘공급’을 통제하게 되었고, 사람들은 정부가 정한 국가 화폐 단위를 금 대신 사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명목화폐가 금의 보편적 가치에서 지나치게 벗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각국은 자국 통화를 금에 고정된 가격으로 연결시키는 ‘금본위제’를 유지했다. 이 덕분에 무역상들은 자국 통화의 가치를 신뢰할 수 있었고, 국제거래에서 발생하는 불균형은 여전히 금으로 결제되었다.
20세기에 들어 자본주의가 세계적으로 지배적인 체제가 되면서, 명목화폐는 국내는 물론 국제 거래에서도 금을 대체했다. 기업, 은행, 정부가 보유하는 가치 저장 수단 역시 점점 금이 아닌 명목화폐가 되었다. 외환보유고는 주로 지배적인 국가의 화폐, 즉 미국 달러로 구성되었고, 금은 부차적인 역할로 밀려났다. 1970년대 미국 정부가 달러를 금과의 고정 비율로 교환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금은 더 이상 주요 화폐나 ‘궁극적 가치 기준’으로 기능하지 않게 되었다. 금본위제는 폐지되고 ‘달러 본위제’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금은 여전히 각국의 중앙은행에 보유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화폐’라기보다 주식이나 채권처럼 금융자산의 하나로 취급되었다. 즉, 금은 투자자들이 자본이득을 얻기 위해 사고파는 투기적 ‘가공자본(fictitious capital)’이 되었다. 그러나 금은 자본가들의 머릿속에서 여전히 ‘보편적 상품’, 즉 어디서나 받아들여지는 진정한 화폐라는 인식으로 남아 있었다. 따라서 명목화폐의 가치가 ‘훼손’된다고 느껴질 때마다, 사람들은 다시 금으로 돌아갔다. 금은 전 세계적으로 지배적인 명목화폐, 즉 미국 달러의 가치가 약화될 때 보유할 만한 안전한 자산이 되었다. 말하자면, ‘야만의 유물’로 되돌아가는 셈이다.
달러 기준으로 금값이 급등한 시기는 여러 번 있었다. 경제가 침체할 조짐을 보이거나, 물가가 급등하거나, 금융 붕괴의 위험이 닥칠 때마다 이런 자본주의 위기들은 자국 통화와 국제적으로는 달러의 가치 하락으로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금은 정부 화폐보다 매력적인 대안이 된다. 기업, 개인, 심지어 다른 정부들까지도 달러의 구매력을 신뢰하지 못하게 되면, 달러를 팔고 금을 사기 시작한다.
이번 금값 급등 역시 여러 요인이 맞물린 결과다. 첫째, 팬데믹 불황 이후 물가가 급격히 치솟으며 인플레이션이 재발했다.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되면서,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명목화폐를 보유했을 때의 실질 수익률(이자)은 오히려 낮아졌다. 금은 이자를 발생시키지 않지만, 현금의 실질 수익이 낮게 유지되자 오히려 더 매력적인 금융자산으로 떠올랐다.
그러다 트럼프가 등장했다. 트럼프의 ‘관세 발작(tariff tantrum)’은 세계무역 전반에 막대한 불확실성을 불러왔다. 특히 미국 경제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게 만들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의도 역시 명확하지 않았다. 그들은 수입 물가 안정을 위해 달러 강세를 유지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미국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달러 약세를 유도하려는 것인지조차 불분명했다.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금은 더욱 매력적인 자산으로 떠올랐다. 실제로 트럼프 집권 첫 6개월 동안 달러 가치는 다른 주요 통화 대비 10% 이상 하락했다.
하지만 금값 상승의 또 다른 이유는, 금이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대한 ‘헤지(위험 회피 수단)’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른바 신흥국(글로벌 사우스)의 중앙은행들이 미국의 관세 인상에 대응해 금 보유량을 늘리기 시작했다. 국제무역에서 달러의 필요성이 줄어들자, 이들 국가는 달러 대신 금을 더 많이 비축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금융 투기는 스스로 추진력을 얻는다.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의 달러 가격이 급등할 때와 마찬가지로, 금 역시 또 다른 형태의 ‘가공자본(fictitious capital)’ 투자다. ‘놓칠까 두려움(FOMO, fear of missing out)’은 금융 투기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그리고 지금 이 FOMO의 최전선에는 금과 비트코인, 그리고 사상 최고치를 다시 경신 중인 미국 증시가 있다.
이 모든 흐름은 어디로 향할까? 첫째, 미국 달러의 가치가 더 이상 하락하지 않는다면 이 상승세는 멈출 것이다. 실제로 지난 7월 이후 달러지수는 다른 통화 대비 안정세를 보이며, 역사적 평균에 가까운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
둘째, 이번 상승세는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질 경우 끝날 것이다. 경기 침체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달러 가치를 끌어올릴 것이다. 불황기에는 금값이 위기 속에서 ‘보유(저축)’ 자산으로 선호되어 일시적으로 상승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금값 상승은 점점 더 투기적 수요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이런 투기적 거품은 경기 침체가 닥치면 붕괴할 것이며, 주식·비트코인·금 가격 모두 함께 폭락하게 될 것이다.
[출처] Gold: what’s behind the boom?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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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로버츠(Michael Roberts)는 런던 시에서 40년 넘게 마르크스 경제학자로 일하며, 세계 자본주의를 면밀히 관찰해 왔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