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시대의 허상과 현실, 장 피자니-페리의 고백

출처: ev, unsplash

훈장 수여식은 응답할 권리를 동반한 추도사 같은 행사다그리고 이번 수여식은 아주 적절한 시점에 열렸다내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자신의 작은 성취에 만족할 때가 아니다지금은 우리 각자가 이 나라의 현재 상황에 대해 어떤 책임이 있는지그리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다.

나는 열린 경제유럽 통합녹색 전환의 지지자였다이 모든 신념을 지금도 버리지 않았다사회민주주의에 대한 내 헌신도 여전히 지켜왔다고 믿는다하지만 이 모든 주제에서 우리는 후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프랑스의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대표적인 유럽주의자인 장 피자니-페리(Jean Pisani-Ferry)는 지난 9월 초 레지옹 도뇌르(Légion d’honneur 프랑스 최고 훈장훈장을 받으며 이처럼 깊은 울림을 주는 연설을 시작했다.

그의 연설은 간결하고국제무역과 세계화유럽기후라는 주요 관심 주제와 정치적 신념을 중심으로 정제되어 있었다그는 자신의 세대에 대한 간략한 역사를 정리하는 동시에오늘날 진보적 유럽 정치가 얼마나 혼란에 빠져 있는지를 분명히 인정했다.

피자니-페리라는 성이 말해주듯그는 1951년 프랑스 정치의 중심에서 태어났다그의 어머니는 페리(Ferry) 가문 출신이고그의 아버지는 저항운동가이자 1960년대 드골 정부에서 장관을 지냈다피자니-페리 자신은 삼십 년 황금기(trente glorieuses 1945~75년 사이 프랑스 경제 성장기)’의 산물이다.

그는 원래 엔지니어로 교육받았지만점차 경제학으로 방향을 틀었고, 1970년대 후반 레이몽 바르(Raymond Barre) 총리가 설립한 국제경제연구소(CEPII, Center for Prospective Studies and International Information)에서 경력을 시작했다바르는 1976년부터 1981년까지 프랑스 총리를 지냈고독일식 오르도리버럴리즘(질서 자유주의)에 기초한 사회시장경제 노선을 채택하면서, 1978~79년 푸코(Michel Foucault)가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해 강의할 수 있는 맥락을 제공했다.

피자니-페리 자신도 이렇게 인정했다. “세계화가 선진국에 가져올 충격의 크기나그것이 일자리와 지역 경제에 미칠 영향그리고 그 정치적 결과를 우리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세계화의 피해를 본격적으로 조명한 논문은 2013년 데이비드 오터(David H. Autor), 데이비드 도른(David Dorn), 고든 핸슨(Gordon Hanson)의 중국 충격(China shock)’이었다.

그의 세대는 자신들이 그려왔던 역사관이 완전히 뒤집히는 경험을 했다. 2025년 9그는 브뤼겔(Bruegel) 싱크탱크에서 열린 중국 발전 모델에 대한 열띤 토론회를 마치고 곧장 레지옹 도뇌르 훈장 수여식에 참석했다브뤼겔은 그가 초대 소장을 지낸 연구소다.

그의 두 번째 전문 분야는 유럽이었다프랑스 중도좌파 정치인 다수가 그랬듯피자니-페리에게도 1983년 미테랑(Mitterrand) 정부의 경제 위기가 전환점이었다이 시기는 많은 프랑스 사회민주주의자가 유럽 통합과 규제된 세계 자유주의를 받아들이게 된 계기였다라위 압델랄(Rawi Abdelal)이 『자본의 규칙』(Capital Rules)에서 지적했듯, 1990년대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에는 프랑스적 색채가 짙게 배어 있었다.

하지만 피자니-페리에게 유럽은 결국 불완전하고 자기 제약적인 승리의 이야기였다유럽은 공통 통화는 만들었지만자본 시장도더 큰 예산도지정학적 실체도 갖추지 못했다.

그가 이 사실을 절감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트럼프의 압박 앞에서 유럽연합(EU)이 굴복한 수치스러운 순간이었다.

여러분도 그랬겠지만나 역시 도널드 트럼프와의 명백히 불균형적인 무역 합의 이후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Ursula von der Leyen)이 웃는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완전히 버리지 않게 하려면 그런 값을 치러야 한다면나는 그 대가가 너무 크다고 생각했다그건 [모네(Monnet)나 들로르(Delors), 수많은 유럽 세대가 위해 싸웠던 것이 아니다내가 믿고 참여했던 유럽도 아니고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유럽도 아니다.”

이런 굴욕적인 복종에는 분명 구조적 이유도 있고실상은 EU가 트럼프를 속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이 순간이 유럽 전역에 얼마나 깊은 충격을 안겼는지를 고려하면그 반응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그는 베를린에서도 냉정한 사람들에게서 똑같은 분노와 수치심을 들었다고 말했다.

트럼프에 대한 굴복이 더 쓰라렸던 이유는 그것이 피자니-페리의 세 번째 주요 관심사인 기후 문제에서의 완전한 태도 전환을 수반했기 때문이다.

피자니-페리는 비교적 최근에 기후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됐다유럽 정치에서 이 주제를 피할 수 없었던 시점은 2015그리고 결정적으로 2017년 이후였다그는 '녹색 성장이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윈-'이라는 말에 대한 좌절감이 주된 동기였다고 밝혔다.

그의 시각은인정하건대다소 당혹스럽다그는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녹색 전환의 비용이 훨씬 클 것이라고 본다아마도 국제 무역과 유로화에 대해 낙관적인 입장을 가졌던 자신의 경험에 덴 탓일 수도 있다그는 좌초자산(stranded assets), 자본의 조기 퇴출,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에서의 분배 문제를 강조한다.

경제학자들도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수년 동안 그들은 총량지표에만 집중했고자신들이 권고한 정책이 초래할 분배 효과는 무시했다그 이유는 효율성이 향상되면 피해자들도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 때문이었다하지만 이는 부끄러울 정도로 단순화된 시각이다지금 필요한 것은정책 하나하나에 대해 누가 손해를 보는지를 정확히 파악하고재정적·예산적·산업적 수단을 동원해 이익을 어떻게 손실 입은 사람들에게 이전할지를 구체적으로 결정하는 일이다경제 개방이든유럽 개혁이든기후 전환이든공정성의 문제가 중심에 있어야 한다이익의 분배와 관련해서도 그렇고희생의 분담에 있어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기후 문제에 대한 거시경제학적 관점이 어떻든 간에유럽연합이 수천억 달러어치의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하기로 합의한 것은 분명 충격적인 일이었다브뤼셀에서는피자니-페리가 지적했듯이이제 기후라는 주제가 계절에 맞지 않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번 주 나는 브뤼셀에 있었다그곳에서 기후라는 단어는 이제 금기어가 되어 있었다기후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되고대신 경쟁력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여전히 야심은 유지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누구도 그것의 이름을 감히 입에 올리지 못했다포퓰리스트가 정부에 들어가지 않아도공공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건 어렵지 않다선동 정치의 유혹만 존재해도 그 영향은 충분히 나타난다하지만 지나치게 조심스럽게 굴고전술적 후퇴를 반복하다 보면유럽은 한때 자신이 주도하려 했던 대전환의 기회를 놓치게 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 ()”

무역유럽기후이런 문제들이 불러일으키는 실망감은 널리 공유되고 있다하지만 피자니-페리에게는 이보다 훨씬 더 가까운 곳에서 오는 또 다른 고통의 원천이 존재한다.

사회민주주의자로 평생을 살아온 피자니-페리는 2017년 사회당을 떠나 마크롱(Macron) 캠프에 합류해 그의 경제 공약서를 작성했다그가 그렇게 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고 설명했다.

좌파와 우파가 서로의 차이를 과장하며 연극을 하듯 정치를 이어가는 모습은 민주주의에 대한 환멸과 극단주의를 부추긴다고 생각했다나는 좌파이자 우파인’ 정책이라는 약속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고우리 주변 국가들에서 종종 이루어지는 타협을 준비했다나는 2017년의 공약이 그런 영감에 충실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곧 나는 좌파의 아이디어와 우파의 아이디어 사이의 균형이 점차 한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나처럼 해방과 법 앞의 평등이라는 프로젝트에 헌신했던 사람들은 정부의 정책에서 더 이상 자신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그렇게 나는 점차 마크로니즘(Macronisme)의 투덜대는 노인이 되어갔다여전히 속해 있기엔 실망이 컸고완전히 떠나기엔 너무 충실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사실 잘 모르겠다언젠가는 이 이야기를 꼭 정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크롱의 대통령직 두 번째 임기를 지나면서피자니-페리는 지금 프랑스가 심각한 정치 불안정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으며그 끝에는 권위주의로의 전환이라는 궁극적인 위협이 놓여 있다고 보고 있다.

“Je ne sais pas bien, ce qui s’est passé. Je crois qu’il faudra un jour en faire le récit.”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언젠가 이 이야기를 꼭 풀어야 할 것 같다.)

피자니-페리의 당혹스러움에 대해 《이코노미스트》는 마크롱의 2기 임기 동안의 일련의 실책을 지적하며 반응을 보였다.

혹은 더 깊은 이해를 위해브뤼노 아마블(Bruno Amable)과 스테판 팔롱바리니(Stéphane Palombarini)의 비판적 정치경제학을 떠올릴 수도 있다이들은 1980년대 이래 프랑스 신자유주의와 그것을 떠받치는 부르주아 블록이 외줄타기를 해왔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런 해석들이 과연 마크롱 프로젝트의 진정한 본질과그가 프랑스를 이끌어온 방향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있을까마크롱은 단지 죽어가는 신자유주의 질서의 마지막 경련’”일 뿐일까?

뉴 레프트 리뷰》에 최근 실린 통찰력 있는 글에서 네이선 스퍼버(Nathan Sperber)는 이렇게 지적했다.

프랑스의 첫 번째 코로나19 봉쇄가 끝나갈 무렵마크롱은 호랑이를 타야 한다는 힌두교 비유를 언급하며 자신의 통치 스타일을 가장 잘 요약했다이 비유는 파시스트 사상가 율리우스 에볼라(Julius Evola)가 대중화한 것으로3의 길(Third Way)과는 거리가 먼 지적 참조점이다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것이 우리를 잡아먹지 않게 하려면 우리가 먼저 그것을 타야 한다.” 이것은 단발성의 일탈이 아니었다마크롱은 2017년에 그가 연출한 세련된 이미지와는 달리훨씬 더 반동적이고 음울한 정치 전통에 꾸준히 매력을 느껴왔다.

2018년 5그는 한 프랑스 문예지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낙관적인 이유는지금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가 다시 비극적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22년 대선 공약을 발표할 때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은 대중 주권의 복귀가 이루어지고 있으며이는 결국 우리가 때때로 정치적인 것이라고 부르는 개념의 귀환을 의미한다.”

이런 수사들을 과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지만이런 사고의 흐름은 흔히 말하는 초국적 신자유주의 엘리트의 전형적인 사고방식은 아니다.

그리고 나는 우연히 《레스투아르(L’Histoire) 매거진의 2017년 옛 호를 들춰보다가마크롱이 대선 유세 중에 한 인터뷰를 발견하면서 다시 이런 생각에 사로잡혔다 — 마크롱은 처음부터 절박한 신자유주의식 변신술(transformismo)의 조종자 그 이상이었던 건 아닐까?

그 잡지 편집자들은 그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당신은 어떤 사건시대인물을 이전 세대 정치인들과 달리 중시하거나 덜 중시합니까더 직접적으로 묻겠습니다당신의 토템과 금기는 무엇입니까?”

마크롱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토템도 금기도 갖지 않은 세대에 속해 있다토템과 금기는 전쟁혁명거대한 이데올로기 같은 거대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깊이 형성된 세대의 특징이다나는 역사의 종말이 이론화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한 세대다그 사건들은 많은 확신을 뿌리째 흔들었다.

2002년 4월 21일은 내게 정치적 충격이었다.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Front National)의 장 마리 르 펜(Jean-Marie Le Pen)이 사회당 후보 리오넬 조스팽(Lionel Jospin)을 제치고 대선 결선에 진출한 사건이다당시 마크롱은 24세였고시앙스포(Sciences Po)를 갓 졸업해 국립행정학교(ENA)에 입학하려던 시점이었다그 순간눈앞에서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일이 일어났다.

누군가는 오늘날의 역사적 불확실성을 안타까워할지도 모른다저항운동공산주의적 메시아주의3세계주의 같은 거대한 유산을 짊어졌다면 더 영웅적인 느낌일 수도 있다하지만 나는 지금 이 시기의 재정의의 순간에 속해 있다는 점을 자주 기쁘게 받아들인다모든 것이 다시 논의되어야 한다모든 정치적 코드가 다시 써져야 한다이 재정의의 작업이야말로 우리 세대의 소명이다.

그러나 이 작업을 하면서 역사에서 배운 교훈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지금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정치적·도덕적 질서의 거대한 단절이다인류는 이런 단절을 예전에 여러 번 겪어왔다로마제국의 몰락르네상스산업혁명처럼지금 우리가 향하고 있는 세계는 대부분 미지의 영역이지만그렇다고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인류는 늘 최악과 최선이 함께 등장하는 역사적 전환점을 마주해 왔다바로 이런 지점에서 역사는 진정한 역할을 발휘하게 된다.

우리는 더 이상 자신이 정치적으로 닮고 싶어 하는 몇몇 상징적 인물을 선택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이제는 역사의 전체 궤적을 펼쳐 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순간을 이해하고 분석해야 한다드골주의(Gaullism), 사회주의공산주의처럼 정체성을 구조화하던 역사의 시대에서 벗어나모든 모델과 모든 현상을 호출할 수 있는 진정한 보편사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잔 다르크(Joan of Arc)에서 식민주의의 뿌리까지고대에서 계몽주의까지발미(Valmy)에서 글리에르 고원까지 모두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글리에르 고원은 프랑스 저항운동의 성지 중 하나로서로 적대적이던 여러 집단이 영국군의 훈련을 받기 위해 함께 모였던 장소다드골이 성지로 추켜세웠고미테랑과 사르코지도 방문했다.) 오늘날 우리의 질문에 대한 해답은이념적 분열이나 좁은 계보로 축소된 역사가 아니라바로 이 총체적인 역사 속에서 찾아야 한다.”

이러한 마크롱의 모습은네이선 스퍼버(Sperber)가 지적했듯현대 정치인으로서 쉽게 분류하기 어려운 면모를 보여준다.

어쨌든장 피자니-페리의 솔직한 자기 성찰에 대해 가벼운 역사 해석으로 대응한다면그 진지한 고백의 무게를 놓치는 셈이다.

물론 비판적 정치경제학은 마크롱의 우경화 경향에 대해 구조적인 설명을 제시할 수 있고《이코노미스트》는 그의 실책을 신랄하게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맥락에서 더 중요한 사실은피자니-페리가 그런 자리를 택해그렇게 공개적으로 자신의 혼란과 패배감을 선언했다는 점이다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는 바로 그 순간에그 훈장을 수여하는 공화국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자신의 경력 정점에서 그런 날 선 진단을 공유함으로써피자니-페리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소중한 통찰을 제공했다.

[출처] Chartbook 411 The twilight of Macronisme: Jean Pisani-Ferry's cri de cœur.

[번역] 하주영 

덧붙이는 말

애덤 투즈(Adam Tooze)는 컬럼비아대학 교수이며 경제, 지정학 및 역사에 관한 차트북을 발행하고 있다. ⟪붕괴(Crashed)⟫, ⟪대격변(The Deluge)⟫, ⟪셧다운(Shutdown)⟫의 저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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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회민주주의 장 피자니-페리 레지옹 도뇌르 마크롱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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