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의 경계

귀네이 이스카라(Güney Isikara)와 패트릭 모크레(Patrick Mokre)는 마르크스의 가치 이론이 현대 자본주의 경제의 추세와 변동을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밝혀주는 통찰력 있는 책을 출간했다이 책의 제목은 『경계에서의 마르크스 가치 이론 – 고전 정치경제학제국주의생태 위기』이며제목 그대로 이 책은 마르크스의 가치 법칙을 저자들이 말하는 '경계들(frontiers)' — 즉시장과 무역제국주의그리고 세계적 환경 위기 — 로 확장해 가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대단히 야심 차지만저자들은 인간의 노동력에 의해 가장 추상적인 수준에서 창출된 가치가 자본가들 사이의 경쟁을 통해 어떻게 생산가격’(각 자본의 이윤율이 평균화되는 지점)으로그리고 시장가격’(초과이윤이 자본가들을 끊임없는 경쟁으로 내모는 지점)으로 변형되고 매개되는지를 높은 명료성으로 설명해낸다.

저자들은 안와르 샤이크(Anwar Shaikh)의 제자 출신으로주류 경제학의 '완전 경쟁(perfect competition)' 이론이 아닌 그의 '실제 경쟁(real competition)' 이론을 채택한다완전 경쟁은 조화와 균형을 전제로 한 자본주의 생산 체제를 가정하지만실제 경쟁은 끊임없는 혼란이 특징이다샤이크가 말했듯진짜 경쟁은 본질적으로 적대적이며 작동 과정에서도 격동적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실제 경쟁이 자본주의를 규율하는 중심 원리라고 주장하지만, “실제 경쟁을 포함한 어떤 경쟁 이론도 가치 이론에 기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그렇지 않으면 각 사회계급에 귀속되는 수입의 출처를 비롯한 수많은 현상들이 설명되지 않은 채로 남게 된다.”

이스카라와 모크레는 노동력에 의해 창출된 가치와 시장에서의 가격 사이의 논리적(그리고 역사적연결을 보여주고자 한다이들은 산업 간 경쟁과 산업 내 경쟁을 구분하는 중요한 개념을 도입한다산업 내 경쟁에서는 동일한 시장에서 점유율을 놓고 기업들이 경쟁하며이에 따라 가격이 한 시장 내에서 수렴하는 경향을 보인다해당 시장을 지배하는 기업은 규제 자본(regulating capital)’으로서 가격을 설정하는 경향을 보인다산업 간 경쟁에서는 자본가들이 더 높은 이윤율을 가진 부문으로 투자를 옮기며이에 따라 부문 간 이윤율이 평균화되는 경향을 보인다그 결과개별 상품에 내재한 가치는 비용에 평균 이윤율을 더한 생산가격으로 변형된다소비자나 기업이 실제로 지불하는 시장가격은 이 생산가격을 중심으로 등락하며생산가격은 결국 상품에 담긴 노동가치즉 직접가격(direct prices)’에 의해 결정된다따라서 직접가격과 생산가격 사이의 차이그리고 생산가격과 시장가격 사이의 차이는 모두 가치의 변화에서 비롯된다.

이 초기 이론 장들에서 이스카라와 모크레는 마르크스의 가치 이론에 대한 주류 경제학과 비주류 경제학의 비판을 단호하게 다뤘다다만그들은 현명하게도 가치를 가격으로 전환하는 문제’(transformation problem)에 대한 끝없는 논쟁은 생략했다이 문제는 이미 다른 곳에서 해결되었기 때문이다그리고 실증 분석에서는저자들이 더 폭넓은 범위를 포함한 새로운 산업연관(input-output)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여 가치와 가격 사이의 강한 양의 상관관계를 뒷받침하는 더욱 설득력 있는 증거를 제시했다.

이스카라와 모크레는 표본에 포함된 거의 모든 국가에서 시장가격과 직접가격 사이의 편차(시장가격 대비 비율)가 10~20% 범위에 있으며시장가격과 생산가격 사이의 편차는 이보다 약간 더 작고 대부분 국가에서 약 1~2%포인트 낮다고 밝혔다직접가격과 생산가격 사이의 편차는 모든 국가에서 5% 미만으로 나타났다. “이는 자본 축적이 초래하는 복잡성 — 자본-노동 비율의 차이자본 회전 기간자본재의 내구성 등 — 이 상대적 자연가격(여기서는 상대적 생산가격)과 내재한 노동량(여기서는 직접가격사이의 편차를 야기하지만이러한 편차는 7% 미만일 것이라는 리카도(Ricardo)의 견해를 지지한다.” 저자들은 직접가격이 생산가격과 시장가격을 강력하게 예측하며생산가격 역시 시장가격을 예측하는 데 강력한 지표가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결론지었다마르크스의 가치 이론은 실증적으로도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저자들은 이후 가치를 또 다른 경계로 확장한다바로 국제 무역을 통한 가치 이전이다이들은 먼저 종속 이론(dependency theory)을 비판하면서 시작한다. “마르크스의 접근법은 국경 안팎의 자본 간 경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반면에마뉘엘(Emmanuel)은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착취하는 구조로 이해했다.”

저자들은 이렇게 결론 내린다. “선진국 자본가들이 얻는 이익은 자국의 노동자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 사는 노동자들을 착취할 기회에서 비롯된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이들은 국제적 수준에서의 경쟁을 통해 사회적 잉여로부터 정상 이상의 이윤을 확보할 수 있다그러나 한 나라의 자본가 주머니에서 다른 나라 자본가의 주머니로 잉여가치가 이전된다고 해서전자가 후자에게 착취당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마찬가지로산업 간에 가치 이전이 발생한다고 해서산업들이 서로를 착취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반면이스카라와 모크레는 국제 무역에서의 불균등 교환이 현대 제국주의와 무관하다는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하비는 제국주의 개념을 버리고세계 자본주의 내에서의 유동적인 헤게모니 전환이라는 개념으로 대체할 것을 주장한다.” 하지만 저자들은 이 결론을 이론적으로도실증적으로도 거부한다이들은 자신들의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혀낸다. “국제적 가치 이전 규모는 상당히 크며, 1990년부터 2020년까지 생산 부문에서 연간 세계 총생산의 5.9%에 해당했고누적 총액은 무려 70조 달러에 달했다.” 멕시코인도네시아러시아한국브라질이 가장 큰 순()가치 제공국으로 나타났고미국일본중국은 국제 무역을 통해 가장 많은 가치를 순이익으로 얻은 국가들 중 하나였다.

이른바 브릭스(BRICS)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서 주변부를 대표하는 가장 큰 집단으로중국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장 큰 패자다특히 중국에 대한 이들의 분석 결과는 기존 문헌에서 확립된 입장과 질적으로 다르다기존의 입장은 중국이 지배받는 국가들에 속하며국제 무역에서 가치 유출을 겪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저자들은 몇 가지 단서를 덧붙인다첫째중국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지난 10년 동안에야 비로소 순()가치 수혜국이 되었다그 시기 이후로 세계 무역 성장세는 약화했다그리고 이들의 분석 결과는 생산 산업 내의 가치 이전에만 국한된 것이며(제국주의의 다른 경제적 측면은 제외됨), 따라서 이 결과만으로 중국이 제국주의 국가가 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명시한다.

중요하게도이스카라와 모크레는 가치 이전에 이바지하는 요인을 자본의 높은 가치 구성비(기술적 우위 가능성을 시사함)와 높은 잉여가치율(노동 착취 수준이 더 높다는 점을 시사함)로 나누어 분석했다그들은 두 요인의 기여도가 거의 비슷하게 분할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결과는 내가 구글리엘모 카르케디(Guglielmo Carchedi)와 함께 수행한 연구(제국주의 중심국과 주변국 간 무역에서 나타나는 불균등 교환에 대한 연구)에서 자본 구성과 착취율이 각각 가치 이전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분석한 결과와 매우 유사하다특히 주목할 점은저자들의 분석에서 중국이 무역을 통해 얻는 순()가치 이득은 거의 전적으로 다른 나라에 대한 기술적 우위에 기반하고 있다는 반면미국과 영국의 경우에는 주로 다른 나라에 대한 더 높은 착취율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는 오직 생산 부문에만 근거한 것이다이윤수수료이자 등의 형태로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잉여가치를 이전시키는 금융 및 보험 같은 비생산 부문에서의 가치 흐름은 포함되지 않았다저자들은 비생산 부문의 가치 포획(nonproduction value capture)’을 추정하려 했고그 결과 비생산 부문에서의 가치 이전은 생산 부문에 비해 매우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그러나 이들은 산업연관표에서 비생산 부문 가치 포획이 과소평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인정한다.

실제로 토마스 로타(Thomas Rotta)의 또 다른 연구는 생산 부문과 비생산 부문을 모두 포함해 분석했으며그 결과 중국이 세계 경제에서 가장 많은 가치를 이전하고 있고미국은 가장 많은 가치를 포획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미국의 포획된 가치(captured value)’는 노동자 1인당 기준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이는 인도와 중국 같은 주변국들의 손해를 대가로 이루어지고 있다다만모크레와 이스카라의 분석과 마찬가지로로타 역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중국의 연간 손실 규모가 크게 줄어들었다고 분석했다.

주변국에서 제국주의 중심국으로의 소득 이전을 파악하는 방법으로는 순기본소득이전(net primary income transfers)이나 해외투자의 초과 수익률(excess yield)’을 활용하는 방식도 있다나는 이와 관련된 내용을 별도의 미발표 논문에서 다루고 있다무역과 투자에서 발생하는 국경 간 소득 흐름을 살펴보면제국주의 중심국들은 확실하게 이득을 얻는 반면중국을 포함한 브릭스 국가들은 순손실을 보고 있다.

출처: IMF

피케티(Thomas Piketty) 등도 순대외자산(Net Foreign Assets)에 대한 수익률을 계산한 결과역시 제국주의 중심국들은 순이익을 얻고 있지만중국을 포함한 브릭스 국가들은 순손실을 보고 있다고 밝혔다.

마지막 장에서 이스카라와 모크레는 마르크스의 가치 이론을 자연의 경계즉 토지와 지구 생태계로 확장한다그들은 지대(rent)가 일반 범주로서 가치 법칙을 수정하긴 하지만이를 무효로 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토지 소유는 가치 법칙의 작동을 없애지 않는다. “이윤율의 경향적 평균화는 여전히 자본주의 경쟁의 중심 원리로 작동하며이는 지대를 독점 자원 소유자에게 지불해야 하는 부문을 포함해 모든 부문에 적용된다지대를 지불한 뒤에도 정상적인 이윤을 기대할 수 없다면 어떤 자본가도 해당 부문에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허구 자본(fictitious capital)’이 미래 수익과 노동을 증권화하고공공 영역을 사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연금 및 복지 권리주택도시 공간의 사유화 및 토지 강탈 등)을 통해” 현재의 수익을 증가시킨다는 흥미로운 관찰을 제시한다따라서 금융화(financialization)는 현대적 형태의 가치 축적 방식이다나는 여기에 덧붙이고 싶다비록 위 설명이 사실이지만금융 자산의 매매를 통해 추출되는 잉여가치는 결국 생산 자산의 가치에서 비롯되며금융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 않고 단지 그것을 재분배할 뿐이다.

이스카라와 모크레는 자연이 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점 더 대중화되고 있는 주장과원자재·에너지·토지 등의 불균등 교환이 가치 이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주장에 비판을 가한다여기서 중요한 점은 생태학적 불균등 교환 이론들이 주로 사용가치의 영역에서 발생한 결과에만 집중한다는 것이다문제는 유용한 노동을 수행하는 것과 자본주의 특유의 사회적 가치 창출 형태 사이의 차이를 파악하지 못하면인간이 아닌 노동(꿀벌화석연료 등이 수행하는 일)도 인간 노동만큼이나 가치를 구성한다고 오해할 수 있다는 데 있다나 역시 여기에 덧붙이자면, ‘자연이나 다른 생물 종의 노동은 인간의 노동력 없이는 자본주의 하에서 가치로 전환되지 않는다예컨대 꿀을 채집해 판매하고석유와 가스를 뽑아 올리고말과 소를 부려 노동시키는 등의 행위를 통해서만 그 이 가치가 된다.

이스카라와 모크레는 이 책을 통해 마르크스의 가치 이론이 21세기 세계가 직면한 핵심 문제들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임을 보여주었다이들은 시장가격생산가격노동가치 사이의 편차가 국제적 가치 이전(즉 자본 구성의 차이와 착취율의 차이에 따라 발생하는 이전)을 설명하는 데 중심적 역할을 하며자본주의가 일으킨 생태 위기 속에서 지대와 축적이 차지하는 핵심적인 위치를 이해하는 데도 결정적인 열쇠가 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따라서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 실천가들을 위한 실전 지침서라 할 수 있다.

[출처] The frontiers of value – Michael Roberts Blog

[번역] 하주영 

덧붙이는 말

마이클 로버츠(Michael Roberts)는 런던 시에서 40년 넘게 마르크스 경제학자로 일하며, 세계 자본주의를 면밀히 관찰해 왔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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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네이 이스카라 패트릭 모크레 마르크스 가치 이론 경계에서의 마르크스 가치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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