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공항을 멈추는” 파업 투쟁이 한 달 가까이 이어진 가운데 공항 현장 노동자들이 “안전한 일터, 안전한 공항”을 위한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정부와 공항공사가 노동자들과 대화에 나섬에 따라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던 노동자들이 업무 복귀를 시작했지만, 투쟁은 끝이 아니다. 이들은 이후 교섭 과정에서도 현장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 오는 10월 23일과 25일부터 다시 무기한 파업을 재개할 계획이다.
"전국공항노동자 파업 장기화 정부 책임 촉구 기자회견" 현장. 전국공항노동자연대 제공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와 전국공항노동조합이 참여하는 전국공항노동자연대는 13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 15개 공항 1만 5천 자회사 노동자들이 불공정한 노동환경에서 생존과 존엄을 위협당하는 현실”에 대해 공공기관인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 새 정부가 책임을 다할 것을 촉구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 자회사 소속으로 환경미화, 시설 운영, 보안 등 공항 운영의 일상을 지탱해 온 공항 현장 노동자들은 △연속 야간 근무를 강요하는 교대근무제 개편 △인력 충원 △저임금 불평등 체계를 고착화하는 낙찰률 제도 및 결원율 정산 제도 개선 등을 핵심 요구로 내걸고 지난달 19일 하루 파업에 나섰다. 이어서 이달 1일부터는 공항 노동자들의 안전이 곧 공항 전체와 여객 시민들의 안전과 직결되어 있다며 “죽음의 공항을 멈추고 안전한 일터·안전한 공항을” 만들기 위한 무기한 전면 파업에 돌입한 바 있다.
죽음의 야간 노동 강제하는 교대 근무 제도
인천국제공항공사 자회사 노동자들로 구성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의 주된 요구사항은 연속 야간 노동을 강제하는 교대 근무 제도의 개선이다.
인천공항지역지부에 따르면 현재 인천공항 자회사 노동자들은 이틀 연속 야간 근무를 하게 되는 3조 2교대제 하에서 일을 하면서 피로 누적, 수면장애, 뇌심혈관 질환 위험에 상시 노출돼 있다. 지부에 따르면 올해에만 자회사 노동자 5명이 야간근무 중 목숨을 잃었고, 2명이 뇌출혈로 쓰러졌다.
모회사 인천국제공항공사의 경우 연속 야간 근무를 없애는 교대제 개편을 이미 마쳤으나, 자회사 노동자들의 경우 지난 2022년 파업 투쟁을 통해 4조 2교대로의 전환에 대한 합의를 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측은 현재까지도 이를 이행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정안석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2017~2020년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노·사·전문가협의회 합의 이후, 2022년 인천공항의 3개 자회사는 지부와 환경미화, 시설·보안 분야의 교대 근무제 개편 방안에 대한 합의를 체결했고, 2023년부터 인천공항지역지부와 자회사 간 교대제 개편 TFT 회의를 운영해 보안 부문의 경우 100차례가 넘는 회의가 열렸으나, 현재까지 합의는 이행되지 않고 있다”면서 이미 지난 2022년에 약속한 “4조 2교대 시범사업의 연내 시행이 조속히 필요”하고 “환경 분야 0.5시간 노동시간 단축 역시 연내 시행되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불평등 저임금 체계 뿌리내린 낙찰률·결원율 정산제
인천공항을 제외한 전국 14개 공항의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공항공사 자회사 노동자들로 이루어진 전국공항노동조합의 핵심 요구는 낙찰률 100% 적용 및 결원율 정산 제도 폐지다.
낙찰률은 공공기관이 사업이나 용역을 외부 업체에 맡길 때, 사전에 정한 기준 금액(예정가격) 대비 실제 계약 금액의 비율을 뜻한다. 예컨대 예정가격이 100억 원인데 계약이 92억 원에 체결되면 낙찰률은 92%가 된다. 원래 이 지표는 여러 업체가 경쟁입찰을 통해 제시한 금액 중 가장 적정한 가격을 정할 때 사용하는 기준으로, 입찰의 효율성과 공정성을 판단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한국공항공사는 자회사와 계약을 맺을 때 경쟁입찰이 아닌 수의계약 방식을 사용하면서도, 관행적으로 90% 수준의 낙찰률을 적용해 왔다. 수의계약에서는 낙찰률 개념을 적용할 이유가 없지만, 이 관행이 유지되면서 자회사가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인건비 총액이 줄고, 처우 개선이나 인력 충원 여력에도 제약이 생긴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자회사 노동자들은 이 낙찰률이 노동자 임금 총액을 결정하는 구조적 기준이라고 지적한다. 낙찰률이 낮을수록 자회사가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인건비가 줄어들고, 인력 충원이나 처우 개선 여력도 함께 줄어든다.
결원율 정산 제도는 자회사가 계약서상 기준 인원보다 실제 근무 인원이 부족할 경우, 그 부족 인원에 해당하는 인건비를 공사에 돌려주는 방식의 제도다. 예를 들어 계약상 100명을 고용하기로 돼 있는데 실제 근무 인원이 95명이라면, 자회사는 5명분의 인건비를 정산해 반환해야 한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인력 결원이 생겨도 충원을 미루는 경향이 발생할 수 있다. 충원 시 비용이 늘어나지만 결원을 유지하면 정산만으로 회계상 균형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남은 인력이 결원을 대신해 근무를 늘려야 하고, 교대근무나 휴무 일정이 불규칙해지는 등 노동 강도가 높아진다.
낙찰률과 결원율 정산 제도는 각각 계약 구조와 인력 운영 방식의 문제로, 자회사 노동자들은 두 제도가 결합될 때 현장에 “낮은 단가에 맞춰 인력을 줄이는 구조”가 고착된다고 말한다. 공항이라는 필수 공공서비스 현장에서 이러한 구조가 지속될 경우, 인력 부족과 과중한 노동, 임금 정체가 반복된다는 지적이다.
엄흥택 전국공항노동조합 위원장은 한국공항공사가 지난 “2019년 노사정 협의사항인 결원율 정산 제도 폐지를 2023년 부활”시켰고, 2023년에 다시 노동조합의 요구로 “모·자회사 TF 경영 회의를 구성해서 낙찰률 100% 적용 및 결원율 정산 제도 폐지 등을 개선하기로 약속”했으나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환기하고, “불공정한 계약 구조, 열악한 임금 체계, 구조적 차별의 개선에 관한 한국공항공사의 반복적 약속 불이행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고 이번 파업 투쟁의 배경을 밝혔다.
"죽음의 공항을 멈춰라". 전국공항노동자연대 제공
공항을 지탱하는 노동자의 생존과 존엄을
전국공항노동자연대는 이날 기자회견문을 통해 “땀과 헌신으로” 공항을 움직이는 공항 노동자들의 “노동의 가치는 지금도 외면당하고 있으며 ‘자회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구조적인 차별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전국 15개 공항 1만 5천 자회사 노동자들이 불공정한 노동환경에서 생존과 존엄을 위협당하는 현실”에 대해 “새 정부는 책임 있게 살피고 대책을 제시하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 공항 노동자들은 이어서 “전국 15개 공항노동자 단결로, 이 싸움을 반드시 승리로 완성할 것”이라며 “낙찰률 제도 개선, 결원 정산 제도 폐지, 연속야간노동 근절을 위한 투쟁에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나아갈 것”이라고 결의를 밝혔다.
전국공항노조는 오는 14일 대통령실 경청비서관 주재 회의와 1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한국공항공사현장 방문과 한국공항공사 대상 국정감사 등 일정 등을 고려해 지난 4일 현장에 복귀 결정을 했고, 인천공항지역지부는 지난 10일 인천공항공사와 면담을 개최하고 13일부터 집중 교섭에 들어감에 따라 무기한 전면 파업을 간부파업으로 전환하고 이날 현장 복귀를 시작했으나, 이들 모두 현장 복귀는 “파업 철회가 아닌 전술적 보류”이며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이후 정부 및 공항공사와의 협의 과정에서도 현장 노동자들의 요구안이 수용되지 않을 경우 전국공항노동조합의 경우 10월 23일부터, 인천공항지역지부는 10월 25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을 재개하겠다는 계획이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 후 한 시간 가량 이어진 전국공항노동자연대와 대통령실 면담에서 배진교 대통령실 경청비서관은 공항 노동자들에게 “인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 모두 모회사의 책임을 다하도록 대통령실이 역할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엄흥택·정안선 전국공항노동자연대 공동대표는 새 정부가 “조속한 사태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이후에도 “상황 변화가 없을 경우 노동자들은 재파업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확고히 밝혔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