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동화에 리프 밴 윙클(Rip Van Winkle, 시대착오적인 사람)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20년 동안 잠들었다가 미국 혁명 이후에 깨어나 세상이 완전히 달라진 것을 발견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지금 자기만의 리프 밴 윙클 연극을 하고 있는 듯하다. 어제 트럼프는 “돈을 빨아먹는” 보험 산업에 자금을 제공하는 오바마케어 대신, 정부가 직접 사람들에게 돈을 주고 스스로 의료 서비스를 사게 하자고 제안했다.
이건 전형적인 리프 밴 윙클 이야기다. 트럼프는 자신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다고 생각하는 듯하지만, 그는 오바마케어로 이어진 의료 개혁 논의를 놓쳤다. 그리고 그의 첫 임기 동안 대안을 만들려 했던 논의도 놓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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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는 모르지만(“2주 안에 나올 것이다”라고 들었다), 단순히 사람들에게 현금을 주는 방식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깨어 있었던 사람들은 결국 오바마케어나 보편적 메디케어 같은 제도로 기울게 된다.
의료 보장을 제공하는 기본적인 문제는, 일부 사람들은 치료비가 매우 비싼 질병을 앓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비교적 건강하다는 점이다. 만약 시장에만 맡긴다면, 보험사는 건강한 사람들만 보험에 들게 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사실상 매달 보험사에 돈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산업에 큰 이익을 남긴다.
트럼프표 수표 : 누가, 얼마를 받는가?
문제는 당뇨병, 심장병, 암 등 건강 문제를 가진 수천만 명의 사람들에게 있다. 이런 사람들은 보험사에 큰 손실을 안기므로, 보험사들은 이들을 피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연간 수만 달러에 달하는 보험료를 부과하려 한다. 또 보험 가입 시 건강 상태를 숨겼다고 주장하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기도 한다. 나는 몇 주 전에 ACA(오바마케어) 이전의 보험 시장에서 발생한 이런 문제를 간단히 짚은 적이 있다.
트럼프가 단순히 사람들에게 현금을 준다고 해도 이런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는다. 우선, 누구에게 얼마를 줄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만약 그가 “강화된 보조금“만을 의미한다면, 연간 약 350억 달러가 있다. 현재 약 2,200만 명이 이 보조금을 받고 있으니, 사람당 연간 약 1,600달러를 지급하게 된다.
그러나 현재 보험이 없는 2,800만 명과 보조금 없이 보험을 구매하는 200만 명이 더 있다. 이들도 당연히 ‘트럼프표 수표’를 받을 자격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총 5,200만 명이 350억 달러를 나누게 되어, 1인당 700달러도 안 된다.
이 이야기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사람들이 보험을 얻고 잃는 일이 계속 반복된다는 점이다. 가족 구성원이 보험이 있는 직장을 얻거나 그만두면 보장이 바뀐다. 또한 메디케이드 같은 정부 프로그램 자격을 얻거나 잃을 수도 있다. 따라서 트럼프는 수표를 매년 한 번만 보낼지, 아니면 월별이나 분기별로 지급할지를 정해야 한다. 한 번만 지급한다면, 지급 시점 이후에 직장을 잃은 사람은 완전히 손해를 본다.
아마 트럼프는 ‘강화된 보조금’뿐 아니라 오바마케어 전체 자금(예산정책우선센터는 약 1,250억 달러로 추정함)을 ‘트럼프표 수표’로 돌릴 수도 있다. 그래도 사람당 연간 1,900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다음 질문은, 사람들이 그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젊고 건강한 사람이라면 연 1,900달러로 의료비를 감당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들조차 중병이나 사고에 대비한 보험을 원할 것이다. 그러나 월 170달러 수준으로 그런 보험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나이든 사람들과 만성질환자들에게 훨씬 심각하다. 규제가 없는 보험 시장에서는 이들이 매달 수천 달러의 보험료를 내야 한다. 트럼프의 수표는 이런 보험료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아마 트럼프는 보험사가 건강 상태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받아야 하고, 건강 상태에 따라 차별할 수 없도록 하는 오바마케어의 규제를 유지할 수도 있다. 그러면 중병을 가진 사람들의 부담은 줄겠지만, 여전히 55~64세의 고령층에게는 트럼프표 수표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보험료가 남게 된다.
결국 이는 지금과 거의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수표는 더 작고, 목표는 더 흐릿하다. 현재는 보험거래소에 등록한 사람들에게만 소득 수준에 따라 조정된 보조금이 지급되지만, 트럼프는 소득과 무관하게 보험이 없는 모든 사람에게 같은 금액을 지급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결국 그 돈은 여전히 ‘돈을 빨아먹는 보험회사’로 흘러갈 것이다. 다만 규제가 줄어들면 보험회사는 더 많은 돈을 빨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오바마케어는 보험사가 보험료 수입의 최소 80%를 실제 진료비로 지출하도록 의무화했다. 그렇지 않으면 고객에게 환불해야 한다. 하지만 트럼프가 정부 개입을 줄이면, 보험회사는 이익을 더 많이 챙길 수 있다.
메디케어 어드밴티지와 ‘돈 빨아먹는 보험사들’
트럼프가 정말 ‘돈을 빨아먹는 보험회사들’을 공격하고 싶다면, 메디케어에서 이들을 몰아내는 게 첫걸음일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프로그램의 비용만 늘린다. 트럼프는 기존 메디케어를 강화해 치과, 안과, 청력 보장과 본인 부담 상한을 추가하고, 보험회사에 지급되는 메디케어 어드밴티지 자금을 끊으면 된다. 행정비용과 이윤으로 인해, 메디케어 어드밴티지는 전통적 메디케어보다 정부에 연간 최소 1,000억 달러의 추가비용을 발생시킨다.
정말로 ‘돈을 빨아먹는 보험회사들’을 단속하려면, 아예 보편적 메디케어를 시행하는 게 가장 확실하다. 이렇게 하면 보험사에 직접 지급되는 돈뿐 아니라, 병원·의원·기타 의료 제공자들이 여러 보험사와 복잡한 서류를 처리하느라 쓰는 행정비용도 줄일 수 있다. 이런 절감액은 연간 최대 1조 달러, 즉 가구당 약 8,000달러에 달할 수 있다.
보편적 메디케어는 누구나 직장, 정부 프로그램 자격, 보험료 납부 여부에 상관없이 의료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게 한다. 도널드 트럼프가 우리를 ‘모두를 위한 메디케어’로 이끌 인물이 될 거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그가 정말 ‘돈을 빨아먹는 보험회사들’을 단속하고 싶다면, 바로 그것이 가야 할 길이다. 어서 오라, 동지(comrade)!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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딘 베이커(Dean Baker)는 1999년에 경제정책연구센터(CEPR)를 공동 설립했다. 주택 및 거시경제, 지적 재산권, 사회보장, 메디케어, 유럽 노동 시장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세계화와 현대 경제의 규칙은 어떻게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드는가' 등 여러 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