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특별법이 몰고 올 경제 재앙

[편집자주] ‘반도체특별법’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 통과를 목전에 두고 있다. 반도체특별법은 재벌 퍼주기 ‘삼성특혜법’ 논란, 고용창출 등 경제적 효과에 대한 의문, 연구개발노동자에 대한 주52시간 노동상한제 규제 완화 우려, 기후위기 시대에 물과 전기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한 우려, 지역 송전탑 대책위의 반대, 청소년 교육권과 노동권 침해 등 노동자와 지역주민, 시민사회의 각종 비판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이를 무시한 채 특별법을 일방적으로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이에 <재벌특혜 반도체특별법 저지·노동시간 연장반대 공동행동(이하 반도체특별법 저지 공동행동)>에서는 반도체특별법의 문제점에 대해 5회에 걸쳐 연재한다.

 

한국 사회는 지금 반도체와 AI라는 두 개의 키워드에 거의 최면 상태에 들어가 있다. 정부는 반도체특별법을 국가경제의 생존과 직결된 법인 것처럼 주장하고,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반도체·AI는 국가 미래의 핵심”이라는 주문을 반복한다. 최근 삼성전자는 이러한 분위기에 정확히 맞물려 “향후 5년간 국내 450조 투자”를 발표하며 정부 전략에 힘을 싣는 듯한 이미지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 극적인 숫자들은 한국 경제의 구조적 위기, 산업정책의 부재, 자원·에너지의 한계, 노동 구조의 취약성, 지역경제의 종속 문제라는 현실을 가리고 있다. 반도체특별법은 한국이 처한 조건을 냉정하게 분석한 결과라기보다, 오히려 기술주의적 낙관론과 재벌 중심 산업정책이 만난 결과물에 가깝다.

지금 한국은 ‘첨단산업이 미래를 연다’는 믿음 아래, 반도체와 AI를 거의 성역화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게 되는지에 대한 성찰은 사라졌다. 반도체특별법에 대한 논쟁은 단순히 산업정책, 노동정책의 문제를 넘어서, 한국 사회가 기술·자본·국가 관계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직결되어 있다.

기술·시장 변동성 앞에서 30년짜리 계획이란?

정부는 2047년까지 622조 원, 삼성전자는 2052년까지 360조 원 등 장기 계획을 앞세우며 ‘세계 최대 반도체 메가클러스터’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AI 데이터센터 역시 2030년 이후까지 다수의 인프라 투자를 이어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문제는 반도체와 AI라는 두 산업 자체가 30년을 장담할 수 있는 산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반도체 공정은 1~2년 단위로 재편된다. 5나노·3나노·2나노 등 초미세 공정 경쟁은 시간 단위로 기술경쟁이 벌어진다. 시장 판도 역시 예측하기 어렵다. AI는 말할 것도 없다. 반년마다 기술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지난해의 기술이 올해 바로 구형이 되는 산업이다. 이런 산업을 향해 정부가 30년짜리 장기 계획을 내놓는 것은 정책의 안정성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시장에 대한 위험한 베팅이다. 

이 속에서 한국의 반도체 산업 전략은 지속적인 생산능력 증대에 있어 과잉생산을 부추길 뿐만 아니라 반도체 시장의 근본적 불안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6년 연속 세계 1위의 설비투자액을 기록했고, SK하이닉스도 글로벌 4~5위권이다. 여기에 반도체 메가클러스터, 용인반도체 국가산단 설치 등 주로 설비와 생산능력 증대에 꽂혀 있다. 미국 등 해외 공장 증설까지 포함한다면, 반도체 생산능력과 시장 점유율은 세계 최고 수준에 달한다.

문제는 국내 생산능력은 세계 수요의 21.9%(2028년 기준)에 달할 전망이지만, 국내 수요는 5.4%(2026년 기준0에 불과해 생산의 상당량을 해외에 팔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 유럽, 일본 등 주요 경쟁국의 ‘수입대체 산업화’(Import Substitution Industrialization)로 각국별 국내 생산을 확대해 나갈 뿐만 아니라, 공급망 재편·시장 봉쇄로 판로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반도체를 팔 곳도, 살 곳도 줄어드는 때에 이런 방식의 반도체 생산능력 증대는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 최악의 경우 반도체 산업이 그대로 자멸할 가능성도 있다.

판로와 수요가 축소하는 상황에서 생산 증설을 위한 과잉투자는 실제 시장 상황과의 괴리도 크게 나타나고 있다. 2018년 830억 달러에 달했던 반도체 수출이 2023년에는 429억 달러로 거의 반토막이 났다. AI 산업 역시 GPU 기반 대규모 연산 인프라 경쟁이 과열되며 이미 비용 부담이 폭증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반도체와 AI 두 산업에 대한 생산능력 확대 방식을 동일하게 답습하고 있다. 생산능력만 키우면 미래가 열린다는 단순한 믿음, 이것이 바로 지금의 산업 정책을 떠받치는 위험한 신화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삼성전자가 “향후 5년간 국내에 450조 투자”를 선언하는 것은 단순한 약속이 아니다. 그것은 반도체특별법과 각종 규제 완화, 세제 혜택, 전력·용수·입지 지원을 관철시키기 위한 협상 카드이자 정치적 메시지이기도 하다. 투자 계획은 언제든 조정될 수 있지만, 한 번 깔린 인프라와 지역의 의존 구조는 쉽게 되돌릴 수 없다.

이처럼 30년 장기 투자계획은 시장 급변에 취약하다. 투자계획이 철회될 경우, 대규모 산단과 인프라는 산업 공동화와 지역경제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평택캠퍼스 신공장 건설을 중단했을 뿐만 아니라, 2025년 파운드리(위탁생산) 설비투자를 전년 대비 절반으로 줄였다. 이는 수주 부진과 첨단 공정 지연 등 시장 상황 변화에 따라 대기업의 투자계획이 언제든 축소·철회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삼성전자가 다시 투자 계획을 확대하고 중단된 신공장 건설을 재개한다는 발표를 했다. 하지만 다시 생산 조건과 상황이 변하게 된다면, 거대한 산단과 인프라는 산업 공동화와 지역경제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반도체·AI에 올인한 한국경제의 침몰을 의미하는 것이다. 반도체 지원 30년 투자계획 속에서 발생할 수요변동, 산업변동, 투자계획 변동은 한국경제 전반에 재앙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반도체·AI는 자원 의존형 산업, 한국과 맞지 않아

반도체와 AI 산업은 전력·물·희토류 등 자원 의존도가 매우 높은 산업이다. 반도체 공정은 막대한 전력과 초순수를 필요로 하고, AI 데이터센터는 GPU 수만 장을 24시간 가동시키며 전력과 냉각수를 집어삼킨다. 전력 먹는 하마인 셈이다. 

삼성전자는 연간 32TWh 이상의 전력을 사용하고, SK하이닉스도 12TWh 이상 사용한다. 또한 두 기업의 물 사용량은 팔당댐 저수량의 80%에 해당하는 연간 2억 톤에 달한다. 한마디로 반도체 두 기업은 수도권 사용량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전력과 물을 사용한다. 여기에 평택 공장 5라인, 용인 국가산단, 반도체 클러스터, 전남 AI 컴퓨팅센터, 구미 AI 데이터센터가 추가로 들어서면 전력과 물 사용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럼에도 정부와 삼성, SK는 “글로벌 AI G3 도약”과 “전고체 배터리, OLED, 패키지기판” 같은 키워드로 포장하며, 자원과 에너지 문제를 의도적으로 지워버린다. 전남 AI 컴퓨팅센터, 구미 데이터센터, 울산 전고체 배터리, 아산 OLED, 부산 패키지기판, 광주 공조설비 공장까지 이어지는 투자는, 지역 발전이라는 이름의 자원·탄소 집약 산업 거점화일 뿐이다.

요컨대, 첨단산업 특히 반도체 생산은 한국의 지형과 자원 조건에 맞지 않는, 감당할 수 없는 산업 유형이다. 특히 한국은 물 부족 위험이 큰 나라이고, 재생에너지 비중은 OECD 최하위권이다. 전력 수급은 이미 계절마다 위태롭고, 전력망 확충은 다시 원전·LNG 발전 확대 논리와 직결된다. 이뿐 아니라 희토류와 특수가스, 첨단 소재는 80~90%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어, 미·중 갈등이나 공급망 충돌이 발생할 경우 생산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이대로 반도체 생산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반도체 생산단지가 위치한 지역뿐 아니라 사실상 전 국민이 전력과 물 사용을 반도체 생산에 양보해야 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결국 반도체 대기업의 이윤 확보를 위해 국민 대다수의 기본권을 제한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만들어질 뿐이다. 그런데, 누구를 위해 반도체 공장은 돌아가는가?

반도체 산업은 일자리를 만들지 않는다

정부는 반도체 클러스터에 346만 명의 고용효과와 650조 원의 생산유발효과를 주장한다. 삼성 역시 최근 450조 원 투자계획과 함께 5년간 6만 명 신규 채용을 약속하며 청년고용 확대 의지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의 고용 구조를 들여다보면 이 약속은 매우 제한적이거나 사실상 거짓말에 가깝다. 

당장 미국은 750조 원에 해당하는 반도체 투자에도 6만여 개의 일자리 창출을 전망할 뿐이다. 미국 반도체협회에 따르면, 칩스법 이후 민간의 반도체 투자는 총 5,400억 달러(750조 원)로 발표됐고 68,000개의 직접 일자리가 창출된다. 설비 공장 증설 등 미국 경제 전반에 약 50만 개의 일자리가 추가될 것으로 전망한다(https://www.semiconductors.org/chips-incentives-awards).

미국의 반도체 투자액(750조 원)은 우리(622조 원) 보다도 많은데, 일자리 창출은 전체 고용 효과로 보더라도 한국이 미국 전망치보다 8배 이상 많다. 더 적게 투자하고도 8배 이상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니, 한국의 반도체 산업구조가 미국에 비해 그만큼 더 노동집약적이란 말인가? 한국의 346만 명 고용효과는 숫자놀음에 불과한 거짓말일 뿐이다. 

또한, AI·로봇 등 자동화로 고용유발계수는 지속적으로 하락해, 투자가 늘어도 고용은 오히려 줄고 있다. 실제로 2010년대 라인당 15명 이상 필요했던 생산직 인력은 스마트공장 도입 후 1.5명 수준까지 줄었다. 2017년 평택공장이 가동을 시작하고, 2020년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평택 2라인이 가동되었어도 2010년 이후 삼성전자의 국내 고용 인원은 큰 변동이 없었다. 삼성전자의 전체 임직원 수는 2015년 32만 명이 넘었지만 2019년 30만 명에서 2022년 26만6천 명으로 감소했고, 생산직 비중도 계속 줄고 있다. 특히 20대 직원은 19만 명에서 7만 명 미만으로 급감했고, 40대 이상은 8만 명을 넘기며 처음으로 20대를 추월했다. 

게다가, 2030년 이후 신규 공장에는 무인공장이 적용될 가능성도 높다. 반도체 산업은 자동화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어, 생산라인 노동력은 과거의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AI 산업도 마찬가지로 소수의 기술 인력 중심의 초집약적 구조를 갖고 있어, 대규모 고용 창출을 기대할 수 없다. 국가가 반도체특별법을 통해 기대하는 “대규모 고용 효과”라는 이야기는 사실상 현실과 동떨어진 신화에 가깝다.

전략산업 보호가 아니라 재벌 특혜의 제도화

반도체특별법의 핵심은 반도체 기업에 대한 전례 없는 특례와 혜택이다. 법은 세제 감면을 대폭 확대하고,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며, 전력·용수·교통 같은 인프라를 공공 비용으로 확보해준다. 여기에 정책금융을 통한 막대한 자금 지원까지 결합되면서, 사실상 반도체 대기업에게 거의 모든 공공적 자원을 우선 배분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미국, 중국, 일본, 대만 등 핵심 경쟁국들도 반도체특별법과 같은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법에서 빠져 있는 것이 있다. 바로 공공적 환수와 통제 장치다. 미국은 칩스법을 통해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초과이윤 환수, 자사주 매입 제한, 기술공유, 중국 투자 제한 등 강력한 사회적 조건을 부과한다. 기업 보조금이 반도체 생산에 대한 보조금이라기보다, 이러한 가이드라인, 환수 조건 부과에 따른 지원금 성격이 크다. 

반면 한국의 지원 정책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민간 대기업 재벌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막대한 세제 혜택과 보조금이 제공되지만, 공공적 통제나 이익 환수 장치는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국민의 세금이 결국 재벌기업의 이익 증대에만 기여하는 특혜성 지원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일본, 중국, 대만은 민간기업이 아니라 국가주도로 만들어진 반도체 기업을 지원하기 때문에 민간 자본에 대한 무상지원과는 차원이 다르다. 일본은 '라피더스(Rapidus)'라는 국가 주도의 공적 성격을 가진 반도체 기업을 설립하여 국가 지원을 강화하고 있고, 정부가 직접 경영에도 관여하고 있다. 대만 TSMC 역시 정부(국가개발기금) 지분이 가장 큰 최대주주이므로 민간기업이면서도 공적 성격을 유지한다. 중국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 SMIC는 중앙정부가 사실상 소유한 국유기업이다.

반면 한국의 반도체특별법은 기업에게 제공되는 혜택은 방대하지만, 그에 대한 사회적 환수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환경·지역경제에 대한 기업의 책임은 모호하거나 부재하고, 정부가 제공하는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실제 고용·기술·공공적 가치로 돌아오도록 하는 장치도 없다. 재벌인 민간 자본에 국가가 아무런 조건 없이 돈과 국가적 자원을 무상으로 제공한다. 문자 그대로 재벌 특혜인 법이 바로 반도체특별법이다. 이 법은 “국가전략산업 육성”이라는 상징적 언어를 차용했지만, 실질은 “재벌 기업 이윤과 리스크의 국가적 보증 체계”에 더 가깝다.

위험은 사회화되고 이익은 사유화된다

반도체특별법은 국가전략이라는 이름으로 재벌 대기업에 전례 없는 혜택을 제공하지만, 이런 혜택이 사회적 이익으로 돌아오는 구조는 없다. 지역은 종속되고, 노동은 고용 불안에 놓이며, 국가 자원은 특정 산업에 몰리게 된다. 기후위기 대응은 후퇴하고, 산업 실패의 위험은 결국 사회가 감당해야 한다. 삼성의 450조 투자 계획도, 6만 명 신규 채용도, AI 데이터센터 건설도, 반짝이는 숫자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결국 하나의 구조를 강화한다. 바로 “기업의 리스크는 사회에 전가되고, 이익은 재벌에 사유화되는 구조”다. 이것은 경제정책이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과 지역 격차, 노동 불안정, 자원 종속을 확대하는 산업체제의 재생산이다.

반도체와 AI는 중요한 산업이다. 그러나 중요한 산업이라는 사실이 곧 무제한적 지원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한국이 지금 필요한 것은 ‘반도체·AI 올인’이 아니라, 기술·자본·국가의 관계를 공공성과 민주주의 중심으로 재구성하는 근본적 전환이다. 그 전환이 없다면 622조가 아니라 6,220조를 투자해도 한국 경제의 미래는 안전하지 않다. 반도체특별법이 그 사실을 누구보다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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