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반도체특별법’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 통과를 목전에 두고 있다. 반도체특별법은 재벌 퍼주기 ‘삼성특혜법’ 논란, 고용창출 등 경제적 효과에 대한 의문, 연구개발노동자에 대한 주52시간 노동상한제 규제 완화 우려, 기후위기 시대에 물과 전기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한 우려, 지역 송전탑 대책위의 반대, 청소년 교육권과 노동권 침해 등 노동자와 지역주민, 시민사회의 각종 비판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이를 무시한 채 특별법을 일방적으로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이에 <재벌특혜 반도체특별법 저지·노동시간 연장반대 공동행동(이하 반도체특별법 저지 공동행동)>에서는 반도체특별법의 문제점에 대해 5회에 걸쳐 연재한다.
11월 4일, "반도체 특별법 강행 처리 반대" 기자회견 현장, 해미 기후정의동맹 활동가(가운데). 재벌 특혜 반도체특별법 저지·노동시간 연장 반대 공동행동 제공
정부는 반도체산업을 한국 경제의 대표적 성공 서사로 만들고자 하지만, 그 서사가 무엇을 기반으로 구축됐는지, 더 정확히는 무엇을 희생한 결과인지에 대한 질문은 비껴간다. ‘첨단 기술’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반도체산업은 막대한 물·전기·토지 등 공공재를 끌어와야만 유지되며, 그 비용과 피해는 산업 바깥에서 조용히 누적되어 왔다. 또 정부는 계속해서 ‘성장’을 국가적 과제처럼 제시하며 반도체 생산량 확대를 최우선 목표로 삼았고, 전력·용수·송전망 등 기반 시설을 공공 예산으로 확충해 왔다. 그러나 기후위기 시대 산업을 위한 자원의 막대한 소모가 지속가능성의 핵심 문제가 되었다. 이젠 “수출 먹거리 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무한 확장을 정당화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가 추진하는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안’(반도체특별법)은 그간의 산업 중심 정책을 오히려 더 공고히 하는 법이다. 반도체기업의 확장을 국가 목표로 설정하고, 이를 위해 행정 절차 완화·인허가 단축을 제도화하는 방식이다. 이는 공공재를 필수적 권리가 아닌 산업의 이윤에 우선 배분하는 시도로도 이어진다. 반도체특별법은 이미 기후위기와 충돌하고 있는 산업 구조를 사실상 “정답”으로 고정하는 것이며, 이 법이 통과되면 생태와 지역사회에 미칠 부담은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반도체특별법이 망칠 미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초순수 34만 톤’에 담긴 수탈
반도체 공정에서 물은 대체 가능한 자원이 아니라 생산의 절대 요소다. 초미세 공정에서는 웨이퍼 세척과 오염 제거를 위해 하루 수십만 톤의 초순수(UPW)가 필요하다. 삼성전자 한 곳에서만 하루 34.4만 톤의 물을 사용하며, 이는 자그마치 백만 명이 하루에 쓰는 생활용수와 맞먹는다. 이 정도 규모의 물 사용은 단순한 ‘대량 소모’가 아니라 지역 수자원 구조를 바꾸는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있다.
이미 여러 지역에서 하천 수위 저하, 갈수기 취수 갈등, 지하수 고갈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특히나 기후위기 심화로 강수량의 불규칙성이 커지는 상황에서는 특히 더 취약하다. 그러나 반도체특별법은 이런 상황에서도 산업용 물 공급을 최우선으로 두도록 제도화하려는 시도다. 지역의 물 부족 문제나 장기적인 생태안정성보다, 산업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한 인허가 단축을 앞세우는 거다. 정부는 물의 ‘희소성’이라는 기후위기 시대의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그저 물 소모를 “성장을 위한 비용” 정도로 취급한다. 그 비용은 지역 생태와 주민 생활에 전가될 것이다.
대만의 2021년 가뭄 사례는 이 문제가 먼 이야기가 아님을 보여준다. ‘최악의 가뭄’을 겪는 상황에서 반도체 공장에 물을 우선 공급하기 위해 주민들의 생활용수가 제한되고 농지의 5분의 1에서 농사가 중단됐다. 작물 생산량 급감·가격 폭등·식량자급률 하락이 뒤따랐다. 한국에서도 수자원공사는 2030년 반도체산업의 물 사용량이 하루 325만 톤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한정된 물을 어디에, 누구를 위해 배분할 것인지 결정할 거냐는 질문에 반도체특별법은 산업의 편에서 답하는 선택이다. 그러나 우리는 먹고 마시고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물보다 반도체 공장의 물을 우선하는 선택이 최선일지 질문해야만 한다.
‘전력’을 집어삼키는 반도체산업
반도체산업은 국내에서 가장 전력을 많이 사용하는 산업이자, 그 수요가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공정 미세화와 생산량 확대는 전력 소비 급증으로 연결되며, 이는 한국 전력 수급 계획을 흔드는 핵심 요인이 되고 있다. 정부는 산업단지 전력 부족을 해결한다며 송전망·변전소·전력기반시설을 확충하고 있지만, 이 비용은 많은 부분 공공의 부담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낮게 유지되면서 국민 전체가 전력 수요 확대를 사실상 보조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전력의 막대한 소모 문제는 기후위기 대응과 충돌하기도 한다. 반도체산업은 RE100을 요구하며 재생에너지 공급 확대를 압박하지만, 막대한 전력 수요를 가진 산업이 RE100을 달성한다는 것은 국가 전체의 재생에너지 총량을 선점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반도체 클러스터를 수도권이 아닌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지역으로 이전하자고 주장하지만, 공장을 어디에 두든 대규모 생산설비를 추가로 가동하는 순간 전력 수요 자체가 커지는 문제는 달라지지 않는다.
반도체특별법은 ‘산업 우선 전력 배분’을 제도화하는 방식으로 재생에너지의 공공성을 오히려 약화시킨다. 아직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중이 낮은 상황에서 반도체 공장에 우선 공급하면 다른 부문에 재생에너지를 사용할 여지는 더 줄어들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의 제한된 국토와 생태 수용력을 고려할 때, 재생에너지 발전을 무한정 늘릴 수도 없다. 결국 재생에너지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적 전환이 아니라 산업 성장의 연료처럼 취급하는 데 그칠 것이다.
반도체산업에 빼앗길 ‘땅’
반도체산업이 확장될 때 필요한 것은 단순 공장만이 아니다. 초순수 설비, 변전소, 송전선로, 폐수처리시설, 산업용 부지 등 방대한 규모의 기반 시설이 수반된다. 정부는 산업단지 확장을 위해 대규모 부지를 확보하고, 이를 위해 농지와 산을 훼손하는 문제 등이 반복된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지역 생태와 생활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과정은 충분하지 않다. 여기에 반도체특별법은 환경영향평가 완화, 주민 동의 절차 축소, 인허가 기간 단축 등 ‘규제 우회’를 가능하게 하는 조항을 담고 있다. 지역사회의 위험과 부담을 둘러싼 민주적 논의와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할 절차 자체를 지워버리는 효과를 낳는다.
송전망 갈등은 이런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 현실화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국가 차원에서는 “산업 경쟁력 확보”라는 명분이지만, 송전망을 지음으로써 발생하는 피해는 생업 환경 악화 및 박탈, 경관 훼손, 지역 공동체 피로 누적 등으로 지역 주민에게 집중될 것이다. 반도체특별법이 시행될 경우, 대기업의 투자 속도와 이윤 확보를 위한 지역의 박탈은 더 빠르고 더 넓게 확산될 것이다.
‘정의로운 전환’을 선택해야 할 때
반도체는 이미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다. 지금 당장 반도체산업을 멈추자는 주장은 현실적이지 않을 테다. 그러나 지금의 문제적인 반도체 산업을 무한정 확장할 수 있게 하는 반도체특별법에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도 없다. 기후위기가 심화하며 물·전력·토지라는 기본 자원의 불안정성이 커지는 현실 앞에서, 산업의 확장만을 추진하는 것 또한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건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자원 이용 구조를 재편하고, 그 과정에서 산업·지역·시민의 권리를 확충하는 ‘정의로운 전환’이다. 이를 가능케 하는 ‘공공재생에너지’라는 새로운 에너지 체계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회는 반도체특별법이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선택임을 직시하고 지금 즉시 철회해야 한다. 그리고 모두가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 체계로 나아가는 논의를 시작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