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자주] 지난 16일 치러진 칠레 총선거에서 히아네트 하라(Jeannette Jara) 칠레공산당 후보가 26.85%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칠레 트럼프’라고 불리는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José Antonio Kast) 공화당 후보가 23.92%로 2위에 올랐다. 칠레는 결선투표제를 채택하고 있어 오는 12월 14일 결선투표가 치러질 예정이다.
이 글은 칠레 총선거 전에 쓰여진 글로, 총선거에 나선 칠레공산당 내 여성정치인들의 활동을 주목하는 글이다.
“Las Recambistas”(라스 레캄비스타스, 새로운 세대의 젊은 여성 공산당 정치인들)
대선 후보 히아네트 하라(Jeannette Jara)가 이끄는 칠레의 선거에는 100년 역사의 칠레 공산당에서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찾은 젊은 여성 정치인들의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
이라시 하슬러, 산티아고 코무나 전 시장이자 현 국회의원 후보
보라색 토트백과 전단, 배너를 든 이라시 하슬러(Irací Hassler)와 방문팀은 산티아고 중남부의 저층 주택가 한 블록(만사나)을 두 구역으로 나눴다. 한 팀은 북쪽을, 다른 팀은 남쪽을 맡는다. 이들의 임무는 칠레 수도의 이 저소득 지역에서 주민들에게 투표를 독려하는 것이다. 한때 전통적이고 다채로운 집들로 활기를 띠던 이 지역은 수십 년간의 방치로 심각하게 쇠퇴한 상태다.
“올라, 베시노!”(¡Hola, vecino!, 안녕하세요. 이웃분) 활기찬 하슬러가 집집마다 방문하며 외쳤다. “올라, 베시노!” 그가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의적이다. 하슬러는 중년 여성과 몇 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여러 작은 개들이 한목소리로 짖는 그 집에서 동물 학대 문제에 대한 자신의 정책을 설명했다. 그의 미래 유권자가 될지도 모를 몇몇 사람들은 하슬러와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그러나 모두가 설득된 것은 아니었다. “내 성향이 아니군,” 한 남성은 그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의 거리로 멀어지자 중얼거렸다. 또 다른 여성은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채자마자 재빨리 문을 닫았다. 하슬러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1990년, 즉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의 잔혹한 17년 독재가 막을 내린 해에 태어난 하슬러는 칠레 공산당(PCCh)에서 진보적 아이디어의 터전을 찾은 새로운 세대의 젊은 층이다. 그리고 이 정당 역시 젊은 활동가들과 함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준비가 된 조직적 기반이었다. “엘 레캄비오(el recambio, the shake-up·새로운 물결)”로 불리는 이 젊은 정치인들(그중 상당수는 여성)은 민주주의가 회복된 지난 30년 동안 존재감을 찾지 못해 고전하던 정당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오늘날 이 정당과 여성 지도자들은 52세의 히아네트 하라(Jeannette Jara)가 예상 밖으로 부상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PCCh의 오랜 구성원이자 현재 대선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인물이다. 하라의 나이와는 상관없이 젊은 당 활동가들은 그의 출마를 정당의 현대화를 더욱 공고히 할 기회로 보고 있다. 이 정당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칠레의 사회적 투쟁 최전선에 서 있었다.
새로운 지도자들
하슬러는 선구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2021년 6월, 그는 산티아고 광역권을 구성하는 여러 코무나(comuna, 한국의 구와 시 같은 기초자치단체) 중 하나인 산티아고 코무나에서 공산당 소속 정치인으로는 처음으로 시장에 선출됐다. 그의 시장 임기는 칠레를 ‘붉게 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공원·조명 등 도시 인프라에 대한 대규모 투자와 나무 심기, 시 폐기물 수거 같은 생태적 조치를 특징으로 했다. 그는 또한 시에라 베야 클리닉(Clínica Sierra Bella) 사건으로 알려진 부패 의혹에도 직면했는데, 이는 그가 한 폐쇄된 클리닉을 시청용 건물로 전환하려고 시도한 것이었으나 최근 증거 부족으로 기각됐다.
2024년 말, 그는 재선 도전에서 우파 마리오 데스보르데스(Mario Desbordes)에게 패배했지만, 이후 당 지도부에 의해 10번 선거구 출마 후보로 지명됐다. 이 광대한 선거구는 고소득 지역인 프로비덴시아에서부터 산티아고와 산 호아킨 같은 노동계급 지역까지 포함하며, 100만 명이 넘는 유권자가 있어 칠레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선거구다. 하슬러는 이 다양한 선거구에 비례대표제로 배정된 하원의원 8석 중 한 자리를 얻으려 한다. 그는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만이 관심을 모으며 당을 새로운 방향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젊은 여성 공산주의자는 아니다. 파울라 페레스(Paula Pérez)는 산티아고 북부의 노동계급 지역이자 하라가 성장한 곳인 콘찰리 출신의 30세 시의원이다. 하라처럼 페레스도 10대 때 칠레공산주의청년단(JJCC, 혹은 라 조타)에 가입했다. 2024년 그는 콘찰리 시의원으로 선출됐고, 노인 대상 보조금과 지역 보건계획을 포함한 여러 개혁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기여했다.
하슬러처럼 페레스도 하라의 대선 출마를 중대한 순간으로 본다. 하라는 우파를 패배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당 내부를 변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페레스에 따르면 하라는 “훨씬 더 페미니스트적인 정치적 비전”을 갖고 있지만, 과거와는 다른 비전이다. “부르주아 페미니즘이 아니라 거리의 페미니즘이다.”
다시 주목받는 무대
하라는 칠레 좌파에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 정부에서 사회복지부 장관을, 가브리엘 보리치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냈다. 그럼에도 그의 최근 부상은 눈에 띄게 두드러졌다. 6월 치열했던 좌파 내부 경선에서 그는 사회당 정치인 카롤리나 토하(Carolina Toha)와의 맞대결에서 60% 이상을 득표했다. 그 결과 1932년 이후 처음으로, 칠레 대선 선두 후보가 공산당 소속이 됐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라는 이름에는 부담이 따른다. 페레스에 따르면 그는 지난 50년간 신자유주의 정책의 실험장이었던 이 나라에서 종종 금기시된 이 용어의 낙인을 지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페레스는 “사람들은 하라가 승리하면 내일 당장 모든 것이 공산주의가 될 거라고 말한다”라며 “그럴 일은 거의 없다. 우리는 헌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공산당에 대해] 전반적인 이해 부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파울라 페레스, 콘찰리 출신의 시의원
하라의 선거운동은 단순하고 직설적인 말투, 그리고 만화 이미지나 유행하는 춤을 활용한 경쾌한 소셜미디어 콘텐츠로 주목을 끌었다. 이런 방식은 정당의 이미지를 한층 부드럽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 국회의원 카롤 카리올라(Karol Cariola)와 카밀라 바예호(Camila Vallejo) 같은 젊고 새로운 여성 정치인들이 두각을 나타낸 것 또한 당의 변화된 모습을 강화했다. 현재 39세인 카리올라와 38세인 바예호는 2013년 공산당 후보로 하원의원에 처음 당선됐고, 생계비 문제를 중심으로 한 1차 학생운동의 흐름 속에서 의석을 얻었다. 이후 2019년 학생운동이 칠레 전역에서 다시 폭발해 학생운동가 가브리엘 보리치(Gabriel Boric)와 그의 연합 ‘아프루에보 디그니다드’(Apruebo Dignidad, 존엄을 위한 찬성이라는 뜻으로 칠레의 좌파 연립 정치연합)를 집권세력으로 끌어올렸을 때, 두 사람은 새 정부에서 더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바예호는 정부 대변인으로, 카리올라는 국가여성청장으로 활동했다.
보리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지만, 그의 집권은 수십 년 만에 공산당이 정부 진영에 다시 참여하는 계기가 됐다. 이 정당은 민주화 전환을 주도했던 중도좌파 연합 ‘라 콘세르타시온’(La Concertación)에도 포함되지 않았고, 이후 등장한 중도좌파·중도우파 연립정부에서도 계속 배제돼 왔다.
정당의 부활?
칠레 공산당은 오랜 역사 속에서 여러 고비를 견뎌왔다. 1912년 북부 사막 지역의 노동조합 운동에서 ‘사회노동자당’으로 창당된 뒤, 10년 뒤 공산당으로 개칭했다. 그 과정에서 정당은 세 차례나 금지됐고, 피노체트 독재 시절에는 수백 명의 당원이 살해되거나 실종됐으며, 지도부 대부분이 망명하거나 숨어 지내야 했다.
칠레 좌파, 특히 공산당을 연구해 온 역사학자 롤란도 알바레스 바예호스(Rolando Álvarez Vallejos)는 이 새로운 세대의 정치인들과 활동가들이 정당을 다시 일으켜 세운 주역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세대는 깃발을 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선되기 위해 정치를 하는 세대”라고 설명한다. 지금 정당은 승리가 손에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
이 새로운 매력의 핵심에는 당이 과거의 ‘남성 중심 정당’ 이미지를 벗어던진 과정이 있다. 물론 이 변화는 순탄치 않았다. 2017년 1월, 청년조직 ‘라 조타’ 지도부가 페미니즘을 당의 핵심 원칙으로 명문화하려 했지만, 당시 일부 지도자들은 이를 “부르주아적”이라며 반발했다. 몇 년 뒤인 2021년, 젊은 지도자들은 같은 논쟁을 중앙위원회로 가져갔다. 저항에도 결국 논쟁에서 승리했고, 2022년 칠레 공산당은 공식적으로 페미니스트 정당 노선을 채택했다.
“이 정당은 오랫동안 카시케(caciques,기득권 지도층), 그러니까 내부 기득권들이 좌지우지해온 곳이고, 여성들은 역사적으로 늘 주변적 역할에 머물렀다. 공산당 안에 여성 활동가가 많음에도 이 당은 전통적으로 훨씬 더 남성 중심적이었다”라고 칠레대학교 정치학 교수 클라우디아 아이스(Claudia Heiss)는 설명했다. 이어 “그리고 지금의 변화는, 공산주의자가 된다는 게 국제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과정과도 맞물려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변화는 인권 침해로 비판 받아 온 기존 PCCh의 전통적 동맹국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 정당의 외교 노선에서도 드러난다. “카롤 카리올라나 카밀라 바예호가 김정은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낼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아이스는 웃으며 덧붙였다. 정당 내부 일부가 보다 민주사회주의적 비전을 향해 움직이고 있음에도, 칠레 공산당 대표 라우타로 카르모나(Lautaro Carmona)는 여전히 정당이 프롤레타리아적 기반과 계급정치를 통한 변혁적 비전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산티아고의 그의 사무실—소련, 중국, 베트남의 정치 선전물로 장식된 공간—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공산당은 계급 기반의 정당이다. 여기서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계급적 위치다.”
“희망의 길”
정당에 새 활력을 불어넣은 것이 젊은 층만은 아니다. 이번 선거에는 총 28명의 공산당 후보가 출마하며, 1차 투표는 11월 16일에 열렸다. 가장 젊은 후보는 30세의 다니엘라 세라노이(Daniela Serrano)며, 가장 나이 많은 카르멘 에르츠(Carmen Hertz)는 80세를 바라보고 있다. 안토파가스타에서는 59세의 유아교육가 파울리나 리사나(Paulina Lizana)가 2020년에 들어서야 공산당에 입당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늘 공산주의자였던 것 같다. 다만 그런 환경에서 자라지 않아서 미처 몰랐을 뿐이다.”
칠레 대선 후보 히아네트 하라
반정부 시위가 자신의 지역에서 폭력적으로 진압된 이후, 리사나는 공산당에 입당했고 2025년에는 칠레 주요 구리 채굴 지역을 포괄하는 3번 선거구의 후보로 지명됐다. 그는 카르모나와 바예호처럼 젊은 여성 정치인들이 당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 모습을 보며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들이 우리가 공산주의자라고 더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해주는 이유의 일부다.”
산티아고의 하슬러도 비슷한 생각이다. “사람들이 우리를 더 잘 알게 됐다고 느낀다. 이는 오늘날 스스로를 진보적 좌파라고 여기는 사람들뿐 아니라, 뚜렷한 정치적 성향이 없지만 사회적 권리를 믿는 시민들이 우리를 지지해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 그들은 장네트 하라를 지지하고, 동시에 우리 후보들도 지지한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 더 정의로운 사회를 지켜낼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과제는 만만치 않다. 하라가 1차 투표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을 수는 있겠지만, 여론조사에 따르면 누구와 맞붙든 결선에서는 패배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일부에게 하라의 출마 자체는 이미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독재 시절 구금되고 고문을 겪었던 노동조합 지도자 안헬라 리포(Angela Rifo)는 하라의 출마를 역사적 사건으로 본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미래에 엄청난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생각한다. 그가 여성이라는 점 때문만이 아니다. 우리 같은 사람—노동자, 전직 조합원, 가난한 동네에서 온 여성—도 이 나라의 국가원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는 이어 말했다. “그것은 큰 희망을 준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그렇다. 나는 그의 출마가, 결과와 상관없이, 지금처럼 세계가 복잡한 시기에 희망의 길을 연다고 믿는다.”
[출처] “Las Recambistas”: The New Wave of Communist Women in Chile’s Elections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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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네아스 뤼커트(Phineas Rueckert)는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기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