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광장 밝힌 ‘평등’ 시민들...“비상계엄 1년, 우리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세계인권선언일인 12월 10일, '평등' 시민들이 다시 광장에 나섰다.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존엄하며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는 선언을 환기하며, 비상계엄 1년 후에도 여전히 달라진 것 없는 차별과 혐오의 늪에서 분투하는 민중들이 다시 광장을 밝혔다. 

12.10 민중의 행진 현장. 참세상

70여 개 사회운동 단위와 진보정당들은 12월 10일 저녁 7시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가자, 평등으로! 12.10 민중의 행진’을 개최하고, 윤석열의 퇴진뿐만 아니라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노동이 존엄한 나라, 기후정의 당연한 나라, 공공성 든든한 나라, 진보정치 빛나는 나라”를 꿈꾸었던 지난 겨울 광장의 약속을 향해 다시 함께 싸워나가자고 마음을 모았다. 이날 집회에는 700여 명의 시민들이 함께했다.

이들은 “내란 청산은 계엄을 일으킨 윤석열뿐만 아니라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토대를 해체하는 일이어야 한다”면서 “사회·경제적 불평등 해소 없이 12월 3일 이전으로만 돌아간다면, 그 세상은 언제든 다시 윤석열을 선출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짚고는 “과도한 경쟁, 사회적 고립, 경제적 불안, 박탈감이 연대의 지반을 뒤흔드는 사회에서 여성과 아동, 장애인, 이주민을 표적 삼는 혐오정치가 이들의 무한한 연료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정의로운 전환 시작하라, 모두의 노동권과 기본권을 보장하는 사회로 나아가자는 우리의 요구는 확산하는 혐오 정치를 끝낼 수 있는 가장 유력한 길”이라고 제시하고 “평등을 향한 싸움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한희 한국성소수자인권단체연합 무지개행동 활동가. 참세상

이날 기조 발언에 나선 한국성소수자인권단체연합 무지개행동 박한희 활동가는 지난 겨울 ”광장에 모인 우리는, 차별과 혐오로 성장한 극우 정치가 민주주의에 얼마나 위협이 되는지를 함께 경험했다”면서 그렇기에 “모든 차별을 없애고 평등이 중심이 될 때만이 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함께 외쳤다”고 환기했다.

그러나 비상계엄 후 1년이 지난 오늘에도 우리 사회에는 차별과 혐오가 만연해 있다면서 “그럼에도 민생과 통합을 강조하는 정부는 평등을 위한 의지는 하나도 보이지 않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박한희 활동가는 “차별금지법 제정이야말로 민생을 살리고 사회 통합을 이루는 길”이며 “성평등을 실현하고 사회적 소수자가 존엄을 누리는 사회, 장애인도 이동하고 나이가 어리다고 종종 피부색이 다르다고 혐오와 차별을 받지 않는 사회, 노동권이 온전히 실현되고, 누구나 자신답게 살아가고, 성별에 상관없이 가족으로 돌볼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가 민주주의를 위한 가장 우선적인 과제”라고 강조했다.

덧붙여 “정부와 국회는 더 이상 사회적 합의를 핑계 대며 평등을 미루지 말라”면서 “여기 모인, 우리는 더 많은 민주주의와 평등을, 모두가 존엄하고 평등한 사회를 원한다”라며 “이 열망은, 우리 모두가 경험한 광장의 약속은, 여기 모인 우리의 힘으로 반드시 이룰 것”이라고 힘 주어 이야기했다.

이날 집회에는 차별과 혐오에 맞서 투쟁하는 여러 민중의 고민과 바람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루니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활동가, 이춘기 경기이주노동자센터 활동가, 박용수 홈리스행동 회원. 참세상

“윤석열 탄핵집회에 응원봉과 무지개 깃발을 들고 참여”했다는 한국레즈비언상담소 루니 활동가는 지난 5월 “응원봉만 있고 무지개는 지워진” 대통령 선거 공보물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여성과 성소수자의 존재를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만드는 것은 오래된 차별의 방식”으로 “공보물에서 무지개가 빠진 것은 특정 시민을 정치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로 읽혔다”고 지적했다.

루니 활동가는 또한 “현 정부는 여성과 성소수자의 존재를 계속 주변화하고 있다”라며 “필요할 때는 응원봉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면서 성소수자의 삶과 목소리는 배제한다”고 비판하고 “다양성이 존중받고 누구도 성소수자라는 이유 때문에 지워지지 않는 사회를 바라는 다시 이 자리에 섰다”, “우리는 지워져도 되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여기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함께 빛을 들 것이다”라고 이야기 했다.

‘고 뚜안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강제단속 중단을 위한 대구·경북지역 공동대책위원회’에 함께하고 있는 이춘기 경기이주노동자센터 활동가는 “새로 태어났다는 이 정부에서도 이주노동자들에게 폭력을 동반한 살인을 부르는 강제 단속을 이어가고 있다”라며 지난 10월 28일, 강제 단속 과정 중 베트남 이주 노동자 고 뚜안 씨가 목숨을 잃은 지 40여 일이 지났음에도 “대통령, 법무부 장관, 사고 사업소인 대구 출입국 소장 그 누구도 유족에게 사과 한마디조차 없었고, 폭력적 강제 단속은 계속되고 있다”고 규탄했다.

그는 “지난 20여 년 동안 법무부가 적법이라 주장해 온 살인적 단속으로 사망한 이주노동자가 30여 명이 넘는다”라며 “더 이상 국가가 잘못 만들어 놓은 제도 아래 이주민을 불법으로 낙인찍고 단속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은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이주노동자들이 사람으로 함께 살아가는 평등으로 가는 큰 그림”을 함께 그려가자고 힘 주어 말했다.

홈리스행동 박용수 회원은 “홈리스행동뿐만 아니라 많은 단체의 시민들이 참여하여 윤석열 퇴진을 이루었다”라며 그러나 “민주주의를 향한 위협은 계속되고, 누구나 평등과 자유를 누려야 하지만 홈리스를 비롯한 사회 취약계층에 자유와 평등은 여전히 너무나 먼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우리의 광장은 점점 축소되고 있다”며 오세훈 서울시장 등에 의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우리 모두의 공간”인 서울역 광장이 “돈을 벌기 위한 공간으로 변하면서 동시에 홈리스를 추방하는 공간으로 변질되어 특정 계층만을 위한 공간이 되고 있다”고 짚었다.

박용수 회원은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광장에서 우리 모두의 평등한 공간을 지키기 위하여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며 “공공장소에서 홈리스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 우리 모두의 공공성을 지키는 것이고. 우리 모두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김영훈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전KPS비정규직지회장. 참세상

지난 6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끼임 사고로 목숨을 잃은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충현 씨의 동료인 김영훈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전KPS비정규직지회장도 발언에 나섰다. 김 지회장은 동료들과 함께 발전소 현장에 만연한 ‘죽음과 위험의 외주화’를 뿌리 뽑기 위해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23일째(집회일 기준)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집회가 여린 12월 10일은 또 다른 하청 노동자 고 김용균 씨가 같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일을 하다 목숨을 잃은 지 7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김 지회장은 고 김충현 노동자의 죽음 이후 “국회의장과 국무총리, 대통령실 비서실장까지 ‘죽음의 외주화를 막기 위해 나서겠다, 최선을 다하겠다’ 약속한 말이 있었지만 결국 그 말이 거짓으로 드러났다”면서, 비상계엄 후 1년이 지났고 “이재명 대통령은 연일 여러 매체를 통해서 자신들의 실적을 자화자찬하고 있지만 실제 우리 삶은 바뀌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22일 동안 농성을 하면서 함께 농성장을 지켜온 “섬 지역 발전소에서 일하던 사람들, 제주 무안공항 참사 유가족들, 청와대에서 일하던 미화·조경·보안·안내 노동자들, 국민건강보험 콜센터 노동자들 모두가 처지가 같았다”라며 “국민주권 정부라고 칭송하던 정부는 더 교묘히 더 나쁜 노동 조건을 제시하면서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심지어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준 법원의 판결까지 무시하고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 규탄하고, “참지 말고 함께 싸우자”, “기만과 거짓투성이인 정부를 우리 힘으로 다시 바꿔내자”고 소리 높였다.

강다영 동작구 아트하우스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 위원장, 구중서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집행위원장. 참세상

동작구 아트하우스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 강다영 위원장도 발언에 나서 “전세 사기와 같은 사회적 재난을 방치하지 않는 것, 안전한 집에서 존엄하게 사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가 요구하는 더 많은 민주주의의 내용”이라며 “정부는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연내 처리하라! 안전한 집에서 살고 싶다! 주거권 보장하라!”고 힘 주어 이야기했다.

구중서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집행위원장은 “생존 자체가 위태로워진 붕괴의 시대, 수요 없는 공항들을 폐쇄해도 모자랄 판에 왜 막대한 혈세를 가지고 생명을 죽이고 갯벌을 죽이며 바다 농지를 없애는 공항을 10개나 더 짓겠다는지 참으로 어처구니없다”라며 “새들에게도 위험천만, 인간에게도 위험천만 신공항 계획 철회하라!”고 외쳤다.

(왼쪽 두 번째부터) 고유미 노동당 공동대표, 상현 녹색당 공동대표, 문정은 정의당 부대표. 참세상

진보정당들도 함께했다. 고유미 노동당 공동대표는 “오늘 이 자리에는 우리 사회의 왼쪽이 모였다”라며 “차별금지법이 국회 문턱에서 좌절될 때 굴하지 않고 패기 있게 평등의 기준을 더 높여온 사람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들어 개인의 불행을 끝내 사회적 참사로 만들어온 사람들,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라는 내일의 상식을 위해 수시로 지하철을 멈추는 사람들, 인간의 존엄을 설계하고 이것을 우리 사회의 보편적 권리로 만들기 위해 싸워온 사람들이 다 같이 모였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노동당은 사회 운동이 제기하는 급진적 상상력을 바로 내일의 상식으로 만들어가겠다”라며 “노동이 존엄한 나라, 진보정치가 빛나는 나라를 위해, 앞으로도 함께 전진하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상현 녹색당 공동대표는 “대통령을 끌어내렸던 우리는 삶을 향한 풀뿌리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라며 “재벌 특혜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으로 전기가 흐르는 길”에서 싸움에 나선 주민들과 “새만금, 가덕도, 제주도에서 신공항에 생명의 자리를 내어줄 수 없다”며 투쟁에 나선 이들과 함께 “우리는 수도권으로 이윤이 집중되는 자본과 토건, 정치 세력의 결탁을 끊고 지역의 생태계와 살림살이가 순환하는 경제를 민주적으로 세워낼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우리의 싸움으로 불안과 결핍을 넘어서 모두에게 건강한 먹거리와 안전한 주거와 공공재생에너지, 차별받지 않는 일자리와 교육, 이같은 기본적 삶을 보장하는 세상, 모두가 살 만한 세상, 공공성이 든든한 세상을 함께 만들자”라며 “지역 곳곳에서 삶을 요구하는 작은 광장들의 연대로 우리 사회 민주주의를 새로 세우자”고 이야기했다.

문정은 정의당 부대표는 “오늘 우리는 민중의 이름으로 다시 묻는다”라며 “광장의 열망 속에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과연 내란 세력을 제대로 청산하고 있기나 한가”, “광장 시민들의 사회대개혁 열망을 제대로 실현하고 있는가”라고 일갈했다. 그는 “이재명 정부 6개월, 먹사니즘이 유일한 이념이라던 대통령은 부자들에게는 막대한 세금을 깎아주고 서민들에게는 물가 폭등이라는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고 지적하고 “내란의 완전한 종식, 윤석열을 탄생시킨 낡은 정치의 종언은 제대로 된 사회 대개혁만으로 이룰 수 있다”며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노동이 존엄한 나라, 기후정의 당연한 나라, 공공성이 든든한 나라, 그것을 위한 진보 정치가 빛나는 나라를 반드시 함께 만들어 나가겠다”고 다짐을 전했다.

 12.10 민중의 행진 현장. 참세상
고진수 민주노총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장. 참세상

집회를 마친 참여자들은 보신각을 출발해 을지로입구역을 지나 고진수 민주노총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장이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명동 세종호텔 앞으로 행진에 나섰다.

아스팔트 도로 위 10미터 높이 철제 구조물에 오른 채로 행진 대열을 맞이한 고진수 지부장은, 우리 민중들은 “10년 동안 두 번이나 정권을 끌어냈으나, 여전히 수천만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 인간사냥을 당하고 장시간 노동에 기계처럼 돌다가 사지로 내몰려 있다”면서 노동자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제대로 된 위협을 가하지 않는 한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소원뿐일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고 지부장은 “모든 차별에 저항하는 동지들이 중심이 되어, 자본주의 체제에 커다란 구멍을 낼 수 있도록 함께 싸웠으면 좋겠다”면서 “저희도 일터로 돌아가기 위해 힘내서 투쟁하도록 하겠다”고 결의를 밝히고 “함께 싸우고 함께 승리하자”고 소리 높여 외쳤다. 고진수 지부장의 고공농성은 이날로 301일을 맞았다. 

고진수 지부장에 이어 마지막 발언에 나선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도 “오늘 우리는 차별금지법이 있는 나라, 노동이 존엄한 나라, 기후정의 당연한 나라, 공공성 든든한 나라, 진보 정치 빛나는 나라를 외쳤다”라며 “이것은 이재명 정부가 꿈꾸는 세상과는 다른 세상”으로 “이것은 자본의 탐욕으로 이루어진 지금의 체제를 바꿀 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짚었다.

김혜진 활동가는 “우리가 체제를 바꾸자고 하면 어떤 이들은 몽상가 취급을” 하지만, “우리가 바꿀 것이라 외치는 목소리가 희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라며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싶은지 더 많이 말하고 더 많이 더 용감하게 행동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깃발처럼 등대처럼 싸우고 있는 이들에게 더 많이 연대하면 좋겠다, 무엇보다 각자가 싸우는 의제에 우리 스스로가 매몰되지 말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서로 연결되자, 이렇게 연결되기 위해서 모인 우리 반드시 세상을 바꿔 나가자”고 힘 주어 이야기했다.

12.10 민중의 행진 현장. 참세상

이날 12.10 민중의 행진 참여자들은 선언문을 통해 “지난 겨울을 기억한다. 소위 사회지도층과 엘리트들이 민주공화국의 약속을 짓밟는 사이, 세상으로부터 제 몫을 얻어본 적 없는 이들은 거리로 나와 세상을 지켰다”라며 “우리는 단지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가 아니라 더 많은 민주주의와 평등을 향한 시작점이 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한 “빈곤과 차별 없는 사회, 모두의 안전과 노동권, 공공성을 보장받는 사회, 내가 지킨 민주주의가 나를 지키는 사회로 나아가자던 광장의 꿈은 지지 않았다”라며 “우리가 맞이할 존엄과 평등의 얼굴로 오늘을 살자. 혐오에 지지 않을 당신과 함께, 더 많은 민주주의를 향해 가자, 평등으로!”라고 함께 결의를 모았다.

12.10 민중의 행진 현장. 참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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