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에 미국은 이미 이념적 위협을 명분으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에 개입하면서 동시에 중대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보호했다. 작동 원리는 유사했지만, 방법과 투명성의 수준은 크게 달라졌다.
1954년에 그려진 이 그림에서 디에고 리베라는 중앙정보국(CIA)이 기획한 과테말라 침공과 그에 이은 쿠데타를 묘사했다. 이 작전은 하코보 아르벤스의 개혁 정부를 붕괴로 이끌었다. 출처: 푸시킨 미술관/위키미디어 커먼스
2026년 1월 3일, 미군의 군사 공격으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가 체포된 직후, 트럼프 행정부는 베네수엘라 석유에 대한 무제한적 접근을 확보하겠다는 야심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 과정에서 마약 밀매와의 싸움이나 민주주의 및 지역 안정에 대한 지원과 같은 전통적인 외교 정책 목표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작전 이후 첫 기자회견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석유 회사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히며, 석유 수익이 베네수엘라에 대한 추가 개입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폭스 앤 프렌즈’(Fox & Friends)」의 진행자들이 이러한 전망에 대해 트럼프에게 질문했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석유 회사들을 보유하고 있다”고 트럼프는 답했다. “가장 중요한 회사들이고, 가장 뛰어난 회사들이며, 우리는 그곳에 매우 깊이 관여하게 될 것이다.”
미국과 라틴아메리카 관계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로서 나는 석유든 다른 자원이든 이 지역에 대한 미국 정책에서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았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베네수엘라 정책에서 석유가 결정적이라는 점을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인정한 점은 인상 깊었다.
내가 2026년에 출간한 저서 ⟪카리브해의 혈맹: 과테말라와 냉전기 자유를 둘러싼 투쟁⟫(Caribbean Blood Pacts: Guatemala and the Cold War Struggle for Freedom)에서 상세히 설명했듯이, 미국의 라틴아메리카 군사 개입은 대체로 은밀하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1954년 미국이 과테말라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을 전복한 쿠데타를 기획했을 때도, 미국은 이 작전에서 경제적 고려가 차지한 역할을 숨겼다.
강력한 ‘문어’(pulpo)
1950년대 초, 과테말라는 미국인들에게 바나나를 공급하는 주요 국가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는 이전 독재 정권들과 체결한 협정을 바탕으로 과테말라 전역에 걸쳐 22만 헥타르가 넘는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 토지들은 전통적인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가난한 농업 노동자들의 집약적인 노동에 의존했다. 이들의 임금은 안정적이지 않았고, 해고와 임금 삭감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졌다.
보스턴에 본사를 둔 이 다국적 기업은 철도와 바나나 플랜테이션을 위한 광대한 토지를 확보하기 위해 중앙아메리카의 여러 독재자들과 지방 권력자들, 카리브해의 수많은 섬들, 그리고 남아메리카 일부 지역의 권력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했다.
현지 주민들은 이 회사를 ‘풀포(pulpo)’, 즉 스페인어로 ‘문어’라고 불렀다. 이 기업이 지역의 정치 생활, 경제 구조, 일상생활 전반에까지 개입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콜롬비아에서는 1928년 정부가 유나이티드 프루트 노동자들의 파업을 잔혹하게 진압해 수백 명을 살해했다. 콜롬비아 역사에서 이 유혈 사태는 1982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ía Márquez)의 서사 소설 ⟪백년의 고독⟫(Cent ans de solitude)에 등장하는 부차적 서사의 사실적 토대가 되었다.
회사가 활동하던 국가들에서 거의 무제한적으로 보였던 이 기업의 영향력은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을 ‘바나나 공화국’으로 규정하는 고정관념을 강화했다.
과테말라의 민주 혁명
극단적인 불평등의 역사로 점철된 과테말라에서는 1944년, 억압적인 독재 정권을 전복하기 위한 대중 봉기 속에서 광범한 연합이 형성되었다. 이 연합은 제2차 세계대전의 반파시즘적 이상에서 영감을 받아 국가를 민주화하고 경제를 보다 공정하게 재편하려는 목표를 세웠다.
수십 년에 걸친 탄압 이후, 새로운 지도부는 많은 과테말라인들에게 처음으로 민주주의를 경험하게 했다. 1945년부터 1951년까지 민주적으로 선출되어 재임한 후안 호세 아레발로 대통령 시기, 정부는 새로운 사회적 보호 장치를 도입했고, 노동조합의 설립과 가입을 합법화하며 8시간 노동제를 도입하는 노동법을 제정했다.
1951년에는 역시 민주적으로 선출된 하코보 아르벤스(Jacobo Árbenz)가 대통령직을 이어받았다.
아르벤스 집권 하에서 과테말라는 1952년 대규모 농지 개혁 프로그램을 시행해 경작되지 않던 토지를 토지 없는 농업 노동자들에게 분배했다. 과테말라 정부는 이러한 정책들이 다수의 원주민과 빈곤층을 위해 보다 공정한 사회를 건설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나이티드 프루트는 이러한 개혁을 세계적 음모의 산물이라고 비난했다. 이 기업은 국가 내 다수의 노동조합이 멕시코와 소련 공산주의자들의 통제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고, 농지 개혁을 자본주의를 파괴하기 위한 책략으로 묘사했다.
개입을 요구하며 의회를 압박하다
과테말라에서 유나이티드 프루트는 아르벤스 정부의 정책에 맞서 미국 정부를 자사의 편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회사 경영진은 과테말라의 개혁이 자사의 금융 투자에 손해를 끼치고 노동 비용을 증가시킨다고 불평했을 뿐 아니라, 자사의 활동을 제한하는 모든 조치를 광범한 공산주의 음모의 일부로 제시했다.
이 기업은 미국 내 광고 캠페인을 전개하고 당시 지배적이던 반공 편집증을 활용하며 공세를 이어갔다.
1945년부터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의 경영진은 트루먼 행정부의 고위 인사들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자사에 우호적인 대사들의 지원에도 미국 정부는 과테말라 내정에 직접 개입할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이에 기업은 의회로 방향을 틀어, 정치적 인맥을 보유한 로비스트 토머스 코코런과 전직 상원의원 로버트 라폴렛 주니어를 고용했다.
코코런과 라폴렛은 처음부터 상원과 하원 양원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을 가리지 않고 과테말라 정책을 공격했다. 이들은 이를 유나이티드 프루트의 상업적 이해관계에 대한 위협으로 제시하지 않고, 자본주의와 미국을 파괴하려는 공산주의 음모의 일부로 규정했다.
이 바나나 기업의 노력은 1949년 2월 성과를 거두었다. 여러 의회 의원들이 과테말라의 노동법 개혁을 공산주의적 영감을 받은 조치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했기 때문이다. 클로드 페퍼 상원의원은 노동법을 “이 미국 기업을 명백하고 의도적으로 차별하는 법”이자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의 “머리에 겨눈 기관총”이라고 표현했다.
이틀 뒤 하원의원 존 매코맥은 같은 표현을 한 글자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반복하며 개혁을 비난했다. 헨리 캐벗 로지 주니어, 리스터 힐 상원의원과 하원의원 마이크 맨스필드 역시 유나이티드 프루트 내부 문건에 담긴 표현을 그대로 사용해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혔다.
어느 누구도 바나나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로비와 선전 공세
반공 수사에 기대어 진행된 이러한 로비 활동은 5년 뒤 절정에 이르렀다. 미국 정부는 비밀 작전을 통해 아르벤스를 전복하는 쿠데타를 기획했다.
이 작전은 1953년,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CIA에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과테말라 군을 조종하는 심리전 캠페인을 승인하면서 시작되었다. CIA 요원들은 과테말라 군 장교들에게 뇌물을 제공했고, 반공 라디오 방송을 송출했으며, 가톨릭 교회를 파괴하려는 공산주의 계획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종교인들이 설파하도록 조장해 그 담론을 전국으로 확산시켰다.
동시에 미국은 과테말라 내부와 인접 국가들에서 반정부 조직들을 무장시켜 아르벤스 정부의 사기를 더욱 약화시켰다. 유나이티드 프루트는 또 홍보 전문가 에드워드 버네이스를 고용해 선전 활동을 벌였는데, 그 대상은 과테말라가 아니라 미국 사회였다. 버네이스는 미국 언론인들에게 중앙아메리카 국가인 과테말라를 소련의 꼭두각시로 묘사하는 보고서와 기사 초안을 제공했다.
이 문건들은 ‘왜 크렘린은 바나나를 증오하는가’(Why the Kremlin Hates Bananas)라는 제목의 영화와 함께, 우호적인 언론과 공모한 의회 인사들을 통해 광범하게 유포되었다.
혁명을 파괴하다
결국, 그리고 기록이 이를 입증하듯이, CIA의 개입은 군 장교들이 선출된 지도부를 전복하고 미국에 더 우호적인 정권을 수립하도록 이끌었다. 이 정권은 카를로스 카스티요 아르마스(Carlos Castillo Armas)가 이끌었다. 개혁에 반대하던 과테말라인들은 아르벤스와 아레발로를 지지하던 노조 지도자들, 정치 지도자들, 그리고 다른 지지자들을 학살했다. 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직후에만 최소 48명이 사망했고, 현지의 증언들은 추가로 수백 명이 더 목숨을 잃었다고 전한다.
이후 수십 년 동안 과테말라는 군사 정권들의 지배 아래 놓였다. 독재자에서 또 다른 독재자로 권력이 넘어가면서 정권은 모든 반대를 잔혹하게 탄압했고, 사회 전반에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러한 조건은 수많은 난민을 포함한 대규모 이주를 낳았고, 국경을 넘나드는 일부 갱단 구성원들 역시 이 흐름 속에서 등장했다.
역풍
과테말라에서 벌어진 일이 바나나와는 무관하다는, 다시 말해 기업의 선전 담론에 부합하는 인식을 강화하기 위해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유나이티드 프루트에 대한 반독점 절차를 승인했다. 이 절차는 쿠데타 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회사에 대한 불필요한 주목을 피하려고 한때 중단됐던 것이었다.
이는 1980년대 중반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의 해체로 이어지는 긴 몰락 과정에서 첫 번째 좌절이었다. 일련의 합병과 인수, 분할을 거친 끝에, 결국 오늘날에는 회사가 판매하는 바나나에 붙은 ‘미스 치키타(Miss Chiquita)’라는 전지전능한 로고만이 남아 있다.
또한 다수의 국제관계 전문가에 따르면, 과테말라는 사적 이해관계의 압력으로 무너진 민주적 실험에서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출처] Avant le pétrole vénézuelien, il y a eu les bananes du Guatemala…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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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런 코이 몰턴(Aaron Coy Moulton)는 스티븐 F. 오스틴 주립대학교 라틴아메리카사 부교수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