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2월 14일 – 2026년 3월 25일
나는 과거였다, 나는 현재다, 나는 미래일 것이다. 이것은 우리 각자에게 하나의 통일성이다. 나는 감각을 느끼면서 내가 한때 아이였던 존재와 그 아이에게 영향을 준 부모를 동시에 되살린다. 희망 없이는 나는 말할 수도 없다. 나는 마비될 것이다. 나는 아직 어떤 것이 결정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이 한순간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우리가 현재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내가 여기서 단순형만을 언급했지만, 세 가지 문법적 시제는 모든 순간, 모든 생각, 기억, 망각, 수행된 일 속에 함께 존재한다. 19세기 소설과 신시가 우리에게 믿게 했던 것처럼 단일한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알렉산더 클루게(Alexander Kluge)—아도르노의 제자이자 영화감독, 작가, 한때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법률 자문이었고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비판이론을 확장한 인물—에게 시간은 언제나 다층적이고 겹치며 단절된 것이었다. 그가 선택한 실천 방식인 서사는 세대를 따라 이어지는 삶의 흐름에 직접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서사하고 경험하는 공간—이 둘은 함께 인간의 생애를 구성한다—은 무엇보다도 탄생과 죽음 사이의 시간 그릇이다. 이 그릇 안에서 세 세대는 서로 직접 이야기를 나누며 이해 가능한 서사 공간을 만들어낸다. 동시에 우리는 서로 다른 생애들이 겹친 상태에서 바깥을 바라본다. 예컨대 내가 한때 여섯 살이었을 때의 아이는 지금의 나 안에서 여전히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 그 아이의 호기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동시에, 오르간을 연주하던 서른 살의 나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이런 것들 역시 현재에 속하지만, 항상 모든 순간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의 할머니처럼, 한 사람 안에는 열여섯 혹은 여든 개의 눈이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도 그들을 바라본다. 이러한 것들이 경험의 통일된 생애를 이루며, 이것이 내가 서사에서 다루는 핵심 주제다.
이러한 생애들과 대립하는 것은 스스로를 ‘현실’이라고 주장하는 어떤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이 주장을 그대로 믿을 필요는 없다. 겉보기에는 현실은 매우 단단하고 고정된 것으로 보인다. 감옥에 갇힌 사람이 벽에 머리를 부딪힐 때, 그는 그 현실의 객관성을 즉각 깨닫는다. 동시에 이 현실은 깨지기 쉬운 것이기도 하다. 때로는 영혼처럼 변덕스럽고 변형되기도 하고, 때로는 단단한 물질로 굳어 있다. 이것이 바로 비판이론이 말하는 적대적 현실 개념이다. 이 개념 속 현실은 실제로 존재한다. 사고로 사람이 죽거나 전쟁이 일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동시에 현실은 우리가 견디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낸 거친 껍질이기도 하다. 서사 속에서 현실은 다양한 성질을 가진다. 계산하거나 기록할 때는 비교적 단순하지만, 이야기를 시작하는 순간 현실은 지하 통로와 우물, 심연을 드러낸다. 모든 직선적 서사 아래에는 행복과 불행이 함께 존재한다. D&O, 102-3
정신병과 신경증의 경계는 현실과의 관계에서 갈릴 수 있지만, 클루게는 그 구분을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현실을 현실이라고 믿는 태도야말로 가장 날카로운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한다. D&O, 421
세 세대 모델에 대해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980년대 후반 클루게를 처음 읽은 경험은 내게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그는 당시 경력의 정점에 있었고, 자신의 생애를 세 단계로 나눈 도식에서 2단계의 절정에서 3단계로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지적 성숙의 초기 단계에 있었고, 1단계와 2단계 사이를 지나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영웅이자 은밀한 열정이었다. 푸코나 하버마스보다 덜 유명했지만, 나에게는 거의 그만큼 중요한 인물이었다. 라투르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더 독일적이고, 내가 씨름하던 역사 문제에 깊이 몰두한 인물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살아 있었고, 계속 작업하고 있었으며, 언제나 더 읽을 것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 이후 세대에서 하버마스가 학문적 계승자였다면, 클루게(때로는 오스카 네트(Oskar Negt)와 함께)는 문화적 좌파의 대응축이었다. 세대의 논리는 멈추지 않는다. 내 안에는 더 많은 ‘이전의 나’가 겹쳐져 있다. 그리고 알렉산더 클루게는 이제 세상을 떠났다. 그는 2026년 3월 25일에 사망했다.
클루게는 한때 오비디우스(Ovid)가 하이너 뮐러(Heiner Müller)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그 고전 텍스트와의 관계가 달라졌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 역시 지난주 그의 사망 소식을 들은 뒤, 다음에 병원에 갈 때 그의 책 한 권을 부적으로 들고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클루게는 위안이면서 동시에 수수께끼다. 그는 여러 층위에서 우리에게 말을 건다. 수십 권의 책과 영화, 수백 편의 이야기, 수천 쪽의 글과 방송이 그것을 보여준다.
그의 죽음 소식에 충격을 받은 나는 그가 내게 끼친 영향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졌다. 나는 인터넷에서 급히 찾아낸 두 권의 책에서 그 실마리를 발견했다. 다양한 매체 혁신을 기꺼이 받아들였던 클루게라면 이런 방식도 좋아했을 것이다. 내가 클루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두 가지 열쇠는, 그의 주요 영어 번역가 가운데 한 명인 리처드 랭스턴(Richard Langston)이 엮은 해설과 인터뷰 모음집이다.

이 글에서의 참고 표기는 D&O 뒤에 페이지 번호를 붙이는 방식으로 제시된다.
추가적인 맥락을 위해 나는 크리스토프 슈트레크하르트(Christoph Streckhardt)의 훌륭한 글에 의존했으며, 이 글의 제목도 그로부터 차용했다.

클루게는 자신의 핵심 질문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인간의 감정 속에 담겨 있는 반(反)리얼리즘적 충동과 그 반리얼리즘이 낳는 매우 실제적인 효과에 대한 탐구라고 답한 적이 있다.
만약 현실의 관계가 한 인간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는 그 비인간적인 관계를 부정하게 된다. 이것이 감정의 반리얼리즘이다. 이 점에서 인간은 객관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적이고 주관적인 존재다. 그래서 ‘현실’이라는 주제는 불안정해진다. 왜냐하면 한 개인의 주관적 현실 역시 우리가 머리를 부딪히는 벽과 같은 객관적 관계만큼이나 실제적이기 때문이다. D&O, 88.
비인간적 관계와 인간 내부의 감정적 에너지 사이의 이러한 긴장은, 기록과 허구가 결합한 클루게의 수백 개 이야기 전체를 움직이는 ‘엔진’이다.
감정의 반리얼리즘이 역사적으로 실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클루게의 핵심 주제라면, 이는 깊은 난제를 제기한다. 감정은 즉각적이고 부정할 수 없으면서도 동시에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감정을 발견하거나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감정은 너무 풍부하고 복잡해서 이성으로 완전히 파악할 수 없다.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은 마음에는 이성이 이해할 수 없는 고유한 이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내 ⟪감정의 연대기⟫(Chronik der Gefühle)를 이끄는 주제가 될 수도 있다. 이것은 감정을 옹호하거나 반대하는 논의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주의를 그쪽으로 돌리려는 시도다. 인간을 내부에서 움직이는 것들은 외부에서 일어나는 어떤 것보다 훨씬 강력하다. D&O, p. 44-45
클루게의 작업은 사람과 사물, 그리고 그것들을 움직이는 힘—물질적 힘과 감정적 힘—에 관한 이야기로 이루어진다. 전투에 나선 병사와 그들의 장비와 몸, 기술자와 기계, 교사, 사회복지사 등이 그 대상이다. 이를 감정을 다시 포함한 유물론이라고 부를 수 있다.
나는 감정을 찬양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사람들이 감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기를 바랄 뿐이다. 또한 이것은 내면 세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물리적 구조 속에서도 드러나는 감정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가 사는 집은 감정이 공간으로 전환된 결과다. D&O, P. 45
클루게에게 영감을 준 인물은 아도르노뿐 아니라, 19세기 역사를 방대한 목록으로 정리한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기도 하다. 어떤 사례가 자신을 끄는지 묻자, 클루게는 특징적인 방식으로 답한다.
1914년부터 1918년 사이에 최초의 산업화한 전쟁이 벌어졌다. 수많은 노동자와 기술자의 노동으로 축적된 군수 물자가 충돌하는 끔찍한 전쟁이었다. 루르 지역과 프랑스 탄광 지역의 광부들이 베르됭 근처 언덕 아래로 터널을 파고 들어가 폭파를 준비했다. 이들은 고도로 전문화된 노동력이었지만, 곧 ‘죽은 노동’으로 변하게 된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노동력을 ‘집합 노동자(Gesamtarbeiter)’라고 불렀다. 경쟁하는 두 기업에 고용된 이 집합 노동자는 양쪽 모두의 경제적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한다. 그는 자신의 노동력에 대한 자각을 발전시킬 수 있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방향으로 일한다. 이처럼 객관적 현실과 주관적 현실은 분리된다. 반면 자본주의는 주식시장으로 결합해 있으며, 상품 교환이라는 공통 기반 위에서 협력하는 데 능숙하다. 모든 것이 상품 교환으로 환원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큰 부담도 없다. 반대로 노동은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을 걸고 매달리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D&O, 88-89
감정을 다시 포함한 유물론은 그에 걸맞은 역사 서술 방식을 요구한다. 그것은 몽타주, 결합, 조립, 구성, 연대기의 형식을 취한다.
클루게는 말한다. 우리는 객관적 사건의 연대기와 주관적으로 경험된 일을 서술하는 감정의 연대기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다. 그의 생각에는 주관성이 더 오래 지속되는 힘을 가진다. 오히려 그것이 더 물질적이다. 감정은 한편으로는 매우 적응력이 뛰어나고 고통과 고난에 강하지만, 동시에 매우 완고하고 콘크리트처럼 변하지 않는다. 2,000년이 지나도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이에 대해 질문자가 묻는다. 그렇다면 역사적 사건을 감정 상태의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인가? 감정이 역사적 사건의 근본 원인인가?
클루게는 그렇다고 답한다. “켈트인은 어디에나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로마인들이 하던 말이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예상치 못한 곳에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감정은 제도 속에 스며들어 있으며, 그 제도가 지속성을 갖게 만드는 힘이 된다. D&O, P. 44
로마 제국이라는 공인된 권위—그 긍정성과 힘—와 억압된 존재—켈트족과 그들의 지하적이고 게릴라적인 문화—사이의 긴장은 클루게 역사 서술의 원동력이다. 이 긴장은 우리 각자의 내면에서도 울림을 만들어낸다. 클루게가 자주 강조했듯, 우리는 부모와 그 이전 세대들까지 이어지는 매우 충돌적인 역사들을 몸 안에 지니고 있으며, 그것들이 어느 한 순간의 현실을 구성한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예로 들어 이를 설명한다.
1970년 5월 1일, 나는 당시 동독에 있던 아버지를 찾아갔다. 나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일하던 시기의 서독인의 시선으로 그곳에 도착했다. 아버지는 산부인과 병동이 있는 진료실 책상에 앉아 있었고, 1층에는 분만 중인 임산부가 있었다. 아버지는 집중력 있는 의사이자 산부인과 의사로서, 다음 진통이 시작되기 전 잠시 멈춰 있었다. 그는 1914년 마른 전투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고, 그 전투가 다른 결말을 맞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날 그는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에 관한 책을 읽고 있었다. 창밖에서는 동독 인민군이 비스마르크 광장에서 군악대와 공식 연설, 공산당 대표단과 함께 훈련하고훈련하고 있었다. 이 서로 다른 현실이 얼마나 이질적인지 알 수 있다. 광장에 있던 누구도 연설에서 나폴레옹을 언급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른 전투 역시 그들에게는 현재적인 주제가 아니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몸속 수십억 개의 세포와 함께 그 5월 1일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 순간 아버지는 다시 분만이 시작된 임산부를 보러 올라갔다. 그는 네 가지 현실 속에서 동시에 움직이고 있었다. 이것이 서사다. 나는 이것을 허용할 때 다차원성을 만들어낸다. 바흐의 음악에서 다성성이 나타나듯, 나의 이야기에서도 그런 다차원이 구현되기를 바란다. 나는 그것을 만들어낼 필요도 없다. 현실 자체가 이미 다층적이기 때문이다. 내가 말했듯, 직선적 서사와 함께 주석, 지하 공간, 우물로 이루어진 수직 구조가 존재하며, 이것이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든다. 그래서 서사에는 언제나 하위 텍스트, 이중 의미, 모호성, 그리고 은유가 존재한다. 이것들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구성하는 여러 층위 사이를 연결하는 장치다. D&O, 105-6
나는 그동안 클루게를 단편적으로 읽어왔다. 그의 에세이적 스타일과 내가 집착해 온 거대 서사를 해체하는 방식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최근 며칠 동안 랭스턴과 슈트레크하르트의 도움받아 좀 더 체계적으로 읽으면서, 그의 사유가 놓인 훨씬 더 큰 흐름을 이전보다 분명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핵심 이야기는 이것이다. 유럽은 근대 초기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잘못된 길을 택했다. 클루게에게 오비디우스(Ovid)와 함께 중요한 인물은 르네상스의 사상가 몽테뉴(Montaigne, 1533–1592)다. 클루게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미셸 드 몽테뉴(Michel de Montaigne)는 종교전쟁을 경험했다. 가톨릭이 프로테스탄트를 학살한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학살(St. Bartholomew’s Day massacre)이다. 프로테스탄트라고 불린다는 것은 스위스나 라로셸(La Rochelle)에 스스로를 가두고 가톨릭을 학살한 그 스위스인들에 속한다는 것 외에 아무 의미도 갖지 않는다. 앙리 4세(Henry IV) 치하에서 잠시 평화가 나타난다. 감정은 잠시 이성을 띤다. 이 시점에서 몽테뉴는 자신의 자리를 잡고 말한다. 오비드(Ovid)와 고대 작가들, 그리고 동시대의 경험을 갖춘 우리는 모든 감각과 경험을 나란히 놓고 검토하려 한다. 거짓에서 환상의 구성에 이르기까지, 진리의 정립에서 욕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함께 놓고 다시 한 번 다음을 시험하려 한다. 무엇이 사람들을 결속시키는가? 무엇이 공동체에 이로운가? 무엇이 종교전쟁을 종식시키는가? 16세기와 17세기에는 횡격막에서 발견되는 집요함 속에 계몽의 강한 흔적이 자리한다. 만약 18세기의 계몽이 파시즘을 물리치기에 충분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더 깊이 파고들어 초기 계몽의 단계들을 다시 물어야 한다. D&O, 411-412
18세기의 계몽은 파시즘을 막기에 충분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안에는 프랑스 혁명의 폭력이라는 요소도 내재하고 있었다. 클루게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17세기의 길—아마도 16세기를 의미할 수도 있다—을 다시 확보해야 한다. 그것은 18세기 계몽의 수사와 잡담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프랑스 혁명 시기처럼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단두대로 보내는 극단적 자기중심성이 다시 등장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D&O, 427=8
그렇다면 역사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었을까? 공포정치와 나폴레옹의 파괴적인 제국주의는 필연이었을까? 클루게에게는 언제나 다른 가능성이 존재한다. 역사는 다른 길을 갈 수도 있었다. 예컨대 19세기는 나폴레옹의 정복이 아니라, 임마누엘 조제프 시에예스(Emmanuel Joseph Sieyès) 같은 인물들이 구상했던 프로이센-프랑스의 결합으로 시작될 수도 있었다. 클루게는 이 가능성을 독일 시인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Heinrich von Kleist, 1777–1811)의 시선에서 바라본다.
이 시점에서 클라이스트(Kleist)는 프랑스 혁명 이후 등장한 새로운 인간적 특성—상업적이고 기술적인 성격을 지닌 특성—을 혁명가들이 칸트를 읽음으로써 근본적으로 성찰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이것이 유럽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는 일종의 새로운 애국주의, 즉 당파성을 변형한 형태로 이해할 수 있다. 프로이센 애국자들과 새로운 프랑스의 이해관계를 연결하려는 시도였다. 이 순간을 상상해보라. 만약 수공업 노동과 지적 노동이 애국주의의 정신 속에 결합했다면, 유럽은 어떤 장인적 세계가 되었을까. D&O 32
그러나 프랑스-프로이센-칸트-시에예스의 결합 가능성은 나폴레옹의 정복 충동으로 무너졌다. 그 결과로 등장한 것은 1805년 울름과 아우스터리츠로 이어진 나폴레옹의 진격, 신성로마제국의 종말, 1806년 예나에서의 프로이센 군대의 붕괴, 헤겔의 ⟪정신현상학⟫, 프로이센 개혁기의 격동, 그리고 모스크바 원정의 참사와 그 뒤를 이은 ‘해방 전쟁’이었다. 클루게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나폴레옹에 맞선 해방전쟁 문학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회상한다. 두꺼운 장정의 화려한 책들은 역사적 기록뿐 아니라 그 뒤에 숨겨진 더 은밀한 독서물까지 함께 감추고 있었다. D&O, 86.
18세기에서 19세기로 넘어가는 전환기, 즉 코젤렉(Koselleck)이 말한 ‘자텔차이트(Sattelzeit, 옛 세계와 근대 세계가 겹치며 뒤집히는 시대)’에서 클루게는 세 가지 새로운 힘이 등장한다고 본다.
1780년대부터 1810년대까지 30여 년에 걸친 이 전환기에서, 서로 충돌하는 여러 힘들 속에서 세 가지 변화가 나타난다. 민중전쟁, 산업화, 그리고 새로운 감수성의 형성이다. 20세기 말의 오늘날 우리는 이 세 과정이 어떤 방식으로 변형되었는지 인식해야 한다. 산업화한 전쟁이 하늘을 향해 나아가는 형태로 나타나고, 고전적 산업을 벗어나는 흐름이 나타나며, 새로운 주관성으로 향하는 기묘한 전환이 나타난다. D&O, 31
민중전쟁, 산업화, 감수성이라는 이 세 요소의 결합은 프랑스-독일 축에 의해 이끌리지 않았다.
유럽 대륙에서 협력적 관계가 가능했는지 여부는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부정적으로 결정되었다. 이후 유럽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장인들의 연대가 아니라 런던 증권거래소였다. 그 영향은 이후 200년 동안 전 세계로 확장되었다. 유럽 중심성이 약화한 이 세계는 바빌로니아와 같은 구조를 띠며 태평양 연안으로 이동해갔다. 클라이스트의 표현을 빌리면 ‘대척점’으로, 즉 캘리포니아로 향한 것이다. 이는 연출을 중시하는 대통령들, 할리우드, 그리고 새로운 결정을 내리려는 세력들에게 유리한 조건이 되었다. 마치 두 세기의 망각을 한데 묶어 다시 시작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D&O, 33
1985년 클라이스트 상을 받으며 클루게가 이 점을 언급했을 당시, 레이건과 콜이 권력을 쥐고 있었다. 영미 자본주의의 패권은 단순한 경제적 현상이 아니었다. 클루게에게 그것은 19세기의 문학적·문화적 형식과 결합한 것이었다. 선형적이고 낭만적인 소설은 역사를 압축하고 억압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며, 이 두 세기의 문화적 형식이 되었다. 클루게는 바로 이 점에 저항하려 했다. 그는 클라이스트, 몽테뉴, 오비디우스를 호출하며 이렇게 말한다. 19세기 소설과 신시가 우리에게 믿게 했던 것처럼 시간은 하나가 아니다. 클라이스트의 작품은 기존의 시간 개념이 얼마나 깨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D&O, 30-31
20세기를 이해하기 위해 18세기에서 19세기로의 전환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하는 이러한 사유는 클루게만의 것이 아니었다. 클루게 자신도 푸코(Foucault)를 중요한 유사 사례로 언급한다. 실제로 1780년대에서 1800년대 초에 푸코는 ‘고전 시대’와 ‘근대’ 사이의 인식론적 단절을 발견했다. 푸코와 클루게 모두에게 19세기의 ‘인간’을 중심으로 한 역사관은 가능성을 급격히 축소한 체계였다. 독일에서는 칼 슈미트(Carl Schmitt)가 계몽 비판을 전개했고,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이 ⟪비판과 위기⟫(Kritik und Krise)에서 이를 이어갔다. 다만 이들은 클루게와 달리 보수적 19세기를 다르게 평가했다. 그럼에도 코젤렉과 클루게 사이에 직접적인 교류가 없었다는 사실은 서독 지성사에서 매우 의아한 부분이다.
클루게의 사상적 충성은 프랑크푸르트학파에 있었다. 그는 2001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계몽의 변증법⟫(Dialectic of Enlightenment)을 내가 헌신한 근본적인 책으로 여긴다.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사이를 항해해 무사히 귀환하려면 자기 억압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억압은 타인에 대한 지배, 그리고 자기 내부에 대한 지배와 연결된다. 오디세우스의 노를 젓는 동료들은 사실상 노예이며, 결코 기사들이 아니다. 이를 우리 자신의 역사에 적용하면, 농민전쟁 이전 중세 농가에 살던 조상들은 배를 타고 키클롭스를 피할 선택지조차 없었다. 그들은 육지에 묶여 있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 염소’ 같은 동화가, 항해하는 그리스인들에게 ‘오디세이아’가 갖는 의미가 있다. 이 동화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누구를 집 안에 들일 것인가, 누구를 절대로 들여서는 안 되는가? 누구를 밖에 두어야 하는가? 아기 염소들은 처음에 이 실수를 저지른다. 우리는 1933년 히틀러를 받아들였을 때와 마찬가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아기 염소들은 기적적으로 늑대의 뱃속에서 무사히 빠져나온다. 이는 자신을 보호하려는 동일한 시도의 대륙적 변형이다. “나는 어떻게 나를 지킬 것인가?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는가? 자발적 행동을 결속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신뢰할 수 있는가?”
이러한 세계에서 삶과 행위를 어떻게 서사화할 것인가가 문제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계몽의 변증법⟫에서 묘사한 세계 속에서 말이다. 클루게는 자신의 방법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것은 ⟪계몽의 변증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감정의 흔적을 추적하고, 시적 방법으로 세밀하게 관찰하면 감정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감정은 오비디우스(Ovid)가 말한 변신처럼 끊임없이 형태를 바꾼다. 감정은 도덕적 성격이나 이성, 사회를 넘어선다. 어떤 존재가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그것은 스스로를 변형시킨다. 이는 감정이 언제나 탈출로가 있다는 뜻이다. 감정은 신화에 대해서도, 신화를 극복하려는 이성에 대해서도 언제나 당파적이다. 그래서 감정은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다.
클루게에게 중요한 것은 19세기 역사적 리얼리즘의 관습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의 파편적이고 단편적인 서사 방식은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필수적인 방법이다.
아도르노의 글쓰기 방식은 단편적이다. 그리고 생략은 내가 사랑하는 서사 형식이기도 하다. 그것은 서사시의 근본 형식이다. 나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나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같은 훌륭한 전범을 가지고 있다. 위대한 서사는 모두 이런 구조를 가진다. 반면 선형적 서사—즉 근대 소설과 역사 서술의 모델—는 예외이며 19세기의 산물이다. 하나의 줄기를 따라 A에서 B로 이동하는 방식은 모든 곁가지들을 제거한다. 그것은 대로와 고속도로의 전략이다. 반면 오솔길과 정원을 걷는 방식—감각하고, 추측하고, 헤매고, 산책하는 방식—은 전혀 다른 규칙에 따른다. D&O 59
따라서 구조가 없다는 것은 결핍이 아니라 강점이다.
소설 형식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세계를 이해하고 항해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더 명확하고 더 엄밀한 도구가 필요하다. D&O, 93
유물론이 감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에는 위험이 따른다. 가장 분명한 위험은 심리주의나 감상주의다. 또 하나는 반복이다. 톨스토이, 카프카, 프루스트, 조이스, 무질 등 19세기와 20세기 초 문학은 이미 감정과 심리를 깊이 탐구했다. 우리는 그것을 다시 반복할 필요가 없다. 클루게는 말한다. “프루스트는 20세기 인간관계에 대한 결정적 서술을 이미 했다. 우리는 그것을 다시 할 필요가 없다.” D&O, 79 클루게에게 중요한 것은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이다. 무질(Musil)이 ⟪특성 없는 인간⟫ 3권을 끝내 완성하지 못한 채 전쟁 속에서 좌절한 사례는 이를 상징한다. 20세기와 21세기가 요구하는 것은 프루스트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정서적 ‘물리학’이다. 클루게의 텍스트는 차갑다. 그것은 전간기의 신객관주의(neue Sachlichkeit)와 닮았다. 그는 고트프리트 벤(Gottfried Benn)을 자신의 동류로 받아들인다.
클루게는 무질의 말을 인용한다.
문제는 결국 왜곡된 관계, 즉 지성과 영혼 사이의 지속적인 오해에 있다. 우리는 지성이 너무 많고 영혼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영혼의 문제에 대해 지성이 너무 부족하다. 나는 종종 “좀 더 쉽게 만들 수 없느냐, 관객에게 더 친절하게 만들 수 없느냐”고 묻는 질문을 받는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영화감독도 진지한 물리학자처럼 할인 혜택을 받을 수는 없다. 나는 감정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사회적 관계, 좋은 물리학, 객관성에 맞추고자 한다. D&O, p. 38
무질, 벤야민,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그리고 유럽 현대사의 재앙들이 클루게의 작업 위에 드리워져 있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실패, 베르됭 전투, 나치의 소련 침공, 폭격전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개인적 기억도 끌어온다. 예를 들어 1942년 부모의 이혼은 1945년 할버슈타트에서 연합군 폭격으로 가족의 집이 파괴되는 사건의 서막이었다. 그는 1942년에 대해 이렇게 썼다.
“나는 오늘날까지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해와 그 전해에 부모는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전쟁의 시기였다. 군사적 정복이라는 마약, 즉 파르마콘이 시대정신에 물든 현실의 독이 퍼진 지 약 2년이 지난 뒤, 사람들의 가장 깊은 내면까지 스며들었다. 1942년의 어른들! 환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바르바로사 작전에서 부모의 이혼에 이르기까지, 파국은 내가 처음 접한 클루게의 작품으로 나를 이끌었다. 1980년대 후반 하이델베르크의 한 서점에서 만난 ⟪전투 서술⟫(Schlachtbeschreibung)이었다. 이 책은 스탈린그라드 전투(1942~1943)를 다룬 클루게의 악명 높은 역사적 콜라주-몽타주 소설이었다. 독일 사회이론의 대표 출판사인 주어캄프(Suhrkamp)에서 전쟁에 관한 책이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내게는 강한 매력을 주었다. 그 책에 끌린 것은 클루게가 말한 ‘여섯 살의 아이’ 같은 감각이었다. 1973년 7월 5일, 여섯 살 생일을 맞은 한 영국 소년은 그날이 “인류 역사상 최대의 전차전”이라 불리는 쿠르스크 전투 30주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끝없이 이어지는 컴퓨터 용지를 요구해 두루마리처럼 전투를 기록하려 했고, 뒤쪽에 디젤 드럼통이 달린 T-34 전차의 형태를 그리는 법을 배웠다. 그는 1970년대 런던의 다락방과 정원에서 여전히 발견되던 소이탄 파편을 수집했는데, 그것은 1945년 4월 8일 클루게의 고향 할버슈타트를 불태운 것과 같은 종류의 폭탄이었다.
스탈린그라드에 관한 ⟪전투 서술⟫이 방대하고 끊임없이 수정된 작품이라면, ⟪1945년 4월 8일 할버슈타트 공습⟫은 클루게의 작품 가운데 가장 완결된 형태에 가까운 텍스트였다. 슈트레크하르트는 발터 옌스(Walter Jens)의 평가를 인용한다.
전후 문학 어디에서도 이처럼 하나의 과정 전체가 드러난 사례는 드물다. 탑 위에서 지켜보는 두 여성의 생각(클로즈업), 자신도 모르게 마지막 식사를 하는 결혼식 하객들의 묘사(중간 샷),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의 추적(롱 샷)이 이어진다. 아래에서의 전술(불을 끄는 도구, 임시 지하 대피소)과 위에서의 전략(레이더 화면, 파괴의 계산)이 맞부딪힌다. 개인적 계획과 전체 조직이 교차한다. 피아노 수업이 폭격 때문에 취소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질문과, 도시 전체를 파괴하려는 계획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변증법적 전환이 나타난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들이 항복 이후 지상의 생존자들과 마주했을 때, 서로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역사를 전체로서 바라볼 때의 악몽은 그것이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클루게의 근본적 충동은 운명론과 정반대다. 그는 틈, 탈출로, 빠져나갈 길에 관심을 둔다. 그는 종교전쟁이나 내전—홉스에서 슈미트에 이르는 독일 전통에서 가장 끔찍한 전쟁 형태—이 어떻게 회피되었는지를 탐구한다. 그래서 그는 몽테뉴 같은 인물에게 더 관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역시 그처럼 종교전쟁 이후의 파편을 수집해야 한다. 그는 스탈린그라드를 기념한다. 그것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전투였기 때문이다. 독일인들이 소련만큼 그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탈린그라드는 단순한 군사적 패배가 아니라 정치적 파국의 사례였다.
클루게는 벤야민을 뒤집는다.
벤야민은 과거를 바라보며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는 동시에 진보의 바람에 밀려 미래로 떠밀리는 ‘역사의 천사’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이미지는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 그 천사는 인간 안에 잠재된 힘에서 나온 수호천사일 수도 있다. 과거의 다양한 힘들이 지금까지 우리를 보호해왔기 때문에 우리는 이성에 기대하는 것보다 더 현명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스스로를 파괴하려는 시도 속에서도 살아남게 하는 균형 장치를 내부에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라 ‘호모 콤펜사토르(보완하는 인간)’일 수도 있다. 이것은 희미한 희망이지만, 단순히 직선적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더 근거 있는 생각이다. D&O, 108
또한 클루게는 2009년 아도르노를 기념하며 이렇게 말했다.
계몽의 변증법을 논하고 이성의 병리를 진단하는 이론은 단순한 파국 예언이 아니다. 자세히 보면 언제나 구원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파국 이전에도, 파국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혹은 이후에 그것을 되돌리는 과정에서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 요소들은 서로 멀리 흩어져 있다. 역사적 경험은 그것들이 제때 결합되는 일이 거의 없었음을 보여준다. 이 요소들을 연결하는 작업—즉 텍스트를 짜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것이 이질적 공간(헤테로토피아)이다. 우리는 보편적인 것, 특수한 것, 그리고 위험한 개별성을 뒤틀고 엮어야 한다. 사실들을 이야기로 결합해야 한다. 인간의 무관심 속에서 사실들을 구해내야 한다. D&O, 452-3.
클루게에게 이러한 서사적 재구성은 운명에 맞서는 행위다.
인간은 현실에 체념하는 대신 그것을 바꾸기로 한다. 그들은 최후의 심판이나 혁명을 기다리지 않는다. 비독단적 마르크스주의의 의미에서의 영구혁명은, 인간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현실을 변화시키기로 하는 이야기하기다. D&O,104
클루게는 이러한 서사적 행위의 영감을 마르크스에게서 찾는다.
“굳어버린 것들을 그것들 자신의 선율로 노래하게 만들어 춤추게 해야 한다.” 마르크스의 이 말은 모든 독 속에는 해독제가 함께 들어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어떤 대상이 눈으로 볼 때 압도적일지라도, 귀로 듣고 그 안의 불협화음을 발견하면 그것에 대한 믿음이 약해진다. 상호작용은 편견을 치유하는 자연스러운 방법이다. 이는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여전히 중요한 원리다. 켈트 전통의 이야기 방식에는 다성성이 있다. 다양한 연대 방식은 획일적인 행진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그것은 당파들 사이에서 형성된다. 당파란 편향을 가진 사람이다. 편향을 가진 사람은 싸울 준비가 되어 있고,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는다. 그들은 의견을 가진다. “당파”와 “저자”라는 말은 서로 바꿔 쓸 수도 있다. D&O, 424.
클루게가 필연성에 맞서는 태도는 단순한 구원 서사나 ‘변증법적 키치’를 거부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그는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와 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W. Adorno) 사이의 깊은 간극을 드러낸다.
나는 아도르노의 사유에 더 가깝다. 그는 ⟪희망의 원리⟫(The Principle of Hope) 같은 책을 절대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우리가 희망 없이 살 수 없다는 점도 인정했을 것이다. 설령 진실을 희생해서라도 희망을 만들어내야 할 때가 있다. 이 행성에서 생명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장 놀라운 착각은 기본적 신뢰다. 모든 생명체는 태어날 때 이 신뢰를 일정 부분 부여받는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진화는 생존하는 생명체가 세계가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 시대를 보면 이 가정은 근본적인 오류임이 드러난다. 세계는 베르됭에서 죽은 사람들의 이익도,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의 이익도 고려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이것을 이데올로기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아름다운 오류이지만, 동시에 우리를 지탱하고 힘을 준다. 아도르노 역시 이 점에 동의할 것이다. 그래서 ⟪감정의 연대기⟫ 마지막 장의 제목은 “기본적 신뢰의 긴 행진”이다. P. 45-46
클루게는 ⟪치명적 결과를 낳는 학습 과정⟫(Learning Processes with Deadly Outcomes)이라는 책에서(여기서 ‘학습 과정(Lernprozesse)’이라는 표현은 하버마스(Habermas)가 즐겨 사용하던 용어였다는 점에서 특히 아이러니하다), 스탈린그라드에서 살아남은 독일 병사 몇 명이 포위망을 탈출하는 장면을 상상한다. 이들은 서쪽, 즉 독일과 고향을 향하지 않고 동쪽으로 향한다. 결국 그들은 중국에 도달해 홍군에 합류하고, 그 나라와 그 풍경을 전면적으로 재건하는 데 기여하며, 나아가 행성 바깥으로까지 이어지는 모험에 나선다. 스탈린그라드에서 조국을 상실한 경험은 지구의 경계를 넘어 정복과 고문, 전쟁으로 이어지는 확장된 삶의 출발점이 된다.
“그들은 초봄에 중국에 도착했다.”
클루게의 또 다른 책 제목인 ⟪악마가 남긴 틈⟫(Die Lücke, die der Teufel Lässt)은 그의 문제의식을 잘 드러낸다. 악마는 주요 행위자이지만 모든 것을 지배하지는 못한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지가 아니라, 특정한 주체성이 역사를 밀어붙이는 힘을 드러내는 것이다. 클루게적 순간의 한 예는 다음과 같다.

12년 겨울 러시아에서 퇴각하던 나폴레옹 군대의 공병들이 장군 장 바티스트 에블레와 함께 베레지나 강에서 목까지 잠긴 채 서 있다. 살아남은 병력을 탈출시키기 위해 다리가 건설된다. 그러나 이 공병들은 며칠 뒤 모두 탈진으로 죽는다. “자신의 삶을 걸지 않는다면 / 그 삶은 결코 자신의 것이 되지 않는다.” D&O, 32
이는 주인-노예 변증법의 변형이다. 여기서 자신의 생명을 거는 존재가 바로 노동자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진보의 변증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죽음 자체가 목적의식과 자아의 기념물이 된다. 동시에 클루게에게 이러한 이야기는 반드시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필연성은 없다. 가능성이 존재한다. 학습과 발전이 존재한다. 근대는 성취이기도 하다. 그는 또 다른 예를 든다.
외딴 산악 도로에서 두 대의 트럭이 서로 마주친다고 상상해 보라. 오른쪽에는 급경사의 낭떠러지가 있다. 비가 내리거나 눈이 내리고 있다. 두 운전자 가운데 한 명은 몇 초 동안 희미하게 상대방을 운전석에서 바라본다. 만약 어느 한 차량의 바퀴가 다른 차량의 바퀴와 닿는다면, 두 차량은 모두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이 두 전문 운전자는 얼마나 집중해서 자신의 장비, 즉 핸들과 페달을 다루는가. 그들은 서로를 스쳐 지나간 뒤에도 잠시 동안 얼마나 신중하게 서로를 생각하는가. 그들은 단 몇 초 동안만 서로를 보았을 뿐이다. 만약 상대가 실수를 저질렀다면 그들의 감정은 얼마나 달라지고, 또 얼마나 경멸로 바뀌었겠는가. 나는 이것을 위험과의 객관화된 조우라고 부른다. 이것이야말로 산업과 그에 수반되는 규율이 어떠한 양가적 간섭 없이 인류에게 가져온 유일하게 인간적인 발전이다. D&O, 36-7
분명히 말하자면, 낮은 목소리로이긴 하지만 이것은 아도르노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다. 아도르노에게 역사에서 확실한 논리는 “물매에서 메가톤급 핵폭탄으로 이어지는 길”뿐이었다. 그러나 클루게는 다르게 답한다. 우리는 또 다른 것을 배웠다. 좁은 길에서 서로 부딪히지 않는 법이다. 결과는 중요하지만,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두 운전자는 뛰어난 숙련으로 재난을 피했지만, 클루게는 이렇게 덧붙인다. “그들이 집에 돌아가면 아마 아내를 얼마나 무심하게 대할까. 그런데 이런 무심함도 산길 운전만큼이나 위험하다. 우리 사회는 전쟁 중에도, 전쟁으로 향하는 과정에서도, 그리고 친밀한 관계에서도 완전한 객관성을 갖지 못한다.” D&O, 37
재난이 아닌, 인간적인 발전은 불안정한 균형 위에 놓여 있다. “이것은 균형을 맞추는 일이며, 본질적으로 두 사람이 수행하는 서커스 같은 기술이다.”D&O, 427 클루게와 아도르노 모두 문명이 불안정하다고 본다. “아도르노는 현대 문명의 토대가 얇고 위태롭다는 점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D&O 455. 그래서 클루게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인간은 ‘알고자 하는 존재’인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라, 균형을 맞추는 존재인 ‘호모 콤펜사토르’다. D&O, 496.
그리고 아마 이 글을 읽으며 떠올릴 생각과 비슷한 생각이 나도 든다. 실수를 피하려는 이 연약한 노력, 더 잘하려는 노력, 더 나은 운전자가 되려는 노력, 혹은 더 나은 치과의사가 되려는 노력 속에서 또 다른 연상이 떠오른다. 문명을 유지하는 것이 문제라면, 핵심이 균형과 적절한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라면, 클루게는 제프 만(Geoff Mann)이 말하듯 케인스주의자였을까? 아니면 반대로, 내가 슈테판 아이히(Stefan Eich)와의 대화를 통해 이해하게 된 것처럼, 케인스가 하나의 ‘클루게적 인물’이었을까? 나는 후자의 해석이 더 낫다고 생각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지금 이 순간 나는 클루게의 다성성을 느끼고 있다.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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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투즈(Adam Tooze)는 컬럼비아대학 교수이며 경제, 지정학 및 역사에 관한 차트북을 발행하고 있다. ⟪붕괴(Crashed)⟫, ⟪대격변(The Deluge)⟫, ⟪셧다운(Shutdown)⟫의 저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