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로 독트린: 라틴아메리카를 초국적 자본에 넘기다

트럼프 행정부는 라틴아메리카 정부들을 국제중재재판 체제로 밀어 넣고 있다. 이 체제는 다국적기업들에게 국가가 자원을 국유화하거나, 심지어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것만으로도 투자자 이익을 위협한다고 판단될 경우 해당 국가를 제소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부여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트럼프 행정부는 남아메리카에서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ISDS·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중재 체제를 공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으며환경 보호 조치부터 최저임금 인상에 이르기까지 투자자 이익을 침해한다고 판단되는 모든 정책에 대해 투자자들이 국가에 막대한 벌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베네수엘라가 4월 9일 통과시킨 새로운 포괄적 광업법은에너지·광업 부문 재건을 목표로 한다고 주장되는 일련의 국내 개혁” 가운데 가장 최근 사례다이는 미국의 장기간 제재와 투자 철수 이후 이루어진 조치로그 결과 아마소나스(Amazonas), 볼리바르(Bolívar), 델타 아마쿠로(Delta Amacuro) 주의 광산 지역들은 사실상 범죄 조직들의 지배 아래 방치되어 왔다그러나 이 법안 깊숙한 곳에는앞으로 상당 기간 베네수엘라와 초국적 에너지·광업 자본의 관계를 재정의하게 될 역사적 양보가 숨어 있다바로 카라카스 정부가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ISDS)식 중재에 복종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베네수엘라 의회는 델시 로드리게스(Delcy Rodríguez) 대통령 아래에서 기업 소송을 국외 재판소에서 해결하는 데 동의함으로써국가 권한의 핵심 기둥 하나를 넘겨주기로 한 셈이다. ISDS식 체제 아래에서는 초국적 에너지·광업 기업들이 환경 보호 정책이나 최저임금 인상 같은 조치가 예상 미래 수익을 위협한다고 판단할 경우베네수엘라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된다이는 주로 개발은행들과 미국 정부가 밀어 붙여온 절차적·정책적 도구들로사회주의적 국가 형성을 억제하고 대신 위험 제거형 국가 형성을 장려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 중재 조항의 포함은 더 넓은 볼리바르 자원민족주의 프로젝트에 대한 거대한 패배다베네수엘라는 볼리비아와 에콰도르 같은 국가들을 안전보장화된 투자자 친화적” 자원 회랑으로 바꾸려는 돈로 독트린(Donroe Doctrine) 전략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수억 달러 규모 벌금으로 이어질 수 있는 중재 판정을 국가들에 강요하고그 뒤에 미국 재무부 제재라는 암묵적 위협을 배치함으로써 브레턴우즈 체제 기관들은 미래 지도자들이 경제주권 정책을 추진하려는 의지를 제약할 수 있다즉 국내 정책의 허용 범위를 엄격히 제한하는 것이다.

ISDS식 체제는 안데스 지역에서 빠르게 주권적 통치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고 있다이는 자연이 제공하는 자유로운 선물로부터 국민들이 혜택을 누릴 권리를 방어하는 지도자들과외국 자본의 자원 추출을 촉진하라는 압력 아래 헌법을 해체하는 지도자들 사이에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그러나 최근 콜롬비아 대통령 구스타보 페트로(Gustavo Petro)가 이러한 투자자 친화적 중재 체제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한 사례가 보여주듯이 지역에서 미국 패권 역시 한계를 가질 수 있다.

안데스 지역의 시장 친화적” 개혁

돈로 독트린의 표준적 수단은 아르헨티나칠레에콰도르를 포함한 안데스 지역 국가들의 우파 후보들에게 외교적·정치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었다미국은 이들에게 군사 협력유리한 양자 무역협정개발은행을 통한 투자를 제공하는 대신집권 이후 시장 친화적” 개혁을 시행하도록 요구해 왔다.

볼리비아의 경우 로드리고 파스(Rodrigo Paz) 대통령은 20년에 걸친 사회주의 통치 아래 이루어진 수십 년간의 경제·사회적 진보를 되돌려놓고 있다그는 모두를 위한 자본주의를 내세우며 집권한 이후 연료 보조금을 삭감했고대두 상품의 수출을 개방했으며국제통화기금 대출을 협상했고노동 보호를 약화시켰다또한 그는 막대한 매장량을 가지고 있지만 막대한 자본 투입이 필요한 볼리비아 리튬 자원에 대한 초국적 광산 자본의 투자와 채굴을 촉진하려 하고 있다.

더 나아가 파스는 최고령(Supreme Decree)”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반제국주의적 법적 방어 장치 가운데 하나를 위협하고 있다거의 20년 동안 볼리비아 헌법은 기업 소송이 반드시 자국의 주권적 사법권 안에서 해결되어야 한다고 명시해 왔다만약 파스가 ISDS식 규칙을 따르는 개별 전략 투자를 승인함으로써 그 조항의 정신을 점진적으로 약화시킨다면그는 라파스(La Paz), 카라카스(Caracas), 키토(Quito)를 하나의 흐름으로 묶는 데 성공하게 될 것이다그 결과 보고타(Bogotá)는 경제주권을 방어하는 데 있어 고립될 수 있다.

강압이 실패할 경우 돈로 독트린은 폭력에 의존한다가장 극적인 사례는 1월 베네수엘라 침공이었다최소 80명을 죽이고 니콜라스 마두로(Nicolás Maduro) 대통령과 영부인 실리아 플로레스(Cilia Flores)를 의심스러운 마약 밀매 혐의로 불법 납치하는 데 동원된 절대적 결의 작전은 남아메리카에서 전례 없는 군사력 사용이었다이것은 베네수엘라 석유·광업 부문 개혁을 위한 핵심 전제조건 역할도 했으며동시에 다른 국가들에게도 줄을 서지 않으면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경고를 보내는 역할을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에콰도르군과의 합동 작전을 통해 콜롬비아 국경 지역을 폭격하며 이러한 전략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에콰도르 대통령 다니엘 노보아(Daniel Noboa)의 확대되는 마약과의 전쟁(drug war)”에 군사 지원과 정치적 자본을 집중 투입함으로써펜타곤은 문제의 경제적 뿌리를 해결하지 못한 채 오히려 악화시켜온 수십 년간의 실패한 접근을 반복하고 있다.

동시에 노보아는 다가오는 콜롬비아 선거를 앞두고 경제 위기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려 하고 있다그는 5월 1일부터 콜롬비아 상품에 100%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콜롬비아 남서부를 통과하는 핵심 무역 통로를 차단하고 있다이 지역은 콜롬비아 좌파 연합인 역사협약(Historic Pact)의 중요한 지지 기반이다페트로 대통령은 최근 야권 인사들이 노보아와 공모해 위기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콜롬비아 우파 핵심 인물 알바로 우리베(Álvaro Uribe)는 새 관세 발표 며칠 전 에콰도르를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국경 지역 해안 바로 앞에서는 최근 미국 군이 마약 밀수” 선박으로 추정되는 배들에 대한 공격을 확대했다카리브해까지 겨냥한 이러한 초법적 살해 정책으로 최소 180명이 목숨을 잃었다이 모든 정책이 만들어낸 불안정성은 초국적 자본이 이 지역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ISDS식 중재를 통한 더 큰 법적 확실성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ISDS식 중재 확대는 단지 에너지·광업 자본에 유리한 계약을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그것은 안데스 공동체 내부의 연대를 분열시키며안데스 지역이 세계 가치사슬 안에서 계속 종속적 역할에 머물도록 만든다동시에 자원민족주의와 고부가가치 산업화를 사실상 불법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그러나 돈로 독트린의 거대한 야망에도 미국 제국 프로젝트는 결코 무적이 아니다.

콜롬비아선두에 서다

3월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은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같은 ISDS 체제에서 콜롬비아를 탈퇴시키는 역사적이고도 도전적인 조치를 시작했다그는 주류 경제학과 비주류 경제학 양쪽을 아우르는 수백 명의 경제학자들의 지지를 받아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발표 당시 콜롬비아는 개발도상국들이 거의 항상 패소하는 국제 소송들 속에서 140억 달러 이상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페트로는 중재 체제를 거부함으로써 콜롬비아의 국가 자원과 자주적 녹색 에너지 전환 경로를 보호했다그는 또한 글로벌 북반구 국가들은 ISDS 법정을 거부할 수 있는 반면글로벌 남반구 국가들 상당수는 대출을 받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그러한 관할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중잣대를 지적했다그는 발표에서 이미 여러 국가들이 이러한 유형의 중재 체제에서 탈퇴했으며여기에는 미국도 포함된다면왜 콜롬비아는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라고 주장했다.

이는 페트로가 미국과 유럽 양측의 지정학적 요구에 맞서온 기존 행보의 연장선 위에 있다여기에는 앞서 언급된 마약과의 전쟁에 대한 반복적 비판우크라이나에 대한 콜롬비아 무기 제공 거부브릭스(BRICS)와의 경제 통합 추진그리고 특히 이스라엘과의 외교 관계 단절 등이 포함된다.

ISDS 법정 탈퇴와 비동맹 외교정책 추진을 통해 페트로는직접적인 군사적 위협 아래에서도 경제주권을 지켜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지역 지도자들에게 보여주었다이것이 바로 트럼프 행정부가 여전히 그를 무너뜨리는 데 집착하는 이유다.

복잡한 지정학적 현실

이 투쟁은 미국 제국의 장기적 지속 가능성을 약화시키고 있는 변화하는 세계 질서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트럼프의 불법적인 이란 전쟁은 세계적 인플레이션을 끌어올릴 태세이며중앙은행들이 달러를 버리는 흐름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트럼프 행정부의 법률가들이 세계은행을 위해 안데스 지역을 개방할 교묘한 방법을 고민하며 볼리비아 헌법을 검토하고 있는 동안페르시아만의 병사들은 폭탄으로 미국 금융 패권을 지탱하려 하고 있다그러나 역설적으로 그것은 미래 투자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따라서 ISDS 중재 체제가 이론상으로는 여전히 막강해 보일지라도더 넓은 지정학적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미국은 베네수엘라를 국외 재판 체제로 밀어 넣어 거액의 벌금을 부과하려 하고 있지만머지않아 그러한 판결을 실제로 강제할 군사적·경제적 패권을 더 이상 단독으로 유지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중동의 석유 공급 위기와 핵심 광물에 대한 끝없는 세계 수요 사이에 갇힌 초국적 자본은 결국 다시 베네수엘라로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볼리바르 혁명은 본래 자연이 제공하는 자유로운 선물이 번영과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가는 다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한 자원민족주의 프로젝트였다그러나 베네수엘라 의회는 이제 헌법 안의 의미 있는 보호 장치들을 거의 모두 무너뜨린 뒤국가 존재 이유 자체를 초국적 에너지·광업 자본의 위험 제거” 요구에 완전히 종속시켜 버렸다이것은 수년간의 미국 쿠데타 시도와 제재 끝에 기묘하지만 기능적인 결과를 낳았다즉 볼리바르 국가를 무너뜨리는 데 볼리바르 국가 자체가 이용된 것이다.

[출처The Donroe Doctrine: Making LatAm an Investor’s Paradise

[번역이꽃맘

덧붙이는 말

로건 맥밀런(Logan McMillen)은 비판적 정치경제학과 지정학의 관점에서 라틴아메리카를 중심으로 외교정책 분석 글을 쓰고 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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