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IBM에서 죽은 동료들의 스크랩북을 만들다

[특별기획] 1980년대 미국에서 있었던 일

청소부에서 반도체 생산직 노동자로

저는 청소부였어요. 아이가 둘 있었고, 싱글맘이었죠. 서른 살 정도 되었을 때 길 건너편에 살던 아주머니가 내셔널(National Semiconductor)1)에서 일했는데, 저를 좋게 봐주셨어요. 그래서 그분이 제가 일자리를 얻는 것을 도와주셨어요.

저는 내셔널 생산라인에서 일했어요. 몇몇 여자 직원들을 맡는 조장이었고요. 증착(deposition) 부서에서 일했고 거기에 어떤 화학물질이 쓰였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 공정은 컨베이어 벨트 같은 거였어요. 커다란 둥근 웨이퍼를 거기에 올려놓으면 증착 공정을 거쳐 나왔죠. 그러고 나면 먼저 산(acid)으로 세척하고 물로 헹궜어요. 그다음에는 다른 여자 직원이 큰 둥근 장비에 웨이퍼를 넣었어요.

위층에 있는 다른 부서에서는 웨이퍼 위에 무늬 같은 걸 입혔던 것 같아요. 그리고 나중에는 그걸 잘라서 전선을 붙였던 것 같고요. 납땜 같은 것도 했겠죠. 그런 건 들이마시면 좋지 않은데 말이에요. 제가 아는 건 대략 그 정도예요.

개인을 존중한다(Respect for the Individual)

IBM이라는 회사는 정말 높은 곳에 있는, 모두가 우러러보는 회사였어요. 제가 입사했을 때 회사의 모토가 “개인을 존중한다(Respect for the Individual)”였고요.

처음 IBM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는 정말 안정감을 느꼈어요. 저도 그 회사를 존경했죠. 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많이 채용했거든요. 시각장애인도 있었고, 청각장애인도 있었고,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런 분들이 회사 곳곳에서 일하고 있었죠. 그리고 그분들이 일을 하는 데 도움이 필요하면 IBM은 수어 통역사를 불러주기도 했어요. 회의가 있을 때도 통역을 지원했고요.

그런데 회사가 비용을 줄이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어요. 다른 회사들이 하나둘 해외로 공장을 옮기기 시작했고, 그게 IBM의 수익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자 IBM도 뭔가 변화를 주려고 했죠. 그래서 사람들을 내보내려고 좀 이상한 일들을 하기 시작했어요. 조기퇴직을 하도록 유도하고, 어떤 사람들은 멕시코에 가서 현지 직원들을 교육해야 했는데, 결국은 자기 자리를 대신할 사람들을 직접 가르치는 셈이었어요.

내셔널 세미컨덕터에서는 IBM처럼 그렇게까지 초과근무를 하지는 않았어요. IBM에서는 한 달에 28일을 쉬지도 않고 일했죠. 그러니 삶이라는 게 없었어요. 내셔널에서는 주말에는 쉴 수 있었어요. IBM에서 겪었던 그런 고생도 없었고요.

부부가 둘 다 그 회사(IBM)에서 일하는 경우에는, 실제로 그런 사례가 꽤 있었죠, 아이들과 함께 보낼 시간이 전혀 없었어요. 아이들이 커가면서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죠. 부모의 사랑도, 돌봄도, 보살핌도 제대로 받지 못했으니까요. 그런 것들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던 거예요.

또 어떤 경우에는 아내만 그 회사에서 일하거나 남편만 일하기도 했는데, 어쨌든 그 사람은 28일 내내 회사에 있었어요. 늘 회사에서 일만 했고 집에는 거의 들어가지 못했죠.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 바람이 나는 일도 생겼어요. 늘 주변에 사람들이 있었고, 그런 관계가 점점 깊어져 결국 이혼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죠.

그런데도 회사의 슬로건은 “개인을 존중한다”였어요. 정말 그 존중이라는 말이요.

개인을 존중한다는 IBM의 슬로건이 불타고 있다 Ⓒ박정원

IBM에서의 일

처음에는 작동기(actuator)를 만들었어요. 드라이버를 사용하는 기계 조립 작업이었죠. 부품에 헤드를 붙이는 일을 했고요.

그다음에는 무슨 일을 했더라? 건물 반대편에서 어떤 기계를 돌리는 일을 했어요. 그리고 마지막 두 개의 업무는 테스터(tester)를 운전하는, 그러니까 검사 장비를 다루는 일이었어요. 제품이 이미 다 만들어진 상태에서 제가 그걸 검사하는 거였죠. 이건 클린룸에서 한 일은 아니었어요.

그 뒤로는 잠깐 사무실에서 일하기도 했고, 한동안은 창고에서도 일했어요. 그런데 그때는 보충 인력(supplemental) 신분으로 다시 들어간 거였어요. 시급이 7달러 95센트였는데, 정말 얼마 안 되는 돈이었죠.

저는 고위 관리자 몇 명과 친하게 지냈는데, 그분들이 저에게 조기퇴직을 하라고 조언했어요. 사실 저는 IBM에서 일하는 게 정말 좋았어요. 그러고 싶지 않았죠. 정년까지 채우면 연금도 훨씬 많이 받을 수 있는데, 일찍 그만두면 연금이 적어지잖아요. 그런데 그분들이 “아니, 정말 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곧 대규모 해고가 있을 텐데, 그 대상이 될 수 있어요”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그 조언을 받아들여 조기퇴직을 했어요. 회사를 떠났을 때가 아마 52살이었던 것 같아요. 그 뒤에는 다른 곳에서 일을 구했어요. 3년 정도는 보충 인력으로 일했고, 그다음에는 또 다른 직장을 구해서 일했죠.

스크랩북을 만들다

내셔널에서는 사람들과 그런 (친밀한) 관계를 맺지는 않았어요. 그냥 출근했다가 퇴근하곤 했죠. 하지만 IBM에서는 정말 가까운 관계였어요. 우리는 거의 가족이나 다름없었죠. (스크랩북을 보여주며) 그런데 이건, 안타깝게도 그곳에서 일하다 병에 걸리고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에요.

스크랩북의 한 페이지 Ⓒ미디어뻐꾹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IBM 사람들 연락처 목록을 하나 갖고 있어요. 아마 몇백 명은 될 거예요. 삼백 명 정도일 수도 있고, 정확히는 모르겠네요. 누가 아프다든지, 누가 세상을 떠났다든지, 누가 결혼했다든지, 생일이라든지, 그런 소식을 제가 사람들에게 보내요. 늘 슬픈 소식만 있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IBM의 높은 직급에 있던 사람들이 그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이제는 누가 세상을 떠나면 그 정보를 저한테 보내줘요. IBM은 워낙 큰 회사니까 그런 소식이 사람들에게 널리 전해지길 바라는 거죠. 그래서 저한테 보내주고, 저도 예의와 존중의 마음으로 그걸 다시 사람들에게 전달해요.

하지만 회사에서 보내주는 사람들은 제 책에는 따로 추가하지 않아요. 제가 그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아는 것도 아니니까요. 제 책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제가 직접 장례식에 가서 부고를 받아왔거나, 인터넷에서 부고를 찾아 출력해서 책에 보관한 사람들이에요.

저는 그저 제 친구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를 바랄 뿐이에요. 저는 사람을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아까도 말했듯이 IBM에서는 우리가 정말 가족처럼 지냈어요. 워낙 오랜 시간을 함께 일했으니까요. 늘 같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저도 너무 나이가 들어가고 있네요.

같은 구역에서 일하다 같은 병에 걸린 사람들

제 기억이 맞다면, 세정(Partswash)에서 일했던 사람들 중에 샤니, 팀, 루빈, 그리고 몬티라는 젊은 남성이 있었어요. 그 네 사람 모두 다발성경화증(MS)에 걸렸어요.

그리고 유방암 환자도 유난히 많이 나왔고요. 췌장암에 걸린 사람들도 한 무리가 있었어요. 뇌종양도 몇 있었고요. 그러니까 회사 전체가 그런 거였어요. 제가 말하는 건 산호세(San Jose)에 있던 아주 작은 한 구역의 이야기일 뿐인데도요.

같은 구역에서 일한 여러 사람이 똑같은 병에 걸리기 시작하면, 정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잖아요.

잘 모르지만 마음속으로는 회사가 정말 큰 책임이 있다고 믿어요. 너무나 분명하잖아요. 회사는 큰돈을 물고 싶지 않은 거예요. 소송을 당하게 될 테니까요.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회사를 상대로 큰 소송을 제기할 거고, 회사는 거기에 걸려들고 싶지 않은 거죠. 그런데 그게 과연 ‘개인을 존중한다’는 건가요? 결국은 같은 일을 계속하고 있잖아요. 사람들을 계속 병들게 하고, 죽게 만들고요. 다만 그 일이 이제는 다른 곳에서 벌어지고 있을 뿐이에요.

우리는 언젠가는 모두 자신의 행동에 대해 답해야 하는 날이 오잖아요. 그 사람들이 그 전에 뭔가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면, 저는 안타까울 뿐이에요. 왜냐하면 그들도 알고 있거든요. 바보가 아니잖아요. 사람의 생명은 정말 소중한데, 그들은 마치 “뭐, 또 다른 사람 하나 데려오면 되지” 하는 식으로 행동하잖아요.

정말 그렇게까지 이기적인 건가요?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에 MSDS(물질안전보건자료)는 반드시 읽어야 했어요. 거기에는 그 화학물질이 무엇인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같은 내용이 이것저것 쭉 설명되어 있었죠. 아마 법으로도 회사가 그런 내용을 직원들에게 알려줘야 했을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아, 이거 또 읽어야 하네’ 하면서 대충 훑어보고 얼른 넘겨버리는 경우가 많았죠. 그러니까 그건 어쩌면 우리 잘못도 조금은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는 프레온(freon)으로 장비나 드라이버 같은 공구를 닦곤 했어요. 그게 그냥 알코올 같은 건 줄 알았죠. 그게 얼마나 위험한 건지는 전혀 몰랐어요. 그리고 뭐, 다들 철없는 젊은 사람들이었잖아요. 몸만 큰 아이들이었던 거죠. 프레온이 노즐 달린 병에 들어 있었는데, 서로에게 뿌리면서 장난도 치고 그랬어요. 그게 위험하다는 걸 정말 몰랐어요.

게다가 28일을 연달아 일하고 나면 사람이 좀 멍해지거든요. 정신이 몽롱해지고, 판단력도 흐려져서 바보 같은 행동을 하게 되는 거죠.

저는 정말 이런 일을 계속하는 기업들은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미 여기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걸 그들도 알고 있을 거잖아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이제는 저쪽에서 또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뭐라도 하세요. 멈추세요. 죄 없는 사람들을 병들게 하고 죽이고 있잖아요. 양심이라는 게 없나요?

그런 일이 당신 딸에게 일어나길 바라나요? 당신 어머니에게, 자매에게, 형제에게 일어나길 바라나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돈이 그렇게까지 중요한가요?

이건 범죄예요. 정말 그렇습니다.

최소한 안전을 위한 조치라도 하라는 거예요. 그래도 돈은 벌 수 있고, 제품도 계속 만들 수 있잖아요. 하지만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예방조치는 해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왜 그걸 하지 않으려고 하는 거죠? 정말 그렇게까지 이기적인 건가요?

죽은 동료의 사진과 스크랩북을 옆에 두고 인터뷰하는 새미 버취 Ⓒ미디어뻐꾹

*아래 링크에서 영어 구술 원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sharps.or.kr/english/?bmode=view&idx=172580820

1) 미국 산타클라라에 기반한 반도체 제조사. 1959년 설립되어 아날로그 반도체에 주력하다 2011년 인수되며 해체되었다.   

인터뷰 미디어뻐꾹 

임다윤 

그림 박정원

덧붙이는 말

임다윤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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