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지난 5월 셰브론과 메타의 주주총회에서 팔레스타인 인권침해 위험을 조사하라는 주주제안에 모두 반대표를 던진 사실이 확인됐다.
2026년 5월 27일 셰브론 주주총회에 올라온 제6호 안건은 팔레스타인 자원 수탈 문제와 관련해, 셰브론의 인권실사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독립적인 외부기관이 검증하도록 요구했다.
같은 날 열린 메타 주주총회의 제7호 안건 또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메타 플랫폼이 “팔레스타인을 겨냥한 증오 발언과 인종학살적 수사로 해석될 수 있는 유해 콘텐츠의 확산을 조장한다”고 지적하며, 인권실사의 실효성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국민연금의 셰브론 주주권 행사 공시

국민연금의 메타 주주권 행사 공시
국민연금은 두 안건 모두에 반대표를 던졌다. 국민연금은 반대 표결의 이유로 “회사가 관련 정책과 이행 현황을 공시하고 있으며, 주주제안의 취지 등을 고려할 때 주주가치 제고에 부합하는지 불분명하다”고 공시했다. 추가적인 인권실사 요구가 기업의 장기적 가치나 투자수익률을 높인다는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연금이 주주총회에서 반대표를 던지기 44일 전, 국가인권위원회는 국민연금공단에 “국민연금기금 책임투자에 있어 인권요소 강화가 필요하다”며, 주주권 행사에 인권 요소의 비중을 확대할 것을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6년 4월 13일 배포된 국가인권위원회 명의 보도자료. 국가인권위원회.
보이콧 대상인 셰브론 주식 1조 7765억원 보유…외부 검증 요구에도 반대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을 중단시키기 위한 BDS(보이콧·투자철회·제재·Boycott, Divestment and Sanctions) 운동은 셰브론을 우선 보이콧 대상으로 지정한 바 있다. 셰브론이 이스라엘로부터 동부 지중해 천연가스 채굴 면허를 받아, 팔레스타인 주민의 주권을 박탈하고 천연자원을 수탈해왔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해외주식 공시를 통해 2025년 말 셰브론 주식 1조 7765억원어치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셰브론 주주총회 제6호 안건은 “유엔 팔레스타인 점령지 특별보고관은 셰브론을 사업 활동을 통해 구조적 폭력과 잠재적 잔혹범죄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그로부터 이익을 얻는 기업으로 명시적으로 지목했다”며 독립된 제3자에게 인권실사 절차의 실효성을 평가하는 보고서 작성을 의뢰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셰브론의 현행 절차가 인권침해와 국제인도법 위반을 직·간접적으로 돕거나, 그로부터 이익을 얻는 일을 막을 수 있는지도 평가하도록 했다.
그러나 셰브론 이사회는 기존 정책과 위험관리 체계로 충분하다며 의안 반대를 권고했고, 국민연금도 반대표를 던졌다. 해당 안건은 찬성 8.9%로 부결됐다.
뎡야핑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는 “셰브론은 오래전부터 BDS 운동이 보이콧 대상으로 지정한 기업”이라며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한국도 ‘유엔 기업과 인권 가이드라인’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며 “(반대 표결은)국제적 가이드라인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2026년 5월 27일 셰브론 정기주주총회에 올라온 주주제안 안건(의안 6번)
메타 ‘가자 인권실사’에도 반대표
국민연금은 같은 날(현지시간) 열린 메타 주주총회에서도 제7호 ‘인권실사 효과성 보고’ 안건에 반대 표결했다.
해당 안건은 팔레스타인 기자 파텐 엘완이 주주총회에 참석해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 정지 경험을 증언하면서 소개됐다. 안건은 메타의 콘텐츠 관리 체계가 대규모 인권침해를 악화시키는 일을 제대로 막고 있는지 평가하고, 특히 “가자에서 회사가 최근 인권에 미친 영향”을 집중적으로 다루도록 요구했다. 팔레스타인을 대변하는 콘텐츠의 과도한 삭제와 계정 정지, 팔레스타인인을 겨냥한 혐오·폭력 선동의 방치를 인권실사 실패 사례로 제시하기도 했다.
뎡야핑 활동가는 “메타가 궁극적으로 전쟁범죄에 가담하고 있어, 자체 평가가 필요할 정도로 주주총회에 인권실사안까지 올라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메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목소리를 광범위하게 검열해 왔고, 친이스라엘·친자본 성향의 언론을 통해서도 이 문제가 꾸준히 지적됐다”고 했다.
국민연금은 메타 안건에 대해서도 ‘회사의 기존 공시’와 ‘주주가치 제고 여부가 불분명하다’는 점을 반대 사유로 들었다. 국민연금은 2025년 말 기준 메타의 주식 8조 6,371억어치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국민연금에 대한 권고문 중 일부. 국가인권위원회.
사라진 책임투자, ESG는 허울 뿐?
국민연금이 반대 표결의 근거로 명시한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 활동에 관한 지침 해외주식 세부기준 제50조’는 주주제안의 취지와 중대 위험, 회사의 공개 및 대응 수준 등을 검토해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반대하도록 규정한다. 주주가치 훼손은 주주의 지분 가치 또는 이익이 감소할 가능성을 뜻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표결 44일 전인 4월 13일, 국민연금에 해외주식에도 인권실사 지표를 적용하고, 중점관리 사안에 ‘인권 위험·관리’를 추가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국민연금이 인권위 권고 직후임에도 인권실사 안건에 반대표를 던진 것은, 인권침해 위험보다 수익률을 우선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 활동에 관한 지침 해외주식 세부기준 제50조 주주제안
뎡야핑 활동가는 “주식의 가치가 인권보다 우선한다는 원칙이 있다면, 그 원칙부터 재고해야 할 것”이라며 “국민연금이 어떻게 한국인 전체를 전쟁범죄 공모자가 되게 할 수 있느냐”, “당장 투자를 철회해야 한다”고 했다.
기자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설명을 듣기 위해 수탁자책임실에 질의했으나, 대외협력단에 문의하라는 답변만 받았다. 이후 대외협력단에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2주기 집회. 참세상 박도형 기자.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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