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김제 자동차부품업체 일강에서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가입한 이주노동자들이 잇따라 비자 연장과 재계약을 거부당하면서 노조가 ‘표적해고’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노조는 지난해 단체협약으로 공정한 평가를 약속했지만 회사가 올해 평가자 구성을 바꾼 뒤 금속노조 조합원에게 계약해지가 집중되고 있다며 고용노동부에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했다.
진보당 정혜경 의원과 전국금속노동조합 전북지부 일강지회는 19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강의 이주노동자 재계약 거부와 비자 연장 문제에 대한 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을 촉구했다. 기자회견에는 정 의원을 비롯해 김형수 금속노조 부위원장, 심승보 금속노조 전북지부 일강지회장, 해고된 이주노동자 소학, 섹 알 마문 민주노총 이주노동자노동조합(MTU) 수석부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출처: 금속노조
일강은 평택과 김제에 공장을 두고 현대트랜시스와 현대위아 등에 자동차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다. 노조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평택과 김제 사업장의 전체 노동자는 450명이며 이 가운데 이주노동자는 96명이다. 김제공장에서는 이주노동자 73명 가운데 59명이 민주노총 조합원으로 집계됐다.
갈등의 핵심은 이주노동자의 고용과 체류 자격을 결정하는 평가 방식이다. 일강과 금속노조는 지난해 10월 24일 체결한 단체협약에서 이주노동자의 비자 변경·연장과 재계약을 ‘공정하고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노조에 따르면 회사는 올해 4월 1일부터 이주노동자 인사평가 담당자를 한국노총 임원이자 생산팀 관리자로 변경했다. 노조는 이후 금속노조에 가입한 이주노동자들에게 낮은 평가가 집중됐다고 주장했다.
노조 자료에는 현재까지 계약해지를 통보받은 금속노조 소속 이주노동자가 15명이라고 적시돼 있다. 앞서 작성된 설명자료에는 78명의 이주노동자 조합원 가운데 13명이 비자 연장과 재계약 거부로 퇴사했고, 8월 2명이 추가로 계약해지됐다고 돼 있다. 노조는 연말까지 24명이 추가 평가 대상이며 현재 방식이 지속될 경우 이주노동자 조합원 전체의 고용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가 ‘표적해고’라고 주장하는 근거 가운데 하나는 평가 결과가 특정 노조 조합원에게 집중됐다는 점이다. 심승보 일강지회장은 “한국노총 소속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반면 금속노조 소속 이주노동자들에게만 재계약 거부와 해고가 집중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고 대상 노동자들이 지각이나 결근, 징계 이력이 없고 현장에서 업무 능력을 인정받았는데도 회사가 낮은 평가점수만 제시할 뿐 평가 기준과 평가서, 구체적인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는 평가자 변경 과정에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올해 4월부터 평가에 참여한 한국노총 측 간부는 지난해 2월 회사 임원과 총무인사팀 관리자들과 이주노동자 기숙사를 방문했던 인물이다. 노조는 당시 이주노동자들에게 금속노조 탈퇴서를 제시하면서 탈퇴하지 않을 경우 비자를 연장하지 않거나 계약을 해지해 출국시키겠다는 취지의 압박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계약해지를 통보받은 이주노동자 소학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지난 11일 회사로부터 계약해지를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단체협약에 따라 공정한 평가를 받고 비자를 연장하며 계속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며 “사측은 평가 기준을 일방적으로 변경하고 평가 결과와 근거를 공개해 달라는 요구마저 거부했다”고 말했다. 이어 “1년 동안 성실하게 일한 저는 하루아침에 일터와 생계, 그리고 가족과 함께 살아갈 미래까지 잃게 됐다”고 했다.
이주노동자의 경우 재계약 거부가 단순히 일자리를 잃는 데 그치지 않고 체류 자격과 연결된다는 점도 이번 갈등의 핵심이다. 섹 알 마문 민주노총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은 “이주노동자에게 비자와 노동계약은 곧 생존의 문제”라며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비자 변경에 협조하지 않는 것은 일터에서 쫓아내고 한국에서 살아갈 권리까지 위협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노조는 회사가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기존 숙련 이주노동자의 재계약을 거부하면서 신규 인력을 채용하고 있다는 점도 표적해고 주장의 근거로 들었다.
갈등은 사업장 내 농성으로도 이어졌다. 일강지회는 지난달 30일 고용노동부 익산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청장과 면담한 데 이어 지난 11일부터 김제공장 사무동 로비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노조에 따르면 회사는 이후 쇠사슬 등을 이용해 사무동 출입구를 막고 조합원들의 출입을 제한했다. 노조가 공개한 사진에도 사무동 출입문에 쇠사슬이 설치되고 일부 창문 등이 막힌 모습이 담겼다. 노조는 이 과정에서 조합원과 사측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벌어져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노조는 고용노동부 익산지청이 농성을 정당한 조합활동으로 보고 출입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지도했는데도 사측이 출입 제한을 계속했다고 주장했다. 현재 금속노조는 회사를 부당노동행위로 고소하는 절차에 들어갔으며,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정혜경 진보당 의원은 노동부의 직접 개입을 요구했다. 정 의원은 “김영훈 장관도 취임 직후부터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 체불, 괴롭힘에 무관용 원칙으로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며 “즉각적인 특별근로감독에 착수하고 불법행위를 낱낱이 밝혀 경종을 울릴 때”라고 말했다.
일강지회는 계약기간이 끝난 이주노동자가 원할 경우 재계약·재고용을 통해 계속고용을 보장하고, E-9 비자에서 E-7 등으로 체류 자격 변경을 원할 경우 회사가 필요한 절차에 협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단체협약을 위반한 인사평가로 해고된 이주노동자의 재입사와 비자 만료 최소 3개월 전 체류기간 연장 절차에 필요한 서류 제공 등을 요구했다.
노조는 16일 금속노조 이주노동자 전국공동행동에 이어 19일 국회 기자회견을 진행했으며, 20일에도 이주노동자 인권 탄압 문제를 제기하는 기자회견을 이어간다. 오는 26일에는 금속노조 2차 파업 전북대회를 일강 앞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비자와 계약기간이 순차적으로 만료되는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노동위원회나 수사기관의 판단이 나오기 전에 고용과 체류 문제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노동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대응이 향후 쟁점이 될 전망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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