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위에 사람이 있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불탄 구미 공장 옥상에서 498일, 세종호텔 앞 차도 위 철제 구조물에서 96일, 한화오션 앞 CCTV 철탑에서 66일, 박정혜와 고진수·김형수가 아직 고공에 있다. 광장의 힘으로 윤석열을 파면하고 조기 대선이 시작되었지만, 함께 싸운 노동자들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노동자와 시민들은 "이를 해결하는 것이 정치여야 한다"면서 대선 후보와 정당의 책임 있는 역할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돌입한다.
민주노총은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에 자리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캠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공농성 사업장 문제 해결 촉구 10만 인 서명운동' 계획을 밝혔다. 기자회견 참여자들은 "윤석열 파면 이후의 조기 대선은 정권을 교체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대개혁으로 나아가는 시작이어야 한다"며 "고공농성 사업장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먹튀방지법을 제정하고, 정리해고법을 폐지하고, 노조법 2·3조를 개정해야 한다"고 이재명 후보를 비롯한 대선 주자들과 정치권에 요구했다.
이재명 후보 캠프 앞에선 고공농성 사업장 노동자들. 참세상
이날 기자회견을 개최한 민주노총은 특히 이번 대선의 '유력 후보'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책임을 강조했다.
최대근 서비스연맹 부위원장은 "이번 10만 인 서명 운동은 고공에서 외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정치해 사회에 세상에 전달하는 시작일 뿐"이라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에게 분명히 요구한다. 현장을 보라. 하늘 위의 절규에 응답하라. 정치가 외면하면 우리는 정치 위의 행동으로 응답할 것"이라 말했다.
홍지욱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참으로 (고공농성 사업장 노동자들의) 현실이 암담하다"면서 "대선 정국이 중반을 넘어서고 있는데, 대선 이후 새로운 대통령이 뽑히고 새 정부가 구성되면 나아질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짚고는 "정치라는 것은 민생을 해결하는 것이고, 자본과 기업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해 단호하게 강제하고 조정하고 대안을 찾아가는 것이 정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홍 부위원장은 또한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은 고공농성 문제를 해결해야만 진정으로 민생을 해결하는 답을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민주노총은 "고공농성 문제를 해결하고 노동 기본권을 확장하는 대선 투쟁을, 대선 이후 새 정부를 향해서도 적극적으로 전개해 나갈 것"이라 밝혔다.
한편, 기자회견을 마친 고공농성 사업장 당사자 노동자들과 민주노총 관계자들은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캠프를 방문해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위원장 민병덕 의원과 면담을 가졌다. 면담에 참여한 관계자에 따르면 민 의원은 이 자리에서 이재명 후보 캠프 측에 고공농성 노동자들의 요구를 전달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최현환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민주당과 함께 새 정부가 들어서면, 당연히 노동 의제 현안으로 고공 사업장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믿는다"면서 그러나 "더 발빠르게, 지금 움직여 주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하고, 오늘 면담 이후에 그런 결과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이야기했다.
최 지회장은 이재명 후보가 "'지금은 이재명'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대선에 나섰는데, 추위에 고통을 겪다가 이제는 살인적인 더위를 견뎌야 하는 등 하루하루 최악의 조건에서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이 하루빨리 땅을 밟을 수 있도록, 바로 지금 대선 과정에서부터 고공 사업장을 찾아 노동자들을 만나고, 후보일 때 문제 해결을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히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고공농성사업장 문제해결 촉구 10만 인 서명운동 기자회견. 참세상
이날 기자회견에는 고공농성 중인 3개 사업장의 당사자 노동자들이 참여하며 대선 후보와 정치권이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것을 호소했다.
김란희 서비스연맹 관광레저산업노동조합 세종호텔지부 조합원은 "대통령 후보 토론회에서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코로나 시기 소상공인의 극복 비용을 지금이라도 정부가 떠안아야 한다고 했다"면서 "그렇다면 한 가지 여쭙고자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고통을 받은 국민이 소상공인만 있었나? 바로 여기 세종호텔 노동자들이 코로나 핑계로 해고된 자들"이라 짚었다.
김 조합원은 "우리는 윤석열 탄핵과 파면에서 법은 공정하지 않다는 걸 체험했고, 민주당의 대선 후보도 뼈저린 경험을 하지 않았는가"라며 "세종호텔 사측은 법으로 다 이겼기 때문에 대화도 하지 않겠다고 한다"고 개탄했다. 또한 "우리는 세종호텔 정리해고 철회를 넘어 국회에서 만든 정리해고법 폐지를 위해 투쟁할 것이고, 정리해고를 잘할 수 있게 만든 국회에서 세종호텔 정리해고 문제를 반드시 풀어야 할 것"이라며 대선 후보를 비롯한 정치권이 "탄핵과 파면 국면에서 국회의원이 끌어내려질 상황에만 국민을 찾지 마시고, 거리에서 고공에서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에게 삶이 절박한 노동자, 국민들에게도 큰 힘이 되어 주시기를 호소한다"고 이야기했다.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조합원은, 대선 국면 "주 4.5일제 논의가 시작되고 있는데, 주 52시간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재앙으로 다가왔듯 주 4.5일제도 어떻게 진행되더라도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 정책에 포함될 방법이 없다"면서 "노동조합이 없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유 조합원은 "하청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통해 교섭을 진행하려고 했을 때 막대한 손해배상을 감수하지 않고는 사회적 이슈조차 될 수 없고, 진짜 사장 원청과 이야기할 수 없는 이 구조 속에서는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며 "노동조합을 포기하든 합의를 포기하든 아니면 고공에 오르든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사회 대통합을 위해 대통령 후보가 자신의 입장을 밝혀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최현환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장은 고공에 오른 노동자들은 "단 하루도 편히 잠들 수 없고, 단 한 순간도 안전하지 않은 곳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일할 권리를 되찾게 해달라 외치고 있다"면서 "이 싸움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이 사회의 노동권, 인간의 존엄에 대한 물음"으로 "이제는 정부가 응답하고, 시민이 행동할 차례"라고 힘주어 말했다.
최 지회장은 "우리는 10만 인의 뜻을 모아 새 정부에게 강력히 요구할 생각"이라며 △고공농성 노동자들과의 즉각 교섭 △대화와 타협의 문을 정부가 열 것 △부당해고 철회와 원직 복직 보장 △노동권과 생존권이 존중받는 사회를 위한 제도 개혁 등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고공농성 사업장 문제 해결을 위한 10만 인 서명운동은 웹페이지를 통해 참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