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소위 쪽방촌이라 불리는 가난한 동자동에서 왔습니다. 십시일반 돈을 모아 떡을 조금 준비해 왔습니다. 드시고 함께 힘을 내면 좋겠습니다."
지난 겨울,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은 '윤석열 즉시 탄핵' 떡을 준비해, 광장을 지키는 시민들과 나누었다. 김호태 씨는 20년 즈음 동자동 쪽방촌에서 살아온 주민이자, 쪽방촌 주민들이 함께 꾸린 동자동사랑방의 전 대표로, 이웃들과 함께 광장에 참여했다.
호태 씨는 최근 살고 있던 쪽방에 심하게 물이 새 동자동 인근의 다른 공간으로 거처를 옮겼지만, 여전히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과 함께 "가난한 이들도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면서 여러 활동들을 이어가고 있다.
참세상은 '대선, 광장의 선택' 마지막 순서로, 김호태 씨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자동사랑방 전 대표 김호태 씨. 참세상
지난 겨울, 어떤 마음으로 광장에 나섰나.
수년 전 박근혜 퇴진 광장에 정말 열심히 참여했다. 그런데 탄핵 이후에 집권한 민주당 정권은 한 마디로 우리의 촛불을 팔아먹었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라고 우리가 촛불을 든 것 아니지 않나. 우리는 정부의 잘못들을 바로잡고 평범한 사람들 모두가 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섰다. 그런데 촛불항쟁 이후에 열린 당시 조기 대선에서 정권 교체만이 중요하다, 민주당이 집권하는 것만 중요하다는 논리로 다른 목소리들은 억눌렸다. 그렇게 집권한 문재인 정부도 실망이 컸다. 쪽방촌 주민들도 그렇고, 가난한 사람들의 삶, 노동자들의 삶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 윤석열 퇴진 광장이 열렸을 때도 처음에는 집회 참여에 고민이 많았다. 이번에도 우리의 요구와 목소리들을 민주당 등 정치권이 이용해 먹고, 배신할 것 같다는 우려가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권이 비상계엄이라는 정말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르고, 그에 맞서 수많은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도 꿈쩍하지 않는 것들을 보면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윤석열 퇴진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윤석열을 끌어내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이번에는 정말 시민들 모두가 잘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광장에 나갔다.
우리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나.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도, 변화를 만드는 것도 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지 않겠나.
조기 대선은 어떻게 지켜보고 있나.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가 있을까.
정치인들이 시민들 무서운 것을 알아야 하는데 아직도 잘 모르는 것 같다.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나 별다를 게 없다. 높은 곳에 올라가서 자리를 차지하고, 시민들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자기 정치만 하려고 드는 것 같다. 광장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섰던 것이 정권 교체를 위해서였나, 이재명을 대통령 만들기 위해서였나. 아니다. 나라를 살리고, 민주주의를 지키자는 거였다. 모두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거였는데, 그런 요구들에 대해서 제대로 약속하고 지키겠다는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답답하다.
정당들이나 정치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권력을 잡으면 비슷해지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선에서는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에게 표를 주려고 한다.
결국 우리 같은 사람들 곁에서 편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들은 그 힘이 약하더라도 진보정당이다. 두 거대 양당은 소용이 없다. 그들에게서 갈라져 나온 몇몇 이름만 다른 당들도 마찬가지고. 선거 때에는 우리를 찾아와서는 이렇게 저렇게 한다고 약속해놓고, 당선되고 나면 언제 그랬냐 나 몰라라 한다. 그런 거대 양당 사이에서 그래도 우리의 말에 귀 기울이고, 우리의 말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이들이 누구냐고 하면, 그것이 진보정당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진보정당 정치인들이 설사 대통령이 되고 정권을 잡는다고 해서 단번에 세상이 달라질 거다, 우리가 다 잘살게 될 거다,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의 이야기를 세상에 한 마디라도 더 전하고 우리와 함께 노력할 수 있는 이들이 누구냐고 했을 때 그것이 민주노동당 같은 진보정당이고, 지금의 권영국 후보라고 생각한다.
민주노동당과 권영국 후보가 함께 세상에 알릴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은 어떤 것들일까.
가난한 자들의 이야기다. 가난한 자들이 지금 어떻게 살아가는가,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 동자동의 이야기를 해보면, 민주당 정권에서부터 쪽방촌을 공공 개발하겠다고 약속해 놓고 4년이 넘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손을 놓고 있다. 쪽방촌 주민들, 서울역의 홈리스들,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의 삶을 함께 이야기하는 정치인들이 필요하다.
유권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일까.
투표는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니 내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할 수는 없겠다.
다만 광장에서 우리가 무엇을 위해 함께했던 것인지, 우리 사회에 지금 필요한 이야기가 무엇이고,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정당과 후보가 누구인지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다.
민주주의는 힘 있는 정치인 한 둘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스스로 만들고 지키는 것이다.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반성조차 안 하고, 더불어민주당도 국민의힘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만 해대는데,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스스로 더 크게 알려 나가는 게 중요하다.
이번 대선에서도 그런 노력들을 함께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