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월 2일, 한국서부발전의 2차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충현 씨가 홀로 작업 중 목숨을 잃은 태안화력발전소 현장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 결과가 23일 발표됐다. 원청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와 한전KPS와 함께, 고인이 소속되었던 2차 하청업체 한국파워O&M 등 15개 업체를 대상으로 한 이번 근로감독 결과 1,084건의 법 위반 사항이 적발됐다. 고용노동부는 이중 산업안전보건법령 40개 조항을 위반한 379건에 대해서는 사법처리했고, 592건에 대해서는 약 7억 3천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했으며, 113건에 대해서는 개선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수치는 지난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벌어진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 사고 이후 실시된 근로감독에서 적발된 법 위반사항(1,029건)과 과태료 규모(6억 7천만 원)를 크게 웃도는 것으로, 지난 6년간 ‘위험의 외주화’로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발전소 현장의 폐혜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드러내는 참담한 결과다.
숱한 위험 도사린 죽음의 발전소
이번 근로감독은 △산업안전보건 감독 △임금체불·근로계약 등 기초노동질서 감독 △하청노동자 불법파견 감독 등 3개 분야에서 실시됐다.
감독 결과 적발된 위반 사항을 톺아보면 모두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수많은 위험이 발전소 현장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한국서부발전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하청업체 및 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순회점검 및 정기·수시 안전보건점검을 실시해야 하나, 관련 사업장 순회 점검이 누락되거나, 2차 하청 노동자는 점검에 포함하지 않은 것이 드러났다. 산업재해 발생 시 작성해 제출해야 하는 산업재해조사표를 미제출한 것도 적발되었고, 관리감독자, 노동자 및 유해위험작업 종사자에게 교육을 실시해야 함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것도 밝혀졌다. 안전보건관리규정을 작성·변경할 때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야 함에도 이를 거치지 않았고, 유해·위험장소 안전보건표지도 부착하지 않았다.
원동기·회전축 등의 회전체에 덮개 등 방호조치를 해야 하나, 방호 덮개 등이 설치되지 않은 설비가 적발되었고, 안전인증 또는 안전검사 미실시 사례도 지적됐다.
추락 위험이 있는 장소에 안전난간 등을 설치해야 하나, 수상태양광 설비, 부두, 정비동 등 위험 장소에도 안전난간이 설치되지 않았다. 추락 위험장소에 대한 출입금지 조치도 실시되지 않았다.
폭발 위험장소에서 방폭 구조의 기계·기구를 사용해야 하나, 저탄장 등 분진 폭발 위험 장소에서 비방폭 전기설비를 사용하고 있었다. 인화성 가스 취급 장소에 가스감지기가 설치돼 있지 않고, 분진 폭발 위험 장소에서 내화구조가 아닌 배관을 사용하는 등 화재·폭발·전기 안전과 관련된 다수의 위반 사례도 적발됐다.
노동자에 대한 건강진단 실시 의무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건강진단 후 사후관리 조치 결과 제출 의무도 이행하지 않은 것이 확인됐다.
연차휴가 미사용수당을 과소지급한 것과 통상임금 및 평균임금 등의 산정 오류로 인해 연장근로수당과 퇴직금 등을 과소지급한 사례도 적발됐다. 근로계약과 관련해서도 근무시간 등 필수 기재 사항을 누락하거나, 실제 근무시간을 반영하지 않은 경우, 성희롱 예방교육 미실시, 배우자 출산휴가 미부여 등의 사례도 확인됐다.
법원 이어 정부도, “한전KPS 불법파견 노동자 직접 고용해야”
고용노동부는 이번 근로감독을 통해 한전KPS가 한국서부발전으로부터 도급을 받아 이를 다시 2차 하청업체에 위탁해 수행하는 정비 전 공정이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고 김충현 노동자가 담당했던 선반 작업뿐만 아니라 전기·기계 등 정비 공정 모두가 불법파견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원청 노동자가 작업 내용, 방법 등을 결정하면 하청 노동자는 지시에 따라 작업을 수행하는 등 상당한 지휘·명령을 받은 점 △원청이 하청 노동자를 포함하여 2인 이상의 작업조를 편성·배치하는 등 원청에 실질적으로 편입된 점 △하도급계약에 따른 업무가 원청과 구체적으로 구별되지 않는 점 △하청의 작업에 필요한 설비와 공간을 보유하지 않는 점 등을 근거로, 원청인 한전KPS에 대해 2차 하청업체 소속 불법파견 노동자 41명을 직접 고용하도록 시정지시했으며, 원청 대표이사와 관련 하청업체 대표들을 입건하여 현재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앞선 8월 28일에는 서울중앙지방법원이 한전KPS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 24명이 원청을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1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려, 한전KPS의 불법파견과 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직접 고용 의무를 인정한 바 있었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이번 감독 결과는 왜 같은 유형의 죽음이 반복되는지 우리 사회가 마주해야 할 구조적 문제가 드러난 것”이라며 “발전산업의 다단계 하도급 구조 속에서는 안전관리 책임이 분산될 뿐 아니라 효율과 비용절감 효과도 불확실하다. 이런 현실을 이제는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고 김용균·김충현의 동료들, “불법파견, 위험의 외주화 중단 위해 끝까지 싸울 것”
같은 날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근로감독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대책위는 “노동부가 발표 이번 근로감독 결과는 2019년 1월 김용균 사망 당시의 결과와 다르지 않다”면서 “한국서부발전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안전조직을 신설하고 문화를 바꾸었다고 자평했지만, 현장의 변화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김용균 특조위 권고의 첫 번째 항목, “연료·환경설비 운전 및 경상정비 노동자의 직접고용 정규직화”가 이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2차 하청노동자들은 여전히 안전관리 체계 밖에 있었고, 그 배제가 결국 또 한 번의 죽음으로 이어졌다”고 짚었다.
또한 이번 결과는 “법원이 이미 인정한 불법파견을, 정부가 다시 확인한 것”이라며 “그럼에도 한전KPS는 법원의 판결에 항소하며 불법 구조를 유지하려 한다” 비판하고, “이제 한전KPS는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 “즉시 시정지시를 이행하고, 태안뿐 아니라 모든 발전소 하청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책위는 이어서 “노동부 스스로 인정했듯, 문제의 핵심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이며 “이 구조를 만든 주체는 정부와 공공기관”이라 짚고는 “지금 필요한 것은 더 이상의 점검이 아니라 직접고용과 구조개선이라는 실질적 대책”으로 “이제 정부가 결단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첫째, 한전KPS의 불법파견을 즉시 시정하고 직접고용을 완료하라. 둘째, 2인1조 작업 원칙과 공동작업장 관리 의무를 법제화하라. 셋째, 공공기관의 외주화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라”는 요구를 제시하고 “정부는 지금 이 자리에서, 노동자의 생명을 지키는 정책으로 응답하라”, “우리는 발전소 현장의 불법파견을 끝내고,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시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며 “이것이 김충현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라고 밝혔다.
23일, 국회 앞, 태안화력발전소 근로감독 결과에 대한 고 김충현 대책위원회 입장 발표 기자회견 현장에서 "불법파견 노동부도 인정했다"는 피켓을 들고 있는 김영훈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전KPS비정규직지회장(가운데). 참세상
김영훈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전KPS비정규직지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부는 이번 근로감독의 결과에 따라 한전KPS가 불법파견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렸다”면서 “그러나 우리는 왜 이같은 조치가 늘 ‘사후에만’ 내려지는가, 왜 (노동자의) 죽음이 있어야만 정부는 움직이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짚었다.
김 지회장은 고 김용균 청년 노동자의 죽음 이후에도 “수십 년 동안 방치된 발전소의 다단계 하도급 구조는 하청노동자들을 더 벼랑끝에 내몰고 가혹한 조건에서 일하게 하였고, 안전책임을 분산시키켜 비용 절감을 명분으로 노동자의 생명을 희생시켜 왔다”면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적했듯 같은 유형의 죽음이 반복되는 이유는 ‘구조적 문제’에 있어, 안전규정 미이행과 불법파견이 결합된 발전소 현장은 언제든 또 다른 김충현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환기했다.
그는 “더 이상 추모만으로 끝낼 수 없다”면서 △모든 위험작업에 대한 2인 1조 원칙 즉각 확대·적용 △불법파견 노동자 즉시 직접 고용 △원청 책임의 명확화 △안전권·노동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할 종합 대책을 마련과 함께 “태안화력뿐 아니라 모든 발전소의 하도급 구조를 전면 폐지해야 한다”고 힘 주어 말하고, “끝까지 점검하겠다”는 고용노동부의 약속이 “단순한 언론용 발언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고 김충현의 죽음이 헛되지 않으려면,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 진정한 변화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짜 사장은 정부, 공공기관에 책임 전가말고 직접 나서야”
박정훈 고 김충현 대책위 집행위원장(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노동안전보건위원장)은 “정부가 연일 공공기관의 책임을 묻겠다고 한다”며 “그러나 형식상 공공기관과 정부가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예산과 권한 등 실질적 책임은 정부에 있다” 환기하고, “고 김충현의 진짜 사장도 한전 KPS가 아니라 정부”라고 강조했다. 박 집행위원장은 “지난 6월 한전KPS와 서부발전과의 (대책위의) 밤샘 협상에서 한전 KPS는 재발 방지에 가장 중요한 대책인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정부 승인이 있으면 하겠다고 밝혔다”면서 “진짜 사장이 정부이고, (이번 근로감독 결과를 통해)고용노동부가 (한전 KPS에) 직접 고용하라고 이야기했기 때문에 이제는 한전 KPS가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대통령은 ‘공공분야는 돈 버는 곳이 아니다’, ‘나라가 어떻게 일하다 죽게 방치하냐’, ‘공공 분야부터 하도급을 없애라’라고 말한다”면서 “정부는 모범적 사용자로서 위험 업무에 대한 하도급을 전면 금지시키고 공공분야의 안전 관리 의무를 다해야 한다”, “더 이상 공공기관에 책임을 전가하는 무책임한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끝으로 그는 “고 김충현 노동자가 설사 한전KPS 노동자가 아니었다는 근로감독 결과가 나왔더라도 원청의 책임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라면서 “우리가 지키고 보호해야 할 것은 노동자의 생명이지 노동자의 신분이 아니다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고 김충현 대책위는 모든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서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결의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