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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성노동자연대(한여연)' 출범 관련기사. 한겨레 VS 조선 안 빈 (한국인권뉴스 편집위원) 성노동자에 악의적인 한겨레신문 보도사진 조선일보 기사와 대조적 29일 출범한 전국성노동자연대(한여연)에 관한 언론사별 보도관점이 차이가 커 흥미롭다. 한겨레신문(한겨레)과 조선일보(조선)가 행사 당일 현장을 취재한 기사(네이버 검색)를 대비해 본다. 30일자 한겨레(이정아 기자)는 “성노동자연대 출범” 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사진 한 장과 사진설명을 싣는 것으로 대신했다. 기사가 워낙 짧아 전문을 옮긴다. “ 29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에서 전국 성매매업소 종사 여성과 업주 등 1천여명이 연 '전국 성노동자의 날'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비옷과 선글라스 등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같은 날 조선(탁상훈 기자)은 “성매매 여성들 길거리 집회 ”전국 성노동자연대” 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성노동자들의 주장과 정부측 입장을 나란히 싣는 등 현장상황을 비교적 상세하게 전하고 있다. (길어서 발췌) “... 1500여명의 젊은 여성들이 상기된 얼굴로 서 있었다. 하루 전 경기장측으로부터 명확한 이유없이 대관 취소 통보를 받아 길거리에서 집회를 갖게 된 성(性) 매매 여성들이었다. 이전까지와는 달리 마스크와 모자를 쓰지 않은 채 취재진에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는 여성들도 적지 않았다... 성매매 특별법이 시행된 작년 9월 23일 이후 성매매 여성들의 시위는 점점 잦아지고 있다. 지금까지 총 27회에 걸쳐 시위를 하거나 성명서를 발표했다.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50일 동안 천막을 치고 단식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양 언론사의 관련기사를 비교해보면 몇 가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한겨레는 간략하게 사진기사에 그친 반면, 조선일보는 행사내용과 그간의 과정을 적었다. 사안에 대한 종합적인 설명에서는 두말할 나위없이 조선이 앞선다. 출범한 성노동자 조직 명칭에서도 차이가 난다. 한겨레는 “성노동자연대 출범”, 조선은 “전국 성노동자연대 한여연” 로 한겨레는 “전국”과 “한여연” 이란 말이 빠져있다. 정확한 명칭은 조선의 표기가 맞다. 특히, 한겨레가 “전국”이란 말을 누락시킨 것은 마치 최근 장하진 여성가족부 장관이 이번 행사를 두고 “..일부 성매매 여성들의 '성노동자'로서의 생존권 요구는 인정할 수 없으며..”라고 한 점과 같이 “전국성노동자연대 한여연”의 규모를 애써 줄이려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번 행사 참가인원을 두고 조선은 1천5백여명(타 언론사들은 최하 1천2백명에서 최고 2천5백명)으로 보도한 데 비해 한겨레는 모든 언론 중에서도 가장 적은 “1천여명”이라고 적어 역시 행사규모를 줄이는데 애쓰고 있는 점이 눈에 띄었다. 사실 인원수의 많고 적음은 사안의 진실과는 무관하지만, 언론들은 “참가자 수”에 크게 집착하는 선정적인 경향이 있다. 참가자들의 모습을 그린 점도 판이하게 차이가 났다. 한겨레는 “..비옷과 선글라스 등으로 얼굴을 가리고” 라며 쓰면서 마치 무슨 “범인”처럼 가장 많이 가린 사람들 중 두 사람을 사진으로 올려놓았지만, 조선은 “..이전까지와는 달리 마스크와 모자를 쓰지 않은 채 취재진에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는 여성들도 적지 않았다” 고 썼다. 이 날 행사를 취재한 한국인권뉴스 팀이 현장을 확인한 바로는 조선의 표현이 좀 더 객관적이었다. 한겨레와 조선은 정치적으로 대척점에 서있는 신문이다. 개혁과 보수의 상징처럼 되어있는 두 신문의 논조가 때때로 5 ~ 6공화국 당시와 반대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아이러니다. 조선은 30일자 사설에서 “한국의 대표적 左派좌파신문인 한겨레신문사는 지금 經營難경영난을 벗어나기 위해 200억원 목표로 기금을 모으고 있다” 고 썼는데, 성노동자 등 기층 민중들로부터 계속 멀어지고 있는 한겨레가 무슨 左派좌파신문인지 이해불가능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한겨레신문은 성노동자들을 돕지는 못할망정 악의적인 표현은 삼가는 게 그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그것은 객관적인 보도자세다. 그 점에서 이번 “전국성노동자연대 한여연” 출범행사와 관련한 기사에서는 한겨레가 조선에 ‘판정패’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87년 6월 민주화항쟁의 성과물인 한겨레신문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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