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은행 위기의 소방수? 금융시장의 베이비시터?
이에 대한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과 미 정부는 전광석화처럼 움직였다. 은행파산 시 예금 전액을 보장해주겠다고 발표하면서 불안감을 잠재웠다. 도덕적 해이라는 비판보다 은행시스템을 안정화하는 게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규모가 더 큰 또 다른 은행 하나가 쓰러질 상황에 직면하자 이번엔 월가의 대형은행들을 움직여서 그들이 예금을 예치하도록 유도했다. 비자발적으로 동원된 대형은행들의 예금으로 시장에 신뢰를 심어주려 했다. 그 이유는 은행에 대한 무제한적 지원책이 자칫 2008년 금융위기 시 대중적 거센 비판에 직면했던 ‘대마불사’ 퍼주기처럼 보일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사태는 일단락되면서 한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이 와중에 주식 및 채권시장은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면서 매우 큰 변동성이 나타났다. 그 이유는 은행 위기를 잠재우기 위해 중앙은행이 금리인상을 자제하고, 더 나아가 연내 금리를 내릴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분출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금융시장의 기대감이 은행파산으로 인한 위기감을 상쇄했던 것이다. 금융시장의 속설로 얘기되는 전형적인 ‘배드 이즈 굳’(bad is good)이다. 이것은 ‘배드’인 나쁜 상황에서 중앙은행과 정부의 긴급조치로 파국을 피할 수 있다는 희망을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그것보다 매우 세속적이다. 위기를 잠재우고 시스템을 안정화하는 것을 넘어서 시장 과열을 부추기는 결과로 종종 드러나기 때문이다. 마치 중앙은행과 정부가 자산시장의 베이비시터가 된 것처럼 울면서 보채는 시장을 달래기 위한 불쏘시개로 작동하는 셈이다. 실제 비트코인 가격은 3월 중순부터 50% 급등했다.
이런 ‘배드 이즈 굳’을 우린 지난 코로나 사태에서 매우 극적으로 경험한 바 있다. 불과 6개월 만에 주식시장은 3000선을 넘나들며 위기 시보다 두 배 넘게 뛰어올랐다. 전 세계적으로 포스트 코로나 담론을 등에 업은 IT 기업들의 주가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했다. 그리고 전 세계 주요 도시들은 폭등한 집값과 임대료 때문에 엄청난 홍역을 치렀다. 우리도 코로나 시국 2년 사이 폭등했던 부동산 시장 때문에 ‘벼락거지’라는 신조어를 경험하지 않았던가. 이 모든 것이 금융위기를 잠재우기 위한 엄청난 유동성 공급 때문이라는 건 이제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최근 금리인상으로 폭락한 자산시장은 이 짜릿했던 기억을 되살리고 싶어 지금 안달이 난 상태라 할 수 있다. 미 연준 의장의 기자회견 한 마디를 자신에게 유리한 전망으로 되뇌면서 자기실현적 기대감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행여 기대감을 벗어나는 말이 튀어나오면 시장은 다시 폭락하면서 하루 사이에 1년 치 변동성을 넘나드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위기는 진정됐는가?
그런데 과연 위기가 진정된 것인지 곰곰이 되짚어보자. 이 무렵 유럽에서도 은행파산 소식이 날아들었다. ‘크레딧 스위스’ 은행이 파산한 것이다. 이 은행은 세계 17위 규모로서 167년이나 된 역사적인 은행이었다. 이 은행은 수년 전부터 큰 투자손실이 누적되면서 그 위험성이 이미 지난해부터 제기되고 있었다. 그러다 이번 미국발 은행파산 사태의 여파로 잠재적 위기가 현실화한 것이다. 결국 스위스 정부의 개입으로 이 은행은 경쟁사인 UBS 은행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크레딧 스위스 은행이 보유한 ‘AT1채권’이 전액 부도나면서 채권시장에 커다란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AT1채권’이라는 것은 은행의 자본이면서 채권인 성격을 동시에 띠고 있다. 보통 ‘우발전환사채’라고 보면 된다. 일반 채권과의 차이를 쉽게 설명하자면, ‘AT1채권’은 파산 시 재무적 위험성을 감내하는 조건으로 높은 금리로 발행된 채권이다. 은행이 금융규제에 맞게 자기 자본을 확충해야 할 필요성과 좀 더 높은 금리수익을 얻고자 하는 채권시장 참여자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만들어진 금융상품이다. ‘AT1채권’은 평소엔 높은 이자를 받는 대신 금융기관이 파산하면 일반 채권보다 청구 순위에서 밀린다. 심지어 은행자본으로 전환돼 소멸된다. 그 이유는 은행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재무적 책임의 순서를 나눠야 하는데, 일반회사처럼 은행주주들이 책임이 가장 크고, 그다음 ‘AT1채권’ 보유자, 일반채권자, 예금자 이런 순서로 구분된다. 예금자의 경우 법으로 예금의 일정 한도를 보호해준다.
그런데 ‘크레딧 스위스’의 경우 UBS 은행으로 합병될 때, 책임성이 가장 높은 주주들은 60% 정도 감액된 수준의 신규주식을 배당받았다. 하지만 ‘AT1채권’ 보유자들은 전액 상각 처리돼 한 푼도 건지지 못했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 채권시장에 이 금융상품이 판매될 때, 이렇게 설계된 ‘AT1채권’이 실제 은행파산 과정에서 소멸되리라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세계 17위 규모의 은행이 이렇게 허망하게 몰락할 줄도 몰랐을 테다. 더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주주들은 60% 감액된 신규주식이라도 건졌지만 ‘AT1채권’ 보유자들은 깡통만 찬 신세가 됐다는 점이다. 이렇게 순식간에 사라진 채권이 우리나라 돈으로 약 22조 원 규모에 달한다.
여기서 끝일까?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발행된 ‘AT1채권’ 발행 규모는 2,750억 달러로서 우리 돈으로 약 360조 원에 이른다. 이 돈이 당장 문제가 될 리는 없겠지만 안정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기대했던 채권보유자들이 자신들의 채권이 위험하다는 것을 간접경험한 이상, 채권시장의 동요는 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이다. 평가손실을 당하는 수많은 금융기관의 ‘AT1채권’ 탈출러시에 대한 우려는 쉽게 가라앉기 어려워 보인다. 다시 은행 위기의 소방수 역할을 하는 중앙은행에 기댈 수밖에 없다. 이런 점들 때문에 연준으로 하여금 금리인상 중단과 더 나아가 금리인하를 촉구하는 기대감이 모이는 것이다. “멋지다, 연준아~”
5대 은행의 독과점체계, 시장경쟁이 대안이 아니다
한편 한국의 대형은행들은 금리인상 시기에 대대적인 예대마진을 취하며 18조 원에 이르는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성과급 잔치라는 말이 언론에 오르내리자 급기야 대통령까지 나서서 은행 비판에 가세했다. 국가로부터 사업 면허를 받은 은행들이 독과점체계를 등에 업고 따박따박 돈을 벌고 있다는 대중적 비판이 매우 거셌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은행업의 진입 장벽을 허물어 시장경쟁 시스템을 강화하자고 한다. 다양한 중소은행들이 만들어지면 은행 간 경쟁을 통해 5대 은행의 독과점 폐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다.
그런데 지금 미국발 은행파산 사태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이런 중소은행들이다. 이번에 파산한 SVB 은행은 지역 사회에 뿌리를 두고 지역 경제에 이바지하는 모델로서 은행이 가야 할 미래상이라고 칭송됐던 은행이다. 지금 문제가 되는 중소은행들 모두 지역 사회를 거점으로 하고 있는 은행들이다. 중소은행들은 대형은행과 경쟁하기 위해 높은 예금 금리를 줘야 하고, 또 이를 감당하려면 예대마진이 아닌 다른 금융투자로 수익을 올려야 한다. 자기자본 비율을 맞추기 위해 자금을 조달하려면 ‘AT1채권’ 같은 금융상품을 팔아서 곳간을 채워 넣어야 한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채권시장의 장기적 동요가 지속된다면 과연 중소은행들이 높아진 조달비용을 감내할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은 5대 대형은행의 독과점체계와 예대마진에 집중된 수익모델 덕에 은행 위기의 전염성은 없다고 한다. 그럼 5대 은행의 독과점체계를 그냥 놔둬야 한단 말인가?
차라리 은행 국유화 모델로 가는 것이 답일 수 있다. 어차피 국가 면허에 의해 사업권이 보장된 산업이라면 국유대상이 맞다. 한국은행이 중심이 된 금융결제망을 이용하고 있는데, 왜 이들에게 독점이윤을 보장해줘야 할까? 이들에게 이런 특혜를 줘야 할 이유는 없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파산한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에 12조 8천억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탄생한 은행이 시중 5대 은행 중 하나인 우리은행이다. 길고 긴 세월을 지난 2021년 우리은행 민영화가 마무리되면서 정부는 공적자금을 모두 회수했다고 자평했다. 그런데 20년 넘는 기간을 생각하면 과연 온전한 회수일까 의문이 든다. 당시 12조 원의 가치를 지금의 12조 원과 비교할 수 있을까? 차라리 적극적으로 국유화해서 지금 은행산업의 대안으로 언급되고 있는 챌린지뱅크니 하는 은행들을 만들면 더 좋은 일 아닐까? 예대마진에만 의존하지 않으면서, 국민들에게 편리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소상공인들에게 낮은 금리로 대출해주는 일을, 왜 꼭 시장경쟁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국가가 직접 보증하는 안정성까지 갖춘 훌륭한 국유은행의 탄생이 과연 먼 나라 이야기일까?
제목에 달린 “연준아~ 브라보! 멋지다, 연준아!”라는 말은 양가적 표현이다. 한편에선 조롱 섞인 말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선 최종 대부자인 중앙은행의 힘을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둘 다 국가의 역할과 역량에 대해선 똑같은 입장이라는 데는 변함없다. 태평양 건너 연준 의장의 말 한마디가 세계 경제를 쥐고 흔드는 상황인데, 대통령은 머릿속으로 시장경쟁만 할 수 있으면 뭔가 진행될 것이라는 순진한 발상만 하고 있으니 정말 답답한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