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3월 21일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 강승규 수석부위원장 등은 한국노총을 방문해 이용득 위원장과 면담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민주노총은 한국노총에 '노사정대표자회의'를 가동하여 우선 비정규문제를 논의할 것과 한국노총이 노사정대표자회의 소집에 나서 줄 것을 요청했다. 한국노총은 이에 응했고 결국 4월 5일 노사정대표자회의는 재개되었다.
드디어 노사정 대화 속으로…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 김대환 노동부 장관, 김금수 노사정 위원장, 이수영 경총 회장, 박용성 대한상의 의장 등 노사정 대표자 6인이 모여 사회적 대화를 활성 및 정착 기존 안건인 노사정위 개편 방안과 노사관계법 및 재도 선진화 방안 우선 논의 비정규직 관련 법안은 노사정대표자가 주체가 돼 국회와 조율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 합의에 대한 해석은 모두가 달랐다. "비정규직법안 처리 여부와 상관없이 대표자회의는 지속한다"는 정부와 경영계의 입장과는 달리 민주노총은 "비정규 법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사회적 대화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비정규직 관련 법안을 현안과제로 다룰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러한 입장 차이 속에서도 6일 노사정-국회 환경노동위원회(아래 환노위)가 열렸다. 이날 회의에서는 국회 환노위 주관의 대화가 비정규직 보호입법을 위한 실질적인 논의의 장이 되도록 할 것 실무대화진행은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원장이 주관 국회 환노위는 노사정 대화를 최대한 존중 할 것에 합의를 했다. 이날 노사정위원장은 회의에 참가하지도 않았고 실질적으로 결정된 것은 '환노위가 노사정 대화를 최대한 존중한다'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논의결과에 대해 "4월 법안 강행처리를 명시하지 않음으로서 실질적 대화의 조건을 만들었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틀 간의 노사정대표자회의 결정에 따라 4월 8일 운영위회의가 열렸다. 이목희 국회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원장의 주관아래, 정병석 노동부 장관, 권오만 한국노총 사무총장, 이석행 민주노총 사무총장, 김영배 경총 부회장, 김상열 대한상의 부회장이 참석했다. 이목희 위원장은 "21일까지 비정규법에 대해 최종 합의안을 도출하기로 했다"고 밝혔으며 "그러나 동일노동 동일임금, 기간제 사유제한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역시 이에 대해서도 민주노총은 "시한을 못 박은 적 없다고 기간제 사유제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수용불가로 선을 그으면 무슨 대화가 되겠냐"며 이목희 위원장을 비난했다.
결국 정해진 국회일정에 민주노총이 질질 끌려 다니는 꼴이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4.1총파업 직전, '비정규직 법안 정부안 폐기'입장을 철회하며 한 발짝 물러나 위원장의 직권으로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가하더니 합의 사항은 서로의 입맛에 따라 해석하고,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집행부는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는 노동자들에게 총파업을 외치면서 그들을 뒤로 한 채 비정규직 차별을 일부 수정하려는 행보를 취하고 있다.
노사정대표자회의 재개 일지
2004년
6월 4일 1차 노사정대표자회의
7월 5일 2차 노사정대표자회의
7월 27일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 <매일노동뉴스> 인터뷰에서 8월6일 예정된 노사정 대표자회의 유보 발표(지하철노조, 엘지정유노조 직권중재에 반발)
8월 25일 민주노총 중집 노사정대표자회의 재개 결정
8월 31일 민주노총 중앙위 "사회적교섭방침 2005년 1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결정"
2005년
1월 20일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 유회
2월 1일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 폭력사태
3월 15일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 폭력사태
3월 17일 민주노총 중집, 비정규법안 다루기 위한 노사정교섭 결정
3월 21일 양대노총 비정규법안 다루기 위한 노사정대표자회의 재개 합의
3월 29일 노사정대표자 운영위회의, 결론 못내
3월 30일 이경재 국회 환노위 위원장 국회중심의 노사정대표자회의 개최 제안
4월 3일 노사정대표자 운영위 회의, 4월5일 노사정대표자회의 재개 결정
4월 5일 8개월만에 노사정대표자회의 재개
4월 6일 노사정-국회 환노위 회의 개최
4월 8일 비정규법안관련 노사정운영위-국회 환노위 1차 실무회의 개최
4월 13일 2차 실무회의 개최. 합의가 되지 않은 것에 대해 합의가 된 것처럼 결과 발표를 하는 것에 대한 민주노총의 반발로 비공개로 진행
4.1 (4시간 경고) 총(?)파업
위원장의 직권으로 노사정위에 들어간 민주노총은 비정규직법안의 4월 강행처리를 반대하며 4월 1일 4시간 경고총파업을 벌였다. 이날 총파업에는 16만 여명이 참여해 '대의원대회 파행 등 어려운 조직적 어려움 속에서도 민주노총은 여전히 건재하다'고 「노동과 세계」는 밝히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조직적 어려움은 '대의원대회의 파행' 때문이 아니라 실질적인 투쟁을 전개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있다. 대중의 분노를 모아내고 그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들을 뒤로한 채 정부와 대화만 하자고 하는데 민주노총 지도부에 대한 신뢰가 유지 될 수 있겠는가?
민주노총은 이날 총파업 집회에서 "정부와 국회가 4월 처리 방침을 바꾸지 않는다면 사회적 대화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처리를 강행할 경우 사회적 교섭방침을 폐기하고 전면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총파업 돌입에 앞서 가졌던 기자회견에서 이수호 위원장은 "노사정 대화를 통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수정된다면 4월 처리에 반대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가 말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란 어디까지일까? 대중들의 투쟁을 들러리로 세우고 정부에게 한 발짝 양보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그야말로 대중들에 대해 배신을 하는 행동이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4.1 경고총파업을 "대중적 분노를 드러내고, 민주노총의 투쟁력이 굳건함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파업이라는 것은 자본에게 타격을 입히기 위해 하는 것이다. 그러나 4시간 경고총파업은 자본에 타격을 가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형식적 집회로 머물렀다. 당시 집회장소에서 조합원들의 반응은 "오늘 우리가 승리한 것 맞어?"였다. 또한 집행부는 금속중심의 파업이었음을 지적하며 각 산별연맹과 현장지도부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사정위에 들어가 들러리를 서면서 비정규직 법안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취하는데, 대중들이 실질적 파업을 조직하겠는가? 문제는 산별연맹과 현장지도부의 의지가 아니라 비정규직 법안에 대한 명확한 반대 입장으로 파업을 조직하고 있지 않는 민주노총의 지도부이다.
4.1 총파업 결의대회서 민주노총 충북본부 조합원 70여명 중경상
총파업 결의대회가 서울 등 다른 지역에서는 조용히 진행된 것과 달리 충북지역에서는 경찰의 폭력으로 조합원 70여명이 중경상을 당했다. 집회를 마무리하던 중 조합원 3명이 연행되었다는 소식이 들어왔고, 과잉진압이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장기투쟁사업장인 하이닉스 조합원들이 흥분해 분신소동까지 벌어지는 등 상황이 악화됐다. 충북본부는 "여성참가자까지 몽둥이로 두드려 팼을 뿐 아니라 밀폐된 공간에 천여명이 모여 있어 대규모 피해가 예상됐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무리하게 진압을 강행했다"고 비난했다. 충북본부는 사회적합의주의 반대투쟁에 적극적으로 임했던 지역본부였고, 장기투쟁사업장인 하이닉스-매그나칩 조합원들이 집회를 함께 하고 있어 경찰이 과잉 진압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 충북본부는 경찰은 즉각 하이닉스-매그나칩 반도체 구사대 역할을 즉각 중단할 것 민주노총이 자진해산 입장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부하고 해산을 명분으로 한 초강경진압에 이르게 된 진상을 규명할 것 재발방지책과 70명의 부상자에 대한 치료대책을 마련할 것 등을 요구했다.
조합원 대중들에겐 파업, 정부와 재계에겐 대화
4월 6일 10차 중집회의에서 '비정규 권리 보호 입법쟁취 투쟁 세부계획'이 결정되었다. 민주노총은 '4월 강행 처리시 즉각 무기한 총파업투쟁 돌입, 비정규 관련 노사정 교섭틀 확보, 비정규직 정규직화 50억 기금 모금' 등의 투쟁계획을 제출했다. 그러나 투쟁계획은 또다시 '4월 처리 강행시'라는 문구가 달려있다. 작년 11월에도 그리고 올 2월 총파업을 계획했을 때도 그랬다. 11월에는 4명의 비정규노동자가 국회 앞 타워크레인에 올라갔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에 풍선을 날리며 집회를 마무리했고, 2월 총파업은 대의원대회에서 '사회적교섭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일념하나로 대대에서 결의된 총파업을 조직하지 않았다. 국회에서 비정규법안이 통과되려 했던 때에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국회앞에서 아무것도 할수 없었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국회 단상을 점거했다는 소식을 가만히 듣고 결과만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대중들은 그렇게 지도부에 의해 무기력해져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총파업계획 역시도 실질적인 투쟁조직화는 하지 않은 채 노·사·정간 교섭틀을 확보해야 한다며 '비정규직 철폐'가 아닌 '4월 처리 반대'를 말하고 있다. 비정규 총력 투쟁전선을 만들어야 한다는 공문구만 날리면서 말이다.
전선은 단위사업장의 투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전 노동자의 힘으로 모아졌을 때 가능하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하이닉스 매그나칩, 울산 건설플랜트 동지들은 구사대에 경찰의 폭력에 얻어맞고, 연행되고, 해고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투쟁을 전국화하려는 계획은 부재한 채 '전선의 강화', '총파업 조직'을 말한다. 사회적 교섭은 오히려 전선을 무너뜨린다. 민주노총의 조직력 복원을 위해서도, 1500만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해서도 실질적인 파업을 조직해야 한다.
사회적합의주의 반대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사상 유례 없이 두 달 사이에 세 차례 대의원 대회라는 초강력 무리수를 통해 스스로 지도력을 훼손하고 조직적 위기를 자초했던 민주노총 지도부는 공식적인 절차를 우회한 채, 일방적으로 노사정 사회적 대화의 틀로 좌충우돌 뛰어들었다. 마치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안이 사회적 대화뿐이고, 파업은 단지 보조적 수단인 것처럼.
그러나 그 알량한 사회적 대화 속에서 민주노총은 찬밥이다. 이목희 환노위 위원장은 '정부안 수정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자본측은 팔짱을 끼고 구경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사회적 합의란 민주노총의 양보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고한 민주노총 지도부는 협상의 논리로 타협이 불가능한 사안을 타협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현 단계에서 사회적 합의주의는 민주노총의 전략적 선택이 아니라, 노무현 정권의 정책적 기조이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노동운동의 취약한 역량을 보완하기 위한 협상전술이라고 주장하지만, 정권과 자본에게 사회적 합의주의는 민주노조운동을 안락시키는 포섭전략의 첫 단추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수호 위원장 개인의 협상력에 민주노조운동의 운명을 맡기는 것은 민주노조운동의 자살과 다름없다.
비정규직 개악공세는 민주노총 지도부의 희망처럼 사회적 교섭을 통해 저지시킬 수 없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이를 뛰어넘는 계급적 단결과 전국적 투쟁을 조직함으로써 민주적·자주적·전투적 노동운동을 복원할 때 국가와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개혁 및 노동유연화 공세를 저지할 수 있다. 사회적 교섭에 반대하는 투쟁은 여전히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