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다니던 공장이 '드디어' 망했다. 저임금과 엄청난 노동착취로 근근히 유지해오던 공장이었지만, 그렇게 망해버릴 줄이야! 사장놈은 우리들에게는 딱 한달치 기본급과 퇴직금만 던져주고, 자신은 빼돌린 돈으로 요즘 한창 부동산에 열을 올린다는 소문이다. 사장놈이야 순수익이 줄고 있는데 부동산이 쏠쏠하다 싶고, 애들 낌새가 수상하니 귀찮은 꼴도 보기 싫었을 것이다. 그런 너무나 자본가적인 한 '개인'의 판단에 비해 우리들 '모두'의 삶은 너무 고달프다. 이주노동자들과 특례병, 그리고 몇몇 기술자들만 인수한 공장을 따라 멀리 광주로 떠나고, 아주머니들은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는 중이다. 나머지 몇 명은 우리들이 하청을 주던 공장으로 흩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어려운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현실과 변변한 투쟁하나 조직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한없이 연민했다. 그래도 나는 필사적으로 구직에 매달렸고, 눈에 딱 들어오는 곳이 있었다. '3주 단기알바, 하루 일당 5만원 선, **공장내 근무'. 다음날 나는 야간을 마치고 면접을 보고 합격 승인을 받았다.
그런데 첫날부터 나를 반기는 것은 그 큰 공장 정문의 근엄한 수위, 아니 경비 '아저씨'들이었다. 파견업체 사장을 정문 면회실에서 만나서, 소위 말하는 '정문-통과의례'절차를 밟는 과정은 그야말로 짜증의 연속이다. 방문증을 받으면서 수위아저씨들에게 '깍듯이' 인사를 올리고 나서, 나의 등을 툭 치며 '왜 인사를 하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파견업체 사장! 언젠가 울산 모 중공업 앞에서 본 깍두기 머리의 새파란 경비들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비정규직-수위 '아저씨'가 아니라 이 공장을 경비하는 '파수꾼'이었다. 일하는 곳에서 가까운 *문이 아니라 꼭 정문까지 가서, 생글생글 웃으며 그 잘난 방문증을 주고받는 과정은 하루의 시작과 끝을 완전히 구기는 일이다.
출근을 한지 첫째 주, 토요일 특근을 마치고는 이런 황당한 일도 당했다. 그 날도 조장 할아버지와 동료들은 같이 퇴근하면서 *문으로 가서 통근버스를 타는데, 나는 먼길을 돌아 정문까지 가서 방문증을 반납하는 중이었다. 근데 어떤 수위가 내 가방을 만지면서 "왜 이렇게 불룩해? 뭐가 들었어요?"라는 것이었다. 나는 "만져보면 아시잖아요, 작업복이랑 책이랑 휴대폰 충전기요"라며 근근히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으며 대답했다. 급기야 '열어보라'라는 말을 던지려는 듯한 그 못된(?) 수위를 제지하며, 다른 수위가 가방을 한번 쓱 들어보더니 "무게를 보니 알겠네, 그냥 가요"라고 했다. "니가 책임 질거냐"라는 말을 하는 못된 수위에게 나는 화가 나서 가방을 열어 보이고는 휙 나와버렸다. 속으로 '경찰한테도 민쯩 안까는데, X팔. 지들도 같은 비정규직인데…' 하면서도, '배알도 없이 괜히 가방을 까보였나'하는 웃기지도 않은 고민을 하면서 퇴근을 했다.
그날따라 가지고 다니던 작은 가방이 아니라 부피가 큰 배낭을 가져간 이유는 단순하다. 정규직들은 작업복을 공장내에서 세탁해 주지만 나 같은 비정규직은 알아서 빨아 입어야 한다. 더구나 그 날은 어렵게 작업복을 한 벌을 더 얻어서 두 벌을 가방에 넣고 갈 수밖에 없었다. 정말 그런 단순한 이유인데, 그 못된 수위는 '혹시라도 값나가는 물건을 반출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으리라. 작업복도 정규직이 버린 걸 주워 입어야 하고, 또 그걸 빨아서 입어야 하는 일용직! 2차 하청만 되도 작업복은 배급되는데…
마찌꼬바에서 빡빡구르며, 웬만한 수모나 멸시 정도는 버틸 수 있는 내공(?)은 갖추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도 70∼80년 노동운동사에서나 읽어봤던 '몸수색, 소지품 수색'이 자행된다는 사실에 분노를 금치 못하겠다. 더구나 이런 일은 나 같은 '방문증'이나 종이로 된 '임시출입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한정된다. 가끔 빳빳한 '플라스틱 출입증'을 가진 1∼2차 하청도 해당되지만, '사원증'을 가지고 있는 정규직에게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런 '출입증의 정치학'이 정확히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며, 그것이 더욱 슬프고 분노스럽다.
원래 예정되어 있던 사람이 아니라, 나를 계속 써야겠다고 생각한 파견업체 사장은 2주가 넘어서야 '임시출입증'이라는 것을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정문으로 다니지 않고 *문으로만 다니고 있어 그 못된 수위와 부딪힐 일이 없긴 하다. 그리고 비정규직의 현실에 익숙해져서 '웬만한 차별쯤이야' 넘길(?) 정도다. 오히려 그런 즉자적 분노 역시 자본의 분할정책에 조응하며, 그것에만 기반 할 경우 조합주의적 정치를 넘어설 수 없다는 '쌩뚱'맞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이놈의 비정규직의 한이 차곡차곡 나의 감성 깊은 곳에 쌓이는 걸 어쩔 것이며, 이런 내 모습이 바로 비정규직 투쟁의 기본 동력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