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전교조는 교원평가 저지투쟁 중이다. 전교조 소속 조합원뿐만 아니라 비조합원들도 '교원평가 막아야 해'라는 공감대가 교직사회에서 폭넓게 형성되고 있다. 단위학교마다 교원평가제에 대해 설명회를 하고, 반대 서명을 하고, 시범학교 선정 거부 선언을 조직하고 투쟁기금을 마련하고 현수막을 학교 담벼락에 다느라 분주하다. 그런데, 많은 교사들의 참여하고 있어도 자신감이 부족하고 마음 한켠이 찝찝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싸우긴 싸워야 해"라는 마음이 95%지만, 그놈의 '철밥통', '무사안일', '경쟁의 무풍지대'라는 소리를 들을까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아닌게 아니라 국민 대다수는 그 실체가 무엇인지 모른 채(교육부는 당연히 진실을 알리지 않는다) 교원평가를 찬성한다고 하는 마당에 "여론의 포화를 맞느니 꿀릴 것도 없는데 나는 당당히 평가받겠다" 싶은 순진한 패배주의가 비집고 들어올 만도 하다. 일방적 여론지형뿐 아니라 여러 교사들은 '저 분은 쫌 나가주었으면'하는 맘이 들게 만드는 동료(폭력, 촌지, 성추행, 인격모독을 일삼는 따위)를 한 두 번은 경험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학부모이기도 한 우리 노동자, 민중들도 '교사들도 평가받아야 해'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을까라는 점이다. 물론, 그 실체를 누구도 알려준 바 없으므로 정부에서 "교원평가를 도입하면 수업의 질이 높아질 수 있어요", "부적격 교사를 몰아낼 수 있어요"하는 선전에 막연한 기대가 생길 법도 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교원평가는 교육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또한 민중의 교육권을 위태롭게 하는 신자유주의 교육구조조정의 주요수단'이 될 거라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 교육노동자들은 여론이 불리하다는 걸 알면서도 포화를 맞을 각오까지 하면서 싸우기로 결의했다. 여론 역시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싸움의 이유를 충분히 알려내야 하는 투쟁의 과정의 하나로 생각한다. 5월 3일 교육부의 교원평가 공청회 무산 소식이 보도된 이후 교원평가제가 급속히 사회쟁점화되면서 불과 한 달만에 70%가 넘는 지지율이 60%대로 떨어졌다는 것이열심히 싸운만큼 돌아온다는 진리를 일깨워주었다.
교원평가로 공교육을 질을 높인다?
교육부는 교원평가제 도입의 필요성으로 '공교육 부실'을 꼽고 있다. 다시 말해서, 공교육 부실의 책임을 교사들에게 묻겠다는 것인데, 과연 교원평가제를 도입한다고 해서 교육의 질이 높아질까? 이미 교원평가제를 실시한 영국, 미국, 일본은 공교육의 질이 엉망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교직은 기피직종의 하나가 되어버렸고(영국), 퇴출의 위협으로 눈치보기에 급급한 나머지 자신감을 날로 잃어가서 지도력이 전반적으로 떨어지고 있고(일본), 미국에서는 '이건 아니다'는 반성이 교육학계에서 조차(교사는 학생의 학업성취도를 구성하는 대단히 많은 요소의 하나일 뿐이며 가정배경이 결정적인 변수가 되는 학생 학업성취도의 책임을 교사에게 물으면 부도덕한 행위가 빈발하는 등) 나오고 있는 지경이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교원평가를 '사교육비 급증', '부실 교육'을 해결할 듯 떠들어대고 있다.
하지만, 교원평가는 교육의 질을 높이지 못하는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학교에서 갖가지 반교육적이고 부도덕한 행위를 만들어낸다.
교사에게 경쟁을 강요하면 할수록 교사들은 자신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아이들을 '수단화'하게 된다. 영미에서는 학생의 학업성취도와 교원평가를 연계짓는데, 평가의 객관성을 따지다 보면 영미의 방식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는 전인적 교육을 지향해야할 공교육을 '학업성취 향상'으로 편협하게 몰아서, '지필고사 성적경쟁 바람'만 일으키게 된다. 영미에서는 그 부담으로 하여 성적조작 비리가 흔한 일이 되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새겨야 한다. 아이들의 등급이 곧 자신의 등급이므로 '높은 등급'의 아이들을 노골적으로 선호하게 되므로 교원평가는 '부적격 교원을 가려내기'는커녕 성적위주로 아이들을 줄 세워 바라보고 차별하는 부도덕하고 비교육적인 "부적격 교사"의 길을 모든 교사들에게 강요한다. 80년대의 기억. 교장샘의 권력이 학교에선 전두환 수준이었을 때, 학급평균을 가지고 교사들을 닦달하던 시절. 교사들은 "반평균 깎아먹는 녀석. 전학 좀 안 가냐"라는 얘기를 농담으로가 아니라 진담으로 우리에게 했던 기억이 난다. 만약, 교원평가제가 도입되어서 학생들의 성적을 가지고 교사들의 점수를 매긴다면? 그 다음은 상상에 맡긴다.
학교교육은 저마다 따로 하는 게 아니라 '협력'하여 해야 한다. 서로 비판하고 서로 배우는 관계가 형성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교원 간 경쟁이 반드시 뒤따르는 교원평가는 교원간의 협력구조를 아예 깨뜨린다. 학생과 학부모도 교사 개개인을 놓고 '평'하게 해주는 다면평가제 속에서 학교 구성원간의 관계는 교육적 관계는 사라지고 온통 서로 감시하는 관계가 되어버린다. 교사는 학생에게 "너, 이렇게 하면 수행평가 마이너스야" 학생은 교사에게 "선생님, 그래서 점수 잘 받으시겠어요?"1)… 영국에서는 이렇게 삭막해진 교원 풍토를 견디지 못하여 교직 이직률이 높고, 교직이 '꺼리는 직업'의 하나가 되어버렸다. 그 결과 공교육의 질은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고 한다. 학부모단체들은 지금 교원평가를 열렬히 환영하고 있고 교육부의 방안이 부족하다고 성토 중인데, 학부모들께서 기대하시는 대로 교원평가는 학부모의 학교참여를 넓히는 게 아니라 '소비자로서 평가만 하세요'라는 뜻이나 다름없다. 기존의 입김 센 학부모의 입김만 더욱 세어질 뿐 평범한 맞벌이 학부모들은 여전히 학교 안의 일에 대해 별다른 참여를 할 수도 없다.
그리고, 수업은 교사가 아이들한테 감상 당하고 평가받기 위해서 펼치는 '쇼'가 아니다. 상호작용 속에서 서로가 만들어가야 옳다. 그런데 학생들을 평가자의 위치로 놓게 되면, 학생들은 '관망'하면서 '저 선생은 어디가 문제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 '내가 열심히 이 수업의 주인공으로서 참여한다'는 생각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요컨대, 교원평가는 학교를 '상호협력의 공동체'가 아닌 '상호감시의 원형감옥'으로 주형하는 비교육적, 비도덕을 강요하는 장치이다. 사제(師弟)가 서로 '평가'를 무기로 휘두르고 교사가 학생·학부모한테 '감시' 당한다고 느낄 때, 소비자로부터 평가받는 서비스 공급자일지언정 진정한 교사로서 소신을 펴기 힘들어진다.
교원평가, 강화될 교육 구조조정의 신호탄
이렇게 교육의 질을 높이기는커녕 교육문제를 심화시킨다는 얘기만 들리는데도 극구 도입을 고집하는 이유는 속셈이 딴데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교원평가는 경쟁시스템과 구조조정을 들여오려는 작전이기 때문에, 다른 얘기를 하면서 열심히 교원평가를 도입하고자 하는 것이다.
정부는 "교원평가를 구조조정과 연계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지만 이는 참으로 어이없는 거짓말이다. 이미 구조조정과 연계해온 국가들에서 모델링했으면서 그렇게 부인하는 것은 낯 뜨거운 일 아닌가.
"'재교육'을 더 받으라는 것이지, 내쫓자는 말은 아니다"라는 이야기는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 '재교육' 명령을 받는 사람은 이미 교단에서 무능력자로 낙인찍혀서 사회적 심리적으로 큰 타격을 받고, 사실상 자진사퇴 압박을 느낀다. 이는 이미 대기업 구조조정과 일본의 교원평가 시행 사례에서 여실히 증명된 바 아닌가.
교육부 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인 김진표가 말했다. "이것이 구조조정이라고 교사들이 '잘못' 알고 있다. 오해를 풀어라." 그러나 90년대말 세계에서 제일 강도 높게 '구조조정'을 밀어붙인 한국 관료들의 말을 신뢰할 수 있는가? 이미 교육계도 '정년 단축'의 구조조정을 통과했다. 그들은 연로한 교원들을 죄다 '무사안일 부패 교원'으로 몰아붙였다.
'2년 먼저' 퇴직한 사람만 구조조정을 당한 게 아니다. 여론의 마녀사냥에 상심하여 '명예퇴직'한 사람들도 구조조정으로 내쫓긴 셈이다. 예상외로 퇴직이 늘었기 때문에 지금도 초등교원은 부족하다.
'자격증 갱신제'는 운만 떼고 있지만, 교원평가가 들어오면 곧바로 현실화된다. 이는 자연스럽게 '퇴출'을 유도하는 장치다. '능력개발 필요교원'2)은 재교육을 명령하는데, 이렇게 딱지를 붙이는 것은 "스스로 떠나라"며 (수치심을 유발하여) 반쯤 등을 떠다미는 짓이다. '직장 복귀'는 교육청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 마치 책상을 치워버림으로써 스스로 '퇴사'하게 만드는 회사들처럼. 실제로 일본의 재교육자들 중 상당수는 복귀하지 못했다.
"너희만 철밥통이냐?"고 구조조정의 불가피성을 윽박지르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도 당했는데...'하는 억울함에서 비롯된 '눈먼 앙갚음의 논리'다. 사람을 함부로 내쫓는 사회가 과연 바람직한 사회인가? 극심한 구조조정의 결과로, 지금 숱한 실업자와 팽배한 비정규직으로 하여 사회양극화가 깊어졌고, 이는 내수불황의 경제위기를 몰아오지 않았는가.
교원평가는 "봉급예산 감축을 위한 '물갈이' 수단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아주 짙다. 이미 중앙정부 교부금을 줄이는 등 '교육재정 감축'의 예비조치들이 선을 보였다. '교원정원을 동결하겠다'고 이미 정부는 선언했고, '경제침체가 오래 갈 것'이 분명한 마당에 '재정 축소'의 유혹은 더 커진다. "적체된 예비교사들을 진출시키는 것은 개혁"이라는 옛 논리가 다시 등장하면 호응하는 사람들도 생겨난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할 경우, '호봉 높은 교사들의 제2차 퇴출'이 시작될 것이다.
'교원평가'를 '성과급 능력급의 자료'로 쓰겠노라고 정부는 여러 차례 밝혔다. 정치권력의 권위 유지 본능은 대단한 것이어서 '없던 일'로 되돌리기가 그리 쉽지 않다. 현 보수정부가 한 발짝이라도 '좌향 좌'하기까지는 그 욕심을 선뜻 버리지 않는다.
교육만큼 서로 믿고 서로 도우며 해낼 일도 없는데, '업적주의 시스템'이 들어온다면 학교사회에는 더 짙은 불신과 반목의 분위기가 깔릴 것이다. 교원들이 행복하지 않은데, 어찌 교실에 웃음꽃이 피랴.
'평준화 해체' 공세와 연관지어서 생각해보자. 개혁적인 국민들이 노정권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리하여 신자유주의 교육개편에 저항하지 않아 평준화가 전면 해체된다면?
새로 자리잡을 일류학교 교원과 똥통학교 교원 간에 '서열 매기기'가 일어나고, '봉급 액수가 달라질 것'이다. 이미 영국이 그런 형편으로 갔다. 일부 신자유주의 사대주의자들이 꿈꾸는 것처럼 교원을 학교마다 따로 뽑는다면 우리는 '똥통학교'의 교원을 필리핀에서 수입하는 사태가 생길지도 모른다. 영국 정부가 아프리카를 뒤져서 교원을 뽑는 것처럼.
'업적주의/능력급' 시스템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노동자들은 이 피 말리는 경쟁시스템을 거부해 왔다. 지금의 '성과급' 도입도 공공부문 모든 곳에 시도되었고, '업무평가'도 공무원노조가 '현안'으로 떠안고 있다.
그럼 교원평가는 주로 누구를 내쫓게 될 것인가?
교원평가의 타겟은 '자기 맘대로 안 되는 문제교사들'이다. 부적격교원은 학부모의 여론을 등에 업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부적격교원이 교원평가로 가려질 성질의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면 정부가 내심 꼽고 있는 1차 타겟은 바로 전교조 교사로 대별되는 진보적 교사들이다. (물론, 개개인의 훌륭함보다는 전교조라는 집단 속에서 그렇게 살려고 힘을 얻고 그렇게 살아온 교사들이다) 학부모의 왜곡된 욕구를 활용하여 교원평가는 당장 인성교육, 전인교육을 하려 애쓰는 교사들의 사기를 북돋고 지원하기는커녕 "학력경쟁"에서 유능한 고도의 '기술자'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몸에 베인 교사들로 모든 교사들을 옭아매려는 장치임에 분명하거늘, 현행 입시구조에서 학부모들은 0교시, 강제보충, 특별반 편성을 거부하는 교사들을 원하지 않는다. 비교육적 행태들을 거부하는 양심적 교사들은 곧바로 '부적격'의 바운더리에 놓이게 된다.
현재 전일본교직원노조(젠쿄)의 보고에 따르면, 부적격교원으로 지목된 교사 중 상당수가 학생조회 때, 기미가요를 제대로 부르지 않은 교사, 히노마루를 가르치지 않는 교사 등 '비판적인 노조활동가들'이라고 한다.
일부 교사들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만드는 지금의 승진경쟁 구조 속에서도 일부 교사들은 '전교조는 불리하다'는 감을 갖고 행동을 조심하고 전교조를 멀리한다. 하물며 모든 교사들에 대한 통제가 가능한 교원평가 체제 속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에 불리한 전교조를 굳이 하려 들까? 아직도 전교조라면 이를 가는 교장, 교감 샘들이 많은 마당에 열심히 닦달해서 성과 내기를 거부하는 양심적 교사들을 누가 반길까? 아직 실시가 되지 않고 있는 지금은 조직발전의 기회이지만 일단 도입이 결정되면 그때는 위축의 흐름으로 바뀐다.
결론적으로, 교원평가의 대안은 첫째, 그 반교육적인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요, 둘째, 교사가 공공성에 입각하여 평등한 교육을 펼칠 민주성과 공공성에 입각한 노동조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교원평가로 교육문제가 해결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면, 모든 아이들을 위해 평등한 교육을 행하는 '공공성의 담지자'로서 행동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일에 교사들이 앞장서고 노동자들이 주체로 더불어 나서는 그림을 그리고 실천에 돌입할 때다.
*이 글을 보신 학부모님들, 아이의 담임 선생님 편지 한 통 부탁드립니다. "선생님들의 투쟁을 나는 지지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들도 지치지 않고 이 싸움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