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9일 올림픽체조경기장 앞에는 한터여성종사자연맹(아래 한여연) 소속 성매매집결지 여성들과 업주들 2천여 명이 모여 "우리도 성노동자"임을 선포했다. 작년 9월,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생존권을 보장하라'며 국회 앞 농성투쟁을 진행한 적은 있으나 이들이 '성노동자'임을 선포한 것은 처음이다. 이를 계기로 여성계와 진보진영등에서는 성매매여성에게 노동자성을 부여할 수 있는가에 대해 논쟁이 되고 있다. 성매매가 우리 사회에서 분명히 일어나고 있지만 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왠지 저급한 것처럼 치부되는 현실에서 그들은 당당히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녀들이 이곳에 오기까지
한여연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83%의 성노동자가 가족부양을 위해 성매매업에 종사하고 있다. 평택지부대표인 이희영씨 역시, 장애인인 아버지와 동생의 학비등을 벌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일하시던 아버지는 신한일 어업협정으로 일을 그만 두셨어요. 이후 어시장에서 잡역부로 일하시다가 사고로 인해 장애인이 되셨죠.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저는 1300만원이라는 아버지의 수술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생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했죠." 그러나 못 배우고, 여성인 몸으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커피숍 아르바이트와 자갈치시장에서 음식배달을 했어요. 그러나 한 달에 100만원도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단란주점에서 일을 했어요. 어느 날 친구가 청량리 588에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처음에는 '왜 그런데서 일하냐며' 그 친구를 데려 오려고 서울로 올라갔죠. 그런데 막상가서 보니 단란주점보다 훨씬 낫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그때부터 집창촌에서 일하게 됐어요." 단란주점보다 집창촌의 조건이 더 나은게 뭐냐고 물으니, "단란주점은 2차를 나가면 손님과 나 둘밖에 없어요. 그래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죠. 그러나 집창촌은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안전이 보장됐어요. 경제적인 면도 더 나았구요."
성매매 집결지에 대한 오해
영화나 언론에서 그려지는 소위 '집창촌'의 모습은 이렇다. 한 여성이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렸다가 산더미같이 불어나는 이자에 신체포기각서를 쓰고 어쩔 수 없이 집창촌에 들어간다. 그곳에서는 도망 못 가게 감금을 해놓고, 말을 듣지 않으면 어깨넓은 깍두기 머리의 아저씨가 폭행을 일삼는다. 아무리 일을 해도 빚은 쌓여만 가고, 그렇게 자신을 포기하며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여성의 모습을 그린다.
그러나 직접가본 평택지역의 성매매 집결지는 이런 모습과 전혀 달랐다. 쇠창살은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으며 성매매 여성들도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한여연의 고문인 이선희씨는 "평택은 3, 4년 전에 '한터'라는 자치조직을 만들어서 자체규율을 시작했어요. 처음 시작한 것이 미성년자를 받지 않은 것이고, 다음으로 건강진단을 받았고, 업주들과 협의해서 횡포를 부리는 업주들에 대해 자체 단속을 했어요. 영화나 언론에서 보여지는 집창촌의 모습은 70, 80년대의 이야기예요. 물론 악덕 업주들도 몇몇 있기는 하죠. 그러나 감금이나 인신매매 등은 있을 수가 없어요"라고 말한다. 물론 얼마 전 화재사건이 일어난 군산지역처럼 열악한 조건의 성매매 집결지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많은 집결지들이 자체규율을 실시해 업주와 손님들의 횡포와 폭력으로부터 성매매 여성들을 보호하고 있다. 사람들의 편견이 얼마나 컸으면 카메라를 들고 영업중인 가게 앞을 지나가는 나에게 손님을 기다리고 있던 한 성노동자가 말한다. "(비아냥거림과 웃음이 섞인 말투로)업주들이 우리를 막 폭행한데요. 다리에 멍도 들었는데 화장해서 다 가렸데요. 언론에서 그러더라구요. 푸히히∼"
그 많던 성매매 여성들은 어디로 갔나?
작년 성매매방지특별법 이후 성매매 집결지의 업소수의 36.2%가 줄었다고 한다. 성매매 여성 역시 2004년 9월 말 2800여명의 여성들이 성매매 집결지를 떠났다. 그러나 이중 300여명만이 자활단체로 들어가거나 전업을 했다. 그렇다면 나머지 2300여명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이들은 퇴폐이발소, 안마시술소 등으로 이동하거나 일본 등의 해외로 장소만 이동했을 뿐이다. 성매매방지특별법의 기본취지가 성매매 여성의 '보호'에 있다지만 결국 그녀들은 더 열악한 조건으로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자성'의 부여로부터
사회의 편향된 시각에 고통받던 그녀들은 정부의 실패한 정책으로 또다시 궁지에 몰렸다. 그러한 그녀들이 당당하게 "노동자성을 인정하라! 성매매방지법 폐지하라!"로 외치고 있다. 노동자성을 요구하는 이유를 묻자 이선희씨는 "우리들은 고객한테 언어폭력을 많이 당해요. 창녀라는 말부터 시작해서, 화대를 줬으니 자기 마음대로 하려하기도 해요. 그러나 노동자라하면 고객, 업주, 성노동자가 동등한 입장에 설 수 있어요.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날 수 있죠. 악덕업주에 대해서도 동등한 입장에 설 수 있어요. 노동자라는 단어하나를 쟁취함으로써 오는 권리들이 많기 때문이죠"라고 답한다. 그러나 '노동자성' 부여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이렇다. 성매매 여성을 노동자로 인정하는 순간, 성매매를 용인하고 고착화시킨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선희씨는 "성매매방지특별법으로 인해서 오히려 성매매가 음성화가 되고 있어요. 제가 여기 오기 전에는 터키탕에서 일했었는데, 그곳은 착취가 엄청나요. 하루에도 손님을 수도 없이 상대해야 하고, 물건을 있던 자리에 정리해놓지 않으면 벌금을 물어서 빚을 쌓아가요. 그러나 정부는 법의 효과를 보기 위해 집창촌만 단속해요. 오히려 음성화되고 있는 퇴폐업소의 인권유린이 더 심각한데 말이지요"라며 반박한다. 이희영씨 또한 정부의 자활대책에 대해 비판한다. "정부에서는 1인당 37만원의 생계비를 지급해 준대요. 그리고 1년 동안 지원시설에 입소할 수 있게 해준다는 계획이죠. 그러나 외국 같은 경우에 한 사람에 대해서 7년 동안 관리를 하는데도 탈성매매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정부의 자활대책은 실효성이 없어요. 실질적인 대안이라는 것은 너무 방대해요. 그러니까 차라리 노동자로 인정하고 비범죄화 하라는 것이고, 악덕을 뿌리뽑고, 임금착취를 협의해가자는 거죠."
아직도 '성노동자' 논쟁은 뜨거운 감자다. 노동의 '가치창출'이라는 철학적 접근부터 시작해서 인권적 접근까지 논리와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회에서 고개 숙이고 있었던 그녀들이 당당히 고개를 들고 세상으로 나왔다는 것이고, '성노동자'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들도 어쩔 수 없이 성매매에 종사하고 있지만 생계의 부담만 없다면 뒤도 안돌아 보고 이곳을 떠나고 싶다는 이선희씨의 말처럼 그녀들을 이곳으로 내몬 것은 사회이고 그녀들은 이러한 사회 속에서 이 직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힘들지만 당당하게 외치고 있는 그들의 목소리를 사회의 편견으로 더 이상 내몰지 말자. 그들의 외침은 그 어떤 노동자들의 외침보다도 더 절박하기 때문이다.
* '집창촌'은 '몸을 파는 일을 업으로 하는 창녀들이 모여 사는 지역'이라는 뜻으로 성매매 여성들을 비하하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성매매 집결지'라는 단어를 사용했으나 인터뷰과정에서 사용된 것은 생생함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집창촌'으로 썼으니 이해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