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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엔 붕어가 없고,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엔 여성이 없다

106호

며칠 전, 고향에 갔다. 오랜만에 만난 부모님과 친척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요즘 여자들이 이기적이어서, 우리나라도 이제 저출산, 고령사회에 진입했다"는 둥, "출산이라는 성스러운 책임을 방기하며, 무슨 정치냐"는 공세를 폈다. '데모하는 딸년을 거두어줄 건실한 청년'을 바라던 가족들은 '출산이 애국인 시대, 여성의 제 1 책무는 출산'이라는 사상적 무기를 얻은 것이다. 저출산·고령화라는 국가적 재앙이 내 삶에 침투하게 됐다.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여성은 없다!

지난해,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전국여성대회에서 "출산율 감소는 퇴폐적 상황이고, 결혼이 선택이 될 수 없고, 출산은 여성의 창조적 의무"임을 강조했다. 출산율 저하와 상관없이 과학기술과 의학의 발달로 고령사회에 이미 진입되었음에도, 마치 이기적인 요즘 여자들 때문에 국가적 위기가 초래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위기'론은 가족과 국가의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통령이 손수 해결하겠다며 나섰다.
지난 6월 7일 발표된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은 출산과 양육에 유리한 환경조성 고령사회 삶의 질 향상 기반 구축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3대 중점 추진분야, 70개 이행과제, 230여개 세부사업으로 구성된다. 출산의 최대 걸림돌인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여성노동자의 권리와 관련된 시책과 돌봄노동을 사회화한다는 긍정성에도, 여성의 삶에 미칠 영향에 각계에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출산과 양육에 유리한 환경 조성'이라는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의 세부 과제는 가족 내 성별분업을 합리화한다. 여성 노동과 출산·양육·가사노동으로 인한 이중 억압 해소는 성평등의 주요한 전략이다. 하지만 전략 없는 구호는 허상에 불과하다.
가족 내 무급노동자로 일하던 여성은 스스로 원하든 원치 않든, 생계를 위해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한다. 부인은 남편에게 가사노동의 분담을 원하지만, 남편은 가족을 위한 적은 봉사(?)에 큰 생색(!)을 원한다. 육아는 여전히 여성의 몫이고, 부계 중심 가족 행사에서 며느리 역할도 달라지지 않았다. 가족 내 성별분업이 '교육, 홍보'와 '가족 구성원 간 유대 강화'로 해결한다는 것은, 순진함인가, 무의지의 발로인가? 일과 가정의 양립은 여성노동자들이 가족 내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지원할 뿐이며 결국 어머니로, 노동자로 이중 억압 구조를 고착시킬 것이다.

돌봄노동의 사회화는 또 다른 저임금·불안정 노동을 양산한다

여성의 무급노동으로 존재했던 돌봄노동은 보육·방과 후 학교 지원·노인수발보험제도 도입 등 사회화된 돌봄노동(간병인, 보육교사, 가사도우미 등)으로 대체될 것이다. '돌봄노동'이 여성의 일자리로 성별화 됐고, 여성의 노동은 언제나 '쉬운 일'이므로 가치 절하되었다. 사회적 일자리 창출이 '돌봄노동'의 정당한 가치를 매기지 못한다면,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은 또 다른 저임금·불안정 노동시장으로 유입될 것이다. 여성의 가족 내 무급노동으로 유지됐던 돌봄노동의 사회화는 성평등 실현의 필수적 요건이다. 하지만 돌봄노동을 진행할 여성노동자에 대한 고려 없이 진행되는 돌봄노동의 사회화는 또 다른 차별을 양산할 것이다.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보면 몇 가지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과연, 출산육아휴직제를 사용해도 돌아갈 일터가 있는 여성이 얼마나 될까? 돌봄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는 여성은 얼마나 될까? 생계를 위해 일해야 하고, 돌봄서비스를 구매하지 못하는 저소득층 여성은 하루에 얼마나 일해야 할까? 한 여성학자는 '고학력·전문직·기혼 여성을 대상으로 한 기본계획'은 자본의 요구에 이끌려가는 정부가 어떤 계층의 출산율을 바라는지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생계를 위해 아이를 방치할 수밖에 없는 빈곤여성을 위한 정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성노동자 70%가 비정규직 노동자이고, 66.2%가 5인 미만의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이 노동시장에서 겪는 차별은 왜 시정하지 않는가? 여성을 위한 척 하지만, 결국 여성 내부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은 자명하다.

보수적 가족주의로의 회귀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은 보수적 가족주의로 회귀를 꾀한다. 과연, [기본계획]에 등장하던 '가족문화', '가족친화적'의 가족은 어떤 가족일까? 비혼모의 출산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입양아 지원을 제외하면, 다자녀가정에 유리한 조세 및 사회보험 혜택 확대, 주택공급이나 국공립보육시설 이용시 인센티브 도입은 소위 '정상가족'을 강화하고 있다. 이성간 결혼을 통한 부부가 출산(또는 입양)을 통한 부모됨을 '정상가족'으로 규정하는 것은 실제로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가족다양화 현실을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다. 이혼, 재혼, 한부모, 무자녀 가족과 같이 부부됨과 부모됨의 변형, 성소수자, 공동체 가족과 같이 이성애적 섹슈얼리티에 기반을 두지 않은 모든 동거 양식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이성애적 결합과 출산'만을 강요하며 경계와 차이를 확대할 것이다.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은 남성중심적, 혈연중심적 가족으로 회귀를 꿈꾸고 있다.

저출산·고령화의 위기는 자본의 위기이다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서 개발독재시대의 출산억제정책의 잔영이 느껴진다. 왜일까?
보수주의자들은 성장담론 속에 여성을 동원하려 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삶의 양식과 사고는 이미 변했다. 90년대 중반까지 출산율 하락은 국가의 인구억제정책과 여성 스스로 삶을 주체적으로 꾸리기 위한 욕구가 결합되었지만, 90년대 이후 출산율 하락은 고용불안정, 소득구조의 양극화, 자녀양육의 고비용 구조 등 환경적 요인이 작용했다. [기본계획]에 따르면 저출산의 원인을, 전국가구 평균소득 기준 150% 이상 가구 37.7%가 '자녀 양육의 경제적 부담'으로, 50% 미만 가구 38.4%가 '소득과 고용불안정'을 저출산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왜 노동유연화 철회는 [기본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것인가?
결국 관점의 문제이다. 사회적 양극화를 초래하는 분배구조의 개선과 지속 가능한 발전에 대한 질문은 허용되지 않은 채, 생산인력의 문제로 접근하는 저출산·고령화 '위기'가 누구의 위기인지 알 수 있다. 출산율 저하 현상을 '저출산 위기'로 호도하며, 인구정책을 가장하는 자본과 보수주의자들의 공세에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 어떠한 대안을 갖고 있나? 위기는 '저출산'이 아니라, '무대응'이었다. '늦었다고 느낄 때가 가장 빠른 때다'라고 했던가?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떻게 할 것인지, 지금이라도 모색해야 한다.

저출산 고령사회 담론은 한국사회의 이중성을 반영하고 있다. 여성들이 놓여있는 다양한 사회적 맥락, 즉 노동시장의 현실이나 가족관계 등에서 나타나는 복합적 맥락을 읽어야 한다.
여성과 남성의 섹슈얼리티를 재개념화하고, 의무와 희생으로 점철된 신화적 모성이 아닌, 모성에 대한 여성주의적 사유가 요구된다. 가부장적 자본주의 생산 노동을 성평등적 생산-재생산 노동으로 다시 만들어야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안적·여성적 가치로 전환은 여성 스스로 찾아 나가야 하며, 이를 실천할 여성의 활동에 주목해야 한다.

난해(難解)하나, 난제(難題)는 아니다

난해하다고, "나는 그나마 성평등한 사람이지만, 계급적 요구를 담은 성평등 전략은 여성활동가의 몫"이라는 면피용 발언도 그만 하자. 여성의 목소리가 여전히 '송곳처럼 까칠한 여자들의 언어'로 느낀다면, 반쪽짜리 평등 세상에 누가 한 배를 타겠는가? 실천 전략 없는 이데올로기는 그 어떤 것도 허상에 불구하다. 노동운동에서 성평등 전략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답을 찾아야 한다. 종일 일해도 허기진 여성의 삶에 파열구를 내는 실천 속에 오직 그 답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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